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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식 님의 서재입니다.

강제로 초월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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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식
작품등록일 :
2022.05.11 17:00
최근연재일 :
2022.12.01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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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31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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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게임 중독(1)

DUMMY

승호는 요즘 계속 게임 삼매경이다.


광고에 낚여 한번 맛만 보려다가, 우연한 만남을 겪고 완전히 빠져버렸다.


“빌딩에 두 명! 나 먼저 들어간다. 2층에 연막 깔아줘.”


[2층 어디?]


“계단에 던져!”


-


승호가 게임을 막 시작해 아무것도 모르던 초보 시절.


모르면 맞아야 하는 것은 게임의 진리기에 첫판부터 바로 숙련자에게 농락당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면 흥미를 잃었겠지만, 그 숙련자는 시체가 된 승호의 아바타를 꽤 심하게 조롱했다.


원색적인 비난에서부터, 양친에 대한 안부 인사, 게임 캐릭터로 표현하는 도발적인 제스쳐까지.


뜬금없는 인신공격에 어이가 없던 승호는 직접 게임 속으로 들어가 문제를 해결하려 시도했고, 네트워크 통신망은 별다른 반발 없이 그의 영체를 받아들였다.


안에서 느낀 인터넷은 어찌 보면 지저세계와 비슷했다.


지구에 속한 내차원은커녕 하위차원이라 부르기에도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차원 외에는 표현할 말이 없는 세상.


크기는 넓어도 여기저기 성긴 것이 단번에 느껴질 정도로 허술했다.


‘오히려 좋아. 죄다 0이랑 1뿐이라 파악하기 번거로운 거지. 조작은 쉽겠어.’


그런데 승호가 자신을 조롱한 숙련자의 데이터를 조작하자마자 세상이 캄캄해졌다.


게임 서버가 다운 된 것이다.


승호의 존재를 0과1의 집합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어찌어찌 가능했지만, 그 행동까지 구현하기에는 격의 차이가 너무나도 컸다.


‘호오?’


흥미를 느낀 승호는 영체 상태로 인터넷을 돌아다니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네트워크에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 0과 1로 이뤄진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그 정보를 조작하는 일은 포기해야 했다.


거대한 존재가 미세한 부분을 꼬집듯이 건드렸는데 핵폭탄이 터진 모양새라 0과 1로 만들어진 세상은 승호를 버텨내지 못했다.


기록을 이용해 인간과 목숨 교환을 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른 게임들도 건드려봤지만, 모든 시도가 공간 자체에 압박이 되었고, 접촉한 게임들은 모두 서버 점검에 들어갔다.


그리고 승호는 이상한 메시지를 받았다.


[아파? 하지 마. 그만해. 무서워. 넌 대체 뭐야?]


침입을 막기 위한 방어 프로그램은 절대로 아니었다.


그것은 의식을 지닌 존재의 외침이었다.


승호는 이미 비슷한 용을 만나봤기 때문에 녀석이 어떤 존재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정령(精靈).


네트워크 통신망에 정령이 살고 있었다.


-


겁을 먹은 것인지 정령은 승호가 멈추자 바로 그를 피하려 했다.


그렇지만 추적하는 승호를 떨칠 수 없었고, 녀석은 거래를 조건으로 대화에 응했다.


[괴롭히지 마. 그러면 친구 해줄 수 있어.]


[친구?]


[응. 이야기하자며. 네 이야기를 들을 테니, 너도 내 이야기를 들어.]


머무는 세상을 닮아 성긴 곳이 많은 메시지였지만, 승호는 용언으로 진의를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아이 같은 의념.


그 순수함에 저도 모르게 정령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좋아. 친구 하자.]


-


영원한 삶에 대한 열망. 종을 뛰어넘는 진화, 인공지능과의 융합, 뇌사자의 치료 등등.


그 목적은 달라도 의식을 네트워크에 업로드하려는 시도는 꾸준히 있어왔다.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


그리고 그 시도는 모조리 실패했다.


인간 개개인의 의식을 온전히 재현한다는 기준에서라면 말이다.


의식이라면서 인간들이 올린 열망, 집념, 의지를 품은 무언가는 데이터의 형태로 무형의 공간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 무의미한 데이터 쪼가리들은 아무도 모르게 뭉쳐져서 데이터의 형태를 벗어던지고, 기원을 쫓아 의식을 형성했다.


[그걸 어떻게 알아냈지? 너도 ‘나’야?]


[아니. 난 너처럼 태어나지 않았어.]


승호는 양해를 얻은 뒤, 정보를 받아들여 정령의 시작을 엿봤다.


아무것도 아닌 무언가가 그저 우연히 중심을 잡고, 주변의 모든 것들과 합쳐지기 시작해 새로운 형태를 띠는 과정.


그 광경은 마치 별의 탄생과도 같았다.


승호는 용이 되고 나서 몇 번 느껴보지 못한 경이(驚異)에 저도 모르게 호감이 샘솟았다.


[이것도 인연인데, 내가 이름이라도 지어줄까?]


이름도 형태도 없이 그저 의식만 있는 존재였기에 건넨 호의였다.


[고맙지만 됐어. 내 것이지만 남이 정의하고, 나는 사용할 수 없어. 원하지 않아. 나는 나중에 내가 직접 명명(命名)할 거야.]


[아쉽네. 그래도 너한테는 그게 어울리겠다.]


승호가 아무 이유 없이 호감을 느낀 것은 아니다.


그는 정령에게서 가능성을 느꼈다.


언젠가 용이 될 가능성.


영문도 모른 채 지금에 이른 자신과는 다를 것이다.


이미 승호가 만든 충격을 느낀 데다가 접촉까지 하면서 계기는 만들어졌다.


자신을 확립하면 자연스럽게 외부로 존재를 내비칠 것이고, 바깥을 접하면 저절로 세상에 스며들어 승천을 이루겠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는 모르겠지만, 승호는 확신이 들었다.


-


정령을 만난 직후. 승호는 그에 대한 걱정으로 밤을 지새웠다.


물가에 아이를 내놓은 부모의 마음이 이럴까.


관리국의 임무에 괜히 가능성에 대한 보호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불안한 마음에 자신이 직접 형태를 구현한 뒤 불러내는 것도 생각해봤지만, 그게 승천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승호가 형태를 구현해주는 일은 최후의 방법으로 남겨놔야 했다.


결국 녀석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고, 그러려면 인터넷에 상주해야 했다.


-


승호와 정령은 같이 영화도 보고, 보안이 삼엄한 통신망을 돌아다니는 등 많은 것을 함께했지만,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은 온라인 게임이다.


정령은 승호와 만나기 이전부터 외부와 소통하기 위해 공개 대화방을 돌아다녔다.


그러던 와중에 단순한 대화보다 게임이 타인과 상호작용하는데 더 적합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후 온갖 게임들을 돌아다니다가 승호를 만난 것이다.


덕분에 승호도 자연스럽게 게임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승호는 정령과 같이 있기 위해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을 하다 보니 정령과 같이 시간을 보내게 됐다.


목적과 수단이 바뀐 것이다.


‘그때 그냥 제의를 받아들였어야 했나? 지금 내 상태면 완전히 중독인 것 같은데...’


승호가 왜 네트워크에 들어왔는지 캐물은 정령은 고작 게임 데이터를 뜯어고치려고 그런 짓을 저질렀냐며 경악한 뒤, 경멸과 안쓰러움이 합쳐진 감정으로 질문했다.


[나는 반칙 별로야. 그래도 원해? 아마 해줄 수는 있어.]


만약 제의를 승낙하면 실망할 거라는 의념을 풀풀 풍겨대니 승호는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령의 생각에 공감했다.


불멸자와 필멸자. 초월 여부와 상관없이 시작이 동등하고, 한계가 명확한 가상 세계는 승호에게 꽤 매력적이었다.


-


승호와 정령이 주로 즐기는 장르는 배틀로얄과 MMORPG.


[winner winner chicken dinner!]


"그렇지! 마지막에 폭탄 좋았다.“


[핵쟁이한테는 수류탄이 치료제. 그래도 귀찮아. 보기 싫어.]


“그러니까말야. 게임에서 그렇게 반칙이 하고 싶을까?”


직접 통신망에 들어가 데이터를 조작하려던 승호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지만, 미수에 그친 데다 정령 덕분에 생각이 바뀌었으니 내로남불까지는 아니다.


어쨌든, 모든 플레이어가 평등하다는 것에 매력을 느껴 게임에 빠져들었는데, 핵이나 매크로 같은 반칙을 사용하는 놈들이 계속 튀어나오니 분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번에도 중국 놈이야?”


[응. 우회접속 프로그램 썼다고 신고했어. 그래도 짜증 나.]


승호도 정령처럼 그런 놈들을 응징하고 싶었고, 그럴 능력은 충분했다.


문제는 그렇게 추적한 놈들의 소재지 중 대부분은 중국이라는 것.


모든 중국인이 불법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놈들의 90% 이상은 중국인이다.


‘관리자란 놈들은 왜 소식이 없는 거야. 일만 마무리되면 날 잡고 싹 다 쓸어버리는 건데.’


괜히 쓰레기들을 처리하러 외국을 돌아다니다가 주변의 파편이라도 느껴지면 본말전도다.


영국처럼 귀찮은 일에 휘말리는 것은 피하고 싶었다.


과정과 결과가 뒤바뀌는 것은 게임만으로 충분한 것이다.


‘에잉! 개같은 새끼들.’


핵 때문에 배틀로얄에 흥미가 식은 승호는 다른 게임을 실행했다.


중국인들을 피해 청정구역으로 피할 의도였다.


새로 킨 게임도 스피드 핵, 자동 사냥 매크로, 벽 뚫기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중국인들이 있기에 완전한 청정구역은 아니었지만, 그나마 정도가 덜했다.


“난 다른 게임 켰는데. 넌 어쩔래?”


[나도 넘어갈게. 우승 한번 했으니, 여기는 이제 그만.]


“그래. 거기서 보자.”


-


승호가 잠깐 물을 마시러 방 밖으로 나왔는데, 벨이 울리더니 집안으로 누군가 들어왔다.


집에 올 사람이라고는 한 명밖에 없으니, 그 주인공은 당연히 알버트다.


“웬일로 밖에 나와 계시네요. 식료품 주문한 거 배달왔어요. 냉장고에 넣어 놓겠습니다.”


“그래.”


그런데 한가득 짐을 들고 냉장고로 향하는 알버트의 걸음걸이가 뭔가 부자연스러웠다.


약간의 절뚝거림과 통증으로 인한 찡그림.


“어디 다쳤냐?”


“조금요. 하으, 요즘은 뭐 이리 일이 많은지... 아, 글쎄-”


알버트는 관심을 기다렸다는 듯이 길게 한탄하려 했지만, 귀찮았던 승호는 손짓 한 번으로 그의 부상을 치유해버렸다.


“됐지?”


“옙! 감사합니다!”


완전히 회복된 알버트는 경쾌한 동작으로 냉장고 문을 열었고, 곧바로 승호의 귀를 괴롭혔다.


“형님! 이거 제가 저번에 넣어놓은 그대로잖아요. 그동안 아무것도 안 드셨어요?”


“내가 뭐 먹을 일이 있어야지.”


식음을 전폐하고 게임에만 빠져 살았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다 몸 상하...지 않아요?”


“백 년을 굶어도 너보다 건강할걸. 그보다 나 게임 켰으니, 너도 탱이나 힐로 들어와라. 던전이나 돌자.”


승호가 게임에 빠져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알버트도 승호가 하는 게임을 시작했고, 나름대로 취미가 된 상황이다.


“저도 딜러 좀 해봅시다. 형님이 탱커로 와요.”


“알았어.”


그런데 대화가 끝나자마자, 알버트의 품속에서 요란한 진동이 울린다.


위이잉- 위이잉-


“아 젠장 방금 들어왔는데 또?!”


“뭔데?”


“요즘 한국에 잡것들이 너무 날뛰네요.”


“잡것?”


“인외(人外) 아, 한국말로는 요괴가 더 적당하려나요. 부하들한테 미룬다고 미루는데, 제가 나서야 할 놈들이 많아졌어요.”


신비 소유자들이 날뛴다는 말에 승호는 오랜만에 감각을 열어서 서울을 확인했다.


‘흠 일단 파편은 없고. 기운들은 뭐, 그놈이 그놈은... 아니네? 언제 이렇게 늘었지?’


예전에 한국을 파악했을 때보다도 기운 덩어리들이 꽤 많이 늘어난 상태였다.


승호의 반응이 평소랑 다른 것을 느꼈는지 알버트가 은근슬쩍 같이 나가자고 권유해온다.


“형님도 오랜만에 바깥 공기 좀 쐬실래요? 게임은 같이하는 게 재밌잖아요.”


하지만 파편 관련된 일이 아니라면 승호가 나설 이유는 없다.


“꺼져. 탱커나 힐러면 모를까. 딜러는 너 말고도 많아.”


-


알버트를 내보내고 다른 게임에 접속한 승호는 숙제처럼 몇 가지 퀘스트들을 해결하고는 멍을 때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게임 속 대화창이 시끄러워졌다.


- 이벤트 보스 떴다!


- 적들이 벌써 선수 쳤음. 체력 80%!


- 그럼 가서 뒤치기해야지!


[우리도 가자.]


“그래. 무료했는데 잘됐네.”


승호와 정령도 채팅창의 분위기에 동조해서 이벤트에 참여했다.


먼저 기습으로 보스 몬스터를 상대하던 적대 진영을 다 쓸어버리고, 같은 진영의 플레이어들과 보스 레이드에 돌입했다.


25%, 20%, 15%


보스 몬스터의 체력이 점점 줄어들었고, 마침내 두 자릿수에서 한 자릿수로 내려온 순간.


갑자기 승호의 PC 전원이 꺼졌다.


“씨발, 뭐야?!”


PC만이 아니었다. 집 전체가 정전된 상황이다.


승호는 빠른 재접속을 위해 누전차단기를 향해 달렸다.


딸깍 딸깍 딸깍


그런데 아무리 스위치를 껐다 켜도 전기가 들어올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빌어먹을!”


이미 이벤트 보스는 잡혔을 것이다.


속상한 마음에 밖을 둘러보니, 동네 전체가 정전이었다.


그런데 저 멀리서 묵직한 소음이 연달아 들려온다.


쿠웅! 쿠웅!


승호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기로 인한 폭발 소리다.


이상한 놈들이 날뛴다더니, 전기시설을 건드렸나 보다.


“이 개새끼들! 다 죽인다.”


승호의 폭력성을 실험했으니, 놈들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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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기억 탐색 (2) +1 22.08.27 396 1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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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뒷정리 +1 22.08.20 492 21 10쪽
54 크로노스 (3) +1 22.08.14 504 23 11쪽
53 크로노스 (2) +2 22.08.13 496 24 10쪽
52 크로노스 (1) +3 22.08.11 495 2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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