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우은수님 님의 서재입니다.

게스트하우스

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추리

완결

우은수
작품등록일 :
2016.09.12 16:59
최근연재일 :
2017.01.15 17:16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10,416
추천수 :
147
글자수 :
139,273

작성
17.01.05 18:26
조회
202
추천
4
글자
10쪽

25. 이게 대체 어떻게...

DUMMY

달빛이 이렇게 밝은지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가로등은커녕 아무런 불빛도 없는 귤 밭은 달빛만으로도 훤히 내다보였다. 오직 앞으로만 나아가는 명희와 나연에게 달빛은 충분히 밝았으나, 정확히 여기가 어디인지 또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명희와 나연은 절룩거리며 겨우 겨우 발걸음을 떼어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소리와 풀벌레 소리, 나무 조각을 밟아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어둠을 채웠다. 맨발로 뛰쳐나온 명희와 나연은 발바닥이 긁히는 상처에도 아랑곳 않고 계속 걸었다. 어떻게든 게스트하우스에서 멀리 떨어져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귤나무들 사이로 걸으며 명희가 말했다.


“이 귤 밭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야··· 어제··· 그 할머니 할아버지··· 그래, 길 따라서 가다보니 집이 있었어. 그쪽으로 가자. 가서 얼른 신고하자.”


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명희의 발목은 더욱 부어올라 거의 한쪽 다리로 걷다시피 했다. 필사적으로 걷고 또 걸었지만 너무 느렸다. 바스락, 바스락··· 두 사람이 걷는 소리만 났었는데 등 뒤 멀리에서 툭툭툭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뛰어오는 발소리였다. 명희도, 나연도 소리를 들었다. 긴장한 둘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멀리서 진주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다!”


명희와 나연은 화들짝 놀라며 재빠르게 귤나무들 사이로 몸을 숨겼다. 그러나 둘이 서로를 붙잡고 절름거리며 나아가는 발소리는 뒤에서 뛰어오는 발소리에 비해 느리기만 했다. 이대로라면 둘 다 위험할 것 같았다.


'한 명이라도 여기를 벗어나야 해···'


가능한 빨리 경찰에 신고하고 구급차를 부르려면 나를 두고 나연이 달려가는 게 낫겠다고 명희는 생각했다. 명희가 나연을 붙잡아 세우며 말했다.


“우리 둘이 같이 가니까 너무 느리다. 둘이 반대쪽으로 가자. 나연아, 먼저 가.”


“언니 걷지도 못하잖아요. 그리고 혼자 가는 거 너무 무서운데...”


마른 나뭇가지를 밟아 부러지는 발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리 멀지 않은 곳까지 저들이 따라온 것이 분명했다. 명희가 나연의 손을 꼭 붙잡으며 말했다.


“잘 들어 나연아. 여기 위험해. 빨리, 빨리 달려가. 나는 어떻게든 숨을게. 걱정 말고, 먼저 달려가. 가서 신고하자, 응? 경찰에 신고하고 구급차도 부르고. 너라도 빨리 가야 해. 조심해서, 얼른 가. 언니 괜찮아.”


“언니···”


나연은 울먹이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서로 반대쪽으로 가자. 조심하고. 가, 먼저 가.”


명희가 나연의 손을 꼭 잡았다가 놓으며 어서 가라고 손을 흔들었다. 나연은 울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달려갔다. 작고 가냘픈 체구의 나연은 금세 명희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연의 발소리가 멀어짐과 함께 뒤에서 따라오는 발소리는 점점 커졌다.


명희는 낮은 돌무더기 쪽으로 절룩절룩 걸었다. 부어오른 발로 땅을 짚을 때마다 통증이 밀려왔지만 억지로 신음소리를 삼키며 이를 악물고 걸었다. 바로 뒤까지 진주가 따라온 것 같았다. 이대로 도망치다 잡힐 수는 없었다. 그러나 빨리 달려갈 수도 없었다. 명희는 돌무더기 뒤로 몸을 숨기고 주저앉아 빠루를 꼭 붙잡았다.


'여차하면 이걸 휘두르는 거야···'


명희는 꼭 여기서 빠져나가겠다고 몇 번이나 속으로 다짐했다. 이 무서운 도구로 사람을 해치는 일이 생기지 않길 바라지만 이대로 잡히지는 않을 거라고, 아니 잡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목숨 걸고 도와준 숙영과 나연, 성찬에게 보답하는 길이라 여겼다.


행여 숨소리가 퍼질까 조심해서 숨을 내쉬었다. 발소리는 점점 다가왔다. 빠루를 더욱 꼭 움켜쥐었다. 불과 몇 걸음 안에서 발소리가 느려지는 것이 들렸다. 부스럭··· 부스럭··· 누군가가 주변을 살피며 걷고 있었다.


달을 가리던 구름이 흘러가고 귤 밭이 다시 밝아졌다. 돌무더기에 등을 기대고 앉아있는 명희의 옆으로 발소리와 함께 사람의 그림자가 지나가고 있었다. 숨소리가 새나갈까 입을 막고 있는 손이 덜덜덜 떨렸다. 발자국 소리가 곁을 지나는 몇 초가 몇 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잠시 그 자리에 멈춰있던 그림자가 후다닥 뛰어갔다.


한 명··· 두 명··· 발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그제야 명희는 허억, 숨을 내뱉을 수가 있었다. 참았던 두려움이 몰려왔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러나 그대로 있을 수는 없었다. 바닥을 짚고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절룩거리며 힘겹게 걸음을 옮겼다. 한시바삐 민가를 찾아 경찰과 구급차를 불러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꺄아악!”


명희가 화들짝 놀라 소리 나는 쪽을 돌아보았다. 분명 나연의 목소리였다.


‘이게 대체 어떻게···’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명희는 다리를 다친 강아지가 억지로 뛰어가는 것처럼 껑충 껑충 뛰어 소리 나는 쪽으로 달렸다.


*


나연은 명희와 헤어지고 무작정 뛰어갔다. 명희가 말한 할아버지 할머니의 집이 어디쯤에 있는지, 지금 내가 어디에 있고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여기서 멀리 달려가기만 하면 다른 어딘가가 나올 것 같았다.


귤 밭은 넓었고 귤나무는 다 비슷해서 위치를 구분할 수 없으니 그저 앞으로만 갈 뿐이었다. 구름이 달빛을 가렸다가 비켜주기를 반복하면서 검정 돌담이 선명하게 보였다 숨었다를 반복했다. 돌담에 몸을 숨기고 잠시 숨을 고르며 주변을 돌아보는 사이, 나연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분명 아까 보았던 바위가 다시 있었다. 나연은 그 바위를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있으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계속 달려왔는데··· 설마 돌담을 따라 한쪽 안에서만 뛴 건가···?’


당황한 마음을 진정할 틈조차 없이 발소리가 들려왔다. 두 명이었다. 타닥타닥탁탁탁··· 발소리는 불규칙하게 점점 더 크게 다가왔다. 나연은 겁에 질려 숨이 더 거칠어졌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어디로 도망쳐야 하지···’


더욱 가까이 다가온 발소리는 한 명이 뛰는 소리였다. 나연은 소리 나는 쪽 반대로 무작정 뛰쳐나갔다.


콰당!


나연은 누군가와 부딪혀 소스라치게 놀라 비명을 지르며 넘어졌다. 숨이 멎을 것처럼 겁에 질려 고개를 드니 눈앞에는 잔뜩 화가 난 진주가 벌떡 일어나 노려보고 있었다. 나연은 손발이 덜덜 떨려와 주저앉은 채 뒷걸음질 쳤다. 다리가 풀려 일어설 수도 없었다.


진주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아무 말 없이 터벅터벅 걸어왔다. 옆에서 다가오던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경옥이 무표정한 얼굴로 나연과 진주 앞에 나타났다. 나연은 경옥의 발소리를 피해 달려가다 다른 쪽으로 돌아온 진주와 부닥친 것이었다.


진주와 경옥에게 둘러싸인 나연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두 사람을 번갈아보며 그저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진주가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말했다.


"귀찮아... 너희들..."


진주는 돌담에서 나연의 머리만큼 큰 돌을 집어 들었다. 몸이 휘청거릴 만큼 큼직한 돌을 머리 위로 높이 치켜들어 뒷걸음질 치는 나연을 향해 내던졌다. 한 번, 두 번을 억지로 돌을 들어 내리쳤고 세 번째 돌을 집어 들었을 때 명희가 소리쳤다.

 

"안 돼!"


명희는 절룩거리는 다리를 끌다시피 하면서 달려왔다. 그러나 조금 늦었다. 나연은 이미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눈을 감고 쓰러져 있었다.


나연의 아득한 의식 저 끝에서 명희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나연은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생각의 조각들만 막연하게 흘렀다.


‘명희 언니가 와 줬구나··· 다행이야. 아, 아닌데··· 명희 언니라도 빨리 가서 신고해야 하는데··· 엄마. 미안. 좀 늦을 거 같아. 미안해 엄마. 기다려줘...'


명희는 울부짖으며 진주에게 달려들었다. 명희를 힐끗 본 진주는 다시 한 번 만세를 부르듯 커다란 돌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가 내던졌다. 나연의 생각이 완전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눈물로 범벅이 된 명희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지르며 빠루를 휘둘렀다. 그러나 제대로 걷지도 못하며 휘두른 빠루는 진주에게 닿지도 못했다. 바닥을 내리치며 놓쳐버렸고 명희는 맥없이 넘어졌다. 명희는 피로 얼룩진 나연의 얼굴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아무리 느리더라도 나와 같이 가며 내가 지켜줘야 했었는데··· 저 작고 어린 나연이 얼마나 무서웠을지 생각하니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눈 감은 나연의 예쁘장한 얼굴에서 엄마 숙영의 얼굴이 보였다. 명희는 복도에서 자신을 구해준 숙영과 나연이 번갈아 떠올라 엉엉 소리 내며 울었다.


“이 나쁜 놈들···”


다시 일어나 빠루를 휘둘러보았지만 이번에도 명희의 발목이 견뎌주지 못하고 풀썩, 쓰러질 뿐이었다. 명희는 주저앉은 채 서럽게 소리 내 울었다. 진주는 무표정하게 명희에게 다가와 멈춰 섰다. 절망적으로 울던 명희가 일그러진 얼굴로 고개를 들어 진주를 노려보았다. 진주는 곁에 있던 바위에 손을 짚었다. 


“제발 좀 조용히 가."


진주가 주문처럼 혼잣말을 하고 바위를 들어올렸다.


퍽!


경옥이 빠루를 들어 진주를 내리쳤다. 진주의 머리에서 불룩 불룩 피가 넘치듯 흘러나왔다. 진주가 손으로 상처부위를 짚었다가 천천히 눈앞으로 가져왔다. 손바닥에 피가 흥건했다. 진주가 경옥을 돌아보았다. 경옥은 여전히 무표정하게 진주를 쳐다보고 있었다. 진주가 휘청거리며 겨우 말했다.


“뭐하는··· 거예요···”


진주가 명희의 옆으로 풀썩 쓰러졌다. 명희는 이게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겁에 질려 눈동자가 커진 채 숨을 몰아쉬며 얼어붙었다. 진주는 온 몸에서 경련이 일어나 부들부들 떨다가 잠잠해졌다. 딸그랑, 경옥이 빠루를 내던지고 무언가 결심한 듯 한 얼굴로 나지막이 말했다.


“명희야···"


한 손엔 여전히 뾰족한 트로피 조각을 들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게스트하우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16.12.28 269 0 -
32 32. 내미는 손 / 마지막 회 17.01.15 318 4 8쪽
31 31. 인천으로 17.01.13 230 4 13쪽
30 30. 도플갱어 Doppelgänger  17.01.12 239 4 9쪽
29 29. 그냥 가지 그랬어 17.01.11 239 4 9쪽
28 28. 내가 말했잖아 17.01.10 220 4 10쪽
27 27. 그럴 리가 없어 17.01.09 294 4 11쪽
26 26. 마지막 부탁 17.01.06 249 5 10쪽
» 25. 이게 대체 어떻게... 17.01.05 203 4 10쪽
24 24. 추격 17.01.04 236 4 16쪽
23 23. 빨리 구급차를 17.01.04 253 5 9쪽
22 22. 절대로 용서 못해 17.01.03 246 5 9쪽
21 21. 설득은 필요 없어 17.01.03 256 5 10쪽
20 20. 그냥 죽어주면 돼요 17.01.03 244 5 9쪽
19 19. 카오스 CHAOS 17.01.01 236 5 8쪽
18 18. 반격 17.01.01 229 4 9쪽
17 17. 저는 기회를 드렸어요 16.12.31 228 4 11쪽
16 16. 붉은 눈, 열린 문 16.12.30 207 4 10쪽
15 15. 탈출, 그러나 16.12.30 315 4 10쪽
14 14. push to open button 16.12.29 256 4 10쪽
13 13. 자물쇠 밖의 그림자 16.12.29 334 4 12쪽
12 12. 지하실로 가는 길 16.12.28 259 4 12쪽
11 11. 하나씩, 하나씩 16.12.28 289 4 10쪽
10 10. 굿바이 파티 16.12.28 279 4 8쪽
9 9. 뒤틀림 16.12.28 304 4 8쪽
8 8. 여기 와줘서 고마워요 16.12.28 400 4 9쪽
7 7. 평소와 다른 눈빛 16.12.28 368 4 11쪽
6 6. one more day +1 16.09.20 404 6 12쪽
5 5. 나와 닮은 사진 +1 16.09.19 858 6 9쪽
4 4. 너는 웃는 얼굴이 예뻐 +1 16.09.16 446 6 7쪽
3 3. check in 16.09.15 413 6 9쪽
2 2. 숙소는 파랑 게스트하우스야. 16.09.13 434 7 8쪽
1 1. intro : 제주도로 가라 +1 16.09.12 920 6 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