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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식 님의 서재입니다.

강제로 초월당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정춘식
작품등록일 :
2022.05.11 17:00
최근연재일 :
2022.12.01 19:45
연재수 :
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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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430
추천수 :
3,081
글자수 :
301,965

작성
22.07.10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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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글자
12쪽

세상의 끝

DUMMY

[그걸 어떻게?!]


-


“글쎄?”


승호도 이유는 몰랐다.


로키에게서 흡수한 파편이 원인이었을까.


시공력을 공명시키면서 아카샤를 괴롭히다 보면 그녀가 예전에 저질렀던 일들이 저절로 떠올랐다.


아무리 기어오른다고 해도 그때마다 매번 고문을 가하는 것은 승호의 취향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녀가 힘들어할 때마다 계속 정보가 들어오니 어쩔 수 없었다.


대신이라고 하기에는 뭣하지만, 그녀가 계획했던 일들을 이뤄줄 생각이다.


씨익.


승호가 제 딴에는 믿음직한, 아카샤의 눈에는 미친놈으로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어쨌든, 나만 믿으라고.”


-


아카샤가 처음 자신을 자각한 건 웬 승려가 낙원을 찾아 아발론에 들어오면서부터다.


그 이전까지는 중심태양 안의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뿐. 의식도 없었다.


당시에는 아발론이라는 이름도 없었고, 먼 옛날부터 틈새 속에서 명맥을 이어가던 인간 부족과 환상종 몇 마리가 세상의 전부였다.


하지만 틈새를 잇는 문이 완전히 열린 것인지, 조금씩 외부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중심태양을 향한 어떠한 위협도 존재하지 않았지만, 틈새 내부에 생명이 늘어난 게 중심태양에게는 존폐위기라고 인식된 것인지, 그녀는 깨어났다.


틈새 속 세상의 멸망을 막기 위한 최종 방어선. 그것이 그녀였다.


그렇다고 생명의 개체수를 줄이기 위해 학살을 일으킨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정말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수가 늘어난다면 그렇게 해야겠지만, 그건 정말 마지막 방법이다.


사람들은 가운데 빛에서 나타난 그녀를 우두머리로 추대했고, 그녀는 자연스럽게 모든 문제를 틈새 속 세상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해결했다.


승려와 외부인들은 중심태양과 그녀를 통틀어 아카샤(आकाश)라고 불렀다.


그렇게 몇백 년의 시간이 지났고, 아카샤는 어떠한 의문도 없이 세상을 유지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녀의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말이다.


아카샤라는 이름이 잊히고, 백성들에게 모건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무렵.


아발론을 유지하기 위해서 외부인들의 우두머리 중 하나와 정략결혼을 해야 할 필요가 있었고, 아카샤는 아서라고 불리는 왕을 배우자로 삼았다.


인간의 몸을 가지고 있었기에 생식도 가능했고, 자연스럽게 아이도 낳았다.


아이들은 그녀처럼 중심태양에 연결되어있지 않은 평범한 인간이었다.


아발론을 다스리는 여왕의 아이들.


그들이 하는 선택은 아발론의 대소사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었고, 당연하게도 아발론 내부에서 가장 많은 침식을 일으키는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여태껏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침식으로 인한 비명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하루에 몇 번이나 극심한 고통에 휩싸이지만, 금세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인생을 보낸다.


이게 맞는 건가?


이 세상이 대피소이자 실험실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하지만 자식이 울음을 터트리는데 그걸 당연한 일이라면서 지나치기는 힘든 일이다.


아이에게 가던 눈길이 그녀가 다스리는 모든 백성에게로 향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건 아냐...


하지만 틈새를 감싸고 있는 경계가 감당할 수 있는 세상의 수는 세 개가 전부.


가능성이 늘어날수록 아발론의 존재 자체가 위태로워진다.


그래서 추방이나 탐험을 이유 삼아 사람들을 내보내기 시작했고, 약간의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카샤는 중심태양의 화신.


그런 그녀의 행동은 자동으로 기록된다.


그녀의 생각이나 의도를 추궁당하지는 않았다.


중심태양은 감정이나 의사가 없기에, 화신을 추궁한다는 개념도 없다.


그저 틈새의 유지를 위한 행동 원리가 그녀 자신을 얽죄어 온다.


부속품이나 다름없는 존재기에 대항하기는커녕 정보를 기록해야 하는 존재 특성상 거짓으로 넘어가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하지만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듯 아주 약간의 반항은 가능했다.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는 것과 진실 사이에 또 다른 진실을 숨기는 것.


세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틈새에 사는 존재들의 개체수가 줄어야 할 것 같다는 근본적인 진실을 추구하면서 행동 원리를 회피했다.


아직 실험실에 갇힌 사람들은 많았지만, 그 정도가 아카샤의 최선이었다.


-


어느 날 인간이나 일반적인 환상종이라고 생각하기 힘든 세 존재가 아발론에 나타났다.


관리자들.


그들에 의하면 아발론은 신이 만들어놓은 그대로의 변질되지 않은 방주란다.


아카샤의 이름을 듣고서는 어울린다면서 웃음을 터트리고는 중심태양의 정식 명칭이 허공록(Akashic Records)이라는 사실도 알려줬다.


아카샤는 그들의 말을 듣자마자 신에 대한 원망이 차올랐다.


이런 실험실이 더 있다니.


하지만 다른 지저세계들은 아발론처럼 실험 목적을 갖고 있지는 않단다.


순간 그녀의 마음은 기대감으로 가득 찼다가 바로 박살 났다.


관리자들은 정보를 아발론 내부만이 아니라 바깥으로도 향하게 만든 것을 제외하면 어떤 것도 바꾸지 않았다.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가끔 방문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도 아카샤는 관리자 중 하나인 로키에게서 희망을 봤다.


그는 아카샤에게 가능성이 닫힌 세상이 안타깝지 않냐고 물어봤다.


처음에는 일종의 유도신문으로 생각했지만, 몇 번이나 같은 질문을 받으면서 아카샤는 로키의 진심을 확인했다.


그는 가능성이 닫혀있는 아발론의 존재들이 재미없어 보인다면서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그 이후. 로키의 도움을 받아, 행동 원리에 위반하지 않는 선에서 백성들을 밖으로 내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초기화 현상을 마주했다.


아카식 레코드는 내부의 개체수가 너무 많은 것을 위협으로 인식했지만, 너무 적은 것 또한 위협으로 인식한 것이다.


한 달 전으로 시간이 되돌아갔고, 이미 나간 존재들을 대체하기 위해 기존보다 더 많은 침식이 발생했다.


자포자기한 그녀는 엿 같은 세상이라 외치고, 이따위 세상은 없어져야 한다면서 자살이나 다름없는 계획을 세웠다.


세상 세 개를 유지하는 것이 전부니, 초기화를 일으키는 횟수에도 한계가 있을 거로 추측한 것이다.


계속되는 초기화로 힘이 부족한 시점이 오면 그녀의 의식이 깨어나기 이전처럼 돌아가기 위해 내부에서 문을 닫아버릴 생각이었다.


로키도 처음에는 그녀의 계획에 난감해하는 반응을 보였지만, 그래도 재미있어 보인다면서 동참하기로 했다.


하지만 신이 준비해놓은 방어 조치들은 무시무시했다.


로키는 아카식 레코드에 접촉하지도 못한 채 나가떨어졌고, 그녀는 행동 원리에 걸려 지워졌다.


그래도 난리 통에 모든 백성을 밖으로 내보낸 것이 아카샤의 위안이 되었다.


아발론 내부의 모든 존재가 한꺼번에 사라졌으니, 초기화도 소용없을 것이다.


그렇게 모두 끝이라 생각했건만, 그녀는 몇백 년이 지난 후 다시 눈을 떴다.


그녀가 눈을 뜬 세상은 더 이상 아발론으로 불리지 않았다.


아가르타.


관리자들이 뭘 어떻게 했는지 몰라도 모든 지저세계로 통하는 문을 극지방에 열었고, 그녀의 세상도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와서 문명을 일궈놓은 상태였다.


그런 과정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한 개체수가 위협이 되었는지 다시 그녀가 깨어난 것이다.


절망하고 실의에 빠졌지만, 어쩔 수 없는 일.


그녀는 예전처럼 세상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먼젓번의 사태에서 무언가를 학습한 듯, 아카식 레코드는 정기적으로 바깥과 교류하면서 세상을 유지했기에, 문을 닫는다는 선택지는 완전히 사라졌다.


간혹 다른 관리자들이 확인을 위해 들르고, 로키는 미안함과 어색함을 담은 웃음만 짓는다.


사람들이 역사를 되찾자면서 세상의 이름을 다시 아발론으로 바꿀 만큼의 시간이 지났다.


그렇지만 침식은 여전하다.


그렇게 다 포기하고 잠들었다 깨기를 반복하면서 아카샤가 삶을 보내고 있는데, 얼마 전부터 별다른 이유 없이 초기화가 반복되기 시작했다.


정체불명의 고양이가 나타나면서 어지간한 침식으로도 해결이 되지 않고, 초기화만 일곱 번이나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적은 과거에도 몇 번 있었다.


그녀와 로키가 직접 나선 적도 있고, 관리자와 비슷한 힘을 가진 환상종이 날뛴 적도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은 어쩔 수 없지만, 아카샤는 금방 기대를 접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


윙윙윙윙윙윙윙


[제발 그만하라고요!]


지금 아카샤의 마음은 복잡한 감정으로 널을 뛰고 있다.


굴레나 다름없는 아카식 레코드가 미쳐 날뛰는 것은 바라마지 않는 일이지만, 지금 승호는 날뛰는 것을 넘어 틈새 자체를 부숴버릴 생각인 것 같다.


초기화가 이어지다가 잠깐의 틈이 생기면 그 틈을 노려 문을 닫는 것이 아카샤의 계획이었지, 승호처럼 어디 언제까지 할 수 있나 끝까지 가보자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틈은 벌써 열 번이나 넘게 생겼어요! 제발 멈춰!]


어쨌든 그녀도 아카식 레코드의 일부다.


한번 반기를 든 적은 있지만, 그때도 사람들을 내보내고 닫힌 상태로 세상이 유지되길 바랐지. 완전히 멸망하기를 바란 적은 없다.


[더 이상은 저도 어쩔 수 없어요.]


행동원리에 따라 아카샤는 승호의 뒤를 공격했다.


슈왁!


승호와 만나고 이번에는 다를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일부러 자제하고 있던 강기 공격이었다.


그런데 강기가 승호의 몸을 분해하면서 파고들어도 아카샤가 기대하는 반응은 나오지 않았다.


“역시 강기는 아프네. 지금까지가 탄산음료였다면 지금은 보드카 원샷 때리는 느낌이야.”


[대체 어떻게?!]


아카샤는 승호에게 심문당하고 같이 움직이면서 로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승호를 힘만 세고 경험은 없는 녀석이라 확신했다.


그는 강기가 제법 위협적이었다는 소감에, 무방비 상태에서 강기를 맞으면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아카샤를 완전히 제압했다고 방심한 것일까. 자기 약점을 제대로 떠벌린 것이다.


[날 속인 건가요?]


“뭘 속여?”


[강기는 버티기 힘들었다면서요?]


“아니. 힘들었다. 과거형이잖아. 그리고 내가 지금 무방비 상태냐? 정신 완전 똑바로 차리고 있거든? 나도 굳이 거짓말을 하지는 않아.”


의도치 않게 로키를 상대하면서 한번 흩어졌었다.


콜린에게 미리 인형을 건네지 않았다면 이백 년은 그냥 날려버릴 사고였다.


일단 이모가 세상을 뜨기 전까지는 흩어질 생각이 전혀 없기에, 승호는 존재의 유지와 수복, 재구성에 대해 고민했다.


그런 상황에서 아발론은 승호에게 딱 맞는 수련장이나 다름없었다.


맞고 있으면 흩어질 정도의 위력인 볼테시움포는 수복에 힘을 쏟기 딱이었고, 아무리 작다지만 세상이 지워졌다가 원상 복구하는 광경은 승호의 심상에 재구성으로 자리 잡기 충분했다.


귀찮다는 감정이 가장 크기는 했지만, 괜히 아무런 반격도 하지 않고 공격을 다 받아준 것이 아니다.


[아악! 좀 죽으라고요!]


“음, 제법 아프기는 한데, 너 지금 나 연습 도와주고 있는 거 알아?”


실제로 아카샤의 강기를 등짝으로 받아내면서 승호는 영체의 재구성에 대해 완전히 감을 잡았다.


조금 어이없지만, 예전에 텔린이 말한 것처럼 정신 똑바로 차리고 존나 버티면 그냥 버텨졌다.


[뭐 이런 거지 같은 게 다 있어?!]


“나한테 했던 욕들 다 기억해 놓을 거다.”


[지금 세상이 망하기 직전인데 그딴 거나 기억하겠다고?! 자기는 안 죽는다 이거냐?! 이 시러배 잡놈의 호로새끼야!]


윙윙윙-


승호가 한 농담에 아카샤가 분을 못 이겨 폭발하고 있는데 갑자기 윙윙거리는 소음이 멈췄다.


그리고 소음과 함께 계속되던 아발론의 초기화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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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마무리 (1) +2 22.07.17 808 2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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