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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은수님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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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추리

완결

우은수
작품등록일 :
2016.09.12 16:59
최근연재일 :
2017.01.15 17:16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10,420
추천수 :
147
글자수 :
139,273

작성
16.12.30 18:10
조회
207
추천
4
글자
10쪽

16. 붉은 눈, 열린 문

DUMMY

  “이리 와, 명희야.”


명희는 주저앉아 얼어붙었다. 경옥은 문을 열고 오른손을 명희에게 내민 채 서서히 다가왔다. 그러나 명희는 경옥의 손을 잡을 수 없었다. 경옥이 주인내외와 한패라는 생각이 떠오르기 전에 경옥의 얼굴이 지옥에서 손 내미는 악귀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눈동자는 혼탁한 빛깔에 초점 없이 허공을 바라보았고 실핏줄이 터져 충혈 된 눈은 흰자가 없는 붉은 눈이었다. 또한 피눈물이 흘러내린 주홍 눈물자국은 양쪽 눈에서 턱까지 말라붙어 있었고 머리카락은 자기 손으로 쥐어뜯은 듯 헝클어져 있었다.


내 눈앞의 이것은 경옥이 아니라 경옥의 몸에 귀신이 씌여 나까지 어둠 속으로 끌고 가려는 손으로 보였다. 명희는 서서히 다가오는 경옥을 피하려 발뒤꿈치로 바닥을 밀어냈지만 자꾸만 미끄러져 더디게 더디게 움직일 뿐이었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앞에서는 악마 같은 얼굴의 경옥이 다가왔고 뒤에는 강식과 진주가 버티고 있었다. 문을 열어주는 곳도 없었다. 어찌할 방법이 없다는 절망이 온 몸을 짓눌러 기운을 빼내고 있었다.


경옥이 손을 내밀고 문 밖으로 나왔을 때 강식과 진주는 경옥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진주는 웃음을 참다못해 팔에 입을 묻고 쿡쿡 소리 내 웃기까지 했다. 강식도 큭큭 웃으며 진주에게 속삭였다.


“뭐야··· 좀비야? 완전 깬다 경옥씨.”


“그러게. 그냥 있지 뭘 또 나오냐. 큭큭.”


강식과 진주는 여유가 넘쳤다. 복잡하게 진행되었던 오늘 밤의 일도 이제 마지막인 것처럼 보였다. 강식은 주저앉은 채 울며 뒷걸음질 치는 명희를 보면서 적당히 날뛰어준 덕분에 다이내믹한 사냥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일이 너무 쉬웠었지. 다들 손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픽 픽 쓰러져 나갔으니.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는데 뭐 이정도면 충분히 추억에 남을 거야. 아아, 마지막이라니 어쩐지 아쉽기도 한데. 그럼 아쉬운 만큼 더 친절하게 보내줘야지. 진주와 날 귀찮게 한 만큼 특별히.'


*


숙영과 나연 모녀는 서로를 꼭 붙잡고 한 침대에 누워있었다. 눈은 감고 있었으나 잠들지 못하고 긴장한 채였다. 채칵, 채칵, 채칵··· 벽에 걸린 시계 초침소리가 방 안에 크게 울려 퍼질 정도로 모녀는 긴장하고 있었다. 


 계단 저 아래서, 두다다닥 뛰어올라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숙영이 먼저 고개를 들어 올릴 때 도와달라고 소리치는 명희의 다급한 목소리가 숙영과 나연을 번쩍 깨웠다. 둘은 화들짝 놀라며 서로를 더욱 꼭 안았다.


“엄마···”


“괜찮아, 괜찮아.”


덜컥거리며 방문을 흔드는 소리들이 차례로 들려왔다. 겁에 질려 문 쪽을 쳐다보고 있는데 밖에서 누가 문을 열려고 덜걱덜걱 문고리를 흔들었다. 나연은 비명을 지를 뻔 했으나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숙영과 나연은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문 밖은 곧 조용해졌다. 나연이 입에서 손을 떼며 조용히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그 언니··· 그 언니 목소리야. 도와달라는 사람···”


“그래, 그런 것 같아.”


“어떻게··· 어떻게 해? 정말 그 언니 무슨 일 있나봐.”


“잠깐만, 잠깐만···”


숙영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문 밖의 도와달라는 소리는 위험에 빠진 절박함이 묻어났다. 명희라는 아가씨와 대화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녀의 목소리와 얼굴, 표정들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옆자리에 앉으라고 손짓했을 때 고마워했던 눈빛, 다정다감하고 호의적인 말투, 허영이나 날카로움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성실한 타입···


괜찮은 사람이란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던 그녀. 그런 그녀가 지금 도와 달라 외치고 있었다. 숙영은 도와주고 싶었다. 문을 열고 무슨 일이냐고, 괜찮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아래층 거실에 열려 있었던 지하실 문과 거꾸로 업혀 나갔다는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알고 싶었다. 그러나 숙영은 망설였다.


‘지금··· 지금 문을 열면 우리까지 위험해질 수도 있어.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뭔가 나쁜 일에 빠진 것만은 분명해. 나와 우리 딸까지 위험에 빠질 수는 없어. 아까 분명 피를 흘리고 업혀 나갔다고 했었지··· 그런데 병원으로 가지 않고 다시 방으로 뛰어올라왔고··· 도와달라고 소리치며... 문을 다 열어보려 했다는 건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다는 건데··· 대체 왜?


자기 방으로도 들어가지 못 한 건가? 같이 왔던 그 아가씨··· 그 아가씨도 문을 잠그고 있는 거야? 안 돼, 문을 열면 안 돼. 분명 험악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아. 기다리자. 우리 딸, 사랑하는 내 딸이 있는데. 기다려야해. 기다리자··· 기다렸다가 해가 뜨면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집으로 가는 거야··· 여기서 일어난 일은, 뭔지도 모르는 저 무서운 소리들은 다 잊어버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되는 거야. 기다리자··· 기다려···’


숙영은 고민에 빠졌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나연의 머리를 꼭 끌어안고 문에서 멀리 떨어져 침대 구석에 앉아있었다. 나연은 엄마의 팔을 꼭 붙잡고 잔뜩 겁먹은 얼굴로 엄마에게 달라붙어 있었다. 나연은 거꾸로 업혀 나가던 명희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때 분명 그 언니는 정신을 잃고 있었어. 눈을 뜨고 있었지만 초점 없이 반 쯤 올라간 눈동자는... 정신이 없는 것이 분명했어. 무슨 사고가 나서 쓰러진 것처럼. 그런데 일어났구나. 일어나서··· 일어나서 도와달라고 소리치고 있는 거야. 주인아저씨가 분명해. 그 언니를 업고 나간 주인아저씨가 나쁜 짓을 하려고 했던 거 같아. 하지만 명희언니가 도망친 거고··· 다시 쫓아왔나봐. 어쩌지··· 무서운데, 그 언니 도와줘야 할 거 같은데··· 무서워···'


나연이 엄마에게 말했다.


“주인아저씨가··· 그 언니에게 뭔가 나쁜 짓을 하려는 거 같아 엄마.”


숙영이 딸을 놓지 않고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아까 분명히 봤어. 주인아저씨가 명희언니 업고 나가는 거··· 짐짝처럼 들고 나갔는데 그 언니가 도망친 거 같아.”


“··· 그래··· 무슨 일이 있긴 있나봐··· 그런데 나연아, 엄마도 그 언니 도와주고 싶은데··· 위험할거 같아.”


“응 엄마··· 나도 도와줘야 할 것 같은데... 너무 무서워···”


모녀는 겁에 질린 채 눈물이 터지기 직전의 얼굴로 2층 침대의 아래층 구석 그늘 속에 웅크려 있었다.


*


명희는 느리게 뒷걸음질 쳤다. 경옥은 아무 말도 없었다. 이리 들어오라는 말도, 거기 있으라는 말도, 도망치라는 말도 없었다. 붉게 충혈 된 눈으로 명희를 내려 보며 손을 내밀고 있을 뿐이었다. 주저앉아 울고 있는 명희보다 서서 손 내밀고 있는 경옥이 더 위태로워 보였다. 


강식은 마네킹 같은 경옥을 보며 넋이 나갔다, 정신이 빠졌다, 영혼이 비었다는 표현들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마네킹도 쓸모 있는 마네킹이 아닌 관절이나 이음새가 약해서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듯 한 불량품 같았다. 강식이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이제 들어가세요, 경옥씨.”


경옥은 시선을 들어 강식을 쳐다보았다. 강식은 무표정하게, 진주는 약간 미소를 머금고 복도 끝에 서 있었다. 강식이 말을 이었다.


“피곤해 보여요. 그만 들어가 쉬세요.”


경옥은 다시 명희를 바라보았다. 명희는 여전히 울면서 멀어지려 애쓰고 있었다. 경옥은 서서히 명희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그만. 그만하자.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어... 난 내가 해야 할 일을 다 했어. 그만 들어가자...'


경옥은 고개를 떨구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려 몸을 돌렸다.


“언니.”


명희가 말했다. 경옥은 덜컥, 투명한 유리벽에 부닥친 것처럼 멈춰 섰다. 고개를 돌리지 않고 서 있는 경옥의 등에 대고 명희가 물었다.


“...왜 그랬어? 대체 왜···"


경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대로 방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그대로 서 있었다. 강식과 진주만 콧방귀를 뀌면서 한심하다는 듯 짝다리를 짚었다. 경옥과 명희 모두 말이 없었다. 명희의 서러운 울음소리만 복도에 울려 퍼졌다. 더는 못 기다리겠다는 듯 강식이 나서며 말했다.


“자 그럼 쉬어요 경옥씨. 명희씨는 같이 갑시다.”


명희는 돌아보지 않는 경옥에게 악을 쓰며 소리쳤다.  


“왜 그랬냐구!"


경옥은 고개를 돌려 명희를 바라보았다. 아주 잠깐 명희와 눈이 마주쳤으나 경옥은 이내 시선을 피했다. 경옥이 시선을 떨구자 명희는 더욱 서럽게 울었다. 울음소리가 온 집안에 가득 찼다.


온 몸의 통증이 명희에게 더해졌다. 욱신거리는 머리, 찢어진 종아리, 기운 없는 팔다리···. 밀려드는 배신감.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감. 명희는 목 놓아 울었다. 강식이 빠루를 들고 다가섰다. 강식을 본 경옥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 혼자 방으로 들어가려는 경옥의 움직임이 명희의 눈에 아주 천천히 보였다.


명희의 울음소리가 경옥의 등에 더 크게 날아와 꽂혔고 강식은 명희에게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모든 것을 포기한 명희가 고개를 떨어뜨리며 구슬만한 눈물방울이 툭툭 떨어질 때 덜컥, 파도방 문이 열렸다. 숙영과 나연이 명희를 끌어당기고 문을 잠갔다.


강식이 인상을 구기며 파도방 앞에 다가가 노크하며 말했다.


“저, 일단 말씀을 좀 드릴게요. 잠시 문 좀 열어주세요.”


진주를 돌아보며 열쇠를 가져오라고 손짓했다. 진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강식은 다시 노크하며 말했다.


“놀라셨을 거라는 거, 알아요. 다 말씀 드릴게요. 아주머니?”


*


명희는 숙영을 끌어안고 엉엉 울었다. 숙영은 명희의 등을 토닥이며 조용히 말했다.


“이제 괜찮아요. 괜찮아.”


경옥은 어쩔 줄 몰라 하며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삐 ---


강식의 귓속에서 다시 귀가 찢어질 듯 한 높은 쇳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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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붉은 눈, 열린 문 16.12.30 208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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