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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은수님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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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추리

완결

우은수
작품등록일 :
2016.09.12 16:59
최근연재일 :
2017.01.15 17:16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10,432
추천수 :
147
글자수 :
139,273

작성
17.01.12 14:53
조회
239
추천
4
글자
9쪽

30. 도플갱어 Doppelgänger 

DUMMY

취이익 -.


스프링클러에서 일순간에 물이 뿜어져 나오듯 경찰의 목에서 피가 뿜어 나왔다. 그대로 쓰러진 경찰은 어떤 말이나 짧은 비명조차 내뱉지 못했다.


"커헉··· 컥···”


공기가 성대를 울리지 못하고 그저 빠져나오는 쇳소리만 숨을 내뱉을 때마다 간신히 울렸다. 언제 다가와 누가 찔렀는지도 모르게 경찰은 치명상을 입었다.


명희는 기절할 듯 놀라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쓰러진 경찰 뒤로 서 있는 량신위는 아침 햇살을 등지고 서 있어 실루엣만 보일 뿐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실루엣의 체형은 경찰에 비해 작고 아담했다. 명희는 내가 잘못 본 것은 아닌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여자···?’


실루엣은 이미 주변 상황을 다 파악한 것으로 보였다. 망설이거나 주저하는 기색 없이 거실 안으로 뚜벅 뚜벅 걸어 들어왔다. 그 발걸음은 남자들의 무겁고 둔탁한 발걸음이 아니라 언제라도 날아오를 수 있는 고양이처럼 가벼웠다. 들어오는 실루엣을 따라 뒷걸음질 치던 명희에게 서서히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량신위의 얼굴을 본 명희는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놀라 숨도 쉬지 못했다. 도저히 믿을 수도 없었다.


내가, 저기 서 있었다.


량신위는 그대로 명희와 똑같았다. 닮은 사람, 비슷한 이미지가 아니라 내가 그대로 저기에 서 있는 것이었다. 눈썹부터 가느다란 쌍꺼풀, 콧날과 코끝의 둥근 모양이며 인중의 길이와 입술의 두께, 윗입술과 아랫입술의 조화, 그리고 턱 선의 흐름까지 완전히 같았다.


명희는 눈을 의심하고 또 의심했다.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금 이게 말이 되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계속 되물었다. 뒤로 물러서며 느껴지는 발목의 통증이 현실임을 알려주었고 뒤이어 경옥 언니의 말이 떠올랐다.


‘··· 너랑 비슷한 사진이 떨어져 있었지. 그 사람이 너로 되는 거야. 너는 여기서 죽는 거였고.’


나와 비슷한 사람··· 나 대신 내가 되어 외국으로 가려던 사람. 하지만 이건 비슷한 사람이 아니라 완전히 같은 사람이었다. 이렇게까지 닮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 사람이 지금 눈앞에 있었다.


‘···나를, 나를 죽이고 내가 되려고···?'


거실 안으로 들어가며 명희와 눈이 마주친 량신위는 기겁하는 명희와 달리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경찰을 찌른 만년필 펜촉을 짧게 휙 흔들어 묻어있던 피를 털어내고 거실 안을 슥 둘러보았다. 숨진 사람이 한 명, 노부부와 다친 남자 한 명, 손이 묶여 기절한 남자 한 명. 그들은 모두 아무 말도 못하고 놀란 눈으로 쳐다보기만 했다.


그리고 자신과 똑같이 생긴 여인 한 명. 량신위는 다시 명희에 집중했다. 명희를 처음 보았을 때 얼굴 표정은 바뀌지 않았지만 놀라기는 량신위도 마찬가지였다. 오랜 거친 생활 속에서 놀라움을 내색하지 않는 방법이 자연스레 몸에 배어 있을 뿐이었다. 량신위는 명희에게 성큼 성큼 다가갔다.


명희는 다가오는 량신위에게 겁을 먹고 계속 뒷걸음질 치다가 벽까지 몰렸다. 명희의 등 뒤에는 큰 전신거울이 붙어 있었다. 량신위는 명희의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 밀었다.


10초··· 20초··· 량신위는 아무런 말없이 명희의 눈동자와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명희 뒤의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헤어스타일과 피부의 태닝 정도, 눈동자의 살기가 다를 뿐 명희와 거울 속의 본인은 완전히 똑같았다.


량신위는 이 상황이 신기한 듯 피식 웃으며 명희의 얼굴에 손을 얹었다. 명희는 화들짝 놀랐으나 옴짝달싹 하지 못했다. 량신위는 거울과 명희를 번갈아 바라보며 명희의 얼굴을 찬찬히 만져보았다. 뺨에서 코로, 다시 눈, 이마, 귀, 턱, 목··· 자신을 닮은 아이의 얼굴을 흐뭇하게 매만지듯 량신위는 씩 웃었다. 얼굴의 굴곡과 손의 체온이 서로에게 전해졌다.


량신위가 명희의 얼굴에서 손을 떼자 멀쩡했던 발목이 욱신욱신 아파왔다. 량신위는 부어오른 명희의 발목을 보고 통증이 느껴지는 자신의 발목을 보았다. 신기하고 또 놀라웠다. 이 여인의 통증이 그대로 전해졌다. 량신위가 혼잣말처럼 조용히 물었다.


“니 쟈오완즈 쇼우샹러마··· (발목을 다쳤는가···)"


명희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설마, 그녀의 통증이 나에게까지 전해지는 것을 믿을 수 없었던 량신위는 명희의 손등에 휙, 만년필을 그었다. 펜촉은 명희의 손등에 작은 상처를 내며 피가 살짝 배어 나왔다. 화들짝 놀란 명희가 손등을 붙잡았다.


명희의 손등 상처와 똑같이 량신위의 손등에도 붉은 상처가 생겨났다. 펜촉이 손등을 베었을 때의 따끔한 통증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긁히지 않았음에도 명희와 같은 자리에 붉게 생겨나는 상처를 두 사람 모두 똑똑히 보았다. 량신위는 놀랍고도 신기했으며 한편으로는 반가웠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세상에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사람과 내가 무언가 연결되어 있다는 낯설지만 싫지 않은 느낌. 처음으로 다른 사람의 온기를 느꼈고 비록 두려워하는 눈빛이었지만 명희의 눈 안에서 나를 보았다.


량신위가 뒷주머니에서 명희의 위조 여권을 꺼내 펼쳤다. 사진 속의 얼굴, 명희의 얼굴, 명희의 얼굴 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하나씩 보고는 여권의 생년월일을 손으로 짚었다.


명희는 너무 놀라 움직이지도 못하며 량신위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생일? 내 생일이냐고···?’


명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량신위도 살짝 웃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량신위는 자신의 생일이 언제인지 몰랐다. 거리를 떠돌던 어린 시절 부랑자들의 노인이 나이만 알려줬을 뿐 생일 같은 건 없었다. 오늘, 량신위에게도 생일이 생겼다.


거실 구석에 쓰러져있던 강식이 깨어났다. 눈두덩이는 부어올라 한 쪽 눈만 떠졌고 등이며 이마, 뒤통수와 허벅지 등등 몸 여기저기가 아파왔다. 몸을 일으키려 했을 때 손이 묶여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 이것들이···’


그때까지도 강식은 놀라지 않았다. 그러나 반 쯤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명희가 두 명인 것을 보고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움찔하며 숨을 삼켰다. 머리를 다쳐 상이 두 개로 맺혀 보이는 것인가 싶을 정도로 똑같은 사람 둘이 보였다. 머리를 흔들어 털고 다시 자세히 보았다.


분명 다른 사람 둘이었다. 그런데 같은 사람이었다.


‘뭐지 이건···'


주변을 둘러본 강식은 명희 앞에 뾰족한 단검 같은 무기를 들고 있는 저 사람만 없애면 정리가 될 것 같았다. 노부부와 동렬은 이미 저항할 수 없는 상태로 보였다. 강식에게서 멀지 않은 곳에 채연의 전기충격기가 떨어져 있었다.


강식은 손이 묶인 채로 소리 없이 전기충격기를 들고 일어섰다. 노부부와 동렬이 명희 쪽에 시선이 쏠려있는 틈에 - 강식은 량신위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량신위는 명희 뒤에 있는 거울로 강식이 일어날 때부터 지켜보고 있었다. 강식이 전기충격기를 집어 절룩거리며 달려는 것을 하찮게 슬쩍 볼 뿐이었다. 명희와의 어떤 교감을 방해하는 것이 귀찮다는 듯 전기충격기를 작동시키며 찔러오는 강식의 팔을 툭 쳐내고 빠른 속도로 팔과 목, 몸통, 오금을 푹푹푹 찔렀다.


강식은 여기저기가 터진 풍선인형처럼 피를 추욱 추욱 뿜어냈다. 전기충격기는 허공에 대고 치지지직 소리를 내며 홀로 작동했다. 량신위가 손가락으로 강식을 휘익 밀어내자 강식은 맥없이 무릎이 바깥으로 꺾이며 주저앉았다. 강식 또한 꺼어억 소리만을 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량신위는 다시 명희를 바라보았다.


명희는 자신과 같은 겉모습에 홀려 이 사람이 누구인지 잠시 잊고 있었다.


‘...나를 죽이고 내가 되려는 사람...’


눈앞에서 쓰러진 강식을 보며 주저앉을 것처럼 두려움이 몰려 왔다. 이 사람이 날 해치는 일은 너무나도 쉬워 보였다. 거구의 경찰이 소리 없이 쓰러지고 작은 만년필이 강식을 찌르는 광경은 지금까지 게스트하우스에서 일어난 평범한 사람들의 싸움과 완전히 달랐다.


그녀의 몸짓은 군더더기 없이 딱 필요한 만큼만 빠르게 움직였고 만년필은 더욱 간결하게 급소를 베었다. 강식이 다친 상처 또한 어디를 어떻게 찔러야 가장 빨리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지 완전히 알고 있는 칼 놀림이었다.


명희는 겁에 질려  량신위의 만년필과 그녀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볼 뿐이었다. 그러나 량신위는 명희에게 만년필을 겨누지 않았다. 그녀 역시 명희를 보고만 있었다.


멀리서 경찰차와 구급차들의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전 먼저 도착한 경찰이 쓰러지면서도 무전으로 연락한 것이었다. 이번엔 꽤 여러 대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소리가 다급하게 울렸다.


량신위는 사이렌 소리가 다가옴에도 전혀 미동도 없이 계속 명희만 보고 있었다.


명희의 눈을 그윽하게 보던 그녀가 휙, 일순간 명희의 목에 만년필을 겨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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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32. 내미는 손 / 마지막 회 17.01.15 319 4 8쪽
31 31. 인천으로 17.01.13 230 4 13쪽
» 30. 도플갱어 Doppelgänger  17.01.12 240 4 9쪽
29 29. 그냥 가지 그랬어 17.01.11 239 4 9쪽
28 28. 내가 말했잖아 17.01.10 220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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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3. 빨리 구급차를 17.01.04 253 5 9쪽
22 22. 절대로 용서 못해 17.01.03 246 5 9쪽
21 21. 설득은 필요 없어 17.01.03 257 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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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8. 반격 17.01.01 230 4 9쪽
17 17. 저는 기회를 드렸어요 16.12.31 229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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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5. 탈출, 그러나 16.12.30 316 4 10쪽
14 14. push to open button 16.12.29 257 4 10쪽
13 13. 자물쇠 밖의 그림자 16.12.29 334 4 12쪽
12 12. 지하실로 가는 길 16.12.28 260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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