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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식 님의 서재입니다.

강제로 초월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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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식
작품등록일 :
2022.05.11 17:00
최근연재일 :
2022.12.01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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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21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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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나들이

DUMMY

몇 시간 전에 치렀던 콜린과의 격렬한 기억은 승호의 머릿속에서 지워진 지 오래다.


-


유난히 더웠던 2020년의 6월이 거의 다 지나갔다.


언제나의 지구와 마찬가지로 바이러스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사건·사고가 넘치는 한 달이었지만, 승호와는 전혀 무관한 딴 세상 이야기다.


영국에서 돌아온 이후 집 밖으로 나가지를 않았기 때문이다.


“아으~! 앞으로도 계속 이번 달만 같으면 좋겠는데...”


승호는 기지개를 켜면서 남들이 들으면 돌을 던질만한 소리를 내뱉었지만, 그의 입장에서는 정말 조용한 한 달이었다.


그가 기억하는 한 달 동안의 바깥소식이라고는 북한이 건물 하나를 폭파한 일과 대전의 한 야구팀이 역대급 연패 기록을 세웠다는 것이 다였다.


영상물 하나를 감상하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동안에 생긴 잠깐의 텀.


그 시간에 하는 웹서핑이 그가 바깥소식을 얻을 수 있는 전부였는데, 몇 번 안 되는 그 시간 내내 인터넷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군 사건은 그 두 개가 전부였다.


‘오랜만에 바깥바람이나 쐴까?’


그런 승호가 밖으로 나가려는 마음을 먹은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여느 때처럼 고전영상물들을 모아놓은 데이터베이스 성격의 사이트에서 영상 하나를 시청하고 그가 받은 메시지 때문이었다.


[대단하시군요! 저희의 모든 동영상을 시청하셨습니다. 조금만 시간을 주신다면 더 멋진 동영상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잠도 자지 않고 한 달 내내 화면에 빠져서 산 덕분일까.


승호는 그 사이트에 등록된 모든 영상을 시청해버렸다.


[우리가 가진 모든 영상을 보셨군요?! 이런 미친놈아! 제발 다른 취미를 갖거나 밖에 나가서 인생을 사세요!]


누군가 등록된 모든 영상을 시청하면 자동으로 발송되는 메시지였는데, 첫 번째는 정상적이었지만, 두 번째는 설마 그런 놈이 진짜 있을 거로 생각지는 못했는지, 장난으로 저장해놓은 것을 잊어버린 채 그대로 놔뒀나 보다.


‘그렇다고 욕을 해? 니들이 용생(竜生)을 알아?’


순간 발끈하긴 했지만, 맞는 말이긴 한지라 승호는 오늘 하루 두 번째 메시지의 조언을 따라보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현관문 밖으로 나선 그의 발걸음은 바로 멈추고 말았다.


‘나가서 뭘 하지?’


아무 계획도 없이 무작정 나왔기 때문에 승호가 멍하니 있는 사이, 앞집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온다.


우당탕탕! 꽝!


‘어우, 아프겠다.’


소음 때문에 자연스럽게 감각을 연 승호는 앞집의 이웃이 급하게 밖으로 나오려다가 새끼발가락을 찧은 것을 알 수 있었다.


“끼야옼! 아흐, 존내 아파!”


우당탕 쿠당탕!


잠시 후. 소음이 완전히 잦아든 그 순간. 문이 열리고 훤칠하게 생긴 백인 청년이 나타났다.


“형님. 무슨 일이세요? 외출하시려고요?”


“음.”


“제가 모시겠습니다.”


“너, 아직도 여기 살았냐?”


-


앞집에서 나타난 이웃의 이름은 알버트.


승호가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그의 보좌를 목적으로 클럽에서 파견한 인물이고, 알프레드의 질손(姪孫)이다.


처음부터 선을 그으려던 승호의 생각과 달리 알프레드의 가족답게 뻔뻔하고 친근하게 다가오는 데다가 묘하게 한량 분위기를 풍겨서 죽이 잘 맞았다.


“섭섭하게 또 왜 그러세요.”


“딱히 할 일도 없을 테니 돌아가서 네 일 보란 소리지.”


“형님 모시는 게 제 일이라니까요. 그리고 지금이 저한테 얼마나 좋은데요. 말 그대로 드림 잡입니다.”


시다바리가 꿈의 직업일 리 없으니, 지금처럼 일없이 노는 상황이 좋다는 뜻이다.


지난 한 달간 승호를 보좌하기 위해 그가 한 일이라고는 텅텅 빈 냉장고를 채워넣기 위해 딱 한 번 장을 본 것이 전부였으니까.


그조차 직접 나간 것은 아니고, 인터넷으로 자기 먹을 식료품을 주문하면서 1인분씩 추가한 것이 다였다.


“알프레드가 좋아죽겠네. 일없이 놀고먹는 게 꿈이라고? 그렇게 살고 싶냐?”


“그 작은할아버지가 여기 직접 처박아주셨는데요. 그리고 형님이 하실 말은 아닌 거 아시죠?”


“그렇긴 하지.”


알버트는 알프레드의 후계경쟁에 애매하게 발을 걸치고 있는 상황이다.


원래 그와 같은 성격은 진작에 쫓겨나거나 적당한 재산을 물려받은 채 나가떨어져야 했지만,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그는 기공에 재능이 있었다.


현재 그의 수준은 예전에 만난 마이너 천마나 마법사와 맞붙어도 다치지 않고 목숨은 부지할 정도.


그 정도면 클럽 소속의 신비 소유자 중에서는 한 손으로 꼽을만한 전력이다.


레니스에게 전력의 반절 이상이 죽고, 거기서 또 삼분지 일이 승호에게 박살 났으니 더더욱 소중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간부와 혈연관계이기까지 하니, 클럽에서 발을 빼고 싶어도 뺄 수가 없는 것이다.


“전에 만난 암살자들처럼 기를 완전히 흩트려줄까? 그럼 뺄 수 있잖아.”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지금까지 수련한 게 아깝잖아요. 진짜 못 해 먹겠다 싶으면 그때 부탁드릴게요.”


“오냐.”


알버트가 기를 흩트리는 걸 고려하는 것은 진심이다.


처음 그를 만난 날. 귀찮게 구는 녀석은 사절이기에 승호는 손목을 잡고 거짓말 탐지기를 돌렸다.


그건 알프레드의 부탁이기도 했다.


이 한량 같은 애매한 조카손자가 가끔 때려치우고 싶다고 말할때마다 가족 간의 경쟁이 싫어서 그러는 건지, 발톱을 숨기려고 연기를 하는 건지, 혹시나 진짜로 때려치고 싶은 건지 감이 안 잡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야망이 아예 없지는 않지만, 정말로 다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크다는 게 승호에 의해 밝혀졌다.


‘승호님 옆에 붙어있으면 나중에 뭐라도 되겠지요. 확인하셨듯이 저처럼 번거롭게 할 놈은 아닙니다. 어쩌다 우리 가문에서 저런 놈이 튀어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승호가 그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데 알버트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근데 진짜 무슨 일이세요? 갑자기 형님 나오셨다는 알림 때문에 놀라서 발도 쪘다구요. 아, 쉴 만큼 쉬셨으니 따로 하신다는 일 때문에?”


“미쳤냐? 절대로 아니야. 그냥 코에 바람이나 좀 넣으려고.”


승호는 크로노스나 야훼라는 놈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절대로 일할 생각이 없다.


파편이 느껴지면 괜히 신경 쓰일까 봐 감각도 최대한 닫아놓은 상태다.


승호의 사정을 대충이나마 들은 알버트는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본다.


“저도 저지만, 형님도 참 만만찮네요.”


서로를 비슷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둘이었지만, 주도권은 승호에게 있는 상태.


딱!


승호는 알버트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고는 밖으로 나섰다.


“그래서 어디로 가시려고요?”


“몰라. 열받는 메시지 때문에 그냥 나와본 게 다니까.”


괘씸한 메시지 덕분에 발끈해서 일단 나오긴 했지만, 딱히 떠오르는 계획은 없다.


“포르노 사이트에 비슷한 메시지가 있다는 농담은 들어봤는데, 그걸 진짜로 하는 놈들이 있었나 보네요. 그보다 저도 이제 한국어만 겨우 뗀 상태라 아는 게 없는데...”


“글쎄, 그래도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건 아무거나 해도 된다는 소리니까. 일단 나가자.”


“오! 그 말 좋은데요? 그럼, 제가 차 갖고 오겠습니다.”


-


말은 그럴듯하게 했지만, 둘의 외출은 완전히 실패였고, 정확히 세 시간 뒤. 집으로 돌아왔다.


승호가 처음 했던 생각은 아무 버스나 타고 종점까지 간 뒤, 그곳에서 같은 방식으로 움직이는 버스 여행.


용이 되기 이전. 갑갑한 마음이 들 때면 항상 하던 연례행사였지만, 그 생각은 알버트에 의해 바로 제지당했다.


“제 차로 모신다니까요.”


하지만 서울은 자가용으로 움직이기에는 매우 불친절한 교통지옥.


적어도 이동하는 데 있어서 만큼은 대중교통이 최강자다.


타고 간 차량이 고급 스포츠카였던 만큼, 일부러 그들의 앞길을 막는 사람은 없었지만, 꽉 막힌 도로에 갇히는 것은 불가피했다.


바깥바람 쐬려고 나갔다가 집에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에어컨 바람만 실컷 쐬고 돌아온 것이다.


“남자 둘이서 도로에 두 시간이나 갇혀있을 줄은 몰랐는데.”


승호야 그냥 차에서 내린 뒤 돌아와도 됐지만, 서울이란 도시에 참교육 당하며 점점 썩어가는 알버트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


“...”


그러다 답답해진 승호는 앞을 가로막은 모든 차를 날려버리려 했고, 운전하는 와중에도 어떻게든 그걸 막느라 진이 다 빠진 알버트는 아무런 말이 없다.


그렇게 지친 두 사람이 지하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웬 타격음이 들린다.


퍽! 퍽! 퍽!


“음?”


그들이 있는 곳에서 한층 밑.


지하 2층의 주차장에서 세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때리는 소리였다.


가해자나 피해나자 느껴지는 덩치로 보아 나이는 중학생 정도.


흔한 학교폭력이자 일진 놀이다.


지하 주차장에도 감시 카메라는 기본이지만, 대부분 고정되어있어서 사각을 찾기 쉽고, 지하 2층 같은 경우는 이용하는 사람이 적어 전등을 감지형으로 설정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다.


“뭐죠?”


“학폭 같은데.”


“학폭이요? 아, 불링(bullying)!”


흔한 일이기에 무시하고 집으로 올라가려 했지만, 승호만큼 자세히는 아니어도 기공 수련자인 알버트 역시 상황을 파악한듯했다.


바로 엘리베이터의 아래쪽 버튼을 누른다.


누가 봐도 참견하려는 모양새였다.


처음에는 무시하려던 승호였지만, 금세 마음을 바꾸고 먼저 도착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보내버렸다.


“그냥 가실 줄 알았는데... 직접 나서실 건가요?”


“아니. 구경하려고.”


촉법소년들과 외국인의 대결이다.


승호가 이런 구경을 놓칠 리 없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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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기억 탐색 (2) +1 22.08.27 396 1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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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크로노스 (3) +1 22.08.14 504 23 11쪽
53 크로노스 (2) +2 22.08.13 496 2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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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악연 (3) +2 22.07.29 580 2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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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들이 +2 22.07.21 690 24 10쪽
42 마무리 (2) +2 22.07.19 768 26 10쪽
41 마무리 (1) +2 22.07.17 807 25 10쪽
40 세상의 끝 +3 22.07.10 906 32 12쪽
39 침식 (4) +2 22.07.09 870 26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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