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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은수님 님의 서재입니다.

게스트하우스

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추리

완결

우은수
작품등록일 :
2016.09.12 16:59
최근연재일 :
2017.01.15 17:16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10,440
추천수 :
147
글자수 :
139,273

작성
17.01.03 04:34
조회
244
추천
5
글자
9쪽

20. 그냥 죽어주면 돼요

DUMMY

복도의 불빛은 대각선으로 파도방에 새어 들어왔다. 흩날리는 소화기 분말가루가 빛의 직선들을 더욱 잘 보여주었다. 강식은 방 안을 비추는 빛에서 약간 빗겨나 쓰러져 있었다.


나연이 엄마와 명희를 부축해서 걸어갈 때 강식은 광대뼈를 바닥에 댄 채로 눈을 떴다. 희뿌연 가루들이 날아다녀 마른기침이 일어나 강식을 깨웠다. 쿨럭 쿨럭, 작은 소리로 가슴이 들썩이는 것을 본 사람은 없었다.


서서히 눈을 떠 고개를 드니 때 세 명의 다리가 비틀거리며 문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아직 온전히 정신이 들지 않았지만 그들을 내보내선 안 된다는 막연한 직감이 강식을 지배했다. 팔을 뻗었고 옆을 지나는 다리를 움켜쥐었다. 나연의 발목은 강식의 한 손에 다 들어오고도 남을 정도로 가늘어서 쉽게 발을 뺄 수가 없는 모양새였다. 강식이 발목을 잡아당겼다.


“꺄아악!”


무언가가 발목을 덥석 잡은 느낌이 나자 나연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둠 쪽으로 쑤욱 당겨지는 발목에 나연은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부축해주던 나연이 넘어지자 숙영과 명희도 무릎을 바닥에 찧으며 쓰러졌다.


나연은 비명을 지르며 다른 발로 거듭 발길질을 했다. 그러나 겁에 질리고 놀라서 허우적거리는 발놀림일 뿐, 강식에게 충격을 주지는 못했다. 나연은 다리를 빼내려 강식의 이마를 밟고 밀어내보기도 했지만 강식은 무표정하게 두 손으로 발목을 더욱 콱 움켜쥐었다. 일그러진 얼굴로 쿨럭이며 강식이 읊조리듯 혼잣말처럼 말했다.


“여기서··· 못나가···”


강식과 눈이 마주친 나연은 더욱 겁에 질려 강식을 차고 또 찼다. 그러나 강식은 얼굴을 발로 차이면서도 나연을 노려보며 다리를 잡아당겼다.


해무처럼 짙은 소화기 분말가루 사이에서 진주가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휘청거리며 걸어와 바닥의 빠루를 집었다. 숙영과 명희는 진주가 빠루를 집는 걸 보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무언가 막아낼 도구를 찾았으나 진주가 더 빨랐다.


진주는 있는 힘껏 묵직한 빠루를 고개 위로 집어 올려 발목을 잡혀 있는 나연을 향해 휘둘렀다. 그러나 진주의 빠루보다 더 빠른 것은 딸을 지키려는 숙영이었다. 나연의 머리로 날아오던 빠루는 몸을 날린 숙영의 허리를 강타했고 숙영은 그대로 나연 위로 쓰러졌다. 


“엄마 -!"


진주가 쓰러진 숙영을 보며 숨을 헐떡이고 있을 때, 명희가 커피포트로 진주의 머리를 후려쳤다. 관자놀이 부근을 맞은 진주는 별다른 소리 없이 머리를 움켜쥐며 움찔, 뒤로 두세 걸음 물러났다. 진주의 머리에서 주르륵 피가 흘렀다. 숙영은 쓰러진 채로 나연의 발목을 붙잡은 강식의 팔을 힘없이 툭 툭 때렸다.


“놔라··· 놔···”


숙영의 몸부림에도 아랑곳 않고 강식은 한 손으로 땅을 짚으며 몸을 일으켜 세우려 했다. 숙영은 나연을 잡고 있던 강식의 팔을 있는 힘을 다해 깨물었다. 강식은 비명을 지르며 팔을 흔들었다. 살점이 떨어져 나갈 때까지 숙영은 강식의 팔을 물고 있었다. 강식이 나연의 발목을 놓쳤다.


나연은 여전히 놀라 허우적거리며 주저앉아 뒷걸음질 쳤다. 명희가 나연을 일으켜 세웠다. 피가 철철 흐르는 팔을 붙잡고 일어선 강식은 괴성을 지르며 숙영을 구타했다. 숙영은 강식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나연과 명희에게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강식에게 매달린 숙영에게 진주가 다시 묵직한 빠루를 날렸다.


퍼억.


옆구리를 맞은 숙영은 제대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벼락같은 엄청난 충격에 숙영은 정신을 잃어가면서도 강식을 놓지 않았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와중에도 나연과 눈이 마주친 순간 숙영은 웃으려 애썼다. 나연은 엉엉 울고 있었다. 숙영은 눈빛으로 간절히 말했다.


‘어서 가. 사랑해 우리 딸.’


명희와 나연이 손잡고 문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 뒷모습을 본 숙영은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살기 위해 통과해야만 하는 문을 살기 위해 틀어막았었는데, 비록 자신은 여기 남았지만 딸은 무사히 문을 통과해 나갔다. 게스트하우스 밖으로 딸이 나갈 수 있기를 기도하며 눈을 감았다. 진주의 빠루가 다시 숙영 위로 떨어졌다. 


나연과 명희는 울면서 뛰어 내려갔다. 꺼억 꺼억 소리 내어 우는 나연에게 명희가 말했다.


“나가자, 여기서 나가야해. 얼른 가서 구급차를...”


나연은 마지막에 자신을 바라보며 웃던 엄마의 얼굴이 자꾸만 생각났다. 분명히 엄마는 웃고 계셨다. 나에게 미소 지으며 어서 나가라고 말하시는 것 같았다. 반드시 여기서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꼭 나가서, 꼭 경찰에 신고해서, 꼭 저들이 벌을 받게 하겠다고 되뇌었다.


‘엄마, 빨리 구급차 부를게요. 그때까지만 기다려줘요.'


명희는 현관문 손잡이를 잡고 거칠게 흔들었다. 커다란 번호 자물쇠가 걸려있는 고리는 네 개의 나사못으로 문틀과 문에 고정되어 있었다. 명희가 계속해서 문을 잡아당기자 나사못들이 약간씩 헐거워져 가는 것이 눈에 보였다. 두 손으로 현관문을 잡아 힘껏 당기고 또 당겼다.


“어서··· 조금만 더··· “


나연은 명희의 곁에서 현관문과 계단 쪽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계단 위에서 두 명의 발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발에서 무릎, 허벅지, 허리가 보이고 강식과 진주의 얼굴이 보였을 때 나연은 벽에 등을 기대고 숨이 멎을 듯 겁에 질렸다.


강식과 진주는 뛰듯이 빠른 걸음으로 내려왔으나 공포에 빠진 나연은 그들의 걸음걸이 하나하나가 뇌리에 새겨져 그 시간이 제법 길게 느껴졌다. 강식은 거실에 놓여있던 유리 트로피를 집어서 문을 흔들고 있는 명희를 향해 던졌다.


“언니이 -!”


나연이 몸을 웅크리며 소리쳤다. 그러나 명희는 자물쇠 고리에 집중하고 있어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챙그랑!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된 철제 현관문의 유리가 트로피에 맞아 박살났다. 깨진 유리조각이 사방으로 튀었고 나연과 명희는 소스라치게 놀라 주저앉았다. 팔로 머리를 감싸고 주저앉은 나연과 명희 앞에 강식과 진주가 다가와 우뚝 멈춰 섰다.


“헉, 허억, 헉,   헉,     헉···,      헉···,           헉,           헉."


  명희가 거칠어진 숨을 고르고 질끈 감았던 눈을 뜰 때에도 강식과 진주는 그대로 서 있었다. 뒤따라 내려온 경옥도 강식의 한걸음 뒤에 서 있었다. 명희와 나연은 겁에 질린 채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강식은 아무 말도 없었다. 경옥을 발견한 명희는 두려움과 분노가 뒤섞인 눈빛으로 경옥을 쏘아보았다. 강식이 명희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려 경옥을 확인하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까 뭐라고 그랬죠? 아아··· 왜 그랬냐고 물었었죠. 글쎄··· 왜 그랬을까요? 왜 당신이었을까요. 나 원 참···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되나. 에이, 뭐 그냥 죽어주면 돼요. 그냥 당신이 죽으면 다 끝나는 거였어요. 깔끔하게.


그런데 이것 보세요. 여기저기 피 흘리는 사람들에 소화기에··· 아주 난장판이 됐잖아요. 아줌마도 그렇고··· 왜 다들 그렇게 답답하게 굴어요. 그냥 깔끔하게 끝날 수 있는 일을. 네? 그렇잖아요. 안 그래요?”


명희는 나연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누가 더 심하달 것도 없이 둘 다 덜덜 떨고 있으면서도 눈은 계속 경옥을 쏘아보고 있었다. 강식의 말을 듣던 명희가 강식과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얘는··· 얘는 상관없잖아요··· 보내 주세요.”


강식이 나연을 쓱 보고는 말했다.


“아아, 그렇긴 하죠. 상관없었는데, 이제는 상관있어졌어요. 그것도 다 아줌마 때문이에요. 내가 분명히 말했죠? 아까 문 열었으면 아줌마랑 애는 그냥 보내주겠다고. 근데 어떻게 했어요? 내 손으로 문짝 다 뜯어냈잖아요. 그 아줌마 내 팔뚝도 물어뜯고. 뭐, 늦었다고나 할까요. 걱정 마요. 같이 갈꺼에요.”


명희는 나연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애써 진정하려 노력했던 호흡이 다시 가빠졌다. 강식이 아무 말 없이 두 사람을 쏘아보고 있었다. 10초. 20초. 명희는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이젠 어쩔 수 없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30초. 30분과도 같은 긴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강식이 빠루를 두 손으로 잡으며 말했다.


“자 그럼.”


명희와 나연이 숨을 들이켜고 서로를 더욱 부둥켜안았다. 나연은 얼굴을 명희에게 파묻고 울고 있었다. 명희는 나연을 감싸 안고는 강식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뭐, 뭐, 뭣들 하는 거예요!”


2층 계단에서 동렬이 소리를 질렀다. 동렬과 채연이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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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31. 인천으로 17.01.13 231 4 13쪽
30 30. 도플갱어 Doppelgänger  17.01.12 240 4 9쪽
29 29. 그냥 가지 그랬어 17.01.11 240 4 9쪽
28 28. 내가 말했잖아 17.01.10 220 4 10쪽
27 27. 그럴 리가 없어 17.01.09 295 4 11쪽
26 26. 마지막 부탁 17.01.06 250 5 10쪽
25 25. 이게 대체 어떻게... 17.01.05 203 4 10쪽
24 24. 추격 17.01.04 236 4 16쪽
23 23. 빨리 구급차를 17.01.04 253 5 9쪽
22 22. 절대로 용서 못해 17.01.03 246 5 9쪽
21 21. 설득은 필요 없어 17.01.03 257 5 10쪽
» 20. 그냥 죽어주면 돼요 17.01.03 245 5 9쪽
19 19. 카오스 CHAOS 17.01.01 237 5 8쪽
18 18. 반격 17.01.01 230 4 9쪽
17 17. 저는 기회를 드렸어요 16.12.31 229 4 11쪽
16 16. 붉은 눈, 열린 문 16.12.30 208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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