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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식 님의 서재입니다.

강제로 초월당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정춘식
작품등록일 :
2022.05.11 17:00
최근연재일 :
2022.12.01 19:45
연재수 :
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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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428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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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01,965

작성
22.10.30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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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허가

DUMMY

“아, 이 자식 또 도망쳤네...”


-


야훼는 그날 이후 정말로 승호의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정보 흡수 범위 밖에서 계속 정찰을 시도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헛수고였을 것이다.


생각을 정리한 승호가 귀찮은 핑계들은 알버트에게 떠맡긴 채 관리국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야훼가 지닌 시공의 파편에 대한 허가를 받기 위해서였다.


-


당신이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도 당신을 들여다본다고 했던가.


사실 무의식과 선악에 대한 철학적인 문구지만, 하비에르의 꿈에서 일어난 일은 어느 정도 문자 그대로인 말이었다.


벌레가 신을 살펴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야훼는 평범한 인간과 달리 벌레 수준은 확실히 넘어선 존재였고, 꿈과 신성이 혼재한 정신공간은 관찰자들을 쌍방향으로 연결되게 했다.


덕분에 승호는 크로노스 때처럼 생생한 체험은 아니었지만, 야훼가 왜 정신체가 되었고, 자신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지를 비롯해 대략적으로 그의 기억과 감정을 받아들였다.


약간이지만, 야훼에게 공감한 것이다.


정작 야훼는 승호의 자연스러운 정보 차단 덕분에 위험을 제외한 아무것도 파악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어찌 됐건 파편 소유자가 상위존재로의 승격을 목적으로 활동하는 중이다.


관리국의 목적과 완전히 부합되는 상황이었으니 문제 될 것이 전혀 없었다.


-


당사자와는 전혀 이야기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승호는 허가를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그 생각은 맞아떨어졌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수월하게 말이다.


“흐아암~ 그렇게 하세요.”


국장은 이야기를 듣자마자 승호의 뜻대로 하라며 허가를 내려줬다.


새로운 형태가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는지 여전히 알록달록 빛나는 고양이의 모습이었는데, 그 상태로 바닥을 뒹굴며 하품하는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나는 관심 없으니 너 알아서 하세요’였다.


“이렇게 쉽게요?”


어차피 지구를 벗어나면 시공의 파편이 사라져 상황이 꼬일 터였으니 야훼를 설득했다 해도 직접 데려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대략적인 상황을 설명하자마자 이리 쉽게 허가를 받을 줄은 몰랐다.


“어려울 건 또 뭐가 있나요. 그 야훼라는 사람의 목적이 초월이라면서요? 그러면 당연히 허락해줘야죠. 새로운 분기점일 수도 있는데. 그리고 앞으로는 굳이 저한테까지 안 오셔도 돼요.”


“그럼 허가는 누구한테 받나요?”


“받기는요 그냥 승호가 알아서 하는 거죠.”


“아, 허가도 그냥 제 재량이었어요?”


“허가받을 사람에 대해 가장 잘 아는 건 당신이잖아요.”


일전에 허가를 받으면 된다는 말만 듣고, 허가를 해주는 주체에 대해서는 전혀 알아보지 않은 승호의 실수 아닌 실수였다.


‘이런... 어차피 방벽 밖으로 나올 생각이 전혀 없는 놈들이었으니 그냥 내버려 둬도 됐던 거였네.’


크로노스를 관리국에 데리고 오려다가 상황이 꼬였던 얼마 전이 생각나 살짝 현실 자각 시간에 빠진 승호였지만, 국장이 추가한 말은 그런 기분을 금방 날려버렸다.


“아, 승호 씨는 이번이 처음이었으니 판단을 완전히 맡기진 않았겠네요. 어떻게든 파편 소유자를 데리고 오라 했거나, 다른 사람들이 확인하러 들렀겠어요. 아닌가? 분명 책임지기 싫어서 사람 구하기 힘들었을 테니 그냥 승호 씨한테 맡겼을 확률이 높네요.”


“책임이요?”


“만약 파편 소유자가 사고를 치면 허가를 내준 사람 잘못 아니겠어요? 뒷수습은 그 사람이 해야죠.”


“아...”


분명 맞는 말이지만 달가운 말은 아니다.


이어서 국장은 이번 일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아마 제가 나설 정도로 큰일도 없겠지만, 지금 제가 허락해줬다고 사고까지 수습해준다는 건 아니에요. 그건 승호씨 일입니다.”


귀찮은 일은 질색이라는 국장의 의지가 주변의 정보처럼 흘러들어온다.


승호는 국장이 말한 모든 일들이 결국은 관리국의 일이니, 최종적인 책임은 국장에게 있는 것 아닌가 싶었지만, 137억 년 동안 일하다 지쳐서 삐끗한 것이 눈앞의 존재다.


본인 입으로 ‘결국은 다 네 일 아닌가요.’라고 말할 정도로 눈치가 없지는 않았기에 승호는 내심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네. 제가 알아서 할게요.”


태초부터 존재한 시공기사든 승천해서 초월한 용이든 귀찮은 책임은 절대 맡기 싫어하는 모양새다.


결국 사람 사는 것은 다 비슷한가 보다.


어쨌거나, 야훼가 사고를 쳐봤자 지구 안에서만 벌어질 일이다.


게다가 사라질 때의 모습은 어지간히 승호에게 겁먹은듯했으니 별일 없을 것이다.


“제가 괜히 국장님만 번거롭게 했나 보네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판단한 승호는 다 끝났다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콧노래를 부르며 바로 관리국을 떠나려 했다.


하지만 그런 승호의 발걸음을 국장이 다시 막았다.


“아! 그래도 별을 벗어나면 사라지는 시공력에 대해서는 저도 궁금하네요. 그 건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아 오세요.”


“네?”


“음?”


“아...”


“무슨 문제 있어요?”


“그럴 리가요.”


책임에 대해서는 내심을 잘 숨겼지만, 예상치 못한 추가 임무에 대해서는 떨떠름한 기색을 완전히 지울 수 없었고, 그런 승호의 모습이 국장의 신경을 건드렸다.


“아니, 관리국 들어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일하기를 싫어해요?”


“그게 아니라요.”


승호는 바로 변명하려 했지만, 국장은 그 말을 듣지 않고 혼자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흠, 이때까지는 그냥 망룡들이었으니까 그런가보다 했는데, 역시 텔린놈이 문제였나? 그놈한테 배운 용들은 왜 죄다... 언제 한번 제대로 조져야...”


그러던 중 다시 옛날 일이 생각나기라도 했는지 말이 드문드문 끊기더니 완전히 생각에 잠겨버렸다.


잠시 후.


갑자기 주변의 기가 떨리기 시작하더니 관리국 여기저기서 기겁한 용들의 반응이 들려온다.


“국장?! 또 왜 그래?!”


“어떤 멍청한 놈이 또 성질 건드렸어?”


“아니 이 양반은 아주 그냥 때 되면 지랄병이-”


홱!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 했던가.


제법 험하게 불평을 내뱉은 한 용의 외침을 향해 국장의 고개가 돌아갔고, 그 순간이 승호에게는 기회였다.


“말씀하신 사항은 확인되면 바로 보고드리겠습니다!”


텔린에 대한 국장의 짜증으로 괜히 불똥이 튈까 싶었던 승호는 곧장 자리를 벗어났다.


엄밀히 말하면 승호가 누군지 모를 용과 텔린에게 불똥을 튀긴 셈이지만 당장 자신이 위험하게 생겼는데 알게 뭔가.


일단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피자랑 치킨 정도면 텔린은 그냥 넘어가 주겠지.’


이름 모를 용의 명복을 빌면서 승호는 소리와 레니스를 찾아 나섰다.


-


‘하, 속 썩일 일이 없으니 평온하구만. 지금만 같아라.’


지구로 돌아온 승호는 평온한 일상을 이어 나갔다.


야훼의 파편 소유에 대해서는 미리 허가를 받았고, 그 당사자도 겁에 질려 완전히 모습을 감췄으니 더 이상 귀찮을 일이 없는 것이다.


‘조각이 사라진 일은... 좀 넉넉하게 두고 보자고.’


물론 추가 업무가 있기는 했지만, 국장은 분명 언제까지라고 기간을 특정하지는 않았다.


초월자들의 시간관념을 생각해보면 아무리 촉박하게 시간을 잡아도 최소 이백 년 동안은 널널하리라.


그렇게 귀찮음을 털어냈음에도 한없이 널브러진 승호를 향해 한심하다는 말투의 핀잔이 들려온다.


“며칠 출장 갔다 왔다고 어째 더 퍼졌냐.”


하비에르였다.


“시차 적응이 힘들어서 그래.”


“시차 적응 같은 소리 하네. 고작 삼일 다녀온놈이 아무것도 안 하고 일주일 넘게 집안에만 있었잖아. 나도 무기력증이 전염되는 것 같다고.”


“아무것도 안 하긴. 지금 너희 보조하고 있잖아.”


“그렇군.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나를 보조하기 위해 너도 아무것도 안 하는 거였어.”


“그런거지.”


사실 방바닥 한구석을 긁고 있는 것은 하비에르도 마찬가지.


마침내 놀 거리가 떨어진 것이다.


2020년 현대. 그것도 코로나바이러스 시국에 집 안에서 놀거리가 떨어졌다는 것이 무슨 소린가 싶겠지만, 차라리 혼자서 시간을 보내면 모를까. 둘이 같이 있다 보니 도무지 시간이 가는 것 같지가 않다.


물론 하비에르만 그렇다는 것이다.


승호는 어떠한 불만도 없다.


“...”


“...”


휘익!


여전히 바닥을 뒹굴고 있는 승호를 향해 거실 바닥에 있던 쿠션이 날아왔다가 튕겨 나갔다.


이번에도 하비에르다.


“갑자기 쿠션은 왜 던져?”


“쉬는 것도 어느 정도지. 더 이상은 못참겠다. 나가자.”


동료 감정사들은 본업을 수행 중인데, 본인만 계속 대기하고 있으려니 마침내 하비에르의 좀이 쑤시다 못해 폭발한 것이다.


“이 시국에 어딜?”


“어디든!”


“잘 다녀와.”


“너도 가야지.”


“내가 왜?”


“우리 보조하는게 네 업무라며.”


“아.”


혹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기적 탐지 기계가 반응할지 모른다.


네가 자리를 비우면 대신 지키고 있는 것이 진정한 보조다.


승호는 그 외에도 그럴듯한 이유를 다섯 개나 더 떠들어봤지만, 하비에르의 귀에는 전혀 닿지 않았다.


“아, 그런 건 모르겠으니 일단 나가자고!”


최선을 다해 밍기적거리면서 더 격렬하고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승호였지만, 폭발한 하비에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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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40 대박나시길
    작성일
    23.06.12 23:48
    No. 1

    로키까지는 하하 그러고 읽었는데 크로노스 제우스 야훼가 나오고는 집중이 안됩니다 기존 신화의 신을 차용하는 것이 필요했나 하는 아쉬움이 있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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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술래잡기 (1) +2 22.10.01 369 17 10쪽
58 기적 감정 +2 22.08.28 435 20 10쪽
57 기억 탐색 (2) +1 22.08.27 396 1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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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뒷정리 +1 22.08.20 492 21 10쪽
54 크로노스 (3) +1 22.08.14 505 23 11쪽
53 크로노스 (2) +2 22.08.13 496 2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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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게임 중독(2) +3 22.08.02 543 26 10쪽
48 게임 중독(1) +1 22.07.31 564 21 13쪽
47 악연 (3) +2 22.07.29 580 25 13쪽
46 악연 (2) +1 22.07.27 573 21 10쪽
45 악연(1) +3 22.07.25 626 26 11쪽
44 잼민이 +2 22.07.23 645 23 11쪽
43 나들이 +2 22.07.21 690 24 10쪽
42 마무리 (2) +2 22.07.19 768 26 10쪽
41 마무리 (1) +2 22.07.17 808 2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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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침식 (4) +2 22.07.09 871 26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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