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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은수님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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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추리

완결

우은수
작품등록일 :
2016.09.12 16:59
최근연재일 :
2017.01.15 17:16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10,430
추천수 :
147
글자수 :
139,273

작성
16.12.28 11:01
조회
304
추천
4
글자
8쪽

9. 뒤틀림

DUMMY

시계 바늘이 한 시 삼십 분을 지날 때 진주는 눈을 떴다.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기만 할 뿐이어서 이십분마다 시계를 꺼내보았다. 강식은 침대 옆의 스탠드 불빛에 기대어 책을 읽고 있었다. 진주가 일어난 것을 알아보고 머리를 쓰다듬어주고는 침대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조금 더 쉬고 있어. 먼저 준비하고 있을게."


진주는 기지개를 켜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옆으로 돌아누우며 베게 속에 얼굴을 파묻었다. 다시 잠을 청할 모양이었다.


방문을 열고 나온 강식에게 거실의 통유리로 달빛이 옅게 비쳤다. 구름이 끼어서 달은 밝지 않았으나 강식은 어둠에 익숙했다. 전등을 켜지 않은 채 거실 한쪽의 CCTV 녹화기로 다가가 자물쇠를 열고 전원을 내렸다. 빨간색 작은 램프가 켜져 있던 돔 모양의 CCTV 카메라에 불이 꺼졌다. 슬쩍 카메라를 확인한 강식은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쪽을 한 번 쳐다본 뒤 반대쪽에 지하실로 내려가는 문으로 향했다.


언뜻 보기엔 지하실이 있는지 알 수 없게 생긴 문이었다. 깨끗한 흰색 2중 미닫이문에 귀여운 글씨체로 'STAFF ONLY' 스티커가 붙어 있었으며 두 개의 문이 겹쳐지는 가운데 부분에 돌려서 잠그는 레버가 있었다. 그곳은 단순한 창고나 오래된 붙박이장의 문을 깨끗하게 색칠해놓은 느낌이었다. 손님들이 있을 때에는 강식과 진주 누구도 그 문을 열지 않았다.


강식은 소리 나지 않게 레버를 돌려 풀고 문을 열었다. 문 아래의 콘크리트 계단에는 슬리퍼 두 켤레가 놓여 있다. 슬리퍼를 신고 조용히 문을 닫은 강식은 휴대폰의 랜턴 기능을 켜고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여덟 계단, 여기까지는 문과 같이 흰 색으로 벽과 계단이 칠해져 있었다. 


계단의 중간지점을 돌면 아무 색깔도 칠하지 않은, 회색 콘크리트 벽과 회색 계단이었다. 다시 여덟 계단을 내려가니 전자 도어록이 달려있는 철문이 나왔고, 귀여운 글씨체로 '창고'라고 쓰인 A4지가 코팅되어 붙어 있었다. 강식은 도어록 커버를 열고 키패드를 꾹꾹 눌렀다.


'지이잉.'


도어록이 열리는 낮은 모터 소리만 울렸다. 깜깜한 지하실 속으로 내딛는 강식의 발이 휴대폰 랜턴에 보였다. 천천히, 살살 문을 닫고서 '잠금' 버튼을 누르니 도어록은 낮은 기계음을 내며 문을 잠갔다. 그리고 나서야 강식은 팔을 뻗어 불을 켰다.


강식은 찬찬히 지하실을 살펴보았다. 커다란 김치 냉장고 한 대가 있었고 강식의 키보다 높은 3층 선반에는 각종 농기구가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다. 한쪽 구석에는 욕조가 놓여 있었고 욕조 옆에는 각종 공구와 목조 건축용 실톱 머신이 잘 관리되어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다. 욕조를 살펴보던 강식은 무언가를 발견하고 허리를 숙여 자세히 살펴보았다.


"응?"


피 한 방울이 벽 쪽의 욕조 끄트머리에 굳어 있었다. 강식은 이게 왜 여기 남아있는지 알 수 없었다. 고개를 갸웃 하고는 농기구가 정리된 선반으로 다가가 소독용 알코올과 솜을 가져왔다. 솜에 알코올을 묻히고 능숙하게 닦아 나갔다. 뽀드득, 소리를 내며 욕조는 깨끗하게 닦여 나갔고 강식은 만족스럽게 씩 웃은 뒤 알코올을 제 자리에 두었다.


선반에는 각각 물건을 놓는 자리가 정해져 있어서 견출지에 깔끔한 글씨체로 '알콜'이라고 쓰여 있었다. 바로 옆에는 '디카'라고 쓰여 있었고, LCD 화면이 작은 구형 디지털 카메라가 한 대 놓여있었다. 강식은 디카를 집어서 전원을 켜고 녹색 세모 버튼을 눌러서 찍혀 있는 사진들을 확인해 보았다.


사진 속에는 방금 닦았던 욕조에 한 남자가 양쪽 팔목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수챗구멍으로 흘러들어가는 피와 손목의 상처, 입을 벌리고 고개를 뒤로 젖힌 채 눈이 뒤집어진 남자의 얼굴, 피로 물든 바지와 괴기스럽게 뒤틀려 부러진 발가락, 깊숙이 베고 씻어낸 듯 절단면이 선명히 드러나 보이는 팔목의 상처 클로즈업 사진 등을 강식은 무표정하게 넘겨보았다. 한 장씩 한 장씩 사진을 넘겨보던 강식이 중얼거렸다.


"...이번엔 옷을 벗기고 피를 빼볼까... 에이, 아니다. 그게 더 번거롭겠네."


디카를 끄고 다시 선반에 올려놓았다. 휴대폰을 보니 한시 오십분이었다.


“그럼, 슬슬 가지고 와 볼까.”


*


경옥도 눈을 뜨고 있었다. 한시 오십분. 곧 강식에게서 연락이 올 것이다. 그러면 경옥이 해야 할 일은 간단했다. 마취약을 묻힌 손수건으로 자고 있는 명희의 얼굴을 덮고, 문을 열어주기만 하면 된다. 거기까지다. 거기까지만 하면 된다. 경옥은 흔들리지 않을 거라고 계속 되뇌고 또 다짐했다.


그러나 점점 빨라지는 심박 수와 가늘게 떨려오는 손끝은 경옥의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 그것도 범죄에 대한 두려움은 억누르려 해도 그럴 수가 없었다. 경옥은 두려움이 덮칠 때마다 길게 숨을 내쉬고 이불 속에서 휴대폰의 어린 아이 사진을 보았다. 그리고 눈을 질끈 감았다. 이번 한 번 만이다. 이번 한 번만.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있을 때 문에서 소리가 났다.


'덜컥 덜컥'


누군가가 문고리를 잡고 흔드는 소리였다. 경옥은 화들짝 놀라 휴대폰을 다시 보았다. 한시 오십삼 분. 아직 강식에게서 별다른 연락은 없었다. 내가 잘못 들은 것일까? 아니면 연락 없이 온 것일까? 경옥은 당황했다. 그러나 문고리는 다시 흔들렸다.


'덜컥 덜컥 덜컥'


분명 누군가 문 밖에서 문을 열려고 손잡이를 흔드는 소리였다. 이걸 열어야 하는 것인가. 아직 내가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했는데 저렇게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오면 어쩌려는 것인가. 경옥은 어지러웠다.


'침착해라 경옥아. 침착해. 지금이라도 빨리 이불 밖으로 나가서 손수건에 약물을 묻힌 후 명희의 얼굴을 덮고 문을 열자.'


경옥은 벽 쪽으로 돌아누운 채 생각했다. 그때 뜻밖의 소리가 들려왔다.


"언니, 자?"


철렁, 경옥의 가슴이 내려앉았다. 명희가 깬 것이다. 일어나야 할까? 아니면, 이대로 기다릴까? 경옥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고민하고 있는 사이에 또, 문고리가 흔들렸다.


'덜컥 덜컥'


명희가 조심스레 침대에서 일어나 겁먹은 표정으로 문 앞에 서서 나지막이 물었다.


"...누구세요?"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명희는 문 쪽으로 귀를 향하고 작은 소리라도 들으려 애쓰는 중이었다. 경옥은 여전히 돌아누워 아무것도 못하고 있었다. 명희는 무서웠고 경옥은 혼란스러웠다. 두 명 모두 무엇을 어찌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다시, 문고리가 흔들렸다.


'덜컥 덜컥 덜컥.'


명희가 화 난 목소리로 말했다.


"누구세요."


문 밖에서 나지막한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명희도, 경옥도 들었다.


"아우 씨..."


밖의 남자는 문고리를 더욱 거칠게 잡고 흔들었다.


'덜컥 덜컥 덜컥 덜컥'


명희는 침대에 놓아 둔 휴대전화를 찾아 들고 문 앞에 서서 말했다.


"자꾸 이러면 주인아저씨나 경찰을 부를 꺼에요! 그만하..."


'퍽'


경옥이 소화기로 명희의 머리를 내리 쳤다. 명희는 의식을 잃고 풀썩 쓰러졌다. 쓰러진 명희를 보고 경옥이 어떤 생각을 할 틈도 없이 문고리는 계속 흔들렸다. 이러다가는 문고리 흔드는 소리에 다른 방의 사람들까지 깰 지경이었다. 경옥이 소리 나지 않게 문을 열며 낮은 목소리로 타박하듯 말했다.


"미리 연락을 해야죠 갑자기 이러면 어떻..."


문 앞에 선 남자의 발부터 눈에 들어온 경옥은 시선이 올라오다가 얼굴을 보고 말문이 막혔다. 대규가 술에 취해 문 앞에 서 있었다. 비틀거리는 대규가 혀 꼬부라진 소리로 말했다.


"어? 누나 왜 우리 방에서 나와요? 쟤는 왜 방바닥에서 자냐... 어? 명희 머리에 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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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32. 내미는 손 / 마지막 회 17.01.15 319 4 8쪽
31 31. 인천으로 17.01.13 230 4 13쪽
30 30. 도플갱어 Doppelgänger  17.01.12 239 4 9쪽
29 29. 그냥 가지 그랬어 17.01.11 239 4 9쪽
28 28. 내가 말했잖아 17.01.10 220 4 10쪽
27 27. 그럴 리가 없어 17.01.09 294 4 11쪽
26 26. 마지막 부탁 17.01.06 250 5 10쪽
25 25. 이게 대체 어떻게... 17.01.05 203 4 10쪽
24 24. 추격 17.01.04 236 4 16쪽
23 23. 빨리 구급차를 17.01.04 253 5 9쪽
22 22. 절대로 용서 못해 17.01.03 246 5 9쪽
21 21. 설득은 필요 없어 17.01.03 257 5 10쪽
20 20. 그냥 죽어주면 돼요 17.01.03 244 5 9쪽
19 19. 카오스 CHAOS 17.01.01 237 5 8쪽
18 18. 반격 17.01.01 230 4 9쪽
17 17. 저는 기회를 드렸어요 16.12.31 229 4 11쪽
16 16. 붉은 눈, 열린 문 16.12.30 208 4 10쪽
15 15. 탈출, 그러나 16.12.30 316 4 10쪽
14 14. push to open button 16.12.29 257 4 10쪽
13 13. 자물쇠 밖의 그림자 16.12.29 334 4 12쪽
12 12. 지하실로 가는 길 16.12.28 260 4 12쪽
11 11. 하나씩, 하나씩 16.12.28 290 4 10쪽
10 10. 굿바이 파티 16.12.28 280 4 8쪽
» 9. 뒤틀림 16.12.28 305 4 8쪽
8 8. 여기 와줘서 고마워요 16.12.28 401 4 9쪽
7 7. 평소와 다른 눈빛 16.12.28 368 4 11쪽
6 6. one more day +1 16.09.20 404 6 12쪽
5 5. 나와 닮은 사진 +1 16.09.19 858 6 9쪽
4 4. 너는 웃는 얼굴이 예뻐 +1 16.09.16 446 6 7쪽
3 3. check in 16.09.15 413 6 9쪽
2 2. 숙소는 파랑 게스트하우스야. 16.09.13 434 7 8쪽
1 1. intro : 제주도로 가라 +1 16.09.12 920 6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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