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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식 님의 서재입니다.

강제로 초월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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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식
작품등록일 :
2022.05.11 17:00
최근연재일 :
2022.12.01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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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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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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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2.08.11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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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크로노스 (1)

DUMMY

“잘들 논다. 재밌네.”


-


정전 소동이 있고, 바로 다음 날 아침.


매주 있는 분리수거일이기에 승호가 쓰레기를 모아서 집 밖으로 나오니, 웬 거한이 팔짱을 끼고 현관 앞에 자리 잡은 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젯밤 몸도 풀었겠다. 어지간한 잡놈이라면 그냥 무시하고 지나칠 승호였지만 느껴지는 기세가 로키와 비슷한 수준이다.


크로노스였다.


“음, 이렇게 바로 튀어올 거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녀석은 승호의 전언에 분노한 것인지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전해 들은 바로는 곧장 만나자는 뉘앙스였다만? 방벽까지 언급했잖나."


“그래. 나도 빨리 끝내고 쉬는 게 좋기는 해. 근데 당신은 그 뭐냐. 그리스 신화 소속 아니었어? 외모가 너무 일본 쪽이신데? 크로노스 맞아?“


적당히 수염 덥수룩한 서양인 할배가 복장만 일본식이었다면 말도 안꺼냈을 것이다.


하지만 승호가 크로노스의 외형에 관해 물어보지 않기에는 왜색이 너무 짙었다.


머리에 뿔이 둘 달린 것이 전형적인 일본 요괴인데다가, 허리춤에는 일본도 세 자루를 메고있는 게 누가 봐도 코스프레 중인 오타쿠다.


2m를 훌쩍 뛰어넘는 덩치와 험악한 인상이 아니었다면 사람들에게 ‘진짜’라고 놀림받기 딱 좋은 모양새였다.


“이상한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마주친 인간들은 다 좋아했다만?”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는커녕 저 모습 그대로 교통편을 이용했나 보다.


뭐라 한 소리 하고 싶었지만, 승호는 그 마음을 억눌렀다.


녀석의 목소리는 잔뜩 화가 나 있었기에 일단 가라앉히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차라리 야훼라는 놈을 만날 걸 그랬나?’


승호의 목적은 놈들을 설득해서 관리국의 허가를 받게 만드는 것.


하지만 상대가 저런 분위기라면 아무리 쉬운 일이라도 성사시키기 어렵다.


“아냐. 하나도 안 이상해. 멋있다.”


“흠.”


“나도 삼도류 좋아하거든. 진짜야.”


-


“내 분노는 나도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니 신경 쓰지 마라. 감정에 휘둘릴 정도로 어리숙하지는 않다.”


여전히 화가 난 것 같지만, 승호는 분노의 원인이 자신이 아니라는 말에 신경을 끄고는 바로 설득을 시도했다.


자신 때문이 아니라는데 꼬치꼬치 캐물어봤자 괜히 기분만 더 상하게 할 뿐이다.


다행히 크로노스는 자신이 말한 것처럼 얌전하게 승호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러니까 그 관리국이란 곳에 방문해서 허가를 받으라?”


“그래. 그것만 해주면 니들한테 볼일 끝. 딱히 나쁜 놈들 같지도 않으니, 서로 건드리지 말고, 살던 대로 살자고.”


“,,,”


친절하고, 상냥하게. 승호는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성의를 보였지만, 크로노스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그가 지닌 특유의 울분에 찬 분위기 때문이었다.


“저기... 뭐라고 반응 좀 해줘 봐.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지금까지 네가 한 말들. 믿기 힘들군.”


“응?”


“방벽 바깥에 넓은 세상이 있다는 것 정도야 당연히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네가 말한 모든 게 사실이라 믿기는 어려워.”


“아니 어려울 게 뭐가 있어.”


“올림포스, 아스가르드, 천계. 지구로 쳐들어온 놈들 중에서도 유난히 덩치가 컸던 놈들이다. 들어본 적 있나? 그 외에도 자잘한 잡것들은 많았지만, 대부분 놈들에게 흡수당했지.”


“갑자기 그놈들은 왜? 지금은 없는 놈들이라며.”


“그 셋을 다 합쳐도 대항하지 못할 정도로 강한 집단이 관리국이란 말이다. 허세라고밖에 생각되지 않지만, 만약 진짜라면 더 문제지. 내가 그곳에 가는 것만으로도 위험부담이 너무 커.”


승호는 북유럽신화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신화에 문외한이지만, 그 북유럽신화의 등장인물 전체를 국장 앞에 데려다 놓아도 발톱에 낀 때나 되면 다행이다.


아마 다른 신화도 비슷할 것이다.


“음, 그럴 것 같긴 한데 그건 국장이 괴물인 거고. 그 밑에 있는 우리는 그 정도는 아니야.”


흡수한 파편의 크기에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용의 능력으로만 따진다면 결국 그놈이 그놈이다.


겨우 힘의 크기나 싸움질로 서열을 정리하기에는 이 우주가 너무 넓다.


“너 같은 존재가 이천억이라 하지 않았나?”


“그건 그냥 파악된 총개체수고, 아마 관리국에는 별로 없을걸? 내가 전에 얼핏 봤을 때는 대충 백 단위였어.”


관리국 소속의 초월자들이 얼마나 많은지는 승호도 모르지만, 얼마 전 관리국에 들렀을 때 마주친 용무리는 겨우 몇백 정도였다.


하지만 크로노스의 의도는 그런 뜻이 아니었나 보다.


“로키, 야훼, 나 이렇게 셋은 지구에서만큼은 최강이라 부를만한 존재들이다. 기존의 침략자들과 비교해도 나으면 나았지. 부족하지는 않았어. 헌데, 당신 이야기를 들어보면 로키를 상대하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던 것 같군.”


“음, 그렇다고 쉽지도 않았는데...”


당장 승호 자신만 해도 로키와 비슷한 수준이 떼로 덤빈다면 자폭을 각오하지 않는 한 승리를 장담하기 힘들다.


기록을 통한 거래의 대상이 된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지고, 죽는다 해도 다시 살아나면 그만이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승호의 주장은 용을 비롯한 대부분의 초월자들이 별로 대단하지 않다는 것이다.


“들어봐. 일단 용은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니야.”


그가 배운 바에 의하면 승천, 초월, 등선 뭐라 표현하든 불멸자가 된다는 것은 일종의 자격을 얻은 것에 불과했다.


온 우주를 자유롭게 누비며 살아갈 수 있는 자격이자, 자신이 태어난 별을 벗어나는 시작.


그게 전부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대단하다면 대단하지만, 별거아니라면 또 별거 아닌 그런 존재인 것이다.


“내 입장에서는 필멸자 전부를 기만하는걸로 들린다만.”


“음, 그렇게 반응하면 할 말이 없기는 한데.”


문제는 인간을 비롯한 대부분의 필멸자들이 더욱 별거 아니라는 사실.


“그런 사정을 나에게 세세히 말해주는 것도 이해가 안 돼. 게다가 그런 단체의 장이 가지고 있는 진짜 목적은 다 때려치고 쉬는 거라고?”


“아니. 국장이 그 모양인 걸 나보고 어쩌라고.”


두서없이 설득하다보니 모든 것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관리국의 목적인 분기점 생성과 국장의 숨은 의도까지는 말해준 상황이다.


뭐 비밀이라고 숨긴단 말인가.


하지만 이야기의 스케일이 너무 커서일까.


크로노스는 잘 따라오지 못하는 것 같다.


지구의 방벽 유지에 평생을 바친 그의 입장에서는 황당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굳이 거짓말까지 해가며 널 속일 이유가 없잖아. 좀 믿어줘라.”


“그래. 굳이 그럴만한 이유가 없으니 어이가 없어도 가만히 듣고 있는 것이다.”


방벽이 만들어지기 전.


대부분의 침략자는 웃음 띤 얼굴로 다가와서는 시공의 힘을 확인하자마자 본색을 드러냈다.


당연히 승호도 시공의 힘을 노리는가 싶어 여지껏 경계한 거였지만, 그딴거 필요 없다며 진저리 치는 반응은 크로노스가 생각하기에 절대로 거짓이 아니다.


게다가 승호는 자신의 사정에 대해서는 나불나불 떠들어대면서도 크로노스와 지구에 있는 시공의 힘에 대해서는 전혀 캐묻지 않았다.


오히려 알면 귀찮아질 것 같아 질색하는 느낌이다.


그 솔직함은 거의 폭력에 가까웠다.


진심이 느껴졌기에 크로노스도 믿기 힘든 이야기를 들어주는 중이었다.


“어쩔 수 없군. 한번 속아주는 수밖에...”


“드디어!”


안달 난 표정으로 답을 기다리던 승호는 환호성을 질렀다.


마침내 크로노스가 관리국을 방문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승호는 혹시나 녀석의 마음이 바뀔까 싶어 바로 관리국에 신호를 보내 빛기둥을 소환했고, 그걸 본 크로노스는 멈칫했다.


“우리가 만든 문과는 지닌 힘의 크기가 다르군.”


“거리가 워낙 멀어서 그럴 거야. 아예 다른 은하라고. 그구경 그만하고 빨리 가자.”


“후... 밀지마라.”


한숨을 내쉰 크로노스와 그의 뒤에서 재촉하던 승호는 빛기둥을 통과해 지구를 떠났다.


-


관리국에 도착한 승호가 곧장 소리를 부르려는데 옆에서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쿠당탕!


빛기둥을 통과한 크로노스가 쓰러진 것이다.


“뭐야?! 갑자기 왜 이래?”


놀란 승호가 아무리 흔들어도 크로노스는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숨은 쉬고 있는데?! 야! 눈 좀 떠봐!”


그 소란이 울려퍼졌는지, 어느새 소리가 나타났다.


[승호 씨? 무슨 일이에요? 데리고 온 애기는 또 뭐고요.]


“지구의 파편 소유잔데 관리국에 도착하자마자 정신을 못 차리-”


사정을 설명하던 승호는 문득 예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어젯밤에 만난 임창식이라는 마법사와 얼마 전 처리한 박중덕.


녀석들이 지니고 있던 조각을 확인하러 관리국에 끌고 왔다가 소리에게 장난치지 말라며 면박만 받았었다.


냉정을 되찾은 승호는 흔들고 있던 크로노스를 바닥에 눕힌 뒤, 녀석의 전신을 세세하게 훑기 시작했다.


역시나 시공의 힘은 한 조각도 느껴지지 않는다.


‘빌어먹을!’


아주 순수한 상태의 요괴 하나만 바닥에 누워있을 뿐이다.


잠시 후.


요괴는 눈을 떴지만, 승호가 알고 있던 크로노스가 아니었다.


“여긴 어디지? 너는 누구냐? 감히 이 오타케마루(大嶽丸)님을 납치한 건가?!”


자신을 오타케마루라고 밝힌 요괴희 기세는 이전보다 많이 약해진 상태다.


굳이 수준을 나누자면 어젯밤 조금 만져준 요괴들과 비슷한 수준이다.


“혹시 너도 일본삼대악귀인가 뭔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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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술래잡기 (1) +2 22.10.01 368 17 10쪽
58 기적 감정 +2 22.08.28 435 20 10쪽
57 기억 탐색 (2) +1 22.08.27 396 11 11쪽
56 기억 탐색 (1) +2 22.08.24 433 17 10쪽
55 뒷정리 +1 22.08.20 491 21 10쪽
54 크로노스 (3) +1 22.08.14 504 23 11쪽
53 크로노스 (2) +2 22.08.13 495 24 10쪽
» 크로노스 (1) +3 22.08.11 495 25 10쪽
51 요괴들의 사정 (2) 22.08.07 546 26 11쪽
50 요괴들의 사정 (1) +1 22.08.05 513 28 9쪽
49 게임 중독(2) +3 22.08.02 542 26 10쪽
48 게임 중독(1) +1 22.07.31 563 21 13쪽
47 악연 (3) +2 22.07.29 579 25 13쪽
46 악연 (2) +1 22.07.27 572 21 10쪽
45 악연(1) +3 22.07.25 625 2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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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나들이 +2 22.07.21 689 24 10쪽
42 마무리 (2) +2 22.07.19 768 26 10쪽
41 마무리 (1) +2 22.07.17 807 25 10쪽
40 세상의 끝 +3 22.07.10 906 32 12쪽
39 침식 (4) +2 22.07.09 870 26 10쪽
38 침식 (3) +3 22.07.08 885 2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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