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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은수님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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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추리

완결

우은수
작품등록일 :
2016.09.12 16:59
최근연재일 :
2017.01.15 17:16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10,443
추천수 :
147
글자수 :
139,273

작성
16.09.20 09:08
조회
404
추천
6
글자
12쪽

6. one more day

DUMMY

명희는 침대에 누워 오늘 찍은 사진을 한 장씩 넘겨 보았다. 출발할 때부터 잔뜩 들뜬 모습들이 사진 속에 고스란히 남겨져 있었다. 경옥은 간이 화장대 앞에 앉아 화장품을 펴 발랐다. 한껏 상기된 명희의 얼굴과 달리 경옥의 표정은 어둡고 건조했다. 명희는 여기 이 사진 잘나왔다고, 이 사진은 어떻고 다음 사진은 어떤 점이 좋다며 혼자 신이 나서 떠들었다.


명희는 메신저 프로그램으로 여러 사진을 경옥에게 보냈다. 출발 전 공항, 비행기 안, 제주공항에 내린 인증샷, 고기국수, 해수욕장, 올레길 등 다양했다. 사진들을 유심히 살피던 명희가 경옥에게 물었다.


“언니, 아까 올레길에서 몸이 어디 불편했었어?”


“아니? 전혀 그런 일 없었는데··· 왜?”


“으응, 몇몇 사진에서 언니 얼굴이 조금 굳어있는 것처럼 보이길래.”


화장품을 바르던 경옥은 거울 속의 자기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거울 속에서, 경옥은 울고 있었다. 아무 말도 않은 채 화장품 속에 녹아든 눈물을 경옥은 담담히 펴 발랐다. 명희가 눈치 채지 못하게 벽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침대에 누우며 엄살스럽게 말했다.


“피곤했나부지~ 너도 나이 먹어봐라 얘. 해질녘쯤이면 당 떨어져서 힘들어."


명희는 여전히 핸드폰 사진들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응 다행이네. 내일 또 여행하려면 푹 쉬어야겠다. 내일은 어디 갈거야?”


“내일? 내일··· 글쎄 어디 였더라··· 잠깐만 찾아볼게."


경옥은 휴대폰을 뒤적이며 메모를 찾는 척 했지만 강식에게서 온 문자를 다시 보고 있었다.


‘이따 두시에 가지러 갈게요.’


‘네.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시계는 열한시 반을 지나고 있었다.


“어디다 적어뒀더라···"


경옥이 휴대폰을 이리저리 눌러가며 무언가 찾는 시늉을 하다가 제주 여행 지도를 펼쳐들고 말했다.


“어디보자··· 내일은 일단 아침밥을 여기 게하에서 간단히 먹고. 성산 일출봉에 갔다가 중문 쪽에 관광지를 갈까 하는데, 어때?”


“응, 좋아 좋아. 언니가 정하는 대로 다~ 좋아. 근데 언니, 아까 걔네들 어떤거 같아?”


“걔네들? 누구? 아··· 남자애들 둘? 어떻긴 뭐. 말 많던 애는 딱 보기에도 바람둥이고, 조용하던 애는 잘 모르겠던데. 왜? 맘에 들어?”


“그냥~ 재밌는 애들인 거 같은데 언니 보기엔 어떤가 해서.”


“잠깐 얘기해보고 어떻게 알겠냐. 얼렁 자, 그래야 내일 또 놀지.”


휴대폰으로 계속 사진을 돌려보던 명희가 전화기를 내려놓고 경옥 쪽으로 돌아누우며 말했다.


“언니.”


“···왜?”


“···고마워.”


“뭐가?”


“여기 데려온 거. 비행기부터 렌트카, 식당, 숙소까지 언니가 다 알아봐줬잖아. 언니가 가자고 하지 않았으면 지금쯤 엄청 후회하면서 방바닥이나 긁고 있을 거야. 내일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경옥은 명희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계속 지도를 보며 별일 아니라는 듯 가볍게 말했다.


“고맙긴 뭘.”


“나 처음에 회사에 들어왔을 때에도 언니가 젤 많이 챙겨주고 말도 많이 걸어주고 밥도 같이 먹고 그랬잖아. 친 언니 같았다니깐.”


경옥은 명희의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시울이 붉어지는 걸 명희에게 보이지 않기 위해서였다.


‘미안해 명희야. 미안해···.’


명희는 계속 옛날 생각이 나는지 말을 이어갔다.


“작년이었나, 괌 여행객들 중에서 진상 또라이가 막말했을 때, 그때도 언니가 나서서 다 정리해주고. 다들 우왕좌왕할 때 언니가 해결하는 거 되게 멋있었거든. 언니한테 일도 많이 배웠고.”


경옥은 울음이 터지려는 걸 겨우 참았다. 어깨가 떨리는 것을 간신히 견디며 길게 숨을 내쉬고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말했다.


“술 취했냐? 오늘따라 말이 많구만. 이제 자자~ 나 늙었나봐, 피곤해.”


명희도 바로 누우며 말했다.


“응 그래, 잘 자 언니.”


경옥은 돌아누워 꼼짝 않고 자는 척 했다. 명희는 이내 다시 휴대폰을 집어 들고 이것저것 살펴보고 있었다.


*


새벽 두시를 알리는 휴대폰 소리가 들려왔다. 강식과 진주는 조용히 방에서 나와 계단 앞에 섰다. 조용했다. 윗 층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강식은 거실 한 쪽 구석에 있는 CCTV 녹화기 문을 열고 전원을 껐다. 달빛만이 게스트 하우스 거실을 은은히 비추고 있었다. 창백한 강식의 얼굴이 달빛을 받아 유난히 하얗게 빛났다. 진주는 달빛이 닿지 않는 거실의 그늘진 곳을 따라 계단 쪽으로 걸었다.


삐그덕 소리가 나는 곳을 피해 밟으며 강식과 진주는 고양이처럼 조용히 계단을 올랐다. 2층 숙소들 앞에 서자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 각 방에서 어떤 소리가 나는지 모든 신경을 집중해 뚫어져라 객실들을 바라보았다. 어디선가 말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은 소리가 나는 방 앞으로 소리 없이 다가갔다.


대규와 성찬의 방에서 둘의 말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문 너머로 듣기에도 이미 둘은 많이 취해 있었다. 강식은 진주를 보며 가볍게 고개를 저었고 둘은 다시 1층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경옥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기다려 주세요.’


*


경옥은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명희가 ‘여기 데려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했을 때, 돈이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독하게 마음먹었던 지난날과 그간의 아픈 기억들이 한꺼번에 일어나 경옥에게 매달렸다. 여기는 네가 죽을 곳임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데려와줘서 고맙다는 동생이, 단지 의뢰인과 비슷하게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죽어야 하는 명희의 운명이 가엾고 또 안타까웠다.


하지만 경옥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되뇌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어 일이 진행 중이야... 만약 틀어지면 내가 위험해. 흔들리면 안돼.'


모질게 마음을 다잡고 또 다잡았다. 끈질기게 달라붙는 죄책감들을 애써 떨궈 놓으려 몸부림치는 와중에 새벽 두 시는 금세 찾아왔다. 무음으로 바꿔놓은 휴대폰 화면이 소리 없이 밝아졌다.


‘기다려 주세요.’


강식은 기다리라 했고 다른 설명은 없었다. 경옥은 슬그머니 명희를 돌아보았다. 명희는 세상모르고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경옥은 이내 다시 고개를 돌렸다. 애써 결정한 마음이 다시 흔들리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채칵, 채칵, 채칵···


시계바늘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마취약과 손수건은 강식에게 받아 준비해 두었는데 언제쯤 움직여야 할지··· 새벽 두 시가 되기를 초조하게 기다렸는데 더 기다리라는 메시지는 숨이 가빠질 정도로 경옥의 목을 졸라왔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기다려야 한다, 기다려야만 한다···.'


*


세시가 가까워져 가고 있었다. 강식은 협탁의 조그만 스탠드만 켜 놓은 채 침대에 반 쯤 누워 책을 읽고 있었다. 진주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연신 하품을 해댔다. 삐그덕, 하는 발소리가 나자 진주가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대규가 거실에 있는 냉장고에서 캔 맥주를 꺼내고 있었다. 진주가 한심하다는 듯 길게 한숨을 내쉬고 대규에게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


"저기요."


대규는 술에 취해 눈이 풀린 채로 돌아보며 씨익 웃었다.


"어, 안녕하세요 사장님. 아직 안주무세요?"


"시간이 너무 늦었네요. 이미 많이 마신 것 같은데, 오늘은 이만 쉬어요."


대규는 손에 들고 있던 캔 맥주 두 개를 자기 얼굴 옆에 들고는 딸랑딸랑 흔들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따악~~~~ 요고만 마시고 자겠습니다. 저 때문에 깨신 거면 미안해요 사장니임."


진주가 무어라 더 말할 틈도 없이 대규는 꾸벅 인사하고 맥주를 들고 계단을 올랐다. 휘청, 대규가 계단에서 넘어질 뻔 하면서 나무 계단을 쿵쿵 울리는 발소리가 크게 났다. 진주는 팔짱을 끼고 대규가 올라가는 걸 보고 있었고, 대규는 창피했는지 진주를 돌아보고 다시 꾸벅 인사한 후 까치발로 조용히 계단을 올랐다.


진주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방으로 들어오니 강식이 가슴을 부여잡고 주먹으로 쿵쿵 치면서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진주는 화들짝 놀라 강식에게 후다닥 달려왔다.


"많이 아파요? 괜찮아? 약 줄께 쫌만 참아."


진주가 서랍을 뒤져서 알약 두 알과 물통을 가지고 왔다. 강식은 긴 손가락을 덜덜 떨면서 알약을 간신히 쥐고 입에 넣은 후 힘겹게 물을 삼켰다. 진주는 강식의 허벅지와 종아리를 꾹꾹 주무르며 마사지했다. 주먹으로 가슴을 툭툭 치던 강식은 조금 나아지는지 길게 심호흡을 하곤 말했다.


"이제 괜찮아. 오늘 갑자기 이러네. 긴장해서 그런가봐... 내 약 얼마나 남았어?"


진주가 서랍에 있던 약상자를 하나씩 책상에 올려놓으며 세어 보았다. 아직 뜯지 않은 작은 종이상자 여섯 개와 뜯은 상자 하나였다.


"예순두 알 남았어. 한 달은 괜찮겠다. 이번 일 끝나면 오천만원 이니까... 열 두 통 살 수 있네.”


강식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뉘었고, 진주는 다시 약들을 서랍에 넣었다. 강식이 눈을 감고 천천히 심호흡을 한 뒤 말했다.


"그래도 이제 많이 좋아졌다고 하니까... 약 안 먹어도 되는 날이 곧 올거야. 다 자기 덕분이야. 고마워."


진주는 강식의 손을 잡았다.


"...금방 나을 거야. 힘내."


"약값만 아니었어도 이런 게스트하우스 몇 개는 더 지었겠다. 그치?"


강식이 미안한 듯 말하자 진주가 걱정말라는 표정으로 살짝 웃으며 손을 주무르며 말했다.


"난 자기만 있으면 돼."


"이번 일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어. 수치도 정상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의사도 그랬고... 이제 무서운 짓 그만하고 살자. 이번이 마지막이야."


진주가 강식 쪽으로 돌아누우며 말했다.


"그래, 이번이 마지막이야. 오늘은 그냥 쉬자. 몸도 안 좋은데."


"응... 내일 하자 내일. 경옥씨에게 연락할게."


강식과 진주는 주문을 외우듯 스스로에게 같은 말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내일 하면 되지 머. 별거 아니야. 이번이 마지막이야. 이번이 마지막...'


*


세시 십오분이었다. 경옥은 벽 쪽으로 누운 채 충혈 된 눈으로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휴대폰이 메시지가 도착했음을 알리며 소리 없이 밝아지자 경옥은 신경질적으로 급히 화면을 눌러 내용을 확인했다.


'오늘은 안 되겠어요. 내일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경옥은 메시지를 읽자마자 베게에 얼굴을 파묻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한편으로 안심했다. 아직은 마음의 준비가 덜 되었는지도 몰랐는데, 내 손으로 명희의 코와 입을 마취제로 틀어막고 기절한 명희를 끌고 나가는 모습을 보는 게 너무 힘들 것 같았는데, 그것이 오늘은 아니었다.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들어 메시지를 보냈다.


'네.'


경옥은 자리에서 일어나 명희의 옆에 우두커니 섰다. 잠든 명희에게 낮은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명희야."


명희는 입을 약간 벌리고 천진한 표정으로 잠들어 있었다.


"하루 더 늘어났네. 니가 사는 시간..."


경옥은 휴대폰에서 사진을 열었다. 사진 속에는 산소 호흡기를 단 어린아이가 손가락으로 V를 그리며 웃고 있었다. 경옥은 휴대폰 속 아이와 명희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휴대폰을 끈 경옥이 단호하게 말했다.


"내일은 망설이지 않을 거야. 잘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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