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우은수님 님의 서재입니다.

게스트하우스

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추리

완결

우은수
작품등록일 :
2016.09.12 16:59
최근연재일 :
2017.01.15 17:16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10,439
추천수 :
147
글자수 :
139,273

작성
17.01.11 06:43
조회
239
추천
4
글자
9쪽

29. 그냥 가지 그랬어

DUMMY

한라산 너머 저 쪽 멀리서부터 새벽의 푸른색은 사라지고 있었다. 해가 떠오르기 직전의 붉은 빛이 하늘에 번지고 있었다. 그 한 가운데에서 불타는 시골집의 검은 연기가 커다란 기둥처럼 하늘을 가리고 뒤덮어 어둑어둑했다. 집 앞에 서 있는 동렬과 강식의 얼굴은 타오르는 불빛이 조명처럼 비추어 주홍빛으로 어른거렸다.


강식은 절룩거렸으나 매서운 기세로 동렬에게 달려들었다. 마구잡이로 칼을 휘두르며 덤벼들었고 동렬은 옆구리의 상처를 붙잡은 채로 겨우 겨우 피해냈다.


“으아아앗!”


괴성과 함께 팔을 쭉 뻗어 크게 휘두른 강식의 칼에 동렬은 팔뚝을 베이고 말았다. 움찔하며 두 세 걸음 뒤로 물러난 동렬의 팔에서 주르르 피가 흘렀다. 강식이 퉁퉁 부어오른 눈으로 칼날을 흔들며 말했다.


“너도 참··· 그냥 가지 그랬어. 조용히 집에 갈 것이지 뭘 또 여기까지 찾아오니. 니가 여기까지 왔는데 내가 널 그냥 보내줄 수가 없잖아. 나는 널 생각도 못하고 있었어. 그러니까 여길 찾아 온 것도 니 발로 온 거고, 여기서 일어나는 일도 니가 와서 생기는 일이야. 그렇지? 이해하지? 에휴, 뭔 말이 더 필요하겠니. 가자, 이제.”


동렬은 칼에 찔린 상처의 고통이 숨을 쉴 때마다 몇 배로 증폭되었다. 서서히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지혈하는 손끝에서부터 전해졌다. 얼굴이 일그러지고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었지만 강식이 밟는 스텝과 칼의 움직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온다··· 이번에 잡아야 해··· 이번에···’


동렬은 끝까지 집중하려 필사적으로 애쓰고 있었다. 강식이 다시 칼을 휘두르며 찔러왔다. 딱 한 번이었다. 동렬이 상처에서 팔을 떼 움직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며 - 칼을 피하고 소맷자락을 잡아 어깨로 강식을 메쳤다.


공세에 열을 올리던 유도 선수가 되치기로 크게 넘어가는 것처럼 강식은 땅바닥에 처박혔고 동렬은 강식이 정신 차릴 기회를 주지 않으며 온 몸의 체중을 실어 강식의 미간에 박치기를 했다. 강식은 고개를 들다가 박치기를 맞고 뒤통수를 바닥에 부닥치며 정신을 잃었다.


동렬은 상처를 지혈하며 반쯤 몸을 일으켜 명희를 돌아보았다. 겁에 질린 명희는 동렬의 얼굴을 보고 후다닥 달려왔다.


“괜찮아요? 어떡해, 피가···"


“나, 난 괜찮아요··· 그보다··· 이걸···”


동렬은 벨트를 풀어 명희에게 넘겨주었다. 명희와 동렬은 벨트로 강식의 손목을 묶었다. 그제야 동렬은 끄으으 고통을 참는 신음소리를 흘리며 바닥에 풀썩 드러누웠다. 명희는 어쩔 줄 몰라 하다가 할머니를 보며 말했다.


“빨리, 빨리 병원에··· 할머니, 혹시 차가 있으신지···”


할머니는 겁에 질려 딸꾹질을 일으키며 겨우 말했다.


“차, 차 있는데 열쇠가 집 안에 있어···”


“그러면 이걸 어떻게 하지··· 어디든···”


길가에 세워진 경운기에 명희의 시선이 닿았다.


“할머니, 혹시 경운기 운전할 수 있으세요?”


“경운기? 아, 그래, 저건 갈 수 있어.”


“이걸로 가요 우리!”


“어디, 어디로 가야 혀? 시내까지는 한참 가야 하는데···”


동렬이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다시 숙소로 가요. 거기··· 거기 인터넷이 될 거에요. 전화는 안 되지만··· 인터넷으로... 그걸로 신고하는 게 빠를 거예요.”


명희는 망설였다.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곳으로 돌아가는 일이 너무나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이 악몽 같은 일들의 시작점으로 돌아가자니 그것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거길··· 거길 다시?”


동렬이 쿨럭 거리며 말했다.


“빨리 신고하려면··· 거기가··· 나을 거예요··· 쿨럭.”


명희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신고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두려운 장소였으나 더 이상 해치려는 자는 없다고 스스로를 계속 타일렀다.


경운기 뒤에 달린 짐 싣는 칸에 할아버지를 눕히고 할머니는 경운기 운전석에 앉았다. 명희가 강식을 보고 동렬에게 물었다.


“저 아저씨는 어떻게 하죠···?”


동렬은 비틀 비틀 강식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데려가야 합니다. 경찰에 넘겨야 하니까···”


동렬과 명희가 강식을 질질 끌고 와 할아버지 옆에 눕혔다. 동렬도 일그러진 얼굴로 그 옆에 누웠고 명희는 구석에 쪼그려 앉았다. 명희가 고개를 끄덕이자 할머니가 시동을 걸고 경운기를 몰았다.



털털털 달려가는 경운기는 불타는 집을 뒤로하고 느리게 게스트하우스로 다가갔다. 눈물로 범벅이 되어 운전하는 할머니와 뒤에 누운 할아버지, 강식, 동렬, 그리고 다친 동렬을 걱정하며 바라보는 명희가 타고 가는 경운기에도 아침 햇볕이 닿으려 하고 있었다.


흔들리는 뒷자리에서 명희는 불타는 집과 검은 연기와 떠오르는 태양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누워있는 세 사람도 하나씩 천천히 살펴보았다. 할아버지의 머리에서는 더 이상 피가 흐르지 않았고 피는 말라서 굳어 있었다. 강식은 손이 묶인 채 여전히 기절해 있었고 동렬은 상처를 지혈하며 고통스러워했다. 경운기 엔진의 털털거리는 소리마저 곧 꺼질 듯 힘겨워 보였다. 꿈같은 풍경이었으나 꿈이 아니었다. 그러나 명희는 오늘이 꿈이길, 깨어날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


게스트하우스의 돌담 안으로 경운기가 접어들었다. 명희는 건물을 보자마자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두려움이 발끝부터 손끝까지 가득 차 가벼운 어지러움을 일으켜 현실감이 없었다. 사람들이 다치고, 죽고, 도망쳤던 일들이 모두 거짓말 같았다.


절룩거리는 다리로 유리창이 깨진 현관문 앞으로 다가갈 때 명희는 방금 깨어난 악몽 속으로 다시 걸어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서서히 현관문을 여니 그제야 악몽은 현실로 눈앞에 다가왔다. 눈 감은 성찬이 거기 있었다. 상처에서 흘러나와 넓고 둥글게 퍼진 피 위에서 차갑게 식어 있었다.


명희는 성찬을 보자 오열하며 풀썩 주저앉았다. 양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엉엉 소리 내 울었다. 나가라고 손짓하던 성찬이 떠올랐다. 명희는 억지로 울음을 참으며 다시 일어났다. 한시바삐 외부와 연락해야한다는 생각을 놓지 않았다.


거실에 있는 컴퓨터를 켜고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부팅되기까지 걸리는 잠깐의 시간에 입이 바짝 바짝 말랐다.


“됐다!”


컴퓨터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인터넷에 연결되었다. 명희는 119에 접속해 신고했다. 이름과 연락처, 사건 내용을 적고  ‘등록’ 버튼을 클릭했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돼··· 끝났다 명희야, 끝났어···'


명희는 경운기로 달려 나가며 말했다.


“신고했어요! 조금만 기다려요.”


동렬은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는 의식을 되찾아 할머니에게 기대어 두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명희가 걱정스레 바라보다 말을 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시는 게 좋겠어요. 이불을 찾아볼게요."


명희는 거실에 담요를 깔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셔와 눕혔다. 절룩거리며 경운기로 나가 동렬에게 말했다.


“움직일 수 있겠어요···? 동렬씨도 들어가 누워요.”


동렬은 명희가 내민 손을 잡고 몸을 일으키며 신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 아저씨··· 데리고 가야 해요. 계속 시야에 두고 있어야지··· 또 사라지면 곤란해요···”


명희도 고개를 끄덕였다. 동렬과 명희는 여전히 기절해있는 강식을 끌고 와 거실 한쪽에 내려두었다. 그 후에야 동렬은 마음을 놓고 담요 위에 쓰러지듯 누웠다. 명희는 수건을 말아 동렬의 지혈을 도왔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짧은 탄식만 뱉어냈다. 거실에는 낮은 신음소리만 간간히 울렸고 사람들은 말이 없었다. 


조용한 침묵을 깨뜨리며 멀리서 경찰차의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다가왔다. 명희는 놀란 토끼가 화들짝 고개를 들듯 벌떡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았다. 사이렌 소리는 다급했으나 명희는 그 소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먼지를 피우며 순찰차가 게스트하우스 돌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왔어요, 조금만 더 힘내요.”


명희는 동렬과 할머니에게 말하곤 현관문 쪽으로 다가갔다. 경찰이 차에서 내리며 무전기로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순찰차의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탕탕탕! 경찰이 현관문을 두들겼다. 박살난 현관문 유리 너머로 경찰 제복이 보였다. 명희는 깨진 유리를 피해 걸어가 현관문을 열었다.


문 앞에 서 있던 경찰은 무전기를 들고 있었으나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입을 약간 벌리고 얼굴은 얼어붙어 큰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명희가 왜 그런지 경찰에게 묻기도 전에 - 경찰의 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명희는 비명을 지르며 기겁했다.


우뚝 서 있던 경찰은 마리오네트 인형의 줄이 끊어지듯 서 있던 자리에 그대로 풀썩 쓰러졌다.


쓰러진 경찰 뒤로 량신위가 서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게스트하우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16.12.28 270 0 -
32 32. 내미는 손 / 마지막 회 17.01.15 319 4 8쪽
31 31. 인천으로 17.01.13 231 4 13쪽
30 30. 도플갱어 Doppelgänger  17.01.12 240 4 9쪽
» 29. 그냥 가지 그랬어 17.01.11 240 4 9쪽
28 28. 내가 말했잖아 17.01.10 220 4 10쪽
27 27. 그럴 리가 없어 17.01.09 295 4 11쪽
26 26. 마지막 부탁 17.01.06 250 5 10쪽
25 25. 이게 대체 어떻게... 17.01.05 203 4 10쪽
24 24. 추격 17.01.04 236 4 16쪽
23 23. 빨리 구급차를 17.01.04 253 5 9쪽
22 22. 절대로 용서 못해 17.01.03 246 5 9쪽
21 21. 설득은 필요 없어 17.01.03 257 5 10쪽
20 20. 그냥 죽어주면 돼요 17.01.03 244 5 9쪽
19 19. 카오스 CHAOS 17.01.01 237 5 8쪽
18 18. 반격 17.01.01 230 4 9쪽
17 17. 저는 기회를 드렸어요 16.12.31 229 4 11쪽
16 16. 붉은 눈, 열린 문 16.12.30 208 4 10쪽
15 15. 탈출, 그러나 16.12.30 316 4 10쪽
14 14. push to open button 16.12.29 257 4 10쪽
13 13. 자물쇠 밖의 그림자 16.12.29 335 4 12쪽
12 12. 지하실로 가는 길 16.12.28 260 4 12쪽
11 11. 하나씩, 하나씩 16.12.28 290 4 10쪽
10 10. 굿바이 파티 16.12.28 280 4 8쪽
9 9. 뒤틀림 16.12.28 305 4 8쪽
8 8. 여기 와줘서 고마워요 16.12.28 401 4 9쪽
7 7. 평소와 다른 눈빛 16.12.28 369 4 11쪽
6 6. one more day +1 16.09.20 404 6 12쪽
5 5. 나와 닮은 사진 +1 16.09.19 859 6 9쪽
4 4. 너는 웃는 얼굴이 예뻐 +1 16.09.16 447 6 7쪽
3 3. check in 16.09.15 413 6 9쪽
2 2. 숙소는 파랑 게스트하우스야. 16.09.13 434 7 8쪽
1 1. intro : 제주도로 가라 +1 16.09.12 921 6 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