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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식 님의 서재입니다.

강제로 초월당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정춘식
작품등록일 :
2022.05.11 17:00
최근연재일 :
2022.12.01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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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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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20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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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뒷정리

DUMMY

어디론가 무작정 떠나고 싶었다.


-


시공의 소용돌이가 휩쓴 공간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승호를 향해 용언이 들려왔다.


[뭐 하고 있어요. 뒷정리 안 해요?]


같이 지구로 넘어온 소리였다.


도착하자마자 어디론가 사라지더니, 방벽을 확인하고 왔나 보다.


승호는 어떻게든 홀로 복귀하고 싶었지만, 말을 흐리는 그의 태도에 수상함을 감지한 소리가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했고, 지구의 상황에 대해 모두 말할 수밖에 없었다.


“뭔가 알아냈어요?”


[아뇨. 한번 부숴보려 했는데, 힘으로 안 되는 물건이더라고요. 승호씨 말대로 솜씨 좋던데요.]


“파편으로 공명시키면 쉽잖아요.”


[제 시공력에는 반응하지 않았어요. 아마 당신이 지구 출신이거나 여기서 흡수한 파편 때문인 것 같아요.]


승호가 로키를 처리하고 흡수한 파편은 어떠한 이질감이나 반발 없이 동화됐으니 아마 출신에 따른 문제일 것이다.


“그럼, 제가 가서 부숴볼까요?”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이 별의 상주 요원은 당신이니까. 그런데 일단 여기 정리부터 하셔야죠. 말 돌리지 말고요.]


정리할 엄두가 안 나는 상황이라 방벽 핑계를 대면서 도피하려던 승호는 그 의도를 바로 간파당했다.


절로 한숨이 나온다.


“후... 뭐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혀서요.”


크로노스와 승호가 마주쳤고, 이후 둘의 전투가 벌어졌으며, 마지막으로 시공의 소용돌이가 휩쓸고 간 승호의 집 앞 현관.


하지만 크로노스가 터트린 강기와 시공의 소용돌이 덕분에 더 이상 현관이라 부르기는 힘들다.


현관뿐만 아니라 아파트 건물 자체가 소멸했으니 말이다.


그나마 주위에 피해가 번지지 않고, 건물 하나 정도로 그친 것이 다행이라 해야 할까.


하지만 승호는 건물과 인명피해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안 하고 있는 상황이다.


당장 막막한 것은 뒤틀린 시간의 흐름과 그 흐름을 따라 날뛰는 크로노스의 기억.


이를 어찌 바로 잡아야 할까. 너무나도 귀찮다.


괜히 갑자기 떠나고 싶다는 둥 염세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 아니다.


‘아, 진짜 하기 싫다...’


-


계속 쳐다보고 있을 수만은 없기에 승호는 우선 알버트를 부르려 했다.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해보자는 생각이 들자 드디어 건물이 사라진 것도 문제란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이건 그냥 떠넘겨야지.’


시간의 흐름이야 안정시킬 사람이 자신밖에 없지만, 물리적인 피해 복구까지 맡기는 싫다.


문외한인 자신이 나서서 뭘 하기보다는 클럽에 부탁하는 것이 깔끔하고 골머리 썩힐 일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일단 말이라도 해놓자는 생각에 알버트를 부르려는데, 그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 녀석 어디 간 거지? 아... 죽었겠구나.’


혹시나 알버트가 지난밤 외박을 한 것이 아니라면 앞집에 있었을 게 뻔했고, 그건 곧 소동의 중심에 있었다는 뜻.


지구에서는 나름 한가락 한다지만, 쉴 새 없이 터지는 강기와 시공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살아남을 정도는 아니었으니 그대로 사망했을 것이다.


‘이러면... 일단 알프레드에게 전화부터 해야 하나?’


살갑게 친구라고 할만한 사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지인이라 부를 정도는 되는 녀석이다.


게다가 소동에 휩쓸려 죽은 사람이 알버트뿐만은 아닐 것이다.


금전적인 피해복구에 이어 소동에 휘말려 죽은 사람들을 생각하니 승호의 가슴이 갑갑해진다.


무기력한 와중에 약간의 우울감이 더해지자 반쯤은 농담 반쯤은 진심이던 환원하고 싶다는 욕구가 더욱 커진다.


옆에 있던 소리가 아니었다면 진짜로 흩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까부터 계속 멍하니 뭐 하는 거예요? 얼른 흡수부터 하세요.]


“흡수요? 기억 말하는 거 맞죠? 이걸 다?”


-


뒤틀린 시간의 흐름과 날뛰는 기억은 폭주한 시공력으로 인한 것.


승호에게 같은 힘이 없다면 기록을 이용해 하나하나 진정시켜야 했겠지만, 이미 힘을 지닌 상태였으니, 그대로 흡수하면 되는 일이긴 하다.


게다가 완전히 기억을 흡수한다면 좀 더 자세하게 크로노스의 사정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파악이 뭐야. 내가 겪은 것처럼 생생하게 느끼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호가 꺼리는 이유는 그게 남의 기억이라는 것.


“이걸 굳이 흡수까지 해야 해요?”


[무슨 걱정인지는 알겠는데, 고작 기억 좀 흡수했다고 정체성을 잃거나 하는 일은 없어요. 자기 일처럼 겪은 뒤에 공감 정도는 할 수도 있겠네요.]


“그 공감이 싫은 건데요...”


세상에 사정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공감과 이해를 넘어 자신이 겪은 일처럼 생생하게 느끼겠지만 승호는 그 사정을 그닥 알고 싶지 않았다.


마주치자마자 과민반응하던 로키.


일이 틀어지니 바로 공격해온 크로노스.


침략자들과 벌어진 고대의 전쟁.


그들을 막기 위해 설치된 방벽.


방벽 안에서 관리자란 놈들이 무슨 의도로 조각들을 퍼트렸는지 등등.


잠깐 떠올린 것뿐인데도 귀찮아질 것이라는 예감이 활활 타오른다.


[그렇다고 제가 흡수할 수는 없잖아요. 저도 싫으니까 얼른 하세요. 죽은 인간들 되살리는 것도 귀찮은 일이라고요. 조금 궁금해서 와봤더니 뒤치다꺼리나 하게 될 줄이야.]


괜히 왔다면서 툴툴거리는 소리의 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기억을 흡수하려는데 소리의 말 중 특정 부분이 계속 귓가에 맴돈다.


“잠깐. 방금 인간들이라고 했어요? 되살린다고요?”


알버트의 죽음을 인지한 승호도 그의 부활을 시도해보긴 했다.


승호의 심상에 자리잡을 정도로 친밀했다면 기운만으로 부활이 가능했겠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기에 필요한 조건이 제법 많았다.


일단 시간이 오래 지나지 않아야 했으며 죽은 당사자의 시체가 필요했다.


시간은 큰 문제가 아니었으나, 시체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


시체가 없다면 하다못해 죽은 당사자와 혈연이 있는 육체를 준비해야 했고 그 외에도 필요한 재료와 소모되는 기의 양이 점점 늘어났다.


당연히 그런 수고까지 들여 알버트를 되살리고 싶은 마음은 없기에 승호는 바로 포기했다.


이웃주민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도 약간의 찝찝함은 남을 수밖에 없었는데, 소리가 그들을 되살릴 방도가 있다는 듯이 말을 꺼낸 것이다.


[승호 씨는 무리에요. 시공력이 아직 모자라거든요. 어휴. 내가 괜히 와가지고. 진짜 일을 사서 만들었네.]


“정말로 가능해요?”


[시간이 지날수록 성공률도 떨어지고 소모되는 비용도 늘어나니깐 빨리 흡수나 하세요.]


“옙.”


승호는 그나마 약간의 우울감은 지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곧장 손을 뻗어 휘몰아치는 흐름과 기억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


승호의 머릿속에서 갑자기 크로노스의 기억이 갑자기 떠오른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흡수한 것들을 동화시키지 않고 억지로 한 구석에 밀어놨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은 소리가 사람들을 어떻게 되살릴지 더 궁금했다.


[되살린다기보다는 다른 세계의 일부를 이 세계에 덮어씌우는 거죠.]


승호와 크로노스가 소동을 벌이지 않은 다른 우주의 일부를 불러낸다는 소리였다.


그 세계에는 여전히 멀쩡한 건물과 사람들이 있을 테니 가능한 이야기기는 했다.


“사람만 살리는 게 아니라 아예 원상 복구한다고요? 그게 가능해요?”


[딱히 어려울 건 없어요. 별 전체를 덮어쓰는 것도 아니고, 표면. 그중에서도 미세한 부분만 집어 오는 건데요.]


승호가 듣기에 기록을 이용해서 인간을 되살리는 것보다 훨씬 어려우면 어려웠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충분한 시공의 힘이 없다면 말이다.


[적용되는 방식이 상이해서 시공력으로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기로는 어렵고, 기를 이용하면 쉬운 일이 시공력으로는 불가능한 경우가 많아요. 승호씨는 아직 모은 파편이 부족해서 감이 안 올 거예요.]


소리의 설명이 끝나기가 무섭게 승호의 시야에 사라졌던 건물이 다시 들어왔다.


어떠한 사전 준비나 힘의 집결 없이 문자 그대로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다.


‘와우’


앞으로 어지간하면 놀랄 일은 없으리라 생각한 승호였지만 기쁜 오산이었다.


-


원상 복구된 집으로 돌아온 승호는 곧장 앞집의 문을 열어제꼈다.


쾅!


굉음과 함께 젖혀진 문 안으로 보이는 것은 놀란 표정의 알버트다.


“형님?! 갑자기 무슨 일이세요? 제집으로 오신 건 처음이잖아요.”


“그냥. 뭐 하고 지내나 확인해봤어. 쉬어라.”


“아, 예.”


딱히 할 말은 없었기에 곧장 집으로 돌아온 승호는 감각을 열어 건물 전체에 있는 생명체들을 확인했다.


원래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었는지는 전혀 모르는 승호지만, 건물 여기저기에 느껴지는 인기척은 그를 미소짓게 만들었다.


이게 남들이 말하는 소확행인가 싶어 계속 주변을 살피는데, 소리의 용언이 들려왔다.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벌써요? 지구 상황은 더 알아보지 않고요?”


[그건 승호 씨 일이잖아요. 제가 왜요? 괜히 호기심에 들렀다가 당신 뒤치다꺼리만 더할 것 같으니 그냥 빨리 복귀할래요.]


“그러면 뭐 일에 대해서 조언해줄 건 없어요? 여기서 확인한 특이점이라거나요.”


[방벽이란 물건은 꽤 솜씨가 좋긴한데 그래봤자 별 하나 감싼 수준이에요. 시공력에 익숙한 존재라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죠.]


“그럼 소리도 만들 수 있어요?”


[아뇨. 그러니까 더 머무르면 귀찮아질 것 같아서 도망가는 거예요. 잘 있으세요.]


“잠깐-”


슈욱


“갔네...”


자기 할 말만 하고 금방 사라지는 것이 어째 레니스와 똑같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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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기적 감정 +2 22.08.28 435 20 10쪽
57 기억 탐색 (2) +1 22.08.27 396 1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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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뒷정리 +1 22.08.20 492 2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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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크로노스 (2) +2 22.08.13 496 24 10쪽
52 크로노스 (1) +3 22.08.11 495 2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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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요괴들의 사정 (1) +1 22.08.05 513 28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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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게임 중독(1) +1 22.07.31 563 21 13쪽
47 악연 (3) +2 22.07.29 579 25 13쪽
46 악연 (2) +1 22.07.27 573 21 10쪽
45 악연(1) +3 22.07.25 626 2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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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나들이 +2 22.07.21 689 24 10쪽
42 마무리 (2) +2 22.07.19 768 26 10쪽
41 마무리 (1) +2 22.07.17 807 2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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