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우은수님 님의 서재입니다.

게스트하우스

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추리

완결

우은수
작품등록일 :
2016.09.12 16:59
최근연재일 :
2017.01.15 17:16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10,417
추천수 :
147
글자수 :
139,273

작성
16.12.29 22:58
조회
256
추천
4
글자
10쪽

14. push to open button

DUMMY

강식은 미친 듯이 계단을 뛰어 오르다 흰색 계단 끝에서 덜컥 멈춰 섰다. 정말 누군가가 찾아 온 거라면, 자연스럽게 나가 맞이해야 한다는 생각이 스쳤다. 목에 두르고 있던 수건으로 땀을 닦고 옷을 가지런히 입었다. 수건을 계단에 내려놓은 뒤 길게 숨을 내뱉고 거실로 올라섰다.


아무도 내려와 있는 사람은 없었다. 거실 안쪽도 옅은 달빛만 비추었고 현관 쪽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게스트하우스 현관 앞에는 자동 센서 등이 달려 있다. 만약 사람이 밖에서 움직였다면 계속 등이 켜져 있어야 했다. 헌데 불이 꺼져 있었다.


'초인종을 눌러도 아무 인기척이 없으니... 창 밖에서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강식은 창문 쪽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5초... 10초... 30초... 아무 움직임도 없다.


'그렇다면, 만약 누군가가 왔었다면, 초인종을 누르고, 그냥 돌아간 거라고?’


강식이 거실의 전등을 켰다. 진주가 조용히 옆에 와서 섰다. 두 번째 초인종 소리가 나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 후다닥 올라온 두 사람이었다. 강식은 초인종을 누른 누군가가 인기척이 없자 그대로 돌아간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밖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자물쇠를 잡아들고 번호를 맞추기 시작했다. 0... 4... 1... 6. 커다란 자물쇠를 풀고서 강식이 현관문을 열어보려 하자 진주가 강식을 붙잡고 수건으로 감싼 빠루를 손에 쥐어 주었다. 강식은 걱정 말라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고 현관문을 열었다.


센서 등이 켜지며 정상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두 걸음, 세 걸음 현관 밖으로 나가 홀로 우뚝 서서 게스트하우스 밖을 바라보았다. 조용했다. 구름이 흘러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한 밤이었다. 강식도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서 있자 현관 센서 등이 꺼졌다. 구름이 달빛을 가렸다 지났다를 몇 번 반복할 때까지 강식은 그 자리에서 주변을 응시할 뿐이었다.


군복무 시절, 비슷한 경험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모의 전투 훈련 중이었는데 적군 역할을 맡은 대원들이 풀숲에 숨어 있어도 사람의 피부가 달빛에 반사되어 반짝였던 기억, 아무리 위장크림을 발라도 눈동자는 식별할 수 있었던 기억.


강식은 그 훈련 때도 여러 명의 적군을 생포해 제법 성과를 올렸었다. 만약 누군가 어둠 속에서 날 쳐다보고 있다면 분명 그 눈동자를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강식은 확신했다.


‘···우리 일을 방해하는 자라면 머리통에 이 빠루를 박아주는 수밖에...' 


부스럭, 소리가 돌담 옆에서 들려와 고개를 획 돌리며 손에 쥔 빠루를 움켜쥐었다. 주인 없는 들 고양이가 풀숲을 헤치고 사뿐, 돌담 위로 뛰어올랐다. 강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고양이가 초인종을 눌렀을 리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여기에 볼 일이 있는 사람은 주변에 없는 것 같았다.


휴대폰을 켜고 팔을 뻗어 보았다. 여전히 통화 신호가 잡히지 않았고 와이파이 또한 연결되지 않았다. 강식은 고개를 갸웃 하고는 다시 현관문을 닫고 들어갔다.


진주에게 빠루를 건네고 현관문과 창문의 커튼을 더 꼼꼼히 쳤다. 다시 커다란 번호 자물쇠를 채운 뒤, 가위를 가져와 초인종 케이블을 톡 잘랐다. 혹시 누군가 잘못 찾아오거나 장난을 치더라도 방해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지하창고의 문이 닫히자 명희는 필사적으로 눈을 뜨고 몸을 일으키려 했다. 팔다리도 묶여있지 않았지만 몸을 가누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쓰러져 있을 수는 없었다. 이대로라면,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주인아저씨가 날 죽이려 할 것임을 명희는 직감하고 있었다.


턱이 볼록 튀어나올 정도로 어금니를 악물고 일어서려 애썼다. 언제 다시 주인내외가 들이닥칠지 모르는 일이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기운을 차리고 어떻게든 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계속 말했다.


욕조를 붙잡고 겨우 일어섰을 때 욕조 안에 구겨져 있는 대규와 성찬이 보였다. 대규는 뒤통수가 거의 함몰되다시피 했고 이미 욕조 가득 피를 흘리고 있었다. 엎드려 쓰러진 채 머리가 수챗구멍을 막고 있어서 피가 온전히 빠지지 못해 얼굴이 반쯤 피에 잠겨있었다.


성찬은 경련이 일어난 간질 환자처럼 눈을 감은 채 눈동자가 이리저리 떨리는 것처럼 보였고 팔목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방금 죽어서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인지 아직 살아있는 것인지 명희는 구분할 수 없었다. 모두 피칠갑을 한 시체더미들 같았다.


"우욱."


명희는 욕조 옆에 구토를 쏟아냈다. 흥건한 피를 보니 정신이 아득해져왔다. 두려움과 처참함이 온몸을 덮쳤다. 그러나 속을 게워내고 나니 머리는 되레 조금 맑아지는 듯했다. 비릿한 피 냄새가 명희의 코를 통해 폐부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었고, 살아야 한다는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욕망이 본능적으로 몸을 일깨웠다. 명희는 다시 욕조를 잡고 일어섰다.


대규와 성찬의 처참한 몰골을 보지 않으려 고개를 돌렸다. 여러 개의 선반이 보였고 선반 위에는 공구며 농기구들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심호흡을 하고 천천히 걸었다. 따귀를 몇 번 때리고 가슴을 쳐 보기도 했다. 몸에 피가 도는 것 같았고 가격당한 뒤통수가 욱신거려 왔다. 온전히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명희는 선반들 뒤쪽에 몸을 숨겼다. 그러나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침착하자... 침착해. 일단 지금 문을 열고 나가면... 복도에서 마주칠 수도 있어. 아까 초인종 소리가 나는 것 같았고. 만약... 그게 주인아저씨와 약속된 사람이었으면 그렇게 다급하게 올라가진 않았을 거야. 아줌마도 그렇고... 헌데 조용한걸 보니 아무 일도 없는 걸까.


천천히 저 문을 열고 위로 올라가 볼까? 올라가서는 어디로...? 다시 방에 갈 수는 없어. 경옥언니... 경옥언니가 날 쓰러뜨린 거잖아. 맞아, 이건 확실해··· 분명 경옥언니도 한 패야. 저 살인마들과 한 패... 언제 서로 알게 된 걸까? 무슨 거래가 있었던 걸까...?


아니, 지금은 이런걸 생각할 때가 아니야. 거실로 올라가면 무조건 이 건물 밖으로 나가야 해. 밖으로 나가서 돌담과 귤 밭, 그래, 귤 밭쪽으로 뛰어가자. 한 참을 가야하지만 그래도 길이 아니라 밭으로 달려 나가야 숨어가며 마을로 내려갈 수 있을 거야.


어제 들어올 때 보았던 내비게이션에서... 마트까지 꽤 멀었었지? 몇 킬로미터나 되었던 것 같은데... 그래도 민가는 있을 거야. 핸드폰. 핸드폰이 없구나.


할 수 없다... 밖으로 뛰어나가서 제일 먼저 보이는 집을 두들기고 경찰에 신고하자. 그 길 밖에 없어. 일단 여기서 빠져나가야 해. 지금... 지금 문을 열어볼까?'


명희는 선반들 옆으로 천천히 걸었다. 명희 키보다 높은 선반이 네 개씩 두 줄로 세워져 있었다. 한 걸음씩 문 쪽으로 다가갔다.


'문을 열고 한달음에 계단을 뛰어올라 현관 밖으로 달려 나간다. 잠깐, 거실에 사장 내외가 있으면? 내가 그 둘을 피할 수 있을까? 혹시 다른 곳에 있을지도 몰라. 어쩌면 방에서 쉬고 있을지도... 우선 확인해 보자. 이대로 있을 수는 없어.'


명희가 서서히 도어록의 'open' 버튼을 누르려 손가락을 가져가는데 꾹꾹꾹 소리가 들리며 문이 살짝살짝 흔들렸다. 문 너머에서 누군가 도어록 번호를 누르는 소리였다. 명희는 뒤로 털썩 주저앉았다가 선반 뒤쪽으로 후다닥 몸을 숨겼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기절할 정도로 무서웠지만 아까처럼 맥없이 떨고 있지만은 않을 거라 다짐했다.


'여기서 나간다. 여기서 나간다. 여기서 나간다...'


명희는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지잉. 낮고 조용한 기계음을 내면서 문이 열렸다. 강식은 무표정하고 창백한 얼굴로 창고에 발을 디뎠다. 진주도 조용히 뒤를 따랐다. 강식이 몇 걸음 들어와 우뚝 멈춰 섰다. 명희를 내려놓은 자리에 명희가 없고 토사물만 있었다. 강식은 허리에 두 손을 얹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가지가지 한다 진짜..."


진주는 토사물을 힐끗 보더니 문을 닫았다. 강식에게 빠루를 건네주고 벽을 따라 창고 구석을 살피며 천천히 걸었다. 조용한 발걸음 소리만 창고에 퍼졌다. 네 개의 선반 사이사이를 살펴볼 요량이었다.


강식은 진주의 움직임을 보고 반대 방향으로 천천히 걸었다. 제법 넓은 창고였지만 워낙 깔끔하게 정리해 놓아서 만약 여기 어딘가 숨어있다면 도망칠 수는 없을 거라고 강식은 생각했다.


발소리가 양쪽으로 갈라지자 명희는 고개를 들지 않고 좌우를 살폈다. 눈앞의 선반에는 페인트 통들이 놓여 있었다. 속이 비어있는 통 하나를 집어 먼 쪽으로 던졌다. 캉카강 - 빈 깡통이 요란하게 떨어졌고 강식과 진주가 소리 난 쪽으로 달려드는 모습을 본 명희는 온 몸으로 선반을 밀어 넘어뜨렸다.


그 선반에는 간이 발전기, 전기톱 등등이 놓여있어서 제법 무거웠고, 묵직하게 넘어가던 선반의 모서리가 강식의 오른 쪽 오금을 강타했다.


"아악-!"


강식은 무릎 뒤쪽을 잡고 쓰러졌다. 오른 다리가 선반에 깔렸다.


"여보-!"


진주는 선반을 들어 올려 강식의 다리를 빼내려했다.


명희는 도어록의 'open' 버튼을 눌렀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게스트하우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16.12.28 269 0 -
32 32. 내미는 손 / 마지막 회 17.01.15 318 4 8쪽
31 31. 인천으로 17.01.13 230 4 13쪽
30 30. 도플갱어 Doppelgänger  17.01.12 239 4 9쪽
29 29. 그냥 가지 그랬어 17.01.11 239 4 9쪽
28 28. 내가 말했잖아 17.01.10 220 4 10쪽
27 27. 그럴 리가 없어 17.01.09 294 4 11쪽
26 26. 마지막 부탁 17.01.06 249 5 10쪽
25 25. 이게 대체 어떻게... 17.01.05 203 4 10쪽
24 24. 추격 17.01.04 236 4 16쪽
23 23. 빨리 구급차를 17.01.04 253 5 9쪽
22 22. 절대로 용서 못해 17.01.03 246 5 9쪽
21 21. 설득은 필요 없어 17.01.03 256 5 10쪽
20 20. 그냥 죽어주면 돼요 17.01.03 244 5 9쪽
19 19. 카오스 CHAOS 17.01.01 236 5 8쪽
18 18. 반격 17.01.01 229 4 9쪽
17 17. 저는 기회를 드렸어요 16.12.31 228 4 11쪽
16 16. 붉은 눈, 열린 문 16.12.30 207 4 10쪽
15 15. 탈출, 그러나 16.12.30 315 4 10쪽
» 14. push to open button 16.12.29 256 4 10쪽
13 13. 자물쇠 밖의 그림자 16.12.29 334 4 12쪽
12 12. 지하실로 가는 길 16.12.28 259 4 12쪽
11 11. 하나씩, 하나씩 16.12.28 289 4 10쪽
10 10. 굿바이 파티 16.12.28 279 4 8쪽
9 9. 뒤틀림 16.12.28 304 4 8쪽
8 8. 여기 와줘서 고마워요 16.12.28 400 4 9쪽
7 7. 평소와 다른 눈빛 16.12.28 368 4 11쪽
6 6. one more day +1 16.09.20 404 6 12쪽
5 5. 나와 닮은 사진 +1 16.09.19 858 6 9쪽
4 4. 너는 웃는 얼굴이 예뻐 +1 16.09.16 446 6 7쪽
3 3. check in 16.09.15 413 6 9쪽
2 2. 숙소는 파랑 게스트하우스야. 16.09.13 434 7 8쪽
1 1. intro : 제주도로 가라 +1 16.09.12 920 6 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