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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식 님의 서재입니다.

강제로 초월당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정춘식
작품등록일 :
2022.05.11 17:00
최근연재일 :
2022.12.01 19:45
연재수 :
66 회
조회수 :
99,419
추천수 :
3,081
글자수 :
301,965

작성
22.08.14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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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글자
11쪽

크로노스 (3)

DUMMY

그 희망이 스러진 지금 크로노스의 분노는 어느 때보다 강렬하다.


-


쾅!


코앞에 미리 뿌려져 있던 강기가 터지면서 승호의 얼굴이 반쯤 녹아내리더니 이내 수복된다.


푹.


폭발의 위력에 놀라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친 승호는 땅바닥에 상어지느러미처럼 튀어나와 있던 칼날을 밟았다.


‘젠장!’


마음속 불평 한 번으로 넘어갔지만 거대한 날붙이가 발바닥과 발등을 뚫은 상황이다.


날에 독이라도 발랐는지 장난감 블록이라도 밟은 것처럼 은은한 고통이 계속된다.


‘일단 피해야겠어.’


승호는 또다시 칼날 바닥을 밟을까 싶어 하늘로 날아오르려는데 웬 사슬이 그의 사지를 붙잡았다.


움찔!


파사삭


약간의 힘을 주자 사슬은 빛의 가루가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한순간 움직임이 제한됐었다는 게 문제다.


크로노스는 그 한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툭.


승호의 오른쪽 어깨 위로 웬 막대기가 얹어지나 싶더니 휘어진 칼날이 목을 휘감았다.


저도 모르게 목을 뒤로 쭈욱 뺀 승호의 눈에 거대한 낫이 보인다.


거무튀튀한 날은 조금이라도 더 움직이면 목이 날아갈 만큼 날카롭다.


“용이라고 했나? 재생이 인상적이긴 하다만, 별것 아니군. 움직임이 뻔해.”


“아까 말했잖냐. 별거 없다고. 이제 화도 좀 풀린 것 같은데 다시 말로 할까?”


긴박해야 할 상황에도 여전히 여유와 웃음을 잃지 않은 승호의 태도가 거슬린 것일까.


스걱!


크로노스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걸쳐져 있던 낫을 당겼고, 승호의 목이 떨어졌다.


툭.


‘이야, 내가 저렇게 생겼었네. 거울로 보는 거랑은 조금 다르구만.’


목 윗부분이 사라진 자신의 몸을 쳐다보면서 승호가 마지막으로 떠올린 생각이었다.


잠시 후.


목과 분리된 몸이 허물어지고 빛이 되어 사라지는가 싶더니, 그 자리에 멀쩡한 승호가 나타났다.


“어휴, 솔직히 긴가민가했는데 그래도 버텼네. 머리가 좀 울리는구만.”


잘려 나갔던 목 부위를 문지르며 너스레를 떠는 그 모습에 크로노스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재생력이 뛰어나도 한계는 있는 법이다.


게다가 상처를 재생한 것이 아니라 한순간 완전히 사라졌다가 멀쩡하게 나타났다.


그렇다고 자신처럼 몸을 갈아탄 것도 아니다.


도저히 상황을 쫓아갈 수 없었던 크로노스는 저도 모르게 비명 섞인 의문을 내질렀다.


“대체 어떻게?!”


-


아무리 육체의 손상이 수복되고 버티면 버텨지는 용이라지만, 그래도 목이 날아갔었다.


머리가 좀 울린다면서 넘어갈 일이 아닌 것이다.


만약 지금 승호가 비슷한 수준의 피해를 입는다면 얄짤없이 흩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질렸다는 표정의 크로노스는 차마 공격을 이어 나가지 못했다.


“환영, 아니. 분신인가?”


“분신은 무슨. 저기 자국 안보이냐?”


승호가 바닥을 가리키자, 그의 목이 떨어지면서 생긴 충격으로 조금 파인 자국이 보였다.


“그래. 분명 손에 감각은 있었어. 네가 괴물인 거군.”


“괴물이든 뭐든. 한번 죽어줬잖아. 이제 대화 좀 하자.”


승호는 예전에 레니스를 한번 죽였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크로노스도 자신처럼 화가 풀렸을 거라 기대했지만, 완벽한 오산이었다.


녀석은 놀란 마음을 추스르고는 다시 승호에게 덤벼들었다.


“야! 한번 죽어줬으면 됐지! 왜 또 덤벼?!”


“괴물 놈! 죽을 때까지 죽여주마!”


-


크로노스의 전투방식은 독특하다.


직접 다루는 기운은 시한폭탄처럼 시간이 조금 흐른 뒤 터지는 성질을 지닌 데다가, 가끔 사용하는 주술들은 대상이 특정 공간에 위치해야 발동하는 설치형이다.


게다가 전투에는 전혀 쓸모없어 보이는 커다란 낫을 무기로 휘두르는데, 날의 일부가 적이 움직일 것으로 예상되는 공간을 미리 점유하곤 했다.


시간을 엿볼 수 있는 크로노스에게 어울리는 방식이다.


하지만 기세 좋게 달려든 것이 무색하게도 대부분의 공격이 승호의 목을 날렸던 것처럼 물 흐르듯 이어지지는 않았다.


상성이 너무 나쁜 탓이다.


죽지 않는 것도 난감하지만, 미래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더 큰 문제였다.


당할 수밖에 없는 경로에 함정을 설치하듯 싸워야 하는데, 승호를 시야에 넣으면 항상 요동치던 과거와 미래가 보이질 않으니, 오로지 자신의 판단으로만 싸워야 하는 것이다.


“갑자기 저기다 사슬을 뿌리면 나보고 어쩌라고? 가서 묶이라고?”


“큭!”


지금도 승호가 도약할 것이라 생각했는지 제법 먼 곳에 미리 주술을 깔아놨다.


하지만 승호는 그쪽으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딱히 심리전을 유도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미래 예지가 없는 크로노스의 전투 감각이 낮은 탓이었다.


“대체 그런 정신머리로 내 목은 어떻게 날린 거야?”


“기다려라! 다시 한번 날려줄 테니!”


조금 전 크로노스가 승호의 목을 날릴 수 있었던 건 지난 몇천 년간 패턴이라 부를 정도로 완전히 굳어진 공격방식을 사용한 덕이다.


처음 크로노스와 마주친 적들은 다 비슷하게 움직였으니 습관이 될 정도로 몸에 익은 상태였던데다가 승호가 움직이는 방식도 다른 적들과 거의 비슷했다.


문제가 있다면 그 패턴에 당한 적들은 죽음을 맞이하고 끝이지만, 승호는 아니라는 것.


가뜩이나 미래를 보지 못해 당황한 크로노스에게 승호와의 전투를 이어 날갈 능력이 있을 리 없다.


-


한 번 더 목이 날아가면 흩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에 위기감을 느낀 승호는 반격을 자제할지언정 투닥거림에는 어울리기 시작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공격이 무용지물이 되는 것을 느낀 크로노스는 마침내 공세를 멈췄다.


“요괴한테 있던 조각 진짜로 내가 안 가져갔다니까. 일단 그거 행방부터 찾아보자고. 궁금하지 않아?”


그 틈을 노려 승호는 다시 대화를 시도했지만, 크로노스는 말을 들어 먹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개소리!”


칼 같은 거절에 승호의 속은 열불이 났지만 아쉬운 것은 승호였으니 어쩔 수 없다.


‘아, 이 자식을 그냥 죽여버릴 수도 없고!’


그런데 가만히 서서 분을 삭이고 있는 것으로 보이던 크로노스의 낌새가 심상치 않다.


웅웅웅웅


언젠가 들어본 듯한 소음이 크로노스를 중심으로 퍼져 나온다.


‘어디서 들어봤더라? 아!’


아발론이 재생성할 때 느껴지던 바로 그 감각이다.


“어어?! 야! 지금 뭐 하는 거야?!”


심상찮은 기색을 느낀 승호가 크로노스를 부르자, 그는 꼴좋다는 듯 비릿한 미소를 짓더니 입을 열었다.


“빼앗기느니 차라리 없애버리는 게 낫지.”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지 알아차린 승호의 낯빛이 변했고, 크로노스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후련하군. 진작에 시도할 걸 그랬나? 아니지. 그냥 예전에 성공했어야 했어.’


아주 먼 옛날. 이미 한 번 시도했던 일이다.


당시에는 시간을 엿보는 눈을 얻는 것에 그쳤지만, 이번에는 과연 어떻게 될까.


가끔 밀려오는 분노를 삭이기 힘들 때마다 차라리 그때 소멸했으면 좋았을텐데라는 생각을 수백 번도 더 했다.


방벽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 때문에 다시 시도하지는 못했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상황.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으리라.


쾅!


-


‘이 분조장 새끼. 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지. 자폭을 해?!’


로키를 잡기 위해 자폭했던 승호가 할 말은 아닌 듯싶지만, 그래도 경우가 조금 다르다.


승호는 믿는 구석이 있었고, 공간을 깔끔히 날려버린 게 전부였지만, 지금 크로노스가 일으킨 폭발은 시공의 소용돌이를 발생시켜 시간과 공간 자체를 뒤틀어버렸다.


‘이걸 어찌해야 하나.’


다행히 폭발과 함께 뒤틀린 공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제자리를 찾았지만, 시간의 흐름은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마치 무정보 상태와 비슷했는데 차이라면 크로노스의 기억이 섞여 있었다.


텔린이 궁상을 떨던 때와 비슷한 상황이지만 그나마 세월의 깊이가 얕아 당시만큼 지랄맞지는 않다.


‘건드릴 엄두가 안 나는 건 마찬가지지만...’


멍하니 주위를 바라보던 승호는 뒷정리를 미루고 스쳐 지나가는 기억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이 난장판을 수습할 방법이 있을까 싶어서였다.


‘흠, 죄다 한순간밖에 안 보이네.’


시간의 흐름을 바로잡은 단서는 없지만, 수확이 아예 없지는 않다.


단편적인 정보들 사이사이 몇 가지 기억들이 절로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고대에 있었다는 전쟁의 참상 일부와 제작자 혹은 야훼로 추정되는 자에 대한 인상착의.


그리고 사람들의 머릿속에 심어진 조각의 역할에 대해서였다.


-


관리국의 빛기둥을 통과한 직후.


한순간 육체와 연결이 끊긴 유령 비슷한 상태의 크로노스가 한국 전역을 날아다니다가 웬 남성의 몸에서 눈을 뜨는 기억이 보인다.


‘분명 영체는 아닌데... 딱히 형태는 없는 것 같고. 일단 정신체라 해야 하나?’


새로운 육체로 갈아타는 것은 크로노스에게도 제법 특별한 일이었나보다.


방금 상황과 연동되듯 수명이 다하거나, 눈먼 화살이 심장에 박힌다던가, 갑작스러운 교통사고 등 육체와 연결이 끊길 때마다 새로운 육체를 찾아 나서는 기억들이 파도처럼 밀려들어 온다.


‘많이도 죽었구만. 하긴 그렇게 갈아타 버릇하니 조금 수틀린다고 자폭이나 하지.’


승호도 수복과 존재 유지를 익힌 이후 그냥 몸으로 때우는 게 일상이됐으니 딱히 비난할 입장은 아니다.


어쨌거나 새로운 육체들의 공통점은 머릿속에 심어진 조각.


그 조각을 단말 삼아 강림한 순간. 새로운 육체는 크로노스의 본신이 되었다.


‘이런 방식의 불멸도 괜찮네.’


누군가의 몸을 빼앗는다는 사실 자체에 거부감을 느낄 법도 하지만, 승호는 오히려 꽤 괜찮게 느껴졌다.


무작정 몸을 빼앗는 것이 아닌 일종의 거래였기 때문이다.


조각이 심어진 사람들은 관리자들이 제공한 시스템과 시간 이동 같은 여러 편의를 통해 장생과 힘을 얻는다.


게다가 조각이 심어진 모두를 육체로 삼는 것도 아니다.


로키와 야훼도 같은지 모르겠지만 크로노스는 지난 삼십 년간 요괴의 몸만을 썼으니 그 기간동안 다른 예비 육체들은 오로지 혜택만을 누렸다.


몸을 빼앗긴 소수의 당사자들이야 억울하겠지만, 제삼자의 눈으로 보면 전체적으로 운이 좋아 보였다.


크로노스의 말마따나 나쁘지 않은 거래였다.


‘한 명은 조금 안타깝지만...’


운이 좋은 사람이 있다면 나쁜 사람도 있는 법.


방금 크로노스가 자폭하면서 같이 터져나간 육체의 주인이 그에 해당했다.


조각이 심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혜택은 별로 누리지도 못한 채 그냥 몸을 바치고 터져버린 것이다.


‘어차피 죽음은 끝이 아니니까.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는 법이지.’


목이 떨어진 여파일까. 애도의 감정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지금 내 상황에 애도는 무슨. 오히려 부럽다.’


솔직히 승호는 관리국이고 방벽이고 나발이고 그냥 다 때려치운 뒤 환원하고 싶은 심정이다.


지구로 돌아온 지 반년밖에 안 지났건만 뭐 이리 일이 많단 말인가.


‘그래도 환원은 좀 그렇고...’


어디론가 무작정 떠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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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로노스 (3) +1 22.08.14 505 2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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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마무리 (2) +2 22.07.19 768 26 10쪽
41 마무리 (1) +2 22.07.17 807 2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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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침식 (4) +2 22.07.09 871 26 10쪽
38 침식 (3) +3 22.07.08 885 20 9쪽
37 침식 (2) +3 22.07.07 956 3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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