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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식 님의 서재입니다.

강제로 초월당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정춘식
작품등록일 :
2022.05.11 17:00
최근연재일 :
2022.12.01 19:4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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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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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0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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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25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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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술래잡기 (3)

DUMMY

“너 분명 정신체는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꿈에 간섭할 수 있는 거지?”


-


꿈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들지만, 개별 존재가 다중우주의 자신들과 공유하는 세상의 경계이자 문일 수도 있고, 다른 우주 만물과 마찬가지로 기(氣)가 근원이다.


근원이 같으니, 다른 모든 것(萬物)처럼 정보로 받아들이고 파악할 수 있으며, 의지대로 바꾸는 것(改變)이 가능하다.


‘그냥 되는 걸 가지고 어떻게 하냐 물어보면 난감한데...’


존재 자체가 분기점인 용은 모든 세상을 통틀어 홀로 존재하기 때문에 꿈을 꾸지 않는다.


애초에 용은 잠이 필요 없는 존재.


승천 이전의 습관이 메아리처럼 남아있기에 휴식의 개념으로 그 행위를 이어 나갈 뿐이다.


그런 용이 잠에 든다는 것은 반쯤 흩어진 채 무의식의 상태에서 주변의 정보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소리.


주변에 꿈을 꾸는 중인 존재가 있다면 자연스럽게 그 꿈에 대한 정보도 받아들인다.


현실과 꿈의 경계가 무의미한 것이다.


영체(靈體)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물어보면 대답해드리는 게 인지상정이긴 한데, 그냥 되는 걸 어떻게 설명하라고?”


야훼의 질문은 인간에게 호흡을 어떻게 하는지 알려달라는 것과 다름없다.


폐라는 신체 기관과 들숨, 날숨의 개념에 대해서야 말해줄 수 있지만, 그 폐를 어떤 방식으로 얼마만큼 움직이는지 물어본다면 대답은 곤궁할 수밖에 없다.


숨 쉬는 방법을 설명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


그래도 승호는 자기 나름대로 야훼가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시도했고, 당연히 그 시도는 무산됐다.


[지금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냐?]


현실과 꿈의 경계가 무의미해?


말도 안 되는 소리.


야훼는 자신이 어떻게 신도들의 정신에 간섭하게 되었는지를 떠올렸다.


자신에 대한 신앙이 인류의 반 이상을 뒤덮고 오랜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야훼는 거대하지만, 그저 거대하기만 할 뿐인 무언가와 연결되는 경험을 했다.


처음에는 새로운 침략자가 나타나서 새로운 공격을 당한 것으로 생각했다.


금방 그 의심을 거뒀지만, 공격이라 착각할 만큼 강렬한 경험이었다.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시작점.


그와 연결된 무언가는 주체가 없는 정신망(精神網)이었다.


그물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구멍이 숭숭 뚫려있었지만 말이다.


어떠한 목적이나 의미 없이 그저 존재할 뿐인 실체 없는 무언가.


이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무형의 개념이 자신의 새로운 힘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야훼는 곧이어 깨달았다.


이건 자신에게 신앙을 가진 인간들의 의념이 뭉치고 뭉쳐 생긴 무언가다.


야훼는 이 무언가를 신성(神聖)이라 명명(命名)했다.


-


예수, 천사와 악마 그것도 모자라 산타클로스 같은 잡스러운 개념들도 자신의 신성에 한 발짝씩 걸치고 있는 게 느껴졌지만, 야훼는 만족했다.


신성은 그 잡스러움 덕분에 그저 거대하기만 할 뿐. 적당히 앙상하면서도 여기저기 성긴 상태를 띠었고, 오히려 야훼가 다루는데 좋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신성이 완전함을 갖춘 상태였다면, 신성의 크기 자체에 짓눌려 존재가 사라졌을지도 몰랐다.


어쨌거나 근본은 그에 대한 신앙이었으니, 이 신성을 다룰 수 있는 존재는 야훼가 유일했다.


[운이 좋았지.]


다른 관리자들로부터 인류 전반에 걸친 조정을 떠맡았을 때는 절로 한숨이 튀어나왔다.


전령으로 삼은 몇몇 인간들에게 마음을 너무 과하게 썼고, 그들로 인해 자신을 믿는 종교들이 인류를 뒤덮은 것이 이유였으니 거절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너무 복잡하게 얽혀 반쯤 놓아버린 자신에 대한 신앙이 이렇게 돌아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야훼는 신성의 존재를 파악한 그날부로 육체를 버렸다.


순수한 정신체로써 신성을 완전하게 만든다면 더 높은 존재로 오를 수 있음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는 신성에 거의 모든 시간을 쏟아 부었다.]


야훼는 신성에 대해 탐구하고 고민하면서 백 년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신성과 연결된 신도들의 정신에 접근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시공력 없이 신도들의 정신에 접근하는 데에만 백 년이 걸린 것이다.


그마저도 신성에 연결될 만큼 신실한 신도들에 한해서였다.


꿈에 접근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다.


우연히 꿈을 꾸고 있던 신도이자 예비 육체의 정신에 접근하면서 꿈이 경계이자 문임을 깨닫고, 바로 시공력을 이용해 그 문을 열어젖힌 것이다.


원래 조각이 활성화된 예비 육체들의 정신에는 접근이 가능했으니, 두 방법을 섞으려 시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꿈을 통한 시공 관측과 파편을 사용한 시공 간섭이 동시에 일어나면서 발생한 현상.


우연과 필연이 교차한 그 한순간.


야훼는 자신의 존재를 한 꺼풀 벗었다.


꿈을 통해 다른 세상의 야훼와 마주한 뒤, 자연스럽게 서로를 관찰하다가 하나로 통합된 것이다.


신성이 좀 더 다루기 쉬워졌고, 시공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다.


꿈에 대한 접근도 수월해졌으며, 자신에 대한 신앙을 공유하기만 하면 꼭 신실한 신도가 아니더라도 그 정신에 접근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아직 부족했다.


다른 존재의 꿈에 출입이 가능해졌을 뿐. 꿈이라는 개념에 대한 실질적인 간섭은 불가능했다.


고작해야 신성을 이용해서 꿈의 주체에게 환상을 보여주는 것이 지금 야훼가 가진 한계다.


인간들의 꿈 하나하나가 소우주(小宇宙)나 마찬가지였으니 당연한 일이다.


아마 다중 우주의 모든 자신들과 합일해 온전한 유일신(唯一神)으로 다시 태어나야 꿈에 대한 간섭이 가능하리라.


그런 야훼의 앞에 그 지고(至高)하고 지난(至難)한 행위를 ‘그냥 되던데?’라고 말하는 존재가 나타났다.


당연히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


-


야훼도 방벽 바깥에 격이 다른 존재들이 있다는 것 정도야 알고 있다.


알다뿐이겠는가 직접 마주쳐도 봤고, 싸움이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의 발악도 해봤다.


그러니 더 높은 존재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앞에 있는 승호가 그런 존재라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가 느끼기에 승호는 불가해하지만, 그래도 아직 인간을 벗어나지 못한 존재다.


상위 존재들에게서 느껴지던 위압감이나 존재감도 전혀 없다.


애초에 인간에게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지조차 의문이다.


[그런데 네가 그런 존재라 주장하면 내가 어찌 반응해야 할까?]


“무작정 그런 존재냐고 물어보면 내가 그게 뭔 줄 알고 대답하냐. 방금 전 꿈에 대해서도 그렇고 너는 어디 가서 질문하는 법부터 배워야겠다.”


[이런 존재들 말이다.]


화악!


야훼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상위 존재들을 하비에르의 꿈에 투영했다.


빛과 어둠, 생명과 죽음. 개념 그 자체와 다름없던 올림포스의 프로토게노이(Πρωτογενοι).


아홉 세상에 뿌리내려 별의 문을 열어젖힌 아스가르드의 위그드라실(Yggdrasill).


그런 두 집단이 부딪혔을 때 소리 없이 나타나 그 사이를 중재했던 천계의 삼청(三清).


“우와~ 이런 놈들이 있었어?”


고작 환상에 불과했지만. 야훼가 느낀 상위 존재들에 대한 동경과 공포도 같이 스며들어온다.


그 위용은 승호를 놀라게 했다.


‘앞에 있는 떼거리는 어떤 놈들인지 감도 안잡히네. 혹시 군체인가?’


프로토게노이들은 존재 하나하나가 용과 비슷해 보였지만, 무언가 달랐다.


실제로 마주한다면 알 수 있을까.


승호는 지금 보는 게 환상이란 사실이 안타까울 정도였다.


‘얘들은 형체를 억지로 잡았나? 뭐 이따구로 생겼어?’


삼청은 빛 덩어리 세 개가 뭉쳐있는데도 각자 억지로 형체를 유지하려는 듯 꿈틀거리는 모양새였는데, 자신처럼 초월자란 것만 짐작될 뿐이다.


‘어디 보자, 얘는 말로만 듣던 세계수 같은데? 위그드라실이라...’


그나마 익숙한 개념의 존재를 조금이라도 자세하게 느끼고 싶어서였을까.


스윽-


승호는 꿈을 가득 채운 나무에 저도 모르게 다가가 그 뿌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본 야훼는 비명이나 다름없는 텔레파시를 내보냈다.


[!]


마침내 승호가 자신보다 격이 높은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인 것이다.


[큭! 분명 착각이라 생각했는데.]


승호 입장에서야 갑자기 저 혼자 놀라더니 요상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것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갑자기 뭔데?”


낮에 있었던 잠깐의 술래잡기.


승호는 하비에르를 붙잡음과 동시에 야훼의 정신체에도 형태를 구현해 손목을 붙잡았었다.


어떤 강력한 의지를 갖추고 형태를 구현한 것이 아니다.


그저 붙잡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기에 붙잡았을 뿐.


경계가 흐트러져있기에 주변을 모두 자신으로 받아들인 승호가 자연스럽게 형태구현(形態具現)을 행한 것이다.


워낙 자연스러워 붙잡혔던 야훼조차 그 순간에는 아무렇지 않게 넘어갔었다.


자리를 벗어난 뒤 상황을 복기하다 기겁해서 곧장 승호를 찾아온 것이 지금이다.


승호에게는 설명하는 것이 난감할 정도로 숨쉬듯 자연스러운 행위지만, 지금의 야훼에게는 불가능한 일.


[정말 방벽에 구멍이라도 뚫린 건가? 너 같은 존재가 대체 어떻게 여기 있는 거지?]


방벽의 주목적은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존재들을 막아내기 위함이고, 몇천 년간 그 목적을 완벽히 수행했다.


혹여나 압도적인 힘에 의해 방벽이 뚫려도 그런 존재들을 막는 추가 조치들이 겹겹이 쌓여있다.


그런데 그런 조치들이 아무것도 발동하지 않고 잠잠한 상황이다.


야훼가 괜히 고집을 부리듯 승호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은 게 아니다.


하지만 직접 승호의 실체를 확인한 이상 타조증후군에 걸린 것처럼 계속 현실부정을 이어갈수는 없다.


화악!


“갑자기 뭔데? 야! 조금만 더 보여줘 봐.”


갑작스레 환상과 야훼의 존재감이 사라졌다.


야훼가 결심과 함께 전개한 신성을 회수한 것이다.


승호는 극장에서 영화 감상을 방해받은 것처럼 짜증을 냈다.


용이 아닌 초월자들을 보는 것은 처음이라 한창 흥미진진해 있었으니 비슷한 상황이기는 했다.


야훼는 승호의 그런 모습조차 끔찍할 정도로 공포스럽게 느껴졌다.


먼 옛날 마주했던 상위 존재들은 저렇게 인격신적인 면모를 보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은 여기까진 것 같군. 아니, 네 말대로 술래잡기는 끝이다.]


슈확!


겁에 질린 야훼는 신성과 시공력을 비롯한 모든 힘을 동원해 하비에르의 정신에서 도주했다.


“아, 이자식 또 도망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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