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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식 님의 서재입니다.

강제로 초월당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정춘식
작품등록일 :
2022.05.11 17:00
최근연재일 :
2022.12.01 19:45
연재수 :
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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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416
추천수 :
3,081
글자수 :
30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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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09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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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침식 (4)

DUMMY

“이건 아냐.”


-


이건 아니라는 말을 읊조린 승호가 자리를 옮기려 하자, 아카샤가 그의 뒤를 따른다.


[갑자기 어디 가시나요?]


“잠깐 확인할 게 있어서.”


[저한테 물어보면 되죠. 잠깐 멈춰보세요.]


굳은 표정, 내뱉은 말과 움직이는 방향까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직감한 아카샤는 어떻게든 승호를 말리려 했다.


그의 목적지는 중심태양이다.


[사람들이 많이 고통스러워했죠. 알아요. 왜 기분이 상하셨는지 알겠는데, 지금은 복원 직후라 그런 거예요! 게다가 지금은 멀쩡한 세계가 하나뿐이잖아요. 쫓을 미래가 하나밖에 없어서 그래요. 정상으로 돌아가면 겹쳐진 세상들이 서로 영향을 끼치면서 같은 미래를 향할 거라고요!]


같은 미래를 향하다니. 듣기에 나쁘지 않고 무슨 노래 가사로나 쓰일 표현이지만 승호는 코웃음을 쳤다.


“정상?”


분노까지는 아니지만, 불쾌함과 같잖음. 그 외에도 여러 부정적인 감정들이 그를 감싼다.


사람들이 고통받는 것에 대한 불만은 아니다.


그런 것 따위에 연연했다면 진작 분쟁지역으로 넘어가서 온갖 전쟁부터 깽판을 놨겠지.


오히려 승호는 얌전히 방에 틀어박혀 있을 때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시간을 고통을 흩뿌리며 지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에서 처음으로 만난 회귀자와 귀환자들, 클럽의 강경파, 그리고 로키까지.


‘아, 아카샤도 추가해야지. 흠, 너무 괴롭히고 다니는 것 같아서 찝찝했는데, 생각보다 몇 명 안 괴롭혔네.’


승호가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은 침식 그 자체에 대해서다.


존재하지도 않는 시간 역설을 막기 위해 기록까지 모방해가면서 강제력을 만들어?


아무것도 모르는 존재라면 모든 것이 정해져 있다는 결정론을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승호는 시공의 흐름을 파악하고 정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용.


모든 가능성이 다다를 수 있는 수많은 종착점 중의 하나이자, 살아 숨 쉬는 분기점이다.


끝이자 새로운 시작. 알파이자 오메가.


그런 그의 눈앞에 가능성이 거세된 세상이 나타났으니 그 크기가 아무리 작다고 해도 불쾌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지저세계 자체를 부수기라도 할 생각인가요?]


“아직 몰라. 그 아카식 레코드란게 너무 지랄맞아서 이해하기 힘들더라고.”


가장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역시 중심태양의 제작자.


일단 용이 아니라는 것만큼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분명 시공의 힘을 다루는 존재다. 그 솜씨를 생각해보면 승호보다 가능성에 대해 더 잘 알면 잘 알았지 모를 리 없다.


‘진짜 뭐 하는 새끼지?’


-


중심태양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괴생물체가 감지되었고, 수호단 전체가 나섰다.


거대한 무기들이 날아다니고, 이곳저곳에서 볼테시움포가 허공을 수놓는다.


[막아! 막으라고!]


[막고 있잖아!]


수호단 전용 통신망은 아수라장이다.


피해가 너무 커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소모된 볼테시움과 발사된 투사체를 제외하면 피해라고 할만한 것도 없다.


그저 그들의 방어 체계가 모두 무용지물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을 뿐이다.


속도가 무척 빠르기는 해도 아예 맞추지 못할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콰직.


거대한 칼날이 목표물을 찍어눌러도 별거 아니라는 듯이 그 공격을 맞아준다.


슈웅.


화살이 목표의 하복부를 뚫고 지나갔지만, 상의의 앞뒤로 커다란 구멍이 났을 뿐. 어느새 그의 복부는 메꿔진 상태다.


콰과과과.


볼테시움포까지 직격했지만, 빛줄기 안에서 실시간으로 신체가 재구성되는 것이 목격된다.


[히익!]


[괴물!]


[뭐가 막혀야 막지! 저런 걸 어떻게 붙잡으라고?!]


수호단은 허탈한 눈빛으로 괴물이 가운데 빛에 접근하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승호가 중심태양을 향해 접근하려는데 화려한 복장의 여성이 그의 앞을 막아선다.


아카샤였다.


“너 여자였냐?”


[제 이름 들으셨잖아요. 당연한 거 아닌가요? 지금은 굳이 따지자면 모건이라고 부르는 게 맞겠네요. 모르가나도 좋고요.]


서양 이름 따위 승호가 알게뭔가. 그보다는 분명 쫓아올 수 없는 속도로 이동했는데, 어느새 그를 앞질러 도착했다는 점이 더 의문이었다.


“어떻게 앞질렀지?”


[아카식 레코드가 저를 지웠다가 이곳에서 재구성했죠. 저도 하나 물어볼게요. 당신 대체 정체가 뭔가요?]


“나? 용.”


승호는 솔직하게 말해줬는데 신경질적인 반응이 되돌아왔다.


[당신이 렙틸리언이라고요? 거짓말하지 말아요!]


“그건 또 뭐 하는 놈이야.”


지구의 용은 승호가 알고있는 것과 조금 다른가 보다.


궁금했지만 지금은 그에 대해 생각할 때가 아니다.


윙윙윙윙


승호가 겹쳐진 세계로 이동하기 전에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던 중심태양 근처의 방어 조치들이 작동하고 있었다.


잡스럽고 조악하지만, 잠시 승호의 눈길을 뺏을 정도의 술식과 주술들.


아카샤가 활성화 시킨듯했다.


[관리자도 잡을 수 있는 마법이에요. 당신이라도 무사하지 못할걸요? 제발 돌아가 주세요. 어차피 다음번에 문이 열리면 나갈 생각이었잖아요. 지금 바로 보내드릴 수 있어요.]


“방금 뭐라고 했지?”


지저세계를 나가는 일은 언제라도 승호 스스로 가능했다.


그의 주의를 끈 것은 관리자라는 단어.


“관리자? 혹시 로키를 말하는 건가?”


[네. 정확히 그 로키가 날뛰다가 한번 당했죠.]


“그딴 놈들은 모른다며? 지금까지 나한테 한 말들 모두 거짓이었나?”


거짓말 탐지기는 인간에게만 먹히는 방법일 뿐. 중심태양의 화신이자 정령이나 마찬가지인 아카샤에게 통하지는 않았기에 승호는 그녀가 한 말을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아, 지금은 인간 모습이니 먹히려나?’


승호가 일단 때려눕히고 스무고개나 해볼까 생각하자, 아카샤는 위기감을 느꼈는지 급박한 목소리로 주절주절 이유를 떠들었다.


[그딴 놈들은 신이 아니라고 했지. 모른다고는 안 했어요. 저는 거짓말을 못 해요. 당신 표현처럼 프로그램 같은 존재라 불가능하거든요. 관리자는 신에게 이용 권한을 받은 존재일 뿐이에요. 제가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은 그게 전부죠. 그 외에 아는 것은 그들의 이름 정도?]


“그 이름이라도 말해봐.”


[말하면 돌아가 주시나요?]


“좋아. 일이 마무리되면 다시 물을게.”


-


승호가 중심태양에 접근할수록 휘황찬란한 마법들이 그를 덮친다.


하지만 수호단과 마찬가지로 모든 조치가 무용지물이었다.


아예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온몸이 콜라를 들이켠 목구멍이 된 것 같은 느낌이다.


제법 따끔하기는 해도 승호가 수복에 힘을 쏟으면서 기록의 도움까지 받으니 버틸만했다.


‘내가 피학성향이 있었으면 중독됐을지도 몰라.’


승호가 수호단에서부터 지금의 마법까지 그냥 몸으로 받아내는 이유는 별것 아니다.


귀찮아서였다.


날아드는 공격을 피하고, 그 공격을 한 당사자와 드잡이질이나 조금 하다가 죽이거나 무력화시키면서 시간을 보내느니, 그냥 무시하고 맞아주는 것이 속 편했다.


무방비 상태에서 맞는 강기가 아니면 죽을 일이 없다는 자신감이자 똥배짱이다.


까짓거 흩어지기밖에 더 하겠는가.


승호는 문득 아카샤의 반응이 궁금해서 고개를 돌려 한마디 해줬다.


“앗흥~♡”


[뭔가요?! 그 저질스러운 반응은?!]


“걱정해주는 거야?”


[그대로 죽어버리세요!]


아카샤의 바람이 이뤄지는 일은 없었다.


마침내 모든 마법을 맞아서 없애버린 승호는 중심태양에 다시 접촉했다.


-


승호는 바로 시공력을 공명시켜서 폭주를 일으켰다.


정보의 혼선으로 연원을 알아내지 못했을 뿐. 아카샤를 괴롭히면서 이 물건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는 감을 잡은 지 오래다.


복원됐던 아발론이 다시 사라지고, 생겨나기를 몇 번이나 반복한다.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는 아카샤가 비명을 지른다.


[아악! 그러지 마요! 이건 내가 원한 게 아니야! 제발 멈춰!]


“그냥 이 아카식 레코드라는 놈의 한계를 알아보는 거야. 어디 몇 번이나 리셋이 가능할지 한번 해보자고. 네 말마따나 실험이다.”


[복원된 세계나 침식으로 대체된 사람들도 모두 진짜 사람이에요! 당신도 확인해봐서 알잖아!]


“알 게 뭐야.”


[그건 밖이랑도 연결되어있어요! 어떤 영향이 있을지 몰라요!]


아카샤의 말대로 중심태양은 침식과 초기화 이외에도 지저세계 바깥으로 정보를 방출해 시스템을 만들고, 틈새를 유지하기 위해 경계를 보강하는 등 복합적인 목적을 갖고 있다.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는 것이다.


하지만 승호의 행동은 아주 오래전부터 계획된 일이다.


승호가 직접 계획한 것이 아닐 뿐.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혼선이 심해서 못 알아냈지만, 그새 마음이 바뀐 거냐? 네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주고 있잖아.”


[무슨 개소리야?!]


아카샤는 침식과 초기화에 대해 어떤 현상인지 설명만 해주고, 승호를 멀쩡한 세계로 돌아가게 시도할 수 있었다.


그녀가 복원이 잘되었는지 확인하겠다면서 끌고 다니지 않았다면 승호의 성격상 그러려니하면서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고정된 미래를 좇으면서 발생한 침식에는 불행만 있지 않았다.


일이 바빠서 매주 구입하던 복권을 깜빡한 미혼모는 침식을 겪고 평소대로 복권을 구입한 뒤, 그 주에 당첨된다.


길이 더러워서 빙 돌아가려던 남자는 침식을 겪고 그대로 길을 걷다가 첫눈에 반하게 되는 여인을 만난다.


우연한 사고로 아이의 숨이 끊기지만, 침식으로 인해 다시 숨이 돌아온다.


승호가 직접 침식을 감지하면서 찾은 광경이다.


인간의 고통만큼이나 행복에도 관심이 없는 승호지만,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는가.


하지만 아카샤는 승호에게 고정된 불행만을 보여주려 노력했다.


침식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도록 유도하듯이 말이다.


그래서 승호는 그녀의 의도에 따라 움직이기로 했다.


“네가 로키를 꼬셔서 이놈에게 접근한 다음 실행하려 했던 계획을 대신해주는 거야.”


[그걸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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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기억 탐색 (2) +1 22.08.27 396 11 11쪽
56 기억 탐색 (1) +2 22.08.24 433 1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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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크로노스 (3) +1 22.08.14 504 23 11쪽
53 크로노스 (2) +2 22.08.13 496 24 10쪽
52 크로노스 (1) +3 22.08.11 495 2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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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요괴들의 사정 (1) +1 22.08.05 513 28 9쪽
49 게임 중독(2) +3 22.08.02 542 26 10쪽
48 게임 중독(1) +1 22.07.31 564 21 13쪽
47 악연 (3) +2 22.07.29 580 25 13쪽
46 악연 (2) +1 22.07.27 573 21 10쪽
45 악연(1) +3 22.07.25 626 2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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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나들이 +2 22.07.21 690 24 10쪽
42 마무리 (2) +2 22.07.19 768 26 10쪽
41 마무리 (1) +2 22.07.17 807 2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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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식 (4) +2 22.07.09 871 26 10쪽
38 침식 (3) +3 22.07.08 885 2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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