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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은수님 님의 서재입니다.

게스트하우스

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추리

완결

우은수
작품등록일 :
2016.09.12 16:59
최근연재일 :
2017.01.15 17:16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10,429
추천수 :
147
글자수 :
139,273

작성
16.12.31 00:04
조회
228
추천
4
글자
11쪽

17. 저는 기회를 드렸어요

DUMMY

명희는 숨을 고르고 진정하려 애썼다. 숙영은 어깨를 감싸 주었고 나연은 물을 가지고 왔다. 두 모금, 물을 마신 명희는 참았던 눈물을 다시 쏟아내며 숙영을 끌어안고 말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말없이 안아주던 숙영은 명희가 이내 눈물을 닦고 정신을 가다듬자 여기저기 살펴보며 말했다.


“세상에, 이거 핏자국이잖아? 바지에도... 아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명희는 쉼 호흡을 몇 번 하고 고개를 들어 문 쪽을 바라보았다. 


“곧 문을 열고 들어오려 할 거예요. 일단 문이 열리지 않게 막아야 해요. 그리고 나서 말씀드릴게요.”


숙영과 나연은 침을 꿀꺽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명희의 손짓에 따라 셋은 철제 2층 침대를 문 앞으로 옮겼다. 문이 열리지 않도록 침대와 협탁으로 문에서 벽까지 막아놓을 생각이었다.


‘어떻게든 경찰에 신고해야해. 여기서 나가야 하는데···'


명희와 숙영, 나연은 도망쳐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문을 틀어막고 있었다. 명희가 협탁과 의자를 끌어와 끼워 맞추며 말했다.


“어떻게 된 건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누가 방문을 열려고 해서 누구냐고 물어보는데 정신을 잃었어요. 깨어보니까 내가 거꾸로 들쳐 업혀서 흔들리고 있었고··· 지하창고, 창고에 날 버려두었어요. 그리고 옆에는 그 남자 애들 두 명··· 그 두 명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고요··· 둘은 이미 죽은 것 같았어요···


그리고 창고에서··· 창고에서 선반을 밀쳐버리고 간신히 뛰어올라왔어요. 그런데 거실 현관문과 창문에 자물쇠가 채워져 있더라고요.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어요··· 계획적으로 문을 잠가놓은 것 같아요··· 그래서 위층으로 뛰어 왔는데··· 문은 다 잠겨있고··· 이젠 끝장이구나 싶어서 너무 무서웠어요··· 고맙습니다 아주머니, 정말 고마워요."


명희는 그간의 일을 설명하면서 조금 전의 두려운 느낌이 다시 떠올라 온 몸에 소름이 돋고 손을 덜덜 떨었다. 대규와 성찬이 죽었다고 말했을 때 나연은 얼굴이 창백해지며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처럼 겁에 질려버렸다. 숙영은 눈을 꼭 감고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하려 애썼다. 숙영이 명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침착해야 해요. 분명 무슨 방법이 있을 거예요. 여기서 나갑시다.”


*


강식은 눈을 감고 파도방 앞에 서 있었다. 밀려오는 두통을 이겨내려 눈을 감은 채 어금니를 꽉 깨물고 관자놀이를 엄지손가락으로 깊이 문질렀다. 귓속에선 높은 톤의 쇳소리가 계속 울렸다. 미간에 한가득 주름을 만들며 실눈을 뜨고 빠루를 들어 찬찬히 살펴보았다. 빠루의 끝부분에는 누구의 것인지 모를 피와 짓눌린 피부조각, 머리카락이 약간 묻어 있었다. 강식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다 이지경이 되었는지 모르겠네. 분명 조용히 잘 처리할 수 있었는데. 아아, 맞아, 예전에 진주가 왜 꼭 새벽에 끌고 내려 오냐고 물었던 적이 있었지. 그대로 방에 두었다가 아무도 없을 때 조용히 처리하면 좋지 않냐고. 하지만 뭐, 아무리 생각해도 작업은 새벽에 해야지. 집에 사람이 없다 한들 밝은 대낮에 피를 빼고 팔다리를 썰고 파묻고 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새벽 두시에서 세시에 혼자 깨어나 일을 마무리하는 게 맘에 들었는데. 다만... 이렇게까지 일이 복잡하게 꼬여버리니까 진주한테 할 말이 없어진다. 그래, 다음에는 그냥 진주 말 들어야겠어. 아니지, 이번이 마지막이 될 수 있는데. 오천만원이면 제법 약도 많이 살 수 있고 상태도 좋아졌다고 하니 이런 험한 일은 이제 그만해도 될 거야.


이제 진짜로 게스트하우스 손님들만 받고 손님들이랑 아기자기하게 파티도 하고 당근도 키우고 콜라비도 키우고 그렇게 살거야. 예전부터 꼭 배우고 싶었던 낚시도 배우고. 가까운 바다에 나가서 손님들과 함께 먹을 싱싱한 물고기를 내 손으로 잡아온다니, 정말 멋지잖아? 물고기의 종류도 잘 모르고 낚시는 한 번도 안 해봤지만 이제 배우면 되지 머.


일단 오늘 일을 어떻게든 빨리 마무리 해야겠어. 정말 복잡하게 꼬여버렸구만. 그 아줌마랑 딸에게 뭐라고 말한다? 아, 손에 이런걸 들고 있으면 뭐라고 말해도 날 나쁘게 보겠구나.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벌써 일이 이렇게 되어버린걸. 아줌마랑 딸은 죽이고 싶지 않은데. 한꺼번에 묻어야 할 사람이 너무 많아지잖아. 그것도 제법 귀찮단 말이지.


일단 얘기를 좀 해보고 정 안되면 뭐 할 수 없지. 그래, 좋아. 기회를 주자. 기회를 주고 저쪽이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결정하는 거야. 이미 많은걸 보고 들었을 텐데 그냥 보내줘도 괜찮을까? 뭐, 괜찮을 거야. 전에도 문틈으로 본 사람들이 있었지만 다음날 웃으며 인사하고 곱게 육지로 나갔잖아? 신고도 안했고.


다들 그냥 꿈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어. 아니면 복잡하게 엮이고 싶지 않아서 모른 척 하는 지도 모르지. 기회를 주자. 이 아주머니와 애한테도 기회를 주는 거야. 죽든 살든 그건 어차피 저들이 선택한 거야. 난 분명히 기회를 줬거든. 어디까지나 아줌마랑 딸에게 달렸어.’


강식은 노크를 했다.


똑똑.


방에선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강식은 다시 노크를 했다.


똑똑똑.


역시 아무 답이 없자 강식은 문에 바싹 기대 조용히 말했다.


“아주머니, 저는 아주머니와 따님에게는 아무런 볼일이 없습니다. 그 아가씨하고 잠시만 얘기하면 돼요. 아마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들으셨겠지만 분명한건 아주머니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들이고요, 저도 뭐 아주머니께서 편안히 푹 쉬시고 잘 돌아가시길 바랍니다. 지금 약속드릴게요. 아주머니와 따님은 절대로 아무 일 없을 겁니다. 잠깐 그 아가씨··· 그··· 이름이 뭐였더라··· 아, 명희씨하고만 볼일이 있어요. 아주머니 부탁드려요. 문 좀 열어봐 주세요.”


방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강식의 귀에 들리던 쇳소리가 점점 더 커져왔고 두통은 맥박이 뛸 때마다 세기를 더해가는 듯했다. 관자놀이를 눌러 쥐어짜면서 귓구멍을 흔들어 쇳소리를 떨치려고 고개를 몇 번이나 털어댔다. 식은땀이 나고 얼굴이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숨이 가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강식은 천천히, 가능한 침착하려 애쓰며 다시 문에 대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주머니, 이건요, 제가 기회를 드리는 거예요. 왜 굳이 그 아가씨를 감싸고 있어요? 그럴수록 아주머니와 따님도 말려드는 겁니다. 잘 생각해보세요. 이건요··· 이건 진짜··· 진짜 제가 편의를 많이 봐드리는 거거든요. 그 아가씨 이리 내보내주세요. 그리고 내일 아침에 아주머니는 그냥 조용히 올라가세요. 불편하실까봐 저희가 마중 나가지도 않을게요. 이거 그냥, 그냥 잠깐 사고 같은 거예요. 그 아가씨만 이리 보내주세요.”


진주가 마스터키를 가지고 올라왔다. 진주는 강식의 얼굴을 보자마자 강식의 상태를 알 수 있었다. 최근엔 발작이나 급격한 통증을 호소하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오늘은 위험해 보였다. 어젯밤 찾아온 가슴 통증, 오늘 받은 극도의 스트레스와 빈혈··· 거기에 몇 번이나 널뛰는 감정의 기복까지.


이러다가는 강식이 먼저 쓰러질지도 모른다고 진주는 생각했다. 진주의 주머니에는 언제라도 강식에게 먹일 수 있도록 약이 준비되어 있었다. 진주는 말없이 강식에게 키를 건넸다. 열쇠를 받아들고 살살 흔들어 짤그랑 소리를 내면서 강식은 다시 문틈에 대고 말했다.


“자, 아주머니. 저에게 키가 있어요. 마지막으로 말씀드립니다. 그 아가씨, 이리 내보내세요. 제가 잠깐 기다릴게요. 분명히 말씀드렸어요. 마지막입니다.”


명희, 숙영, 나연은 강식의 말을 모두 듣고 있었다. 숙영이 강식의 말에 흔들리지 않았다면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분명 숙영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어제 처음 만난 사람을 문 밖으로 밀어내면, 아니 그저 단순히 저 잠긴 문을 내가 열어주기만 한다면 나와 딸은 무사히 집에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 지났다.


그러나 그것은 여기서 벌어진 끔찍한 일들의 가해자를 도와주는 짓이었다. 이미 복도에서 울고 있는 명희를 방 안에 들이지 않았던가. 만약 그대로 명희의 울음소리가 복도에서 사라졌다면, 그렇게 명희가 처한 위험을 외면했다면, 나와 딸은 잠들 때마다 평생 그 울음소리가 들려올 것이라고 숙영과 나연은 말했었다.


게다가 이미 살인을 저지른 자의 약속 따위는 믿을 수 없다고 숙영은 생각했다. 걱정 말라고, 숙영은 긴장하는 명희의 손을 잡고 눈을 마주친 뒤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명희도 숙영의 손을 꼬옥 쥐었다.


강식은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숫자를 100부터 거꾸로 세면서 어느 정도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 조금 전까지 자신이 지나치게 흥분해 있었다는 것을 강식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눈을 감고 서서히 숫자를 세어 나갔다. 숫자가 줄어들수록 강식에게는 어떤 확신이 생겨났다.


'나는 분명 아주머니와 아이에게 기회를 주었는데 저들은 왜 나의 호의를 받아들이지 못하나. 이로써 앞으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저들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다. 나는 분명히, 저들에게 설명했다.’


말로 해결할 수 있었는데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든 것은 저들이라고 강식은 확신을 굳혀갔다.


  ···7··· 6··· 5··· 4··· 3··· 2··· 1··· 0.

 

강식은 별다른 말없이 열쇠를 꽂고 시계방향으로 돌렸다. 찰칵, 자물쇠가 열렸다. 손잡이를 잡고 조심스레 문을 밀었으나 문이 밀리지 않았다. 손가락 한 개가 들어갈 만 한 아주 작은 틈만 벌어질 뿐, 무언가가 문 앞을 막고 있었다.


“하···”


강식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덜걱 덜걱, 몇 번 문을 흔들고서 강식은 벌어진 문틈으로 냉정하게 말했다.


“이제 다 아주머니 책임이에요. 아시겠어요? 다 아주머니 탓이라고요.”


강식은 문을 닫아버렸다.


방 안에 있던 세 사람은 문에서 멀찍이 떨어져 문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식이 하는 말은 모두 무시했다. 그러나 문이 덜걱거리며 열리려하자 셋은 움찔하며 몸을 움츠렸다. 온 몸이 굳어버릴 것처럼 긴장하고 있는 사이, 문은 닫혔고 조용한 침묵이 흘렀다. 너무 조용했다. 발소리도 없었고 대화소리도 없었다. 명희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발소리가 나지 않도록 서서히 문 쪽으로 다가갔다.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거실로 내려간 것일까? 아니면 문 밖에서 뭔가 하고 있는 건가?’


명희는 문에 귀를 대고 복도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지 집중했다. 나지막이 진주가 무어라 강식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릴 듯 말듯 했다. 명희가 더욱 문에 찰싹 달라붙어 있을 때 -


콰직!


  명희의 눈에서 한 뼘 앞에 강식의 빠루가 문을 뚫고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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