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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식 님의 서재입니다.

강제로 초월당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정춘식
작품등록일 :
2022.05.11 17:00
최근연재일 :
2022.12.01 19:45
연재수 :
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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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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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0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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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07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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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침식 (2)

DUMMY

[난 ‘이번’ 침식이라고 했어. 아무리 생각해봐도 원인은 너야.]


-


가짜는 승호와 접촉했던 그 잠깐 사이에 심경의 변화라도 왔는지, 묻는 말에 바로바로 대답하기 시작했다.


[일단, 너 정체가 뭐야? 중심태양은 아닌 것 같은데.]


연결이 강하긴 해도, 승호는 이 고양이와 중심태양이 동일한 존재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허공록의 수호자이자, 이 세상의 존재의지다냥.]


허공록은 기록의 모조품인 중심태양을 말하는듯했지만, 뒷부분은 승호가 이해하기 힘들다.


[존재의지?]


가짜는 몸에 구멍이 뚫리고 허리와 앞발 하나가 꺾였으면서도 어떻게 일어나서는 잘난체하는 자세를 취했다.


[세상이 계속 존재할 수 있도록 살피고 가꾸는 신이라고 할 수 있지!]


녀석은 거창한 단어를 써가면서 자신을 포장했지만, 승호는 그를 아발론을 유지보수하는 프로그램 같은 존재로 이해했다.


눈앞의 너덜거리는 고양이를 신으로 인정하기에는 이제껏 승호가 봐온 게 너무 많다.


[프로그램이라닝! 힘 좀 세다고 사람 막 대하는 거 아니다냥!]


[그러면 일단 그 말투부터 바꿔. 아까도 말했지만 징그러워.]


실제로 말하는 것도 아니고, 텔레파시에 냥냥을 붙여대니 승호는 절로 헛구역질이 나왔다.


[고양이 요괴들은 다 나처럼 말한다냥. 네가 이상한 거다냥!]


웅웅웅


몸통에 구멍을 하나 더 뚫어줘야 말버릇이 고쳐질까 싶어 승호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가짜가 기세를 올린다.


[하핫! 내가 얌전하게 대답해준 건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냥!]


웅웅웅웅


웅웅거림이 심해지자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감지한 승호는 인간으로 변한 뒤, 가짜의 목을 멱살 잡듯이 붙잡았다.


고양이의 앞발로 무언가를 움켜잡기는 생각보다 힘들다.


덥석!


“켁! 그 모습은? 케겍, 놔줘락!”


“똑바로 말할 수 있잖아? 아무튼 죽기 싫으면 무슨 짓을 한건지 말해.”


“흥! 내가 말할 것 같냥?”


꽈악.


가짜는 어떤 고문이라도 견뎌낼 것처럼 외친 게 무색하게도 승호가 손아귀에 좀더 힘을 주자 바로 꼬리를 내렸다.


“케켘! 그냥 멋있는 척 한번 해봤다냥. 내가 한 게 아니야. 이미 말했잖아. 너 때문이라고!”


가벼운 성격인 것이 확실한 고양이였지만, 지금은 힘에 굴복했다기보다 자포자기한 느낌이 강했다.


“웃기는 소리하지 마. 내 탓이라는건 그렇다 치자. 근데 지금 이게 침식이라고?”


승호가 문헌으로 배운 침식은 제각각이기는 해도, 물리적인 형태를 지닌 괴물이었지, 지금과 같은 현상이 아니다.


웅웅웅웅웅웅


진동에 의해 유리가 깨지기 직전과 같은 느낌.


‘기분 나빠. 분명 뭔가 일어나고 있는데...’


예상이 틀리지 않았는지 승호의 감각으로 무언가 접히고, 깨져서 조각나는 것이 느껴진다.


콰직.


챙그랑!


승호가 느낀 무언가는 바로 공간 그 자체였다.


게다가 소리는 승호의 주변에서만 나는 것이 아니다.


아발론이라는 틈새 속 세계 전체가 붕괴하고 있었다.


의문의 붕괴 현상은 주변의 모든 것들을 가리지 않고 덮쳤으며, 승호에게 붙잡혀 있던 고양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몸의 일부가 사라지면서 승호의 손아귀를 빠져나간 녀석은 마지막 힘을 불사르는 듯이 승호를 약 올리기 시작했다.


[하핫! 너같이 힘만 센 녀석이 처음은 아냐. 직접 이면으로 넘어올 줄은 몰랐지만, 차라리 잘됐다냥. 너만 없어지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거다냥. 잘 가라 이 바보, 똥개야!]


승호는 고양이의 텔레파시와 동시에 아발론 전체가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슈욱.


요란한 전조현상과 달리, 세계 파괴의 마지막은 무언가 수축하는 듯한 소리가 전부였다.


-


아발론은 사라졌지만, 승호는 멀쩡했다.


강기가 아닌 이상 지구에서는 승호를 단숨에 흩어지게 만들 방법이 없다.


별이 완전히 사라지는 정도는 돼야 흩어질까말까였으니 고작 지표면 밑에 있는 공간이 사라진다고 해서 다칠 리 없는 것이다.


게다가 아발론이라는 세상이 사라진 것이지, 틈새 자체와 그를 감싸고 있는 경계는 멀쩡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승호는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그냥 멀뚱히 떠 있는 중이다.


‘아무것도 없지는 않네. 태양은 멀쩡해.’


중심태양은 여전히 허공의 중앙에서 틈새 내부를 비추고 있다.


승호는 일단 중심태양에 다시 접촉했다.


그 순간 익숙한 텔레파시가 들려왔다.


[으잉?! 너 왜 안죽었냥...]


가짜 고양이였다.


-


다시 나타난 녀석은 고양이의 모습이 아니라 중심 태양과 마찬가지로 빛 덩어리였다.


그는 승호의 멀쩡한 모습에 놀랐는지 질문을 던져도 계속 묵묵부답이었지만, 승호가 중심태양 안에 있는 파편을 폭주시키자 바로 반응을 보였다.


[끄그그그극!]


“한 번 더?”


[끼야악! 그만!]


“오케이! 한 번 더!”


[키엑!]


승호가 자신의 시공력과 중심태양을 공명시킬 때마다 비명이 터져 나온다.


아발론이 사라지기 전에 지껄이던 유치한 도발과 신경에 거슬리던 말투 때문에 조금 사심을 담아서 괴롭혔더니, 녀석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협조적인 태도로 변했고, 기분나쁜 말투도 고쳐졌다.


[어떻게 ‘근원’을 건드리는 거죠?! 끄아악!]


“질문은 나만 할 수 있어. 이해했지? 제대로 대답 안 하면 이 근원이란 걸 뽑아낼 거야.”


승호의 진심이 느껴지는지 녀석은 허겁지겁 대답했다.


[뭐든지 물어보세요! 제발!]


“이름.”


[딱히 없- 끄윽, 그때그때 달라서 진짜 없어요. 아가르타, 모르가나, 아카샤. 뭐가 됐던! 편할대로 부르세요.]


“아카샤(आकाश)? 건방지네. 그래도 어울려.”


녀석이 밝힌 세 개의 이름 중 두 개는 그냥 이름이었지만, 아카샤는 용언에 의해 그 뜻이 승호에게 전달됐다.


허공 혹은 하늘, 공간 자체라는 뜻. 승호의 말대로 건방졌지만, 틈새라는 세상에 한정한다면 그만큼 어울리는 이름도 없다.


“그래 아카샤. 이제 제대로 대화해보자고.”


아카샤가 대답할 준비가 되었음을 느낀 승호는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의문점을 하나하나 해결하기 시작했다.


“이 공간이 만들어진 목적과 제작자.”


[당연히 신께서 만드신- 끄아악!]


“신 누구? 예수? 부처? 제우스? 토르? 로키?”


승호는 로키와의 싸움에서 들었던 신들의 이름도 꺼내 봤지만, 아카샤는 그딴 놈들이 아니라 진짜 신께서 아발론을 만들었다면서 비명을 질러댔다.


신에 대한 내용이 계속해서 튀어나왔지만, 지구에 존재하는 종교들처럼 신의 위대함에 대한 내용뿐.


결국 제작자에 대해서는 제대로 모른다는 뜻이다.


“그래. 제작자에 대해서 자세히 알 거라고는 크게 기대 안 했어. 만들어진 목적은?”


[여긴 방주예요.]


신에 대해 계속 떠들더니, 이상한 단어가 튀어나왔다.


“방주? 성경에 나오는 큰 배? 예수는 아니라며?”


[그딴 크기만 큰 잡스러운 거 말고요! 정확히 표현할 말이 방주 말고는 딱히 없다고요!]


-


방주(Ark). 지구 전역에 퍼진 홍수 전설 대부분에 나오는 커다란 배.


모든 생물의 암수 한 쌍을 태웠다는 노아의 이야기가 가장 유명하지만, 아카샤는 그런 단순한 개념이 아니라며 열을 냈다.


[제작자에 대해서는 몰라도, 이곳을 왜 만들었는지는 알아요. 거대한 전쟁 때문이었어요.]


아카샤에 의하면 아발론이 만들어지기 이전. 지구에 있는 모든 신화적 존재들이 휩쓸린 전쟁이 있었다고 한다.


“나도 알아. 라그나로크, 기간토마키아, 아마게돈 뭐라고 부르든. 흠, 그러고 보니 요르문간드가 풀려나면서 홍수가 일어났다는 내용도 있었지.”


아발론에 오기 전에 상대했던 게 로키였고, 북유럽 신화에서 로키는 라그나로크의 시발점이나 마찬가지인 존재다.


콜린이 찾은 자료를 훑어본 것에 불과했지만, 승호도 기본적인 지식은 머리에 넣은 상태다.


[이곳은 그 전쟁을 피하고자 만들어진 대피소, 방공호, 실험실이라고 할 수 있죠.]


“실험실?”


승호는 대피소나 방공호라는 목적은 금방 알아들었지만, 실험실은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려웠다.


[모든 존재에 대한 종자보관소나 마찬가진데, 그걸 보관만 할 리 없잖아요.]


“그래? 그건 그렇다 치자고. 이제 다음 질문. 아발론이 없어진 이유는 뭐지? 넌 분명히 나 때문이라고 했어.”


제작자에 대해서는 단서가 없어도 아발론이 만들어진 이유를 들었으니 근본적인 의문은 해결됐다.


하지만 승호의 의문은 아직 많이 남아있다.


-


[신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곳이 안전하길 바란 것 같아요. 똑같은 세계 세 개가 겹쳐서 존재하도록 만들었으니까요.]


“똑같은 세계?”


[네. 당신이 처음 들어온 아발론과 이번에 없어진 아발론은 다르지만 같은 세계예요. 어떤 세계가 원본인지 구분하는 게 의미 없을 정도로 같은 세계였어요. 당신이 나타나기 전까지는요.]


“아무리 아발론이 작다지만, 이미 갈라진 평행세계 세 개를 동일하게 만든다고? 큰 흐름이야 변하지 않아도 자잘한 것까지 똑같기는 무리일 텐데?”


[그 자잘한 인과를 관찰하는 게 실험이죠. 변수를 조절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저와 침식이고요.]


아카샤와 침식은 세 세계가 같은 모습을 유지할 수 있도록 중심태양이 만들어낸 일종의 백신이었다.


[당신 말대로 프로그램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헌데 승호의 존재를 복사하지 못한 중심태양이 오류를 일으키면서 침식이 발생한 것이다.


그렇다고 세계를 파괴하다니. 승호 생각에는 대응이 좀 과했다.


“언제부터 백신이 바이러스를 못 고친다고 컴퓨터를 부쉈냐?”


[백신으로 해결이 안 되면 리셋이라도 해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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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기억 탐색 (2) +1 22.08.27 396 1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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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게임 중독(2) +3 22.08.02 543 26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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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악연 (3) +2 22.07.29 580 25 13쪽
46 악연 (2) +1 22.07.27 573 21 10쪽
45 악연(1) +3 22.07.25 626 2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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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나들이 +2 22.07.21 690 24 10쪽
42 마무리 (2) +2 22.07.19 769 26 10쪽
41 마무리 (1) +2 22.07.17 808 25 10쪽
40 세상의 끝 +3 22.07.10 907 32 12쪽
39 침식 (4) +2 22.07.09 871 26 10쪽
38 침식 (3) +3 22.07.08 886 2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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