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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식 님의 서재입니다.

강제로 초월당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정춘식
작품등록일 :
2022.05.11 17:00
최근연재일 :
2022.12.01 19:4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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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0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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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01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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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술래잡기 (1)

DUMMY

“네. 저 같은 말단이야 위에서 까라면 까는 거죠.”


-


승호가 기적 감정사들 사이로 끼어든 이유의 반은 야훼를 찾기 위해서였다.


나머지 반은 굳이 표현하자면 재미와 흥미 정도?


스스로도 명확한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귀찮음을 떨쳐낸 여파인 것은 확실했다.


‘야훼는 언제쯤 만날 수 있으려나...’


크로노스의 기억에 의하면 야훼는 찾아 나선다고 찾을만한 존재가 아니었는데, 물리적 실체를 지니지 않은 정신체인 것은 둘째치고, 성향 자체가 다른 두 관리자와 전혀 달랐다.


[정신체 상태로 사는 이유가 뭐냐?]


[몸은 필요할 때 잠깐 빌리는 수준이면 충분하지 않나? 너희처럼 다른 존재들과 깊게 소통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우리가 지켜낸 세상이다. 그걸 그저 지켜보기만 하겠다는 거냐?]


[글쎄,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나? 난 오히려 너희들을 이해하기 힘들다.]


[가만 보면 너도 로키만큼 이상한 놈이란 말이지.]


[그건 욕인 것 같은데...]


자신을 믿는 신도들의 곁에서 그들을 지켜보기만 하는 존재.


그런 존재를 찾으려면 결국 신도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야 했다.


-


기독교의 신도 수는 전 세계 인구의 30% 정도고, 이슬람은 20% 정도 된다.


서로 간에 이것저것 자잘한 사정들이 넘쳐나긴 하지만, 결국 같은 신을 믿는 놈들이니 전 세계 인구의 반이 승호가 비집고 들어가야 하는 신도들이란 소리다.


‘그렇다고 30억 명을 일일이 조사하는 건 좀 아니잖아.’


교회는 신께서 모두를 사랑한다고 떠들어대지만, 그래도 지켜보는 대상에 따라 차이는 있지 않겠는가.


평범한 신도보다는 사제를 더 많이 지켜볼 것이고, 평범한 사제보다는 교황이나 추기경들에게 더 오래 시선이 머물 것이다.


‘교황청 소속의 신비 관련자쯤 되면 다른 놈들보다 지켜보는 빈도수가 높겠지. 이번에는 제발 말이 좀 통하는 놈이었으면 좋겠는데...’


사실 크로노스도 말은 제법 통하는 놈이었지만, 이미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다.


녀석이 아직 살아있는 시간선을 찾아볼까도 생각해봤지만, 사고로 시간의 흐름에 고정된 놈이 같은 사고를 재현해서 시공의 파편을 터트렸으니 다른 세계의 크로노스들도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대부분은 영문도 모른 채 시공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죽었을 것이고, 우연찮게 멀쩡한 녀석을 찾아낸다고 해도 그건 승호가 찾던 존재가 아닐 것이다.


결국 야훼를 찾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다.


‘근데 왠지 이번에도 삐끗할 것 같단 말이지.’


기억 속 대화만 놓고 보면 야훼는 세상을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는 존재였지만, 크로노스가 느낀 감정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대한 거부감과 미심쩍음이었다.


게다가 대상이 대상이지 않은가.


무려 그 야훼다.


기독교와 이슬람, 유대교를 비롯해 온갖 잡스러운 종교에서까지 유일신으로 우러름 받는 존재.


현대 인류에게 끼친 영향력만 놓고 보면 로키나 크로노스는 애교에 불과한 수준이다.


그런 존재가 얌전히 세상을 지켜보는 걸로 만족한다고?


직접 만나봐야 알겠지만, 승호는 그건 아니다에 전 재산을 걸 수도 있다.


‘진짜 그런 놈이면 내가 진짜로 전재산 다 헌금한다.’


빈털터리가 된다고 해도 클럽에 손 좀 빌리면 되기 때문에 의미는 없지만 말이다.


‘어쨌든 막막한 상황이었는데 잘 됐어.’


야훼를 어떻게 찾아야 할지 고민하다가 의식의 흐름에 따라 예루살렘에 핵이라도 떨궈야 하나 생각한 승호였으니 교황청의 접근은 환영할 일이었다.


-


“이제 뭘 어떻게 도와드리면 될까요?”


승호가 의욕적인 목소리로 기적 감정사들에게 뭘 해야 할지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실망스러웠다.


“기적의 발원지가 이곳이라 딱히 부탁드릴 건 없네요. 아! 마침 방이 몇 개 비는 것 같은데, 저희가 이곳에 며칠 머물러도 괜찮겠습니까?”


“네?”


야훼도 찾을 겸 반쯤은 재미 삼아 시작한 일이 어째 이상한 방향으로 진행됐다.


‘음...’


승호는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하면서 어떤 짐도 버리지 않았지만, 고시원에 있던 짐이 많아 봤자 얼마나 되겠는가.


그는 현재 방 세 칸짜리 아파트에서 가장 큰방과 거실만을 사용 중이었고, 남은 방 두 개는 말 그대로 텅 비어있는 상태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바로 거절하지 못하고 변명을 생각하다가 시간을 끌어버렸다.


마찬가지로 빈방이 있을 터인 앞집은 어떠냐고 제안해봤지만, 현재 승호의 역할은 알버트의 부하.


이 불청객들도 조직의 말단인 건 마찬가지다 보니, 알버트보다는 급이 비슷한 승호의 집에 머무는 것을 원하는 눈치다.


“교황청쯤 되면 돈 많지 않나? 숙소 안 잡아줬어요? 호텔이 편하실 텐데?”


“죄인이 편함을 추구해서야 되겠습니까. 게다가 주님을 위해 써야 하는 돈을 저희가 함부로 사용할 수 있나요.”


뭔 개소리냐는 듯한 승호의 표정에 직원은 농담이라며 말을 덧붙인다.


“농담입니다. 말씀드렸듯이 이 근처가 기적의 발원지라 그렇습니다. 최대한 가까운 곳에 거점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거든요.”


“흠...”


썩 내키지는 않지만, 제법 오래 고민한 승호는 결국 그들을 집에 들이기로 마음먹었다.


크로노스가 죽은 장소에 신도들이, 그것도 기적 감정사가 24시간 머물고 있는 상황.


야훼가 시선을 주고 싶지 않더라도 최소 한번은 살펴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계속 머물겠다는 것도 아니고, 아니다 싶으면 그냥 쫓아내면 되니까.’


어쨌거나 승호가 자초한 일이다.


악으로 깡으로 버텨야 할 듯싶다.


-


하비에르는 멕시코 이민자 가정 출신의 미국인 공학자였다.


문장이 과거형인 이유는 직장이었던 대학에서 학과장을 들이받고 잘렸기 때문이다.


인종차별 문제였다.


미국 학계의 인종차별은 일반적인 경우와 많이 다른데, 일단 흑인은 그 대상이 아니다.


죄다 배운 놈들이니, 문제가 생길 일을 대놓고 만들 리 없는 것이다.


인도나 중국계도 거의 모든 분야에 널리 퍼져있으니 아시아인들을 대상으로 삼기에는 조금 부적절하다.


그렇게 줄이고 줄이다 보면 가장 만만한 집단으로 하비에르가 속해있는 히스패닉이 등장한다.


당연히 스페인 문화권 출신의 백인들은 인종차별의 대상이 아니다.


이제는 사장된 단어이자, 하비에르가 속한 갈인(Brown race)들이 그 대상이 된다.


히스패닉이라는 단어로 뭉뚱그려져 있기는 하지만, 그들은 하나의 인종이라기보다는 다인종 다문화 집단이다.


그렇다 보니 다른 인종 집단처럼 자기들끼리 똘똘 뭉치기도 쉽지 않은데다, 그들 사이에서도 피부색과 혈통을 가지고 서로 선을 그어댄다.


은근하게 괴롭히고 책임지지 않기에 이 정도로 안성맞춤인 집단이 또 없는 것이다.


그렇게 계속되는 차별과 쌓여가는 불이익에 화가 폭발한 하비에르는 주동자인 학과장의 면상에 주먹을 날렸다.


‘후회는 안 해.’


이유가 이유다 보니 고소당하는 수준까지 일이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못해도 반년에서 일 년 정도 실업자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게 됐다.


이유가 어찌 됐건 폭력 사태로 해고된 상황이다.


미국은 추천서가 없다면 입학이건 취업이건 모든 것이 불가능한 사회고, 하비에르가 추천서를 얻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 난감한 상황에 빠진 하비에르에게 교회가 접근했다.


딱히 무신론자는 아니어도 매주 출석 체크를 강요하는 놈이 신은 아닐 거라는 게 하비에르의 평소 생각이었지만, 먹고는 살아야 하기에 하비에르는 바로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가 한국까지 오게 된 일의 시작이다.


-


기적 감정.


말은 그럴듯해 보여도, 결국 이상한 일들을 찾아서 온갖 곳을 싸돌아다니는 일이다.


하비에르가 맡은 역할은 감정해야 할 기적을 과학자의 시선으로 분석하는 것.


기적을 분석하려면 저명한 이론물리학자들을 초청해서 온갖 특이한 실험이라도 해야 할 것 같지만, 교회에 그럴 돈이 있을 리가 없다.


하비에르한테 일자리 제안이 온 것만 봐도 사정은 뻔하지 않은가.


그래도 대부분의 기적 호소인들은 그의 선에서 정리가 가능했다.


사람들이 기적이라 주장하는 현상 대부분은 예상치 못한 원인으로 인해 물리작용이 일어났거나, 사람들에게 생소한 기계장치를 이용해서 만든 사기행위였고, 증거라고 찍힌 영상들은 죄다 조작이었다.


목적은 당연히 돈이었고, 그걸 알아내는 게 하비에르의 업무였다.


‘후회하지는 않지만... 한 번만 더 참을 걸 그랬나?’


전도유망한 공학자가 사기꾼 감별사가 되었으니, 회의감이 느껴질 만했다.


그래도 가끔, 어쩌다 한 번씩 진짜 신비와 마주칠 때가 있다.


등짝에 닭 날개와 박쥐 날개를 붙이고 다니는 미친놈들이 진짜 천사와 악마였고, 사기꾼인 줄 알았던 영매사의 예언이 이뤄지는 것을 경험했으며, 우연히 접촉한 고대의 유물 덕분에 미약하지만 스타워즈에서나 보던 포스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사기꾼 감별사는 어느새 진짜 기적 감정사가 된 것이다.


-


하비에르는 지금 꿈을 꾸는 중이다.


‘아, 또 꿈이네.’


확실치는 않지만, 진짜 기적 감정사가 됐을 무렵부터 이런 자각몽을 꾸기 시작했다.


평범한 잡동사니라 생각하고 넘겼던 물건 중에 꿈과 관련된 유물이 있었으리라 추측했지만, 별다른 피해는 없기에 그러려니 넘어갔다.


그런데 지금 꾸는 꿈은 뭔가 조금 달랐다.


자각몽이기도 했지만, 역대급 개꿈이기도 했다.


“왈! 왈!”


전혀 개라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개 이외에는 표현할 말이 없는 생물이 개소리를 내고 있었고.


“술래잡기는 끝이다. 야훼.”


제법 친해졌다고 생각한 협력업체의 직원이 갑자기 등장해서는 자신의 손목을 붙잡고 개소리를 내뱉는다.


‘이게 뭔 개꿈-’


[글쎄. 정말로 날 잡았다고 생각하나?]


스스로에게서 나오는 개소리는 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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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래잡기 (1) +2 22.10.01 369 17 10쪽
58 기적 감정 +2 22.08.28 435 20 10쪽
57 기억 탐색 (2) +1 22.08.27 396 11 11쪽
56 기억 탐색 (1) +2 22.08.24 434 17 10쪽
55 뒷정리 +1 22.08.20 492 21 10쪽
54 크로노스 (3) +1 22.08.14 505 23 11쪽
53 크로노스 (2) +2 22.08.13 496 24 10쪽
52 크로노스 (1) +3 22.08.11 495 2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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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요괴들의 사정 (1) +1 22.08.05 514 28 9쪽
49 게임 중독(2) +3 22.08.02 543 26 10쪽
48 게임 중독(1) +1 22.07.31 564 21 13쪽
47 악연 (3) +2 22.07.29 580 25 13쪽
46 악연 (2) +1 22.07.27 573 21 10쪽
45 악연(1) +3 22.07.25 626 2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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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나들이 +2 22.07.21 690 24 10쪽
42 마무리 (2) +2 22.07.19 768 26 10쪽
41 마무리 (1) +2 22.07.17 808 25 10쪽
40 세상의 끝 +3 22.07.10 906 32 12쪽
39 침식 (4) +2 22.07.09 871 26 10쪽
38 침식 (3) +3 22.07.08 886 2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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