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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은수님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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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추리

완결

우은수
작품등록일 :
2016.09.12 16:59
최근연재일 :
2017.01.15 17:16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10,423
추천수 :
147
글자수 :
139,273

작성
16.12.30 09:57
조회
315
추천
4
글자
10쪽

15. 탈출, 그러나

DUMMY

명희는 허겁지겁 버튼을 누르고 또 눌렀다. 그러나 도어록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어서, 어서, 어서 빨리 열고 나가야 해, 어서 빨리!'


명희가 생각하기도 전에 몸이 문을 열려 시도하고 있었다. 허나 버튼이 눌러지지 않았다. 아니, 눌렀지만 도어록이 열리지 않았다. 어찌 된 건지 살펴볼 겨를도 없었다. 손잡이를 잡고 문을 흔들어 보고 도어록을 주먹으로 쳐 보지만 열리지 않았다.


강식의 무릎은 선반에 내리 찍혀서 옆쪽으로 꺾였다. 진주가 힘껏 선반을 들어 올리자 강식이 양 손으로 종아리를 잡아 빼냈다. 진주가 다리를 살펴보며 말했다.


“괜찮아? 걸을 수 있어?”


강식이 사냥개처럼 앙다문 이를 날카롭게 내세우며 말했다.


“저거, 저거 잡아야해.”


강식의 손가락은 명희를 가리키고 있었다. 진주는 긴 일자 드라이버를 집어 들었고 강식은 빠루를 움켜쥐었다. 두 사람이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모습을 명희는 똑똑히 보았다. 며칠간 굶주린 맹수가 먹이를 잡으려 달려들듯 둘은 맹렬하게 명희 쪽으로 달려왔다.


강식은 한쪽 다리를 절룩거리면서도 길고 무거운 빠루를 당장이라도 풀스윙 할 것처럼 오른팔 뒤로 젖힌 채 돌진해오고 있었다. 몇 걸음 되지 않는 거리지만 명희는 그 시간이 엄청나게 길고 또 무섭게 각인되었다. 진주와 강식의 표정, 날카로운 드라이버의 반짝임, 짙은 갈색의 빠루가 흔들리는 무게감이 슬로우모션처럼 느리고 자세하게 보였다.


명희는 끊임없이 ‘open' 버튼을 누르던 도어록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제야 도어록 위쪽에 또 다른 잠금장치가 보였다. 이 잠금장치가 눌러져 있으면 밖에서 비밀번호를 눌러도, 안에서 ‘open’ 버튼을 눌러도 도어록은 열리지 않았다. 명희가 위쪽의 레버를 뽑아 올리고 버튼을 눌렀다.


지잉- 하는 낮은 소리와 함께 도어록이 열렸고 명희는 뒤를 돌아봄과 거의 동시에 반사적으로 몸을 웅크렸다. 닿을 정도로 다가온 강식이 휘두른 빠루가 휘잉 소리를 내며 명희의 머리가 있던 자리를 지나갔다.


강식은 너무 세게 휘둘러 무게중심을 잃고 오른쪽 어깨로 땅에 곤두박질 쳤다. 명희는 웅크린 채 문을 열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지하 창고 밖으로 왼발을 내딛고 달려 나가려 할 때, 뒤쳐진 오른쪽 종아리를 예리한 끌이 나무껍질을 깎아내듯 일자 드라이버가 긁고 지났다.


“아악!”


명희는 비명을 지르면서도 계단 위쪽으로 달려 올라가며 힘껏 문을 닫았다. 다시 한 번 명희를 향해 찔러오던 진주의 드라이버는 빈 계단을 찔렀고, 명희가 거세게 닫은 문은 진주의 손목을 잘라버릴 것처럼 찧어버렸다. 명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무채색의 회색 콘크리트 계단을 지나 정신병동 같은 흰색 계단을 뛰어오르며 명희는 이 계단이 마치 다른 세계의 연결통로 같다고 생각했다. 욕조에 찰박거리도록 고여 있는 피와 손발이 묶인 채 얼굴이 피에 잠긴 대규, 손목이 그어져 눈을 감은 채 눈동자가 떨리던 성찬... 지옥이 있다면 아마 그런 모습일 것만 같았다.


거꾸로 들린 채 아득한 정신으로 흔들리며 이 계단을 내려갈 때, 이곳은 현실이 아니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 위에서 출렁이며 위태롭게 걸어가는 외줄타기와도 같았다. 천만 다행히 줄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어쩌면 '아직' 떨어지지 않은 것일 수도 있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명희는 알지 못했지만 저들이 나를 줄 밑으로 잡아당기려 했고 여전히 잡아끌고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해치는 자들이 바로 몇 시간 전까지 옆 자리에 앉아 함께 웃으며 대화했던 사람들이었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그들의 양면성과 철저함이 학습된 것인지 혹은 타고난 것인지, 아니면 누구나 그런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누구나 살인마로 변할 수 있는 것인지 명희는 그 변화의 가능성과 인간의 폭력성이 더욱 두려웠다. 그리고 그들이 머물고 있는 이곳에서 일초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명희는 마음을 다잡고 또 다잡았다.


'나가자. 너무 무섭지만 울더라도 나가서, 나가서 울자. 지금은 아직 아냐 명희야.'


계단 밖으로 뛰쳐나온 명희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문을 닫아 잠그려 했다. 오래된 미닫이문은 두 겹의 문 가운데에 돌려 잠그는 조그만 손잡이가 있을 뿐이었다. 더듬거리며 고리를 잡아 허겁지겁 돌려 문을 잠갔다. 고개를 돌려 바라본 거실은 어둡고 조용했다.


'저쪽이다. 저 현관문, 저기로 나가면 된다.’


한달음에 현관문으로 달려간 명희는 현관 손잡이를 덥석 잡았다. 애써 침착하며 도어록을 살펴보았다. 위에는 지하 창고와 같은 모델의 디지털 도어록, 그 바로 아래는 옆으로 돌려 잠그는 보조 잠금장치였다. 떨리는 손으로 서둘러 두 개를 모두 풀었다.


드디어 밖으로 나간다는 생각에 가쁜 숨을 내쉬며 문을 잡아당겼다. 


철그럭.


문은 약간의 틈만 벌어질 뿐 열리지 않았다. 있는 힘껏 문을 흔들던 명희는 문 아래쪽에 커다란 자물쇠가 채워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게 뭐··· 어떻게 하지, 어떻게···”


명희는 자물쇠를 뜯어낼 것처럼 쥐고 흔들었다. 손바닥과 손가락의 살이 긁혀서 자물쇠에 피가 묻어났다. 다시 현관문의 손잡이를 잡고 거칠게 잡아당겼다. 계속하면 문틀과 문에 고정된 자물쇠 고리가 뜯겨져 나갈 것처럼 보였다.


*


강식이 진주에게 달려와 손목을 살펴보았다. 진주가 왼손으로 손목을 주무르며 말했다.


“난 괜찮아. 그보다 어서.”


강식은 이를 꽉 깨물고 앞니와 송곳니를 드러내며 인상을 구겼다. 진주를 일으켜 세워주고는 다시 빠루를 집고 계단을 달렸다. 절룩거리며 계단을 올라갈 때, 강식은 명희를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지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저 피를 빼는 것으론 안 되겠어. 지금껏 이렇게 애를 먹인 경우는 없었는데. 어떻게 된 거지? 아아, 아까 바닥에 떨어뜨렸을 때 머리를 부닥쳐서 깨어난 걸까? 아무튼 지금까지와는 다른 대접을 받아야해. 특별히 잘해줘야지. 길게 고통을 주는 것 따윈 필요 없어. 그저, 그저··· 그래, 손목과 무릎을 잘라야겠어. 진주의 손목을 다치게 하고 내 무릎을 꺾었잖아? 그래. 그 정도면 적당하겠다. 먼저 손목과 무릎을 자르고 피를 빼는 거야. 뭐, 잘라 놓으면 자연스럽게 피가 빠지겠구나.’

 

강식은 명희에게 복수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복수, 그것은 강식에게 복수였다. 쉽게 마무리 될 일을 어렵게 만든 행동에 대한 복수. 강식은 명희를 죽이는 일을 밭에 물을 주고 잡초를 뽑는 일상처럼 여기고 있었다. 그런 일상적인 일을 망쳐버린 명희에 대한 복수심으로 강식은 계단을 올랐다.


닫혀 있는 흰 미닫이문을 힘껏 열어젖히려 했으나 문은 잠겨있었다. 몇 번 덜걱거리며 흔들어 본 강식은 지체 없이 문틈에 긴 빠루를 찔러 넣고 잡아당기며 문짝을 발로 찼다.


콰직.


오래된 문짝은 별다른 소리도 나지 않고 손쉽게 떨어져 나갔다. 눈앞에 명희가 보였다. 그녀는 현관문을 붙잡고 그대로 얼어붙어 있었다. 겁에 질린 사냥감을 보자 강식은 맘이 편안해졌다.


“그 정도면 됐어요.”


강식이 지하창고 입구에 서서 명희에게 말했다. 창에 내려앉은 달빛이 커튼 사이로 새어 들어와 강식의 얼굴을 반 만 비추었다. 명희가 숨을 헐떡이며 강식을 돌아보았다. 아직 진주는 올라오지 않았다. 강식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며 말했다.


“잘 했어요. 처음이에요, 이런 적은.”


명희는 문에 등을 기대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창문이 있었어. 큰 창문. 대규와 성찬이가 주스 마시는 모습을 보았던 큰 창문. 그 정도면 나가기에 충분해.’


현관을 등지고 오른 쪽에 창문이 있었다. 그러나 창문에 걸려 있는 커다란 자물쇠도 보였다.


명희의 호흡이 더 가빠져왔다. 강식은 땀을 닦으며 빠루를 들고 서서히 다가왔다. 뒤이어 진주가 밖으로 나왔다. 진주는 꼼짝도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강식과 명희의 거리가 몇 걸음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명희는 강식이 절룩거리는 모습을 보고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향해 달렸다.


‘도움이 필요해.’


명희가 계단을 향해 뛰기 시작함과 거의 동시에 강식과 진주도 명희 쪽으로 몸을 날렸다. 명희는 다다다닥 소리를 내며 계단을 올라 힘껏 소리쳤다.


“도와주세요! 아주머니 - ! 언니 - ! 살려주세요 - !”


명희는 소리치며 객실의 문을 마구잡이로 열어보았다. 문을 두들기고 손잡이를 덜걱거려도 열리는 문은 없었다. 문은 모두 잠겨있었다. 뒤따라 올라온 강식과 진주가 귀찮다는 표정으로 복도 출구에 자리 잡았다.


명희는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두려움이 명희를 짓눌렀다. 복도 제일 끝, 마지막 방만 남았다. 방문을 덜컥거리며 흔들어 보지만 열리지 않았다. 명희는 울먹였다.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일그러지고 눈물이 났다.


“흑, 흐윽···”


더 이상 어찌할 방법이 없다는 절망이 목을 조여 오는 눈물이었다. 누구도 날 구해주지 않는 처절함. 아무도 내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는 막막함. 어쩌면 이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죽이려는 것일지 모른다는 외로움. 명희는 두려움이 온 몸을 휘감아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서러운 눈물이 소리없이 주르륵 흘렀다. 문에 기댄 채 문고리를 잡고 서서히 움츠러드는데, 


벌컥.


맞은편의 구름방 문이 열렸다.


“이쪽으로 들어와 명희야."


문 안쪽에서, 붉게 충혈 된 두 눈의 경옥이 명희에게 말했다.


“어서, 여기로."


명희는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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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7. 저는 기회를 드렸어요 16.12.31 228 4 11쪽
16 16. 붉은 눈, 열린 문 16.12.30 208 4 10쪽
» 15. 탈출, 그러나 16.12.30 316 4 10쪽
14 14. push to open button 16.12.29 257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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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2. 지하실로 가는 길 16.12.28 259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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