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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식 님의 서재입니다.

강제로 초월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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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식
작품등록일 :
2022.05.11 17:00
최근연재일 :
2022.12.01 19:4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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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0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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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12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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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친구 (2)

DUMMY

다만 녀석의 이름 석 자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


이름 모를 친구는 밖에서 우연히 만난 승호가 반가웠는지 계속 이야기하고 싶은 눈치다.


‘이렇게 떠드는 걸 좋아하는 녀석이었나?’


승호도 나름 반가운데다 딱히 불편하지도 않았기에 간혹 이름을 불러야 할 상황은 적당히 얼버무리고, 추임새를 넣거나 맞장구를 치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래서 그때 내가-


“근데 너 스케줄 따라온 거라며. 이렇게 밖에서 떠들고있어도 괜찮아?”


문득 친구가 일하는 중이라는 것이 생각난 승호의 질문에 그는 손사래를 치며 답했다.


“에이~ 나 정도 짬은 현장 나오면 시간 때우는 게 일이야.”


“그래?”


“그리고 요즘은 바이러스 때문에 촬영 스태프 아니면 그냥 나가 있는 게 도와주는 거다.”


“그런 것 치고는 딱히 방역에 신경 쓰는 것 같진 않던데.”


굳이 감각을 넓히지 않아도 얼핏 보이는 가게 내부의 촬영 현장은 사람들로 빼곡했고, 건물 밖에서 구경하는 군중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냥 시늉만 하는 거지. 그런 거 다 따지면 어떻게 일하겠어.”


그래도 당당하진 않은지 큰 소리로 계속 떠들던 친구는 구경꾼들이 듣기라도 할까 싶어 속삭이듯 목소리를 낮췄다.


“솔직히 이런다고 안 걸릴 놈이 걸리고 걸릴 놈이 안걸리겠냐. 그냥 프로그램 시작 전에 방역 수칙 준수하면서 찍었다고 자막만 박으면 돼. 방송국 놈들 일이란게 원래 다 그래.”


“하긴. 가끔 tv 보면 그 문구는 꼭 나오더라.”


“아마 대형 제작사 중에는 칼같이 지키는 곳도 있을 거야. 근데 내가 다닌 현장들은 다 비슷하더라고. 여긴 아직 편성도 안 잡힌 웹드라마거든. 차라리 누구 하나 걸려서 이슈라도 되는 게 나을지도 몰라.”


“요즘 그렇게 이슈됐다가는 그냥 그대로 엎을 것 같은데... 편성도 안 잡혔다며?”


“아, 그러려나?”


그렇게 이름 모를 친구와 10분은 더 이야기를 나누던 승호는 슬슬 멀뚱히 서 있는 중인 하비에르가 신경 쓰였기에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지잉!


마침 친구 녀석의 주머니에서도 진동음이 울린다.


“우리 애도 이제 일 마쳤나 보네. 가봐야겠다.”


“그래. 일 봐라.”


“덕분에 시간 잘 때웠다. 나중에 천석이랑 셋이서 보자고.”


녀석이 등을 돌리며 또 다른 불알친구의 이름을 내뱉은 순간.


‘아! 박신혁! 이제야 이름이 생각나네.’


그제야 승호는 눈앞에 있는 남자의 이름을 기억해냈다.


박신혁과 원천석.


승천 이전에도 딱히 인간관계가 넓지 않던 승호가 평생 함께할 것이라 생각하던 두 명이다.


‘지금은 뭐...’


-


승호가 옛 친구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하비에르 녀석이 마지막으로 한 곳을 더 들리잔다.


“더 놀자는 건 아니고, 이왕 나왔으니 성당에 잠깐 들리자. 교구에 직접 보고할 일이 있거든.”


일이라고 하니 반대하기도 그렇고, 명동성당에 대해 이름만 몇 번 들었을 뿐. 직접 본 적은 없기에 승호는 별말 없이 하비에르의 뒤를 따랐다.


“잠깐 기다리고 있어. 외부인은 출입 금지라네.”


승호도 굳이 성당 내부까지 들어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에 밖에서 건물을 구경하고 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일을 마친 하비에르가 굳은 얼굴로 나타났다.


“표정이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본부 쪽 지시사항이 좀 거지 같네. 일단 집에 가자.”


야훼의 일도 대충 해결됐으니 교황청은 완전히 승호의 관심 밖이다.


그래서 더 캐묻지 않고 집에 가고 있는데 갑자기 하비에르가 말을 걸었다.


“아까 그 친구는 오래된 사이인가 봐?”


“음? 신혁이? 꽤 오래된 사이긴 하지.”


사백칠십 년 만에 만났으니 오래된 사이긴 하다.


승호가 적당히 대답한 다음 다시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하비에르는 박신혁에 대한 질문을 던져대기 시작했다.


얼마나 오래된 사이냐.


나이는 너랑 같냐.


어떻게 친해졌냐 등등.


평범한 질문들이지만, 그 수가 두 자리를 넘다 보니 이상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얘가 왜 이러나 싶었지만, 점점 늘어나는 질문에 이 녀석 혹시 동성애자인가 하는 의심이 든다.


‘이 녀석 설마?!’


형태 구현이 자유로운 용에게 성별 같은 인간의 한계는 무의미하니 무관심한 것에 가깝지만, 어찌 됐건 승호는 호모포비아 성향도 없고 개인의 성적 취향을 존중하는 편이다.


다만 당사자의 의사가 제일 중요하지 않은가.


딱히 소중하진 않아도 사백칠십 년 만에 만난 친구다.


“박신혁 그놈 이성애자다. 아마도... 아무튼 네 취향은 알겠는데, 나한테 소개해달라고는 하지 마.”


승호의 대답에 잠깐 말문이 막힌 하비에르는 급속도로 얼굴을 찌푸리고는 성질을 냈다.


“이 자식이 나를 어떻게 보고!”


“아, 그런 거 아냐?”


-


생리적인 거부감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라던가, 직장이 교황청이다 보니 문화가 그렇다는 둥.


하비에르는 저도 모르게 성질을 낸 것에 당황해서는 영어와 스페인어를 섞어가며 격하게 변명했다.


정치적 올바름의 물결이 드세다더니 괜히 혼자 조심하는 느낌이다.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은 주변에 승호 말고 아무도 없는데 말이다.


“아무튼 내가 동성애를 혐오한다거나 그런 건 아냐. 그냥 직장이 직장이다 보니 대놓고 찬성할 수 없는 거지, 성소수자들 인권은 존중한다고.”


“알았어. 그러면 내 친구한테 왜 그렇게 관심이 많은데?”


“그건...”


막상 답변할 말이 궁했는지 하비에르는 우물쭈물했고, 승호가 이유를 추궁하려는데 갑자기 그의 귓가로 익숙한 바람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휘익!


누군가가 또다시 승호의 뒤통수를 노린 것이다.


‘오늘 대체 뭐지?’


이전과 마찬가지로 기의 움직임이 느껴지진 않았으니 일단은 암살자가 아니라 일반인이다.


빡!


“아윽! 김승호 이자식아! 좀 살살쳐라!”


-


박신혁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행사한 물리력을 그대로 돌려받은 또 다른 남성은 당연하다는 듯이 친밀한 태도를 보였다.


승호에게는 또다시 익숙한 얼굴이다.


“혹시 천석이냐?”


“그럼 나 말고 다른 천석이도 있냐? 아흐, 이 자식 엄청 쎄게 때렸네.”


원천석.


승호의 또 다른 옛 친구.


‘이 자식들은 왜 뒤통수부터 노리는 거지?’


사백칠십 년 전의 자신이 대체 무슨 장난을 쳤길래 친구라는 것들이 자꾸 뒤통수를 노리는지 격하게 궁금했지만, 지금 당장은 먼저 확인해야 할 일이 있다.


“천석아 오랜만에 봐서 반갑긴 한데 잠깐 자라.”


“그게 무슨 소리-”


풀썩!


순식간에 원천석을 기절시킨 승호는 곧장 하비에르에게 다가가 그의 멱살을 잡았다.


꽈악.


“캑! 잠깐-”


놀란 하비에르가 꺽꺽대며 발버둥 쳤지만, 승호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싸늘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지금 뭐 하자는 거냐?”


-


오늘 만난 게 박신혁 한 명뿐이었다면 승호도 그냥 기분 좋은 우연이라 생각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예전에 살던 동네도 아니고, 서울 한복판에서 반나절 만에 둘뿐인 옛친구를 잇달아 만났다.


그것도 승호 본인의 의지가 아니라 하비에르의 성화에 못 이겨 어쩔 수없이 밖으로 나온 날에?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 수작질을 부리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승호가 멍청하지는 않다.


“켁! 이것 좀 놓고-”


쿵!


“놔달라면 놔줘야지. 그러니깐 너도 나처럼 말로 할 때 대답하는 게 좋을 거야.”


떨어진 충격으로 바닥을 뒹굴던 하비에르는 금방 자리에서 일어나 먼지를 털고는 갑자기 욕설을 내뱉었다.


한국에서 한 달간 헛살진 않았는지 토속적인 욕들의 발음이 제법 찰지다.


“씨팔! 엔티티 이 개새끼들 때문에 내가 게이 취급받는 것도 모자라서 멱살까지 잡히네!”


“엔티티? 그건 또 뭐 하는 것들이야?”


엔티티.


교황 직속 정보기관.


이름과 옛날의 활동 내역 정도는 기독교 역사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그런 단체지만, 그래도 교황청은 한 번도 그 존재를 인정한 적이 없고, 막상 그 실체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보통 정보기관 요원 중에도 종교 가진 놈은 있을 거 아냐. 인구 통계상 30%는 되겠지. 거기서 기독교도를 추리면 그중의 10%는 엔티티 소속이라고 보면 돼. CIA, FBI, MI6 등 웬만한 기관에는 다 퍼져있지. 기생충 같은 놈들이야.”


하비에르의 설명을 들은 승호의 감상은 단순했다.


“바티칸 국정원이네.”


“국정원이 뭐 하는 놈들인지는 몰라도 정보기관이라면 비슷하겠지. 아무튼 그 시발것들이 너 데리고 명동으로 나오라 한 게 다였어. 근데 보고하고 나니 갑자기 나한테 네 반응을 떠보라더라. 씹새끼들.”


승호가 그래도 나름 친구라고 살살 다뤄야 하나 고민한 게 무색할 정도로 하비에르는 묻는 말에 착실히 대답했다.


“내가 물어보긴 했다만 너무 쉽게 대답하는 거 아니냐?”


“너는 클럽 소속이잖냐. 협력업체 직원을 작전 대상으로 삼은 걸 들켰는데 당연히 빨리 말해주고 싹싹 빌어야지. 그러니까 클레임은 꼭 엔티티 놈들한테 걸어라.”


기적 감정사들과 엔티티는 직무의 성격이 다르기에 서로 연관되는 게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애매하게나마 엔티티 쪽이 상위 기관인지라 일을 하다보면 오늘처럼 간섭이 들어오는 경우가 제법 있었다.


당연히 그들에게 감정이 좋을 리 없던 하비에르는 물어보지 않은 내용까지 술술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놈들이 갑자기 날 왜 건드려?“


“그게 말이지...”


-


기적이 발생한 근원지에 거주 중이던 클럽 소속의 두 인물. 알버트와 김승호.


교황청은 클럽과 불가침을 비롯해 여러 협약을 맺은 상태니, 강제로 어떻게 할 명분은 없지만, 그렇다고 역대급 기적이 감지됐는데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일단 감정사들을 파견했다.


지금까지 쌓인 데이터에 의하면 고대의 유물이 나타났든 규격 외 존재가 강림했든 추가 흔적은 반드시 나올 것이고, 그에 대해 기독교와 연관성만 입증하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으니 말이다.


혹여 적당한 상황이 된다면 대상들을 처리한 뒤 눈 가리고 아웅 할 생각이기도 했다.


“겨우 너희 셋이서?”


“상부의 생각이 그랬다는 거지. 내 생각 아니야.”


가소롭다는 듯한 승호의 표정에 하비에르가 움찔했다.


여태껏 알버트만 조심했는데, 승호 또한 자신보다 윗줄의 신비 소유자였으니 그럴만했다.


“아무튼, 그렇게 대기만 하고 있는데, 한 달이 넘도록 무소식이었잖아.”


역대급 기적이라 모두가 주시 중인데 별다른 소식이 없으니, 상부에서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고, 일의 진행을 자연스럽게 엔티티가 맡게됐다.


그리고 엔티티는 클럽 측에서 짧은 시간 동안 기적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고 오리발을 내민다는 걸로 상황을 결론지었다.


“하여튼 현장에선 뛰지도 않는 것들이 문제라니까. 기적은 그리 쉽게 수습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


“음...”


이후 엔티티는 가진 역량을 총동원해 알버트를 조사했지만, 당연히 나오는 건 없었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승호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들은 그제서야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승호에 대해서 입수한 정보들이 너무나도 깨끗한 것이다.


클럽은 어느 누구도 승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도록 그에 대한 정보를 숨기거나 가공해놨는데, 그 결과물이 너무 깔끔한 것이 문제였다.


진짜로 일반인이라면 모를까. 신비 관련 부서의 직원에 대한 정보가 이 정도로 깔끔하면 정보기관 입장에서는 큰 건을 숨기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정말 아무것도 없을지 모르지만, 밑져야 본전이니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심증만으로 일을 진행하는 건 아니라고 계속 반대했는데 우리 쪽 의견은 귓등으로도 안 듣더라. 그리고 할 거면 좀 자연스럽게 하던가 멍청한 놈들. 그렇게 졸속으로 일을 진행하니 오늘처럼 병신같은 작전이나 짜는 거 아냐.”


하비에르는 어림도 없는 일이라며 콧방귀를 껴댔지만, 승호는 내심 뜨끔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엔티티는 진실에 전혀 접근하지 못했음에도 근본 원인인 승호를 특정한 것이다.


‘난감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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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술래잡기 (3) +1 22.10.25 220 10 11쪽
60 술래잡기 (2) +1 22.10.16 282 19 10쪽
59 술래잡기 (1) +2 22.10.01 368 17 10쪽
58 기적 감정 +2 22.08.28 435 20 10쪽
57 기억 탐색 (2) +1 22.08.27 396 11 11쪽
56 기억 탐색 (1) +2 22.08.24 433 17 10쪽
55 뒷정리 +1 22.08.20 491 21 10쪽
54 크로노스 (3) +1 22.08.14 504 23 11쪽
53 크로노스 (2) +2 22.08.13 496 24 10쪽
52 크로노스 (1) +3 22.08.11 495 25 10쪽
51 요괴들의 사정 (2) 22.08.07 546 26 11쪽
50 요괴들의 사정 (1) +1 22.08.05 513 28 9쪽
49 게임 중독(2) +3 22.08.02 542 26 10쪽
48 게임 중독(1) +1 22.07.31 563 21 13쪽
47 악연 (3) +2 22.07.29 579 25 13쪽
46 악연 (2) +1 22.07.27 573 21 10쪽
45 악연(1) +3 22.07.25 625 26 11쪽
44 잼민이 +2 22.07.23 644 23 11쪽
43 나들이 +2 22.07.21 689 24 10쪽
42 마무리 (2) +2 22.07.19 768 26 10쪽
41 마무리 (1) +2 22.07.17 807 25 10쪽
40 세상의 끝 +3 22.07.10 906 32 12쪽
39 침식 (4) +2 22.07.09 870 26 10쪽
38 침식 (3) +3 22.07.08 885 2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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