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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식 님의 서재입니다.

강제로 초월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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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식
작품등록일 :
2022.05.11 17:00
최근연재일 :
2022.12.01 19:45
연재수 :
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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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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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01,965

작성
22.08.13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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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크로노스 (2)

DUMMY

“혹시 너도 일본삼대악귀인가 뭔가냐?”


-


요괴는 아직 멍한 상태인지 승호의 질문에 순순히 답했다.


“음? 최근 이 몸을 슈텐, 키츠네와 같이 뭉뚱그려서 부른다는 이야기는 들었지.”


“그래...”


아마 이 녀석이 크로노스에게 몸뚱이를 뺏긴 사이, 그 빈 자리를 승호에게 털린 텐구놈이 차지했나 보다.


그 이야기를 해주자 오타케마루는 분노를 터트렸지만, 승호 입장에서는 전혀 관심 없는 이야기다.


“뭣이?! 감히 그 반요놈이 이 몸의 자리를 차지해?! 꼴에 덴노 출신이라고 귀엽게 봐줬더니, 참으로 건방지군!”


하지만 조금의 정보를 얻기 위해서라도 이 요괴를 잘 구슬려야 했다.


“그래. 그 새새끼가 좀 건방지긴 하더라. 그보다 방금 최근이라 했지? 지금이 몇 년도인지는 알아?”


“연호를 말하는 건가? 얼마 전 아랫것들이 이제 헤이세이 시대라고 말하는 걸 들은 적 있다.”


분명 년도를 물어봤는데 석기시대 비슷한 단어가 튀어나오자 승호는 머리가 아파졌다.


맘 같아서는 그냥 기절시킨 뒤 정보나 뽑고 싶지만, 이미 녀석이 정신을 잃었을 때 시도해본 상황이다.


오타케마루라는 놈의 시간 흐름은 크로노스였던 기간이 완전히 지워진 상태였다.


[제 기억이 맞다면 아마 지구의 90년대를 말하는 걸 거예요.]


“누구냐?!”


소리의 존재를 감지하지 못했던 요괴는 대경실색했지만, 승호는 그런 사정을 살펴줄 만한 여유가 없다.


“소리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지구에 잠깐 들렀을 때 흡수한 정보 중에 있어요.]


소리는 지구에 잠깐 들른 것만으로도 승호의 뻘짓을 만화책 기술의 흉내로 판단할 만큼 정보 흡수에 도가 튼 용이다.


“그걸 다 기억해요?”


[망각이 없지는 않지만, 제 기억체계는 조금 다르거든요. 옆에 있는 아이가 매개가 돼주기도 했고요.]


소리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궁금했지만, 당장은 집중해야 할 일이 있기에 승호는 주의를 돌렸다.


‘일단 이놈은 최소 30년 넘게 몸을 뺏긴 거군.’


크로노스도 로키처럼 여러 시간대를 왔다 갔다 했을 테니 정확한 기간을 특정하기란 불가능했다.


“혹시 크로노스에 대해 기억나는 거 뭐 없어?”


“크로노스? 그건 또 뭐하는 놈인가? 그보다 대체 이곳은 어디지? 이 몸이 먼저 질문에 대답을 해줬으니 이제 너희들도 내가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도와라.”


전혀 감지되지 않는 은신술의 대가와 자신의 위엄이 전혀 통하지 않는 승호까지.


심상찮음을 느낀 오타케마루는 일단 성질을 죽이고 자기 나름대로 정중하게 요청했다.


하지만 눈앞의 요괴가 아는 게 전혀 없다는 것을 파악한 승호는 사정을 설명해줄 잠깐의 시간조차 아까웠다.


“됐고. 여기 와서 잠깐 머리 좀 대봐.”


“뭣?! 잠깐!”


오타케마루는 승호가 갑작스럽게 다가오자 허리춤에 메고 있던 칼 세 자루를 뽑아서 반항하려 했다.


우지끈!


하지만 그보다 더 빨리 움직인 승호가 반쯤 뽑힌 칼들을 모두 직각으로 꺾어놓자 다시 정신을 잃었다.


칼 세 자루가 요괴와 일심동체였기 때문이다.


녀석이 쓰러져 있을 때 정보 흡수를 통해 파악한 사실이다.


끼이익.


쓰러진 요괴의 기억을 지운 승호는 완전히 꺾어진 세 자루의 칼을 다시 폈다.


정신을 잃은 요괴는 칼이 다시 펴지는 감각에 움찔거렸지만, 승호가 알바는 아니다.


‘휘었던 자국은 좀 남으려나?’


최소 삼십 년간 육체를 빼앗겼다가 겨우 정신을 차린 요괴를 핍박하는 꼴이지만, 승호에게 딱히 미안함이나 죄책감 따위는 없다.


오히려 감사 인사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어쨌거나 빼앗긴 몸을 되찾아준 은인이니까, 이 정도는 참으라고.’


-


“읏샤! 소리. 지구로 가는 문 좀 부탁해요.”


쓰러진 요괴를 둘러멘 승호는 소리에게 빛기둥을 부탁했다.


얼른 돌아가서 크로노스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아야 했다.


[대체 무슨 일인데요?]


“파편 소유자를 데리고 왔는데, 저번이랑 똑같아요. 흔적도 없이 사라졌네요.”


[헤에, 장난이 아니었어요?]


당시에도 아니라고 진심을 담아 항변했지만, 전혀 믿지 않은 모양새다.


[아, 혹시 장난이 먹힐 때까지 계속 시도하는 유형이에요?]


게다가 아직까지 의심하는 중이라니.


이쯤 되면 승호도 텔린이 대체 어떤 장난질을 쳤길래 자신의 취급이 이런 건지 궁금할 지경이다.


“장난 아니라니까요. 아무튼,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고, 문 좀 부탁해요. 급해서 그래요.”


[그러면 같이 가죠.]


“네?”


[같이 가자고요. 별을 벗어나면 사라지는 파편이라니 저도 처음 보는 상황이에요. 흥미가 생기네요.]


최대한 지구의 상황을 숨기고 농땡이를 피우려던 승호의 계획에 적신호가 켜졌다.


‘아, 이러면 완전히 나가린데...’


-


지구로 돌아온 승호를 맞이한 것은 거대한 강기덩어리였다.


쾅!


갑작스러운 기습이었지만, 반응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지는 않았기에 수월하게 피해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승호가 어깨에 메고 있던 요괴는 강기에 직격당했다.


‘아이고, 엄청 아프겠다.’


다행히 같이 들기 번거로워 따로 챙겨놓은 칼 세 자루는 멀쩡했기에 녀석의 목숨줄은 붙어있는 상태였다.


‘뭐 정신 차리면 알아서 도망가겠지.’


승호는 메고 있던 요괴를 바닥에 대충 던져버린 뒤 기습자에게 말을 건넸다.


처음 보는 사내였지만, 누군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래도 몇십 년간 사용한 몸뚱아리한테 미안하지도 않냐?”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난 크로노스였다.


“힘과 장생을 얻을 기회를 줬으니, 그 대가를 받은 것뿐이다. 미안할 리가 있나.”


“그러셔?”


“그보다 뻔뻔하게 돌아왔군. 훔쳐 간 힘만으로는 부족했나 보지? 나머지도 뺐으러 온 건가?”


“훔쳐 가? 무슨 소리야?”


“그 몸뚱이에 있던 힘이 완전히 사라졌건만 발뺌하는가?”


“네가 못 쫓아온 거잖아. 너야말로 미리 말해줬어야지. 방벽을 벗어나면 시공의 힘이 사라진다고 말이야.”


“말도 안 되는 소리. 방벽은 지구 출신이 아닌 것들의 출입을 통제할 뿐이다. 변명치고는 허술하군. 관리국에 대한 이야기는 허무맹랑해도 짜임새가 있었건만.”


승호가 생각한 유일한 원인은 방벽이었기에, 크로노스의 대답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이 녀석 안에 있던 조각은 어디로 갔다는 거야?”


“도둑이 주인에게 물건의 행방을 묻다니. 참기 힘들군. 기만도 정도껏 해라.”


“기만이 아니라-”


“그만! 대화는 끝이다. 그냥 죽어라.”


쾅!


승호는 어떻게든 말을 이어가고 싶었지만, 크로노스의 공격이 그의 빈틈을 찔러온다.


아무래도 무력화시킨 뒤에야 다시 대화가 가능할듯싶다.


-


크로노스는 들끓는 분노에 완전히 몸을 맡긴 상태다.


‘이 정도로 화가 난 건 전쟁 이후 처음인가...’


그동안은 언제나 들끓는 감정을 다스리느라 심력의 소모가 너무 컸다.


자신의 과거와 미래가 의지와는 상관없이 보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별것 아니라 생각했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부작용은 점점 커졌다.


계속해서 보이는 과거의 일들이 문제였다.


한순간 뇌리에 스쳐 지나가는 수준에 불과하지만, 겪은 일들이 워낙 생생하게 느껴지다 보니 망각이란 개념이 사라졌다.


‘크윽!’


지금도 한순간 형제들과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따르는 자들을 살피던 과거가 떠오른다.


이어서 누이이자 아내였던 레아와의 행복한 나날이 떠올랐다.


하지만 행복을 기억한다면, 불행도 기억할 수밖에 없는 법.


어느 날 갑자기 지구에 나타난 침략자들과 그 우두머리인 제우스에게 아내와 자식들을 빼앗긴 일.


힘에 밀려 올림포스를 받아들이고 빼앗긴 가족들을 화친의 의미로 보냈다고 인정한 날.


신화라는 미명 아래 왜곡되어 웃음거리가 된 그 모든 일의 기억이 뇌리를 두드린다.


-


크로노스가 원래부터 시간을 엿보던 것은 아니다.


애초에 그는 시간의 신이 아니라 농경의 신이었다.


시공력을 갖고 태어나긴 했지만, 그 수준은 농작물의 수확을 조금 앞당기는 정도.


하지만 침략자들은 그 미약한 힘마저 뺏으려 들었고, 그들에게 맞서 싸우다 소멸하기 직전. 크로노스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모든 힘을 자폭하듯 사용했다.


빼앗기느니 없애버리겠다는 생각으로 저지른 일이었지만, 그 행동은 시간의 흐름에 자신을 고정해놓는 결과를 만들었다.


농경의 신 크로노스가 시간의 신이 된 것이다.


침략자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방벽이 세워진 이후.


어떻게든 기억을 다스리려 노력했지만, 모두 허사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오랫동안 반복해서 아픈 기억을 곱씹었다는 뜻이다.


다른 관리자들처럼 무감각해지거나 비웃음으로 넘길 수 있다면 좋으련만. 망각이 사라져버린 크로노스는 도무지 그럴 수가 없다.


문득 비슷한 사정을 지닌, 앞으로도 영원히 함께일 줄 알았던, 그리고 이제는 죽은 것이 확실한 장난기 가득한 친구를 떠올리자 더욱더 분노가 치민다.


‘로키!’


눈앞에 그 녀석을 죽인 것으로 추정되는 새로운 침략자가 보이자 더욱더 화가 치솟았다.


침략자들에게 그렇게 당했으면서도 다시 한번 속았다는 사실이 크로노스를 괴롭히는 것이다.


스스로 변명해보자면 속을 수밖에 없었다.


존재 자체가 분기점이라 했던가.


아직도 그 말만큼은 믿고 싶다.


이 새로운 침략자의 시간을 살피다 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것에는 그동안 시도 때도 없이 덮쳐오던 과거와 미래도 포함됐다.


대체 얼마 만에 찾은 평온인지...


과거와 미래가 보이지 않은 것뿐인데 이렇게 마음이 안정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시야에서 그를 치우면 바로 과거가 덮쳐온다.


녀석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힘을 빼앗기 위한 침략자의 수작이었다.


‘어떻게든 대가를 치르게 해주마.’


고정된 과거에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오롯이 현재를 바라볼 수 있다는 희망.


그 희망이 스러진 지금 크로노스의 분노는 어느 때보다 강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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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술래잡기 (1) +2 22.10.01 368 1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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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기억 탐색 (2) +1 22.08.27 396 11 11쪽
56 기억 탐색 (1) +2 22.08.24 433 17 10쪽
55 뒷정리 +1 22.08.20 491 21 10쪽
54 크로노스 (3) +1 22.08.14 504 23 11쪽
» 크로노스 (2) +2 22.08.13 496 24 10쪽
52 크로노스 (1) +3 22.08.11 495 25 10쪽
51 요괴들의 사정 (2) 22.08.07 546 26 11쪽
50 요괴들의 사정 (1) +1 22.08.05 513 28 9쪽
49 게임 중독(2) +3 22.08.02 542 26 10쪽
48 게임 중독(1) +1 22.07.31 563 21 13쪽
47 악연 (3) +2 22.07.29 579 25 13쪽
46 악연 (2) +1 22.07.27 573 21 10쪽
45 악연(1) +3 22.07.25 625 26 11쪽
44 잼민이 +2 22.07.23 644 23 11쪽
43 나들이 +2 22.07.21 689 24 10쪽
42 마무리 (2) +2 22.07.19 768 26 10쪽
41 마무리 (1) +2 22.07.17 807 25 10쪽
40 세상의 끝 +3 22.07.10 906 32 12쪽
39 침식 (4) +2 22.07.09 870 26 10쪽
38 침식 (3) +3 22.07.08 885 2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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