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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은수님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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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추리

완결

우은수
작품등록일 :
2016.09.12 16:59
최근연재일 :
2017.01.15 17:16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10,434
추천수 :
147
글자수 :
139,273

작성
17.01.09 10:10
조회
294
추천
4
글자
11쪽

27. 그럴 리가 없어

DUMMY

짙은 어둠을 밀어올린 푸른 새벽은 세상을 차가운 파란색으로 뒤덮었다. 아직 해가 떠오르기까진 시간이 좀 더 필요했으나 나무 사이로 달려가기엔 충분히 밝았다. 명희는 저 멀리 보이는 건물에 사람이 있기를 기도하며 부어오른 다리를 끌고 겨우 달려갔다. 제발, 전화가 되기를 가슴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삐 - - - - - 


강식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두통을 일으키며 귀를 찢을 듯 휘몰아치는 높은 쇳소리가 극에 달해 아예 청력을 마비시킬 지경이었다. 한쪽 눈꺼풀이 부르르 떨리며 머리가 깨질듯 아팠다. 이 불편함과 고통이 모두 저 앞에 도망치는 명희 때문에 생기는 거라고 강식은 생각했다.


강식은 바지 주머니에 넣어 놓은 채연의 접이식 칼을 만지작거렸다. 저 멀리 나무들 사이로 조그맣게 보였다가 사라진 명희와 그 방향을 또렷하게 노려보며 숲 속을 달렸다. 


마음 같아선 한달음에 달려가 목에 칼을 꽂아버리고 싶었다. 너 때문에 진주가 다쳤다고, 너 때문에 일을 다 망쳐버렸다고, 너 때문에 모든 게 틀어져 버렸다고 화풀이를 하고 싶었다. 진주가 흘린 피의 열배 백배만큼 피를 뽑아내 주겠다고 다짐했다. 허나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힘이 들어가지 않아 딛을 수가 없었다. 나뭇가지를 목발삼아 껑충 껑충 쫓아갈 뿐이었다.


쾅쾅쾅쾅쾅!


"계세요? 아무도 없어요? 도와주세요!!"


명희는 녹슨 철문을 두들기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여기요 - 제발! 누구 없어요? 문 좀 열어주세요!!"


고요한 새벽의 숲 너머로 다급한 명희의 목소리가 강식에게까지 들렸다. 더욱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이대로 도망치게 내버려 둘 수는 없다고 강식은 이를 악물었다.


철컹.


문이 열리며 러닝셔츠 차림의 노인이 눈을 비비며 나왔다. 잠이 덜 깬 노인은 귀찮은 듯 말했다.


“...이추룩 새벽부터 어떵헌 일이라?"


명희는 반가움과 고마움에 덥석 손을 잡으며 엉엉 소리 내 울었다.


"도와주세요 할아버지, 도와주세요..."


노인은 잠이 번쩍 달아났다. 화들짝 놀라 눈이 동그래져 말했다.


"세상에 이런... 이 피 좀 봐. 아니 젊은 처자가 대체 이게... 이리 들어와요."


노인은 명희를 부축하며 데려와 마당의 평상에 앉혔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할아버지, 전화 좀 쓸 수 있을까요? 경찰 좀 불러주세요. 구급차도... 다친 사람이 많아요."


"잠깐 기다려요, 전화를 가지고 올 테니."


노인은 후다닥 들어가 휴대폰을 꺼내왔다. 눈이 침침한 듯 찡그리며 휴대폰을 눈에서 가까이 또 멀리 하며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이내 고장 난 기계를 거칠게 다루듯 손으로 탁탁 내치며 말했다.


"이거 왜이래... 전화가 안 되네."


명희는 애가 탔다.


"전화가... 전화가 안돼요?"


집 안에서 할머니가 뒤따라 나오며 명희를 보고 깜짝 놀라 말했다.


"에그머니나! 아니 이게 다 뭐람··· 어쩌다..."


"할멈, 전화기 줘 봐."


그러나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휴대폰은 모두 전화가 걸리지 않았다. 명희가 다급하게 물었다.


"혹시 집 전화는 따로 없으세요...?"


할머니가 방에서 담요를 가져와 명희에게 덮어주며 말했다.


"다른 전화는 없는데··· 할아방, 저짝으로 나강 해 봅서. 잘 되놔신디 이거 무사 안됨시니?"


할아버지는 전화기 두 대를 들고 문 밖으로 나서며 말했다.


"내가 경찰에 신고하고 올 테니 안에 들어가 좀 누워. 혹시 누가 쫓아올지 모르니 문 잘 잠그고. 응?"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명희는 연신 꾸벅 인사하며 눈물을 흘렸다. 할머니는 담요 위로 명희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아주 잠시 동안이지만 어떤 안도감이 명희를 감쌌다. 이제 경찰을 부르기만 하면 악몽 같은 시간들이 끝날 것만 같았다.


"새벽 공기가 차. 방 안에 들어가요."


할머니는 명희를 부축해서 마루 위로 데리고 올랐다.


철컹, 할아버지가 철문을 닫고 나가는 소리가 등 뒤로 들려왔다. 마루에 오른 명희가 방문을 채 열기도 전에 철문 밖의 할아버지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어이쿠야! 이게 누구야? 정씨 아냐? 아니 어쩌다 이렇게 된겨··· 정씨도 당한거야?”


“아, 어르신...”


강식은 다리를 질질 끌고 오며 할아버지에게 꾸벅 인사했다.


명희도 강식의 목소리를 들었다. 온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가 놀라며 강식에게 물었다.


“대체 그 쪽 동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좀 전에 한 아가씨도 만신창이가 되어 들어왔는데.”


“한 아가씨요?”


강식은 희미하게 씩 웃었다. 할아버지는 강식의 미소를 눈치 채지 못했다. 강식이 말을 이었다.


"아아··· 네 맞아요, 강도가 들어서 같이 도망쳤어요.”


“강도? 세상에나 이런 조용한 동네에 강도라니··· 어서, 어서 피해요. 내 금방 경찰에 신고하고 올 테니.”


“그 아가씨는 어디로 갔어요?”


“집 안으로 피했어. 이것 참 빨리 구급차라도 불러야 하는데 전화가 왜 이래··· 강씨도 어여 들어가."


“전화가... 안돼요?”


“으응, 잘 되던 게 갑자기 이러네.”


할아버지는 철문을 두들기며 소리쳤다.


“할멈! 문 좀 열어봐!”


쾅쾅쾅 요란하게 소리 나도록 철문을 두들기는 할아버지를 강식이 말리며 나지막이 말했다.


“할아버지, 그 강도가 혹시 소리를 듣고 이쪽으로 오면 안 되니까요··· 저는 조용히 뒷문으로 들어갈게요. 할아버지도 위험할지 모르니 몸을 피하세요.”


“그··· 그래? 그럼 이쪽으로 돌아가게. 쪽문이 있으니 거기로 들어가 문 꼭 잠그고 있어. 밭에 나가면 전화가 될 거야. 내 곧 신고하고 오겠네.”


강식은 할아버지에게 꾸벅 인사하고 절룩거리며 뒷문 쪽으로 걷다가 우뚝 멈춰 뒤를 돌아보았다. 할아버지는 여전히 전화기를 두들기고 이리저리 전파를 찾는 듯 팔을 뻗어 허공에 휴대폰을 들어 올렸다 내렸다 했다.


강식은 수박만한 검은 돌멩이를 두 손으로 소리 없이 집었다. 절룩거리는 다리로 조용히 할아버지에게 다가갔다. 할아버지와의 거리가 두어 걸음밖에 남지 않았을 때 할아버지는 뒤를 돌아보고 강식에게 말했다.


“아니 왜 집에 안 들어가고···”


퍼억.


할아버지는 두 개의 휴대폰을 떨어뜨리고 쓰러졌다. 강식은 무표정하게 휴대폰을 주워 전원을 끄고 아무데나 던져버렸다. 다시 쪽문 쪽으로 걸어가며 강식은 생각했다.


‘일단 말이지. 그 아가씨를 찾아서 마무리를 좀 하고··· 아무래도 이젠 조용히 해결하기는 틀린 것 같아. 이 할아버지도 그렇고. 싹 제거하고 내가 떠야겠다. 여기선 더 이상 지내기 어렵겠어. 어디로 가야하지···? 부산? 인천? 아니면··· 일본이나 중국? 전에 중국 사람들 부산으로 보낼 때 연락했던 선장들이 일 있으면 또 만나자고 했는데 일단 그 쪽으로 알아봐야겠다.


젠장, 게스트 하우스에 투자한 돈이 얼만데··· 공기 좋고 조용한 시골에서 여행객들이랑 막걸리나 마시며 살고 싶다는 내 꿈이 이렇게 박살나는구나. 이게 다 명희라는 그 아가씨 때문이야. 그냥 좀 조용히 사라질 것이지··· 하지만 걱정 마 진주야. 내가 다 마무리할게. 나랑 같이 가자. 내가 데려갈게, 걱정 마.'


*


명희는 강식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몸을 덜덜 떨며 그 자리에 멈춰 서서 할머니에게 말했다.


“할머니 저 사람이에요. 저 사람이 많은 사람을 해쳤어요.”


할머니는 어리둥절해 물었다.


“저 사람? 누구? 아니 이건 저 아래쪽에 민박집하는 정씨 목소린데··· 정씨가 강도라고?”


“맞아요. 그 아저씨에요.”


할머니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아녀, 그럴 리가··· 인사성 좋고 멀쩡한 양반이 그럴 리가 없는데··· 잘못 본 거 아냐?”


명희는 초조해졌다.


“할머니, 우선 피하셔야 해요. 어쩌면 할머니 할아버지도 위험할 수 있어요. 곧 여기로 올지도 모르는데··· 어서요, 어서 같이 나가요.”


“아냐, 내가 얘기 해볼게 기다려 봐요. 정씨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니까.”


“안 돼요 할머니! 먼저 여기서 나가요. 정말이에요, 정말 위험해요.”


“이것 참···”


*


강식은 절룩거리며 철문 앞으로 다가왔다. 집 안에선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살살 철문을 밀어 보았지만 잠겨서 열리지 않았다. 강식은 잠시 생각하다가 문을 두들겼다.


탕탕탕.


“할머니 계세요? 저 옆 동네 사는 정강식입니다. 할머니 -."


여전히 집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없었다. 강식은 담벼락을 따라 마당 뒤쪽 쪽문으로 향했다. 오래된 나무로 만든 쪽문은 한 뼘 정도 열려서 집 안을 보여주고 있었다. 걸어올 때까지 집 안에서는 여전히 아무 소리도 없었다. 강식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할머니 - 계세요?”


절룩이며 문턱을 넘은 강식은 지나치게 조용한 집을 둘러보며 주머니에서 접이식 칼을 꺼내들었다. 엄지손가락 쪽으로 칼날이 나오도록 꽈악 칼을 등 뒤로 숨기고 자세를 낮춰 조용히 방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할머니 - 주무세요?”


강식이 칼을 들고 방으로 향하는 모습을 장독대와 간이 창고 옆 틈새에서 할머니와 명희가 보고 있었다. 할머니는 칼을 든 강식을 보고 숨이 멎을 듯 놀라 그대로 주저앉았다. 명희도 입을 막고 소리 내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강식은 마루에 올라 집 안 이쪽저쪽을 빠끔히 쳐다보았다. 기역자 형태의 오래된 시골집은 마루 옆에 방 두 개와 부엌이 붙어 있는 구조였다. 강식은 마루에 올라서서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신발을 내려다보았다. 두 켤레의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고개를 갸우뚱 한 강식은 편안한 자세로 몸을 일으켜 방문들을 벌컥 벌컥 열어젖혔다. 방 안에 들어가 닥치는 대로 옷장을 뒤집어 살펴보고 부엌도 여기저기 살펴본 강식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내 무언가 생각난 듯 강식은 철문을 열고 나갔다. 할머니와 명희가 텅 빈 철문 쪽을 보며 어리둥절해 할 때 강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할머니 - 할아버지가 다쳤어요! 도와주세요! 할머니 -.”


강식은 할아버지의 어깨를 들어 일으키면서 계속 소리쳤다.


숨어있던 할머니는 강식의 말을 듣고 벌떡 일어나 나가려했다. 명희가 할머니의 팔을 잡았다.


“안 돼요 할머니, 저건 그저 할머니는 찾아내려 하는 말이에요.”


“아냐, 아가씨, 내 몇 년간 정씨를 봤는데 나쁜 사람이 아니었어. 그쪽이 착각한 거야. 나가봐야겠어.”


“할머니···”


"아가씨는 여기 숨어있어요. 내 가서 보고 올 테니."


구부정한 허리의 할머니는 명희의 만류를 뿌리치고 철문을 열고 나가며 말했다.


“무슨··· 무슨 일이요? 할아방이 다치다니.”


할머니가 나오는 모습을 본 강식은 피투성이의 얼굴로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아, 할머니. 계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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