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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은수님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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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우은수
작품등록일 :
2016.09.12 16:59
최근연재일 :
2017.01.15 17:16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10,438
추천수 :
147
글자수 :
139,273

작성
16.09.12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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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0
추천
6
글자
6쪽

1. intro : 제주도로 가라

DUMMY

intro : 제주도로 가라


아름다운 야경만큼 상해 뒷골목의 그림자는 깊고 어두웠다. 그 어둠 속에서 량신위의 칼은 빠르고 간결했다. ‘칼을 든 단발머리 여인이 번개같이 목을 벤다'는 소문이 상해 뒷골목에 무성했다. 상해의 마약 제조, 유통, 판매 조직인 ‘흑리단’의 량신위는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도 이름이 알려지고 있었다.


흑리단의 보스 정국회는 상해의 마약 거래를 독점하려 했다. 상해로 흘러드는 마약의 유통 경로를 차단하고 점조직들을 모두 정리한 후 정국회는 상해 최대의 폭력조직 ‘장강'과 협상에 나섰다. 장강이 관리하는 유흥업소에 마약을 판매하고 수익 배분을 논하는 비즈니스 회의가 수차례 이어졌다.


그러나 번번이 협상은 결렬되었다. 흑리단과 장강은 모두 수익의 70% 이상을 원했다. 심지어 최근 회의에서는 서로 얼굴을 붉히는 험악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장강은 흑리단을 조잡한 약쟁이들로 매도했고, 흑리단은 장강을 사업 마인드가 없는 무식한 깡패집단으로 평했다.


량신위는 모든 회의에 참석해 그간의 과정을 파악하고 있었다. 결국 피를 보지 않고서는 일이 진행되지 않을 것임을 그녀는 직감했다.


오늘 밤, 흑리단과 장강의 최종 협상이 예정되어 있었다. 정국회는 량신위를 조용히 불렀다. 합의점을 찾지 못할 때에는 행동에 나서라는 지시였다. 갑자기 장강의 태도가 변할 리 없으니 사실상 전쟁을 준비하라는 말이었다.


"이번에 장강을 제압하면 우리는 상해를 완전히 점령할 수 있다. 반대로 이번에 밀리면, 여기서 끝이야.”


15년 전, 열두 살의 량신위는 거리에서 구걸하며 겨우 끼니를 이어가던 부랑아였으나 눈빛만큼은 반짝이는 아이였다. 노점에서 찐 옥수수를 훔쳐 달아나다 주인에게 잡혀 발길질을 당하면서도 어린 량신위는 옥수수를 입에 욱여넣었다.


지나던 승용차 안에서 쓰러진 량신위와 눈이 마주친 정국회는 노점의 주인에게 음식값을 지불하고 매질을 당하던 그녀를 일으켜 주었다. 정국회가 어린 량신위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그날 이후, 15년간 량신위는 정국회의 곁에서 충성을 다했다.


“조심해라.”


보스의 당부에 량신위는 꾸벅 인사하고 방을 나섰다. 방 앞에는 조직 내부의 실력자들이 모두 도열해 있었다. 오늘 큰 싸움이 벌어질 거라는 결연한 눈빛들을 서로 주고받았다. 다들 바싹 긴장하고 있었지만 가볍게 웃어 보였다. 십여 년간 함께 사지를 넘나들던 그들이었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짤막한 인사 후, 그들은 담담히 협상장소로 향했다. 다섯 명의 간부들 뒤로 사십여 명의 수하들이 뒤따랐다.


무기를 꺼내놓고 몸수색을 마친 후 마주앉은 다섯 명과 다섯 명의 협상은 길지 않았다. 장강의 보스 허진은 수익의 70%를 내놓거나 손을 떼라고 못을 박았다. 더이상 귀찮게 굴면 상해에 발붙이지 못할 거라는 협박 후 테이블에 발을 올리며 거만한 자세로 몸을 눕히려 할 때, 량신위는 테이블 위로 날아올랐다. 그녀의 손에 들려 있던 만년필은 펜촉이 단검으로 쓰이도록 만들어진 것으로 허진의 목 한가운데부터 힘줄과 경동맥을 갈랐다. 그의 목에서 분수처럼 피가 치솟은 뒤에야 다른 조직원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좁은 우리 안에서 맹수들이 뒤엉켜 물어뜯는 것 같은 혈투가 벌어지자 협상장 밖에서도 전쟁은 시작되었다. 흑리단의 조직원들은 협상장에서 욕설이 나오는 순간 장강의 조직원들을 찔러나갔다. 피와 살점이 튀는 무참한 전투가 안팎에서 한동안 이어졌다. 잠시 후, 협상장 문이 열리면서 일순간에 주변은 모두 얼어붙었다. 량신위가 허진의 목을 잘라 들고 나왔다.


폭력과 살인에 익숙한 조직원들이었으나 보스의 잘린 머리를 보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고 흑리단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뒤섞인 조직원들 사이에서 량신위의 단검은 춤을 추듯 찌르고 베며 나아갔다. 저항하는 장강의 간부들을 제거하고 투항하는 졸개들을 거두어 전쟁이 끝날 때까지, 그녀는 허진의 머리를 손에 들고 있었다. 흑리단은 장강을 완전히 제압하고 상해 제1의 조직으로 발돋움했다.


허진의 목이 잘리고 새 조직이 상해를 차지했다는 소식은 신문을 비롯한 각종 미디어를 도배했다. 중국 공안 당국은 수십 명이 죽거나 다친 이번 폭력사건의 주범으로 흑리단 두목 정국회를 지명 수배하고 간부들 역시 수배에 나섰다. ‘칼 쓰는 여인이 허진의 목을 잘랐다’는 다수의 피해자 진술이 일치하여 이 여인 또한 쫓고 있다고 신문은 밝혔다.


정국회는 주요 간부들에게 별도 연락이 있을 때까지 잠시 피해있으라 지시하고 본인도 항주로 몸을 숨겼다. 상해를 떠나기 전, 정국회는 량신위를 불러 직접 메모지를 건네며 나지막이 말했다.


“배를 준비해 두었으니 한국의 제주도로 가라. 신분세탁 브로커 정강식이라는 자를 만나서 한국 사람이 되어 필리핀의 우리 제조공장에 피해있거라. 길지 않을 것이다. 곧 연락하겠다.”


제주도로 향하는 배 위에서, 량신위는 15년 전 자신을 거두어준 정국회를 떠올렸다. 머리를 쓰다듬어준 그때처럼 이번에도 그녀의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지옥 같은 세상에 처음으로 날 따뜻하게 맞이해준 사람. 유일하게 내 손을 잡아준 사람. 나의 부모와도 같고 혈육보다 가까운 오직 한 사람. 목숨을 걸더라도 그와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가 나를 구원해준 것처럼 내가 그의 곁에서 그를 지켜주고 싶지만...'


뱃머리에 파도가 부딪혀 물방울들이 산산이 부서지며 흩날렸고, 량신위의 눈에도 물방울이 흘렀다. 스윽, 얼굴을 닦은 량신위는 건네받은 메모지를 펼쳐 보았다. ‘파랑 게스트하우스 정강식’ 이라고 쓰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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