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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은수님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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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추리

완결

우은수
작품등록일 :
2016.09.12 16:59
최근연재일 :
2017.01.15 17:16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10,444
추천수 :
147
글자수 :
139,273

작성
17.01.10 10:04
조회
220
추천
4
글자
10쪽

28. 내가 말했잖아

DUMMY

한가로운 들녘의 시골집을 감싸며 검은 돌담과 귤 밭에도 희뿌연 새벽안개가 내려앉았다. 작은 새소리가 이따금씩 들려오는 고요함 속에서 강식은 쓰러진 할아버지의 겨드랑이 사이로 두 팔을 집어넣어 들어 올리고 있었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할머니와 마주치고 잠시 멈칫하다가 말을 이었다.


“아, 할머니, 아무래도 그 강도에게 할아버지도 당한 것 같아요.”


할머니는 강식의 말에 더욱 놀라며 소리쳤다.


“아이고 영감,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강도라니··· 세상에나 머리에 저거 피 아냐?”


강식은 할아버지를 끌어올리며 태연하게 말했다.


"아까 제가 집 안쪽에 혹시 강도가 숨어있는지 살펴봤거든요. 아마 그때··· 그때 당한 것 같아요. 우선 집으로 할아버지를 옮겨야겠어요. 저 좀 도와주세요.”


“그래, 그래요. 어서 어서.”


할머니는 강식을 도와 할아버지를 마루에 눕혔다. 할아버지는 옅은 신음소리를 내뱉었으나 눈을 뜨거나 정신을 차리진 못했다. 할머니는 수건을 적셔와 할아버지 머리의 피를 닦아내며 연신 ‘아이고, 아이고’를 내뱉었다. 강식은 무표정하게 할머니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런데요, 좀 전에 들어온 아가씨는 어디 있어요?”


할머니는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아, 아, 아가씨? 무슨 아가씨?”


허둥대는 할머니의 반응에 강식은 무언가 확신했다. 할머니는 알고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짧은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할아버지가 그러시던데··· 아가씨 한 명이 다쳐서 집에 왔다고.”


할머니의 손이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했다. 숨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답했다.


“아아, 저, 저쪽 뒷문으로 나갔어.”


“나가요? ···언제요?”


“아까 정씨가 문 두드릴 때··· 그때 놀라서 나갔어.”


강식은 아무런 반응 없이 할머니를 빤히 쳐다보았다. 할아버지가 몸을 뒤척이며 소리를 냈다.


“끄으응···”


강식은 흠칫 놀라며 할아버지가 눈을 뜰까 긴장하며 노려보았다. 강식의 그 눈빛을 본 할머니는 온 몸에 소름이 끼쳐 주저앉았다. 그것은 지금껏 보아왔던 옆 마을 민박집 정씨의 얼굴이 아니었다. 굶주린 살쾡이가 먹이를 빼앗겨 독이 오를 대로 오른 날짐승의 그것이었다. 할아버지가 깨어나지 못하고 잠잠해지자 강식은 시선을 다시 할머니에게 옮기며 말했다.


“할머니··· 거짓말하면 안돼요. 어디 있어요?"


“지, 진짜야··· 왜 그래 정씨 무섭게···”


“후··· 아무래도 할머니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무, 무슨 거짓말을 한다고 내가···”


강식은 허리에 양 손을 짚고 탄식과도 같은 한숨을 내뱉다가 부엌으로 쑥 들어갔다. 곧바로 기름과 라이터를 들고 나온 강식은 나무로 된 마루 여기저기에 기름을 뿌려댔다. 할머니가 기겁을 하며 애원하듯 말했다.


“아이고, 이봐 정씨 왜이래! 아이고 이게 대체···”


강식은 기름 한 통을 다 뿌리고 빈 통을 할머니 앞에 탁 내려놓으며 말했다.


"할머니, 마지막으로 여쭤 볼게요. 어디 있어요?"


"대체 왜 이러는 거여..."


할머니는 울며 애원하듯 말했다. 너무 놀라 할아버지를 반쯤 끌어안고 두려움에 떨었다. 강식은 무표정하게 할머니를 바라보다가 라이터를 켰다. 할머니는 소스라치게 놀라 할아버지를 붙잡아 당기며 뒷걸음질 쳤다. 강식이 라이터 불을 마룻바닥에 대려 허리를 숙일 때 -


“멈춰!”


명희가 뛰쳐나오며 소리쳤다. 강식은 우뚝 멈춰서 엄지손가락을 들어 라이터를 껐다. 그리고 반가운 듯 씩 웃으며 할머니에게 말했다.


“그것 봐요 할머니. 분명 여기 있다니까.”


강식은 라이터를 켜고 기름에 불을 붙였다. 할머니와 명희의 눈이 동그래지며 그러지 말라고 말릴 틈도 없이 나무로 된 마룻바닥에 불이 붙었다.


치익, 라이터에서 튀어 오르는 불꽃과 능청스럽게 웃는 강식의 눈빛, 절규하는 할머니의 얼굴, 쓰러진 할아버지의 머리에서 주르르 흘러내리는 피, 불이 붙은 라이터와 기름 뿌린 바닥으로 내려가는 강식의 손, 후욱 하는 소리가 들려오듯 순식간에 퍼져나가는 불길이 마루 밑 마당에 서 있는 명희의 눈에 하나하나 또렷하게 박혔다.


할머니는 비명을 지르며 할아버지를 마루 밑으로 끌어냈다. 강식은 불이 붙자마자 명희를 향해 돌진하며 주머니에서 칼을 꺼냈다. 명희는 숨이 막힐 듯 놀라며 불타는 마루를 등지고 철문으로 내달렸다. 얼마 되지 않는 철문까지의 거리가 엄청나게 멀어만 보였다. 강식은 불과 대여섯 걸음 뒤에서 옅은 미소를 띠며 껑충 껑충 다가왔다.


명희는 한쪽 다리를 절룩거리며 넘어졌다 일어서고 또 넘어졌다 기어가듯 도망쳤다. 명희가 도망칠수록 강식과의 거리는 오히려 좁혀졌다. 명희는 가까이 다가오는 강식의 웃는 얼굴이 도저히 사람의 얼굴 같지가 않았다. 강식의 뒤로 보이는 불붙은 마루와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와 번쩍이는 칼날은 강식을 지옥에서 달려오는 악마로 보여주었다. 금방이라도 악마는 명희는 덮칠 것만 같았다.


강식이 뻗은 손에 잡힐 듯 아슬아슬하게 명희는 철문을 열었다. 강식 쪽을 돌아보며 문 밖으로 뛰쳐나가 몇 걸음 도망치기도 전에 - 거구의 남자가 명희의 양쪽 어깨를 덥석! 붙잡았다. 명희는 기절할 것처럼 놀랐다. 너무 놀라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고 숨도 멎은 채 붙잡은 남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명희를 안심시키며 동렬이 말했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동렬이 명희에게 건넨 두 마디가 끝나기도 전에 강식은 동렬을 향해 괴성을 지르며 칼을 찔렀다. 동렬은 명희를 옆으로 세워 놓고 달려드는 강식 쪽으로 유연하게 미끄러져 들어가 찔러오는 강식의 팔목을 잡아당기며 업어치기로 강식을 집어던졌다.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진 강식은 몇 바퀴를 데굴데굴 굴러 쿨럭 거리며 다시 벌떡 일어섰다.


기침을 멎은 강식이 무표정한 얼굴로 차분히 말했다.


“그래··· 니가 아직 있었지. 잘 됐네. 어차피 치워야 했는데.”


칼 등으로 머리카락을 북북 긁으며 말을 이었다.


“오늘 밤이 길다. 하루가 정말 길어. 우리 꽤 많은 일이 있었어··· 그렇지? 이젠 슬슬 정리해야겠다.”


동렬은 별다른 대꾸 없이 주먹을 움켜쥐고 강식에게 걸어갔다. 강식이 천천히 뒷걸음질 치며 다시 말했다.


“아아··· 그러고 보니··· 무슨 운동을 했다고 그랬지? 그래, 그랬던 것 같아. 혹시 오다가 채연씨는 봤니? 그래도 몇 시간 전까지는 둘이 분위기 좋았잖아. 나름 좋은 추억도 만들었을 텐데 오다가 만났는지 모르겠다. 아아, 너무 슬퍼하진 마. 너도 곧 따라갈 테니.”


동렬이 가까워오자 강식은 자세를 낮추고 칼을 뒤로 뺐다. 동렬은 미간을 찌푸린 얼굴로 강식에게 다가가 정강이를 걷어찼다.


“악!”


다리를 채인 강식이 마구잡이로 칼을 휘둘렀다. 동렬은 두 세 걸음 물러서며 날아드는 칼을 끝까지 보고 피해냈다. 강식이 크게 휘둘러 앞으로 몸이 쏠렸을 때, 무게중심이 실린 강식의 발뒤꿈치를 동렬은 걷어찼다. 강식의 발이 하늘로 들리며 크게 넘어졌다. 강식이 땅바닥을 짚으며 일어서려는 도중에 동렬이 달려들어 강식의 머리에 사커킥을 날렸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강식은 칼을 놓치고 풀썩 쓰러졌다.


동렬은 명희를 돌아보았다. 명희는 벽에 몸을 기대고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동렬이 침착하라는 손짓과 함께 말했다.


“어휴··· 대체 이게··· 이제 괜찮아요. 다 끝났어요. 혹시 저 집 안에 사람 있어요? 불이 크게 번지겠어요.”


명희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아, 할머니! 집 밖으로 모셔와야 해요!”


명희와 동렬이 철문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마루에서 타오른 불길은 벽면과 기둥까지 번져 있었고 화염은 군데군데에서 둥근 회오리와 불기둥을 만들어내며 맹렬히 타올랐다. 할머니는 의식이 없는 할아버지를 마루 밑 마당까지 끌고 내려와 겨우 불길을 피했다.


동렬이 서둘러 할아버지를 안아들고 명희는 할머니를 부축했다. 집을 삼켜버릴 기세로 타오르는 불길은 마당에 있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피부까지 벌겋게 달굴 정도로 사나웠다. 할아버지를 안은 동렬이 후다닥 철문 밖으로 나가고 명희가 절룩거리며 할머니와 문 밖으로 피했다.


할아버지를 안고 다급히 철문 밖으로 나선 동렬의 옆구리에 푸욱, 강식이 칼을 찔렀다.


“커헉···”


동렬은 할아버지를 놓치고 강식의 팔을 덥석 잡았다. 눈두덩이가 부어오른 강식이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며 말했다.


“금방 만나러 갈 거라고 내가 그랬잖아···”


“으아아악!”


동렬은 괴성을 지르며 강식의 칼을 빼내고 팔꿈치로 강식의 턱을 후려쳤다. 명희가 할머니를 부축해 나오다 동렬의 옆구리에서 주르르 흘러내리는 피를 보고 비명을 질렀다. 이미 반쯤 실신한 할머니는 강식의 칼과 동렬의 상처, 흐르는 피를 보자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턱을 맞은 강식의 입에서도 피가 흘렀다. 한쪽 눈은 퉁퉁 부어올라 잘 떠지지 않아 부르르 떨렸다. 강식이 꼭 잡고 있는 칼날에서 핏방울이 똑, 똑 떨어졌다. 동렬은 한 손으로 옆구리의 상처를 누르며 지혈하고 있었다. 통증이 밀려오는지 몸을 숙여 무릎을 짚고 힘겹게 고개를 들어 강식을 보고 있었다. 


작은 시골집은 걷잡을 수 없이 불타올라 엄청난 연기를 피워내고 있었다. 강식이 불타는 집과 동렬, 명희, 할머니를 한 번씩 쳐다보고는 담담히 말했다.


“끝냅시다, 이제.”


강식이 칼을 들고 동렬에게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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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31. 인천으로 17.01.13 231 4 13쪽
30 30. 도플갱어 Doppelgänger  17.01.12 240 4 9쪽
29 29. 그냥 가지 그랬어 17.01.11 240 4 9쪽
» 28. 내가 말했잖아 17.01.10 221 4 10쪽
27 27. 그럴 리가 없어 17.01.09 295 4 11쪽
26 26. 마지막 부탁 17.01.06 250 5 10쪽
25 25. 이게 대체 어떻게... 17.01.05 203 4 10쪽
24 24. 추격 17.01.04 237 4 16쪽
23 23. 빨리 구급차를 17.01.04 253 5 9쪽
22 22. 절대로 용서 못해 17.01.03 246 5 9쪽
21 21. 설득은 필요 없어 17.01.03 257 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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