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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은수님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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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추리

완결

우은수
작품등록일 :
2016.09.12 16:59
최근연재일 :
2017.01.15 17:16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10,427
추천수 :
147
글자수 :
139,273

작성
17.01.03 10:46
조회
256
추천
5
글자
10쪽

21. 설득은 필요 없어

DUMMY

2층 계단에서 걸어 내려온 동렬은 눈이 휘둥그레져 주변을 둘러보았다. 현관문 유리는 박살나 있었고 강식과 진주, 경옥이 명희와 나연을 둘러싸고 집단 폭행을 가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명희는 머리와 다리에 핏자국이 있었고 강식은 팔에 수건을 동여매고 있었는데 역시 피가 수건에 배어 나왔다. 진주와 경옥의 얼굴은 하얀 가루를 뒤집어썼다가 닦아낸 것이 마치 화장을 덜 지운 가부키 배우들처럼 기괴했다. 거기에 진주의 머리에도 핏자국 있었고 경옥의 눈은 심하게 충혈 되어 아예 빨간 눈이 되어 있었다. 현관문과 창문에는 전에 없던 커다란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동렬은 눈앞의 상황을 믿을 수 없어서 계단 앞에 덜컥 멈추어 섰다.


“이게 대체··· 대체 무슨 일이에요? 다들 왜 피를···”


채연은 무서운 듯 동렬의 팔에 꼭 매달려 있었다. 동렬이 사람들을 진정시키려는 듯 손바닥을 아래로 내리는 제스처를 취하며 강식에게 말했다.


“아저씨, 일단, 그것부터··· 그것부터 내려놓으세요. 왜 그러세요 무섭게···”


강식은 말이 없었다. 빠루를 내려놓지도 않았다. 강식이 묵묵히 바라보고 있는 건 동렬이 아니라 동렬의 팔에 매달린 채연이었다. 강식이 동렬 쪽을 돌아보는 사이, 명희가 옆으로 살짝 움직였다. 그와 거의 동시에 강식이 빠루를 높이 쳐들었다. 명희와 나연이 비명을 지르며 얼어붙었고 강식은 손가락으로 명희를 가리키며 말했다.


“움직이지 말아요.”


빠루를 치켜든 강식의 움직임에 동렬도 화들짝 놀랐다. 팔에 매달린 채연을 덥석 안으며 소리쳤다.


“어우! 아저씨! 잠깐만요, 잠깐만. 진정하세요. 저, 무슨 일인지 잘 모르겠지만, 분명 해결방법이 있을 겁니다. 분명히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아저씨, 아니 사장님, 일단 그것 좀 내려놓으세요. 조금만 진정하시고요. 사장님, 부탁드립니다. 그것 좀 내려주세요.”


강식은 치켜든 빠루를 서서히 내리고 동렬을 돌아보았다. 동렬은 간곡한 표정으로 손짓 발짓을 해 가며 진정해라, 침착해라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강식은 동렬의 설득은 안중에도 없었다. 겁에 질려 동렬의 뒤에 숨어 있는 채연이 강식은 자꾸만 신경 쓰였다. 채연은 무서워하는 몸짓과는 완전히 다르게 무표정한 얼굴로 강식을 흘깃 쳐다보고는 시선을 떨궜다. 동렬의 방에서 같이 나온 채연은 작은 크로스백을 메고 있었다. 채연은 가방을 만지작거렸다.


*


불이 켜진 채 사람들이 나가버린 지하 창고에도 현관문 유리창이 박살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기절했던 성찬은 다시 정신이 들었다. 아직 어질어질하고 속이 메스꺼웠지만 손가락 하나밖에 움직이지 않았던 성찬의 몸이 서서히 말을 들었다. 팔이 움직였고 다리가 움직였다. 팔과 어깨를 욕조 밖으로 내밀어 떨어지듯 욕조 밖으로 나왔다. 쿵, 바닥에 드러누운 성찬은 그제야 팔다리가 묶여 있음을 정확히 알았다.


‘케이블타이···'


바닥에 어지러이 쏟아진 공구들 중에 실톱이 놓여 있었다. 두 손으로 실톱을 집어 발목에 감긴 케이블 타이를 잘랐다. 툭, 케이블타이가 뜯어지자 찌르르, 발에 피가 통하며 전기가 오르는 느낌이 났다. 두 발 사이에 실톱을 거꾸로 잡고 손목을 묶은 케이블타이도 잘라냈다. 손목과 발목에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손바닥이 찌릿찌릿한 게 여기저기 통증이 느껴졌다.


머리가 깨질듯이 아파왔다. 고민이 있어서 일어나는 두통이나 술을 많이 마셔서 생기는 두통이 아니었다. 강식의 빠루로 맞은 쪽 머리가 너무 아팠다. 손을 대 보았지만 상처는 굳어 있어서 피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다시 생각 좀 해보자··· 아까··· 그래, 대규새끼··· 여기 잠들었다고 했는데··· 아, 욕조, 욕조에 누워있었지.’


성찬은 휘청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지러움을 이겨내려 고개를 흔들어가며 겨우 자리에서 일어난 성찬의 눈에 욕조 속의 대규가 보였다. 팔이 뒤로 묶여 거꾸로 머리를 처박고 얼굴은 반쯤 피에 잠겨있었으며 뒤통수가 함몰된 몰골로 대규는 숨져 있었다.


“이런 씨발··· 야··· 대규야···”


성찬은 대규의 팔을 잡았다가 다시 내려놓고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제야 창고를 둘러보았다. 선반이 하나 넘어져 있고 각종 공구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으며 핏자국이 문 앞부터 계단 위로 똑똑 떨어져 있었다.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성찬은 대규의 팔다리를 묶은 케이블타이를 잘랐다. 이미 대규의 몸은 핏기가 없어 창백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성찬은 대규의 몸을 뒤집으려 잡아당겼다. 수챗구멍을 막고 있던 얼굴이 치워지자 꼬르륵 소리를 내며 욕조에 차 있던 피가 서서히 빠졌다.


성찬의 얼굴은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되었다. 윗니 아랫니를 앙다물었고 눈을 꼭 감아 얼굴의 온갖 주름이 다 져서 쭈글쭈글해진 얼굴로 소리를 참아가며 울었다. 있는 힘을 다해 대규의 몸을 뒤집었다. 대규의 얼굴은 얼굴이 아니었다. 끈적거리고 검은 피가 대규의 얼굴에 가득했다. 성찬은 주변에 있던 융으로 대규의 얼굴을 덮어주고 팔을 가슴에 가지런히 모아주었다.


“흑, 흐윽··· 흑···”


성찬은 욕조 옆에 주저앉아 한참을 소리 없이 울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일들이 모두 꿈이길 바랐다. 내일 아침이면 다시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 해장국집을 찾아가고, 또 바다에 가고, 밤이면 또 술을 마시고··· 그렇게 다시 여행을 계속하고 싶었다.


대규의 까불거리는 말투와 서로 욕하며 놀리는 장난들, 제발 옷 좀 잘 입으라는 대규의 타박과 이제 그만 한 여자에 정착하라는 성찬의 핀잔··· 늘 해오던 말들이 다시 시작되길 바랐다. 그러나 성찬의 손에는 대규의 피가 묻어 있었다. 자신의 손으로 대규를 눕혀주었다.


뇌 저쪽 끝까지 깊숙이 퍼져나가는 비릿한 피 냄새, 나무토막 같던 대규의 몸통,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머리통··· 성찬은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대규를 바라보았다. 성찬은 울음을 멈췄다.


“이 개새끼들···”


성찬은 두통이 밀려왔으나 손바닥으로 머리를 퍽퍽 내리쳤다. 눈에 보이는 대로 삽자루를 움켜쥐고 플라스틱 삽을 발로 밟아 부러뜨렸다. 거칠게 부러진 삽자루는 한쪽 끝이 뾰족한 죽창처럼 되었다.


*


동렬은 안절부절못하며 강식을 설득하려 애쓰고 있었다. 그러나 어떤 말에도 강식은 반응하지 않았다. 치켜 든 빠루를 내리긴 했으나 여전히 손에 들고 있었다. 반 정도는 동렬 쪽으로 몸을 돌려서 동렬과 명희를 번갈아 보며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듯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동렬은 강식이 아무런 반응이 없자 그래도 무언가 화가 좀 누그러진 거라고 생각했다. 동렬이 뒤에 숨어있는 채연을 떼어놓으며 여기서 기다리라는 손짓을 했다. 채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움츠렸다. 동렬은 여전히 날이 서 있는 강식에게 말했다.


“저, 사장님, 제가 그쪽으로 갈게요. 우리 일단 대화 좀 해요. 다들 진정하고··· 네? 사장님, 제가 갈게요.”


동렬이 느리게 발걸음을 뗐다. 강식이 날렵하게 빠루를 동렬 쪽으로 휙 세우며 말했다.


“거기 있어요. 움직이지 말고.”


동렬도, 지켜보는 이들도 모두 움찔하며 멈춰 섰다. 잠깐의 적막이 흘렀다. 강식이 빠루를 내리며 말했다.


“이게··· 그러니까··· 음··· 설명하자면···”


강식이 혼잣말처럼 웅얼거리다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동렬이 몸을 꼿꼿이 세우고 목을 옆으로 약간 삐딱하게 꺾으며 말했다.


“사장님. 지금 보니까요, 사장님만 그거 내려놓으면 우리 뭔가 대화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설명은 좀 나중에 듣고요, 일단 그거부터 저쪽에 던지세요.”


강식은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동렬은 긴장과 의아함을 지나 조금씩 화가 나기 시작했다.


“사장님, 우리 대화해요. 네? 손에 든 그거 내려 놓으시구요.”


강식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다시, 강식의 귀에서 높은 쇳소리가 들려왔다. 식은땀 한 방울이 강식의 옆얼굴을 타고 또르르 흘러서 똑, 떨어졌다. 강식의 눈빛이 떨리는 것을 모든 사람이 알 수 있었다. 동렬은 더욱 화가 났다.


“자꾸 이러시면 저도 가만 안 있어요.”


강식은 머리가 아파왔다. 귀가 찢어질 것처럼 높은 음의 쇳소리가 메아리쳤고 심장이 점점 빨리 뛰는 것이 느껴졌다. 이놈부터 쳐야 할지, 명희부터 쳐야 할지, 말로 해결하는 것처럼 잠시 내려놔야 할지, 다른 기회를 봐야 할지, 그러기엔 너무 늦은 것은 아닌지, 그냥 다 쓸어버려야 하는데 언제가 좋을지, 이놈은 왜 내려왔는지··· 강식은 어지러움까지 느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않고 그저 멍하니 있는 강식에게 동렬이 우렁차게 소리를 질렀다.


“그거 내려놓으라고!!”


강식의 얼굴은 무엇에 홀린 것처럼 반쯤 넋이 나가 보였고 빠루를 들고 있는 손은 덜덜 떨렸다. 그러나 내려놓기는커녕 동렬을 향해 빠루를 천천히 치켜들었다. 강식은 동렬부터 처리하기로 결정했다. 동렬을 보는 강식의 눈빛이 오직 살기만 남아있는 짐승 같은 눈으로 초점이 잡혔다.


동렬도 강식이 무언가 결심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동렬의 눈에 보이는 강식은 술에 취해서 아르바이트생들을 때리고 난동을 피우는 주정뱅이 같았다. 경호 관련 수업을 들을 때도 비슷한 상황을 많이 연습했었고, 학기 중에 호프집에서 일할 때도 저런 사람들은 제법 있었다. 물론 동렬은 주폭 난동꾼들을 간단히 제압했다. 강식은 동렬에게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진짜 이 양반이 말이 말 같지 않나.”


동렬이 주먹을 불끈 쥐고 손가락에서 우두둑 소리를 내며 강식 쪽으로 다가가려 할 때, 뒤에서 파지지직 소리가 났다.


"으아아악!!!”


동렬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눈을 까뒤집고 쓰러졌다. 채연이 가방에서 전기충격기를 꺼내 동렬을 지져버렸다. 쓰러져서도 한참을 움찔움찔 거릴 만큼 강력한 것이었다. 쓰러진 동렬을 채연은 발로 툭툭 차 보고는 다시 한 번 목덜미에 전기충격기를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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