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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식 님의 서재입니다.

강제로 초월당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정춘식
작품등록일 :
2022.05.11 17:00
최근연재일 :
2022.12.01 19:4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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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01,965

작성
22.07.17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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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마무리 (1)

DUMMY

그리고 소음과 함께 계속되던 아발론의 초기화도 멈췄다.


-


반복되는 초기화에 틈새가 소멸하는가 싶어 아카샤는 눈을 질끈 감았지만, 염려하던 멸망은 일어나지 않았다.


잠깐의 적막이 지나고, 혹시라도 멸망이 다시 시작될까, 아카샤는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저기... 갑자기 왜 멈추셨나요?”


“내가 아니라 네가 멈춘 거야. 너는 침식이랑 초기화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잖아.”


침식이랑 초기화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아발론의 유지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


다만 침식에 고통받는 아이들과 아무것도 모른 채 초기화 당하는 존재들이 안쓰러웠을 뿐이다.


그런데 중심태양이 그녀의 마음에 반응이라도 한 것처럼 아무것도 없던 공간이 다시 아발론으로 채워졌다.


“이게 무슨?!”


그 놀라는 모습을 본 승호가 계획대로 되었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너랑 중심태양의 관계를 좀 바꿔봤어.”


아카샤는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이것저것 살펴보기 시작하더니 놀라움과 감사함이 담긴 눈빛으로 승호를 바라봤다.


언제나 그녀를 옭아매던 행동원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여전히 그녀의 존재 근원은 아카식 레코드에 있지만, 이전처럼 부속품이나 다름없는 신세에서는 벗어난 상태였다.


게다가 그녀가 생각을 떠올린 것만으로 아발론이 생겨난 것처럼 권한의 수준도 달라졌다.


이제는 반대로 아카식 레코드가 아카샤에게 종속되었다고 봐야 했다.


“자, 이제 그 거지 같은 시러배 잡놈한테 뭐 할 말 없냐?”


“어... 그... 감사합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죠?”


“내가 믿으라고 했잖아.”


-


사실 승호도 이 정도로 일이 잘풀릴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아카샤는 반복되는 초기화로 잠깐의 공백이 생기면 그 틈에 아발론 안의 존재들을 내보내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승호는 공백의 순간에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알아보는 게 다였다.


뒷일은 어떻게든 되겠지란 마음가짐이 전부.


다행히 그의 생각처럼 어떻게든 되기는 했다.


힘의 공백이 생길 때마다 이것저것 정보의 부스러기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존재들.’


‘그대로였으면 좋겠어.’


‘세상을 동일하게 유지한다면 지킬 수 있을 거야.’


제작자의 잔존의지가 소나기처럼 승호를 적신다.


아카샤를 괴롭히기 위해 시공력을 공명시킬 때와 같은 현상이었다.


-


셋이면서 하나. 하나이면서 셋. 삼위일체(Trinity).


세 개의 세상이 겹쳐있는 아발론과 그를 동일하게 유지하는 중심태양을 가장 잘 표현하는 개념.


제작자는 자신이 고정해놓은 세상에 그 이름을 붙였지만, 승호의 감상은 신랄했다.


‘아무리 사랑해도 그렇지.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해놨어.’


전혀 공감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도한 애정이 만들어낸 집착이란 생각밖에 들지 않는 것이, 누더기나 다름없는 중심태양을 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


그 형태는 최대한 많은 세상을 묶으려고 했던 발악의 흔적이었다.


만약 제작자가 더 능력이 있었다면 얼마나 많은 세상을 묶었을지 모른다.


그래도 나름의 성과를 거둔 것을 칭찬해야 할까.


결국 한계를 인정하고 타협한 것이 세 개의 겹쳐진 세상이다.


그 타협에 삼위일체라면서 나름의 의미를 부여해봤자 비웃음만 나올 뿐이다.


하지만 당사자는 생각이 달랐나 보다.


승호가 느낀 제작자의 잔존의지 중에는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감상도 있었다.


‘내 보기에는 불만족스러우니, 갈아엎어야겠다.’


망설일 이유가 없기에, 승호는 바로 중심태양을 뜯어고치기 시작했다.


일단 외부로 나가는 정보나 침식 같은 자잘한 것들부터 모조리 날려버렸다.


‘음... 너무 쳐냈나?’


초기화를 비롯해 다른 역할들도 없애려고 했지만, 곁가지들을 쳐낸 것만으로도 중심태양은 무너지려 했다.


그 여파로 다른 두 세상까지 없어질 상황이라 승호는 잠깐 당황했지만, 마침 아카샤가 있으니 권한 행사의 주체를 바꿔버리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아, 이 상태 그대로 뒤집으면 되겠네.’


기록이라는 원본을 알고 있으니, 그 형태를 유지하는 선에서라면 어떻게 만져도 망가지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에 저지른 폭거였다.


-


돌아가는 사정을 이해한 아카샤는 벙찐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카식 레코드를 그렇게 바꾸다니. 관리자들도 못 하는 일이에요. 승호님은 신이신가요?”


“너는 신에 대한 기준이 너무 낮아. 그리고 제작자랑 동급으로 취급하지 마라. 기분 나쁘다.”


뭐라고 타박하든 이미 아카샤에게 승호는 신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경외감으로만 가득 차 있던 아카샤의 눈빛에 한줄기 의구심이 깃든다.


“그런데... 아발론과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요?”


“무슨 소리야?”


“오백만이 넘는 존재가 사는 세상이잖아요. 그에 대한 염려는 없었나요?”


“염려는 무슨.”


승호에게 틈새 속 세상에 대한 감정이나 염려는 전혀 없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멸망시킬 생각은 없는 정도.


‘아예 없지는 않았지.’


아발론에서 승호가 신경 써야 하는 존재는 콜린 하나뿐이다.


그의 보호 아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두 번째 세상에서 만난 한 달 전의 콜린은 리셋으로 인해 사라졌다.


다른 건 몰라도 복수만큼은 해주겠다고 약속했으니 뭐라도 해야 했는데, 그 대상으로 특정할만한 것이 중심태양밖에 없었다.


그 복수의 과정에서 아발론이 멸망한다면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복수의 대상이 중심태양에서 제작자의 의도로 넘어간 것이 다행이었다.


그런 승호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일까.


아카샤는 조금 화가 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제가 느낀 초기화만 마흔이 넘었으니, 단순하게 생각하면 이억이라는 생명이 사라졌던 거라고요.”


“네가 다시 살려냈잖아. 그럼 된 거지.”


“되기는 뭐가-”


아카샤는 순간적으로 승호에게 화를 낼뻔하다가 겨우 참아냈다.


여태껏 그녀가 지켜보기만 한 침식과 초기화의 피해자들의 수를 합치면, 이번의 피해보다 컸으면 컸지. 적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뭐라 할 처지는 아니지...’


당사자들이 직접 추궁한다면 모를까. 아카샤 스스로 판단하기에 자신에게는 자격이 없었다.


침울해진 아카샤를 본 승호는 그녀를 달래주기 위해 나름의 위로를 건넸지만, 그건 완전히 역효과였다.


“앞으로 잘하면 되잖아. 이젠 네가 이곳의 신이나 마찬가지니까.”


“너무 갑작스러워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제 세 세상 모두 따로따로 뻗어나갈 텐데... 침식과 초기화를 일으키지는 않더라도, 최대한 비슷하도록 유도하는 게 나을까요?”


“그렇게 집착하면서 옭아매는 것 보다는 나처럼 아예 관심 없는 게 낫지 않아?”


“...”


승호가 그래도 자신이 제작자보다는 낫지 않냐며 물어보는 질문에 아카샤는 답을 할 수 없었다.


솔직히 둘 다 별로였다.


‘신이라는 것들은 왜 다 이 모양이지?’


-


아발론에서의 일을 마무리 지었다고 생각한 승호는 첫 번째 세계로 돌아와 콜린이 머무는 숙소에 들렀다.


‘얘는 매번 이 꼴이네.’


그녀는 이번에도 자빠져 자고 있었다.


“음냐...”


“야 일어나. 집에 가자.”


“으음? 뭐야. 그냥 버리고 떠난 줄 알았더니, 다시 왔네.”


“버리긴 뭘 버려. 푸닥거리 한바탕 크게 하고 왔구만.”


졸려 보이던 콜린은 아카샤와의 이야기를 듣자, 정신을 차리고서는 눈을 빛냈다.


“요 한 달간 아발론에서 있던 일들만 꿈에 나왔는데. 그게 초기화의 여파였을까?”


“그럴지도 모르지.”


“그러면 여기에서 할 일은 다 끝난 거야?”


“응.”


“딱히 수확은 없고?”


“아예 없지는 않아.”


중심태양 안에 있는 파편을 흡수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아카샤에게 남은 두 관리자의 이름과 행적에 대해 알아냈다.


크로노스와 야훼.


그들은 가끔 아발론의 상태를 확인하러 들른다고 했으니, 승호는 자신을 찾아오도록 아카샤에게 말을 전해놨다.


모든 지저세계가 아발론 같지는 않다고 들었지만, 직접 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일.


하나하나 방문해서 뒤집어엎기보다는 하던 놈들에게 그대로 맡기는 게 편할 것이다.


어떻게든 그놈들을 설득해서 관리국에 허가받게 만드는 것이 승호에게는 최선이다.


그런데 승호에게 익숙한듯하면서도 생소한 이름들을 콜린은 이미 알고있는 듯했다.


“이거 또 어마어마한 이름들이 튀어나왔네.”


“아는 이름이야? 난 생소한데.”


“제우스는 알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우두머리.”


“그 제우스의 아비가 크로노스야.”


“야훼는?”


승호의 물음에 콜린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왜 그렇게 보는데.”


“아무리 관심이 없어도 그렇지. 기독교 유일신도 몰라?”


“예수가 야훼야? 이름이 또 있어? 지져스나 헤수스같이 발음으로 장난치지 말고.”


승호의 용언이 문제가 생긴 게 아니라면 콜린이 뭔가 말을 잘못한 것이다.


그녀가 한 의미 전달은 예수와 야훼를 동일하게 표현하지 않았다.


“기독교랑 유대교 이슬람이 같은 신을 믿는 건 알아? 그 신의 이름이 야훼야. 성부인지 성령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고. 삼위일체는 알지? 성부, 성자, 성령.”


어린 시절, 이모 덕분에 억지로 성당을 따라다녀야 했기에 그 정도는 승호도 알고 있다.


“그만. 그 정도는 알아. 이모가 천주교라고. 어쨌든, 성부나 성령의 이름이라는 거지?”


이미 삼위일체인 세상 덕분에 귀찮음을 만끽한 승호는 야훼에 대해 일축했다.


“만악의 근원이란 소리네.”


극성스러운 일부라고 해도 신도들이 그 모양이다 보니, 기대감이 절로 바닥을 쳤다.


승호는 어떻게든 크로노스 선에서 일을 마무리 짓기로 결심했다.


작가의말

기약없이 기다려주신 분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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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마무리 (2) +2 22.07.19 768 26 10쪽
» 마무리 (1) +2 22.07.17 808 2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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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침식 (4) +2 22.07.09 871 26 10쪽
38 침식 (3) +3 22.07.08 886 2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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