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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식 님의 서재입니다.

강제로 초월당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정춘식
작품등록일 :
2022.05.11 17:00
최근연재일 :
2022.12.01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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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24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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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기억 탐색 (1)

DUMMY

자기 할 말만 하고 금방 사라지는 것이 어째 레니스와 똑같았다.


-


승호 입장에서야 상사나 마찬가지인 존재가 감시하러 왔다가 바로 사라진 꼴이니 조금 떨떠름하긴 해도 환영할 일이다.


‘뒷정리할 것도 없으니 편하긴 한데, 관리자란 것들이 문제네.’


분명 설득하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일이 점점 꼬이더니 셋 중에 둘이나 죽어버렸다.


둘 다 승호와 엮여서 벌어진 일이니 이런 추세라면 남은 한 녀석도 우호적일 것이라 기대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기에 승호는 유보해놨던 시공의 파편을 동화시키기 시작했다.


썩 내키지는 않지만, 야훼를 설득할 거리가 없는지 알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이다.


‘한번 해보자고. 내가 남은 한 놈은 어떻게든 설득하고 만다.’


승호의 내부에서 시공력들이 합쳐짐과 동시에 그의 것이 아닌 기억들이 머릿속에서 펼쳐지기 시작했다.


-


[여보!]


[아빠!]


침략자들에게 빼앗긴 가족을 되찾기 위한 발악.


[그 산의 주변, 올림포스가 소유한다는 것을 인정하마.]


힘이 부족하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계속 기회를 엿보다가 마침내 동료들과 일을 벌였다.


이후 끝없이 이어지는 전쟁의 나날.


[사라져라. 침략자들아!]


영원히 지속될 것 같았지만 결국 마지막 남은 한 놈까지 몰아내고 얻은 승리.


‘대충 아는 내용이잖아. 다른 거 없어?’


이전에 잠깐 살펴본 것만으로 알 수 없던 부분들이 있기는 했다.


[씁쓸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그래도 이제 괜찮아. 행복해.]


[아버지. 고작 별 하나에 묶여있을 필요가 있어요? 그들과 함께하면 더 넓게 볼 수 있다고요!]


아내가 제우스의 꼬임에 넘어가는 것에서부터, 자식들이 올림포스 소속이 되겠다고 말하는 상황 등등.


부정적인 감정이 계속해서 휘몰아쳤지만, 승호가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일은 없었다.


‘이런 우울한 기억들 말고! 이거 스킵 없나?’


분명 직접 겪은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르지만, 자신의 기억 같지는 않다.


체감형 가상현실이 나온다면 이런 느낌일까.


다른 사람의 일인칭 시점 기억을 삼인칭으로 관람하는 느낌이다.


‘생생하면 뭐 해?! 지겹다고!’


하지만 아무리 실감이 나더라도 같은 내용의 영화를 몇십번이나 반복해서 보면 질릴 수밖에 없는 법.


분명 야훼를 설득할 단서를 찾기 위해 시작한 기억 탐색인데 승호가 조금이라도 집중할라치면 과거의 기억이 반복해서 크로노스를 덮친다.


과거와 미래가 계속 보인다더니 기억 속의 기억인데도 불구하고 쓸데없이 생생하다.


가족과의 생이별부터 시작해서 잔혹한 전쟁까지. 크로노스 입장에서야 아주 음울하고 슬픈 기억이지만, 그보다는 끝없이 반복 재생되는 현상 자체가 그를 끝없이 분노하게 만든듯싶다.


모든 것은 동시에 존재하며 만물은 현재를 살아가는데, 크로노스는 비전 때문에 계속 과거와 미래를 바라봐야 하는 것이다.


‘왜 그렇게 화가 났나 싶더니. 그럴만했네.’


-


승호가 질리다 못해 지쳐버릴 때쯤. 다행스럽게도 우울한 과거 이외에 다른 기억들이 떠올랐다.


방벽의 유지라는 의무 덕분인지 비전에 완전히 매몰된 채 살아오지는 않았나 보다.


먼저 이전에는 미처 살펴보지 못했던 새로운 육체를 갈아타는 기억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남의 육체를 빼앗아서 불멸을 유지하는 게 야훼의 설득과 무슨 상관이겠는가.


이미 아는 내용들인지라 조각이 깔끔하게 제거된 일본 요괴 놈의 운이 굉장히 좋았다는 감상만이 전부다.


‘그놈은 진짜 나한테 뭐라도 사줘야 할 것 같은데. 그보다 사라진 조각은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승호가 다시 한번 사라진 조각의 행방에 대해 궁금해하자 다른 관리자들이 조각을 어떻게 사용했는지에 대한 내용이 떠오른다.


차츰 익숙해지다 보니 보고 싶은 것과 연관된 기억으로 전환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래도 이 정도가 한계인가.’


다만 크로노스도 관리국으로 이동하면서 사라진 조각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기에, 조각에 대한 기억들이 전체적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


세 관리자가 조각을 이용하는 방법은 제각각 달랐다.


가장 먼저 로키가 조각을 어떻게 다뤘는지가 떠올랐는데, 그는 장난의 신이라는 이명답게 오로지 흥미에 따라 기분 내키는 대로 사람들을 과거나 미래로 이동시켰다.


그 와중에 또 내키는 대로 조각을 심어댔다.


나름의 기준이 있는 듯도 싶었지만, 승호가 보기에는 거의 무작위나 다름없다.


‘이미 죽은 놈 행적은 관심 없는데...’


승호가 다른 정보를 찾아보려 노력했지만 헛수고였다.


조각에 관련된 내용 중에서는 로키의 장난을 지켜본 것이 크로노스에게 가장 강렬한 기억이기 때문이다.


로키는 조각이 심어진 사람이 죽으면 다른 사람의 조각과 합치는 방식으로 일종의 빙의를 시키곤 했는데, 조각에 담긴 기억들이 서로 육체를 차지하겠다고 싸우는 모습은 승호가 보기에도 꽤 인상적이었다.


[네 말대로 인상적이기는 하다만, 이게 무슨 의미가 있지?]


[의미는 무슨. 그냥 재밌잖아?]


도주하다 죽은 흑인 노예의 조각을 뽑아다가 농장주인에게 쑤셔박고, 매질 당해 죽은 수드라의 조각을 브라만에게로, 갑질로 인한 화를 못 참고 자살한 인간의 조각을 재벌의 머릿속에 심어놓는다.


그중 유난히 기대감이 드는 인간이 있으면 덤으로 회귀까지 시켜준다.


꼭 빙의나 시간 이동만 시킨 것은 아니다.


가끔 비어있는 지저 공간을 게임처럼 만들고 확실하지 않은 기준에 따라 인간들을 초대하기도 했다.


오로지 재미있을 것 같다는 이유로 말이다.


‘어째 잘 죽여버린 것 같다?’


승호의 머릿속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로키는 여기저기 벌려놓은 장난질이 많았다.


뒷감당은 전혀 생각하지 않은 채 말이다.


지표면에 퍼져있던 흔적의 70% 이상이 그가 저지른 일이었다.


그 정도로 장난에 진심인 놈이었다.


‘그래도 재밌긴 하네.’


조각에 대한 다른 기억을 살펴보려고 용을 쓰던 승호도 어느새 로키의 장난질에 빠져들어서는 열심히 구경하는 중이다.


회귀자, 귀환자, 전생자, 빙의자, 환생자 등등.


사람의 일생이 항상 재밌겠냐마는 승호는 로키의 장난 중에서도 크로노스의 기억에 남은 하이라이트만을 체험하는 중이다.


재미없을 수가 없었다.


-


로키는 가끔 조각을 회수해서 기존과는 반대로 집어넣기도 했다.


하지만 인생 역전의 방향이 위가 아니라 아래로 향한 대부분의 경우는 재미가 없었다.


그러면 옆에서 지켜보던 크로노스는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하지만 그의 행동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로키의 장난을 보기 전까지는 일정 주기마다 쓸만한 육체들을 찾아다니는 것이 전부였는데, 언제부턴가 조각을 심어놓은 예비 육체들의 소원을 들어주기 시작한 것이다.


나중에는 꼭 쓸만한 육체가 아니더라도 조각을 심는 지경에 이르렀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더니.’


크로노스가 흩뿌린 흔적이 모든 흔적 중에 20%를 넘게 차지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유독 이혼한 남성들이 과거로 회귀한 이유도 알 수 있었다.


‘가족을 잃은 상황에 공감한 건가.’


그는 한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가족을 상실한 자들에게 기회를 주고는 했다.


과거와 미래에 허덕이기만 하는 자신과 달리 기회를 얻고 현재를 살아가는 필멸자들을 크로노스는 정말 처절하고 뼈에 사무칠 정도로 부러워했다.


하지만 그런 감정이 그대로 전달되도 승호의 가슴 속에는 별다른 울림이 없다.


기억탐색을 시작한 처음에 이런 감정을 느꼈으면 모를까.


이미 크로노스의 과거를 수백 번이나 겪으면서 완전히 질린 탓이다.


‘이딴 쓸데없는 것 말고 야훼에 대한 기억이나 좀 나오라고!’


-


다행히 야훼가 조각을 심는 방식도 나름대로 인상적이었나보다.


마침내 로키와 이혼남들의 구구절절한 사연이 사라지고 야훼로 추정되는 자가 나타났다.


‘흠, 장발 멸치 백인은 아니고, 아랍 아저씨도 아니네.’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평범한 남성.


승호가 본 야훼의 모습은 흔히들 상상하는 예수의 이미지가 아니었다.


그는 앞의 둘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조각을 흩뿌렸다.


적당히 자신의 영향권 안에 있는 인간들.


가톨릭, 이슬람, 몰몬, 유대교 등 자신을 믿는 신도 중에서 무작위로 조각을 심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었다.


‘잠깐. 이게 다야?’


그 악명과 달리 야훼는 로키나 크로노스처럼 조각이 심어진 인간들에게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않았다.


애초에 조각을 심는 목적도 갈아탈 육체를 만들려는 것이 아닌 걸로 보인다.


그저 정신체인 상태로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않은 채 세상을 누비는 것이다.


‘흠, 이번엔 할머니한테 들어갔네.’


물리적인 육체가 필요한 일이 생기면 그때그때 주변에서 조각이 심어진 아무나 선택해 잠깐 빙의했다가 금방 빠져나온다.


목적을 위해 잠깐 들어가는 수준에 그치다 보니, 특정한 본신이랄 게 없는 존재였다.


만약 먼저 만난 두 녀석처럼 싸움이 일어나도 물리적인 죽음을 선사하기에는 문제가 많아 보인다.


‘이런 식으로 움직이는 놈이면 찾기가 너무 번거로운데.’


승호의 귀찮은 감정에 크로노스의 언짢은 감정이 섞여 들어온다.


자신과는 너무 다른 방식에 불호를 느꼈나 보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그저 언짢은 감정만을 느낄 뿐.


크로노스는 야훼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에대한 이유에 대해서 전혀 궁금해하지 않았다.


‘이상하다 싶으면 좀 알아볼 것이지...’


조각에 대한 기억은 그게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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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술래잡기 (1) +2 22.10.01 368 17 10쪽
58 기적 감정 +2 22.08.28 435 20 10쪽
57 기억 탐색 (2) +1 22.08.27 396 11 11쪽
» 기억 탐색 (1) +2 22.08.24 434 17 10쪽
55 뒷정리 +1 22.08.20 492 21 10쪽
54 크로노스 (3) +1 22.08.14 505 23 11쪽
53 크로노스 (2) +2 22.08.13 496 24 10쪽
52 크로노스 (1) +3 22.08.11 495 2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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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요괴들의 사정 (1) +1 22.08.05 513 28 9쪽
49 게임 중독(2) +3 22.08.02 543 26 10쪽
48 게임 중독(1) +1 22.07.31 564 21 13쪽
47 악연 (3) +2 22.07.29 580 25 13쪽
46 악연 (2) +1 22.07.27 573 21 10쪽
45 악연(1) +3 22.07.25 626 2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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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나들이 +2 22.07.21 690 24 10쪽
42 마무리 (2) +2 22.07.19 768 26 10쪽
41 마무리 (1) +2 22.07.17 807 25 10쪽
40 세상의 끝 +3 22.07.10 906 32 12쪽
39 침식 (4) +2 22.07.09 871 26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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