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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식 님의 서재입니다.

강제로 초월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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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식
작품등록일 :
2022.05.11 17:00
최근연재일 :
2022.12.01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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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0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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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08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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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침식 (3)

DUMMY

[백신으로 해결이 안 되면 리셋이라도 해봐야죠.]


-


초기화라는 표현은 과장이 아니었다.


아카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무것도 없던 틈새의 공간이 다시 아발론으로 채워졌다.


승호의 눈에 비치는 광경은 가운데 빛 사원을 비롯해서 모든 것이 파괴되기 이전 모습 그대로다.


한순간 사라졌던 것처럼 나타나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어떻게 한 거지?”


고정된 정보 상태를 특정하고 대가만 치를 수 있다면... 그렇다면야 가능할 것도 같지만, 경계와 마찬가지로 결과를 정확히 특정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당장은 승호도 못 할 일인 것이다. 아카샤가 했다고 생각하기에는 더더욱 어려웠다.


[허공록, 아카식 레코드, 뭐라고부르던. 중심태양 안에는 복원점이 있거든요. 어지간한 오류들은 리셋으로 다 해결됐죠. 지금까지는요.]


“그 복원점은 어떻게 만들지? 네가 설정할 수 있는 건가?”


[항상 침식의 원인이 되는 존재가 나타나기 한 달 전으로 고정되요. 제가 존재하기 이전부터 그랬죠. 신께서 그렇게 만드셨나봐요.]


방벽부터 시작해서 지저세계까지. 모든 의문의 답은 돌고 돌아서 결국 제작자로 이어진다.


승호는 갑갑한 마음에 다시 중심태양에 접촉해봤지만, 정보의 혼선만 더 강하게 느껴졌다.


‘빌어먹을.’


[아무리 당신이 규격 외라고 해도 신과 아카식 레코드를 파악할 수는 없을걸요? 끼야악!]


잠시 놔뒀더니, 기어오르는 기색이 보이기에 승호는 다시 한번 시공력을 공명시켰다.


아카샤가 좋아죽는다.


“좋아. 그 신이란 놈은 일단 넘어가자고. 그보다 너. 아까 리셋으로 다 해결됐다고 말했지? 지금까지는 말이야.”


승호가 가장 궁금한 것은 복원점이었지만, 아카샤의 마지막 말도 신경에 거슬렸다.


[네. 문제의 고양이가 나타나면 제가 무슨 짓을 해도 결국 리셋이 일어나요.]


아카샤는 대체 정체가 뭐냐고 묻고 싶은 기색이 역력했지만, 질문은 허락하지 않겠다는 경고를 기억하고 있는지 입을 다물었다.


그렇지만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즐거운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그래도 사원을 침입하려던 침식자와 고양이가 동일 존재란 것을 알았으니, 이번에는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네요.]


“내가 변신한 건 줄 몰랐다고? 아니, 같은 날 나타났으면 당연히 연관이 있을 거라는 추측도 못해? 수호단은 그럴 수 있지. 근데 아카식 레코드라며?”


[당연히 고양이가 나타나기 전의 전조현상으로 판단했죠. 누가 고양이랑 인간을 동일 존재로 판단하나요?! 하다못해 요괴였으면 둔갑이라도 했을 거라 추측하겠는데, 그냥 평범한 고양이였잖아요!]


승호는 왜 과거의 자신을 본뜬 침식이 볼테시움포를 맞고 소멸했는지 궁금했는데, 중심태양은 짝퉁답게 그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혹시 정보 갱신은 기록원의 수정구를 통해서만 이뤄지냐?”


[보통 자동으로 기록되지만, 당신처럼 규격 외는 직접 기록할 수밖에 없죠.]


모조품이라지만, 원본처럼 실시간으로 정보를 흡수하고 방출하는 것은 무리인가 보다.


아발론을 복원할 때만 해도 크게 놀랐는데, 이상한 부분에서 하자가 있다.


‘생긴 것만 누더기인 줄 알았는데, 성능도 뒤죽박죽이네.’


마치 중국 브랜드의 전자제품을 보는 것만 같다.


승호는 진심으로 제작자라는 놈의 면상이 보고 싶어졌다.


-


“그런데 너는 왜 고양이의 모습으로 나타난 거지?”


[당신을 대체하기 위해 비슷한 능력을 갖춘 침식체가 발생했죠. 그리고 매번 제대로 통제되지 않고 폭주했어요. 그때마다 리셋이 일어났고요. 그래서 제가 침식을 대신해보기로 했죠. 효과는 있었어요. 단순히 유예기간을 늘릴 뿐이었지만...]


“그럼 이번에 내가 내 역할을 하면 침식은 일어나지 않는 건가?”


[그렇게 주먹구구식으로 유지되는 게 아니에요. 당신이 새로운 어긋남을 만들면 유일하게 멀쩡한 세계도 망가지기 시작할걸요?]


“흐음...”


승호가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생각에 잠기자, 아카샤는 자리를 벗어나려는 낌새를 보였다.


“어딜 가려고?”


[아발론이 제대로 복원이 되었는지 확인해야 해요.]


“누구 맘대로? 아직 물어볼 게 많아.”


[이동하면서 물어보시면 안 될까요? 제발요.]


질문에 대답을 거절한 것도 아니고 텔레파시에서 느껴지는 감정도 너무 간절했기에, 승호는 일단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


승호가 아카샤를 앞장세워 도착한곳은 일반 가정집. 흔하게 볼 수 있는 연립주택이다.


“여긴 왜 온 거야?”


[복원점에서 가장 빠르게 침식이 일어난 곳이에요.]


아카샤는 승호를 조용히 시키고는 집 안을 향해 귀를 기울였다.


승호도 아카샤를 따라 확인해보니 한 남성이 노트북을 통해서 화상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화면 안에 있는 대화 상대의 얼굴이 마치 거울이라도 보고 있는 것처럼 똑같다.


“네가 정말 미래의 나라고?”


“그렇다니까! 거기가 지금 4월 27일이라고 했지? 여긴 5월 20일이야.”


“알았어! 일단 이번 주 복권 번호부터 빨리 불러줘!”


“오케이! 잠깐만 기다려! 이번 주는 4, 12, 19, 26...”


두 동일인은 신이 난 상태로 계속 대화를 이어갔고, 아카샤는 여전히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인다.


“무슨 조치라도 취해야 하는 것 아냐? 쟤가 복권에 당첨되면 그게 네가 말하는 어긋남이잖아.”


[똑같은 세계를 유지하다 보니 이런 연결은 꽤 자주 일어나요. 그런 상황을 막기 위해서 침식이 일어나는 거고요. 제가 확인하려는 건 침식의 수준이에요.]


승호가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해 다시 질문을 하려는데, 집 안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끄아악!”


두둑 두둑 뚝


미래의 자신과 대화하고 있던 남자의 몸이 기형적인 각도로 꺾이기 시작하더니,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세계파괴의 전조현상을 그 혼자서만 몸으로 겪은 것 같다.


잠시 후.


남자는 멀쩡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미래의 자신과 통화한 일은 없었던 것처럼 행동한다.


[휴. 이번에는 그냥 넘어갔네요. 저번에는 수호단이 나서야 했는데.]


“지금 이게 침식이야?”


[네. 이렇게 세계들을 동일하도록 유지하는 거죠. 앗! 뭐하시는 거예요?]


승호는 집 안으로 들어가 남자를 기절시키고는 그의 정보를 흡수했다.


지금 승호가 받아들인 정보에 의하면 그는 평범한 인간이다.


문헌에서 봤던 괴물이라고는 절대로 생각할 수 없었다.


“가끔 나타나는 괴물들은 뭐지?”


[당신처럼 오류죠. 그것들을 수정하기 위해 다시 침식이 발생하고, 그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여파가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되거든요. 그게 수호단에서 나서는 괴물들이고, 수호단으로 처리가 불가능한 사태다 싶으면 그때 제가 깨어나요.]


“좋아. 리셋이 되지 않도록 침식을 확인한다고 했지? 계속 가보자고.”


승호는 불쾌함을 느꼈지만, 고작해야 인간 하나가 잠깐 고통을 겪은 것이 전부다.


일단 쭈욱 지켜보기로 했다.


-


“음? 저 사람들이야?”


[네. 아는 사람인가요?]


“조금?”


아카샤의 안내를 따라 다음으로 만난 인물들은 승호도 안면이 있는 커플이었다.


수호단에 소속된 직원들로, 승호가 아발론에 머문 지 이주 째 되는 날. 여자가 남자를 칼로 찔러 죽인다.


남자 쪽의 바람이 원인이었다.


사원 내부이자 승호의 근처에서 벌어진 일이라 기억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그 치정 싸움의 시작이 지금이거든요. 이제 곧 남자가 다른 여자한테 유혹당해요.]


애인을 집에 데려다주고 나오는 남자에게 우연히 마주친 낯선 여인이 전화기를 건넨다.


남자는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여자의 권유를 거절했다.


그리고 잠시 후.


“끄아아아!”


쓰러진 그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일어나더니 방금 헤어졌던 여인을 찾아 나선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여인을 찾은 남자는 멋쩍게 웃으면서 연락처를 교환했고, 그들은 가벼운 입맞춤까지 했다.


[좋아요. 이번에도 아무 일 없이 넘어갔네요. 더 이상 리셋은 없을지도 몰라요. 역시 정확한 시점을 파악하는 게 중요했나 봐.]


“흐음...”


이후로 아카샤를 쫓아서 승호가 목격한 광경들은 비슷했다.


어떤 회사원은 분명 숫자 100을 입력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1000을 입력하게 되고.


노인은 미래의 자신에게 걸려 오는 전화 덕분에 외출을 취소했지만, 잠시 후 저도 모르게 밖으로 외출했다가 넘어진다.


의도치 않은 실수. 뜻밖의 사고.


침식은 모든 곳에서 발생하고, 그 결과는 고정되어있다.


“여기는 원래 이래?”


승호의 불편한 심기를 느낀 아카샤는 조심스럽게 대답한다.


[저도 처음에는 안타까웠지만, 겹쳐진 세계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어요.]


사고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사람이 죽어야 하기에, 목숨을 잃는다. 반대로 반드시 살아야 하기에, 죽었던 사람의 자리를 침식이 발생하면서 새로운 그 사람으로 대체한다.


미래가 고정되어있기에 일어나는 일들이다.


의문의 제작자는 존재하지도 않는 시간 역설을 막기 위해 일종의 강제력을 만든 것이다.


승호는 실험실이라는 아카샤의 표현이 무슨 뜻인지 몸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이건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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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기적 감정 +2 22.08.28 435 20 10쪽
57 기억 탐색 (2) +1 22.08.27 396 1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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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크로노스 (3) +1 22.08.14 505 23 11쪽
53 크로노스 (2) +2 22.08.13 496 2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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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요괴들의 사정 (1) +1 22.08.05 513 28 9쪽
49 게임 중독(2) +3 22.08.02 543 26 10쪽
48 게임 중독(1) +1 22.07.31 564 21 13쪽
47 악연 (3) +2 22.07.29 580 2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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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나들이 +2 22.07.21 690 24 10쪽
42 마무리 (2) +2 22.07.19 768 26 10쪽
41 마무리 (1) +2 22.07.17 807 2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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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침식 (4) +2 22.07.09 871 26 10쪽
» 침식 (3) +3 22.07.08 886 2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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