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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은수님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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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추리

완결

우은수
작품등록일 :
2016.09.12 16:59
최근연재일 :
2017.01.15 17:16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10,424
추천수 :
147
글자수 :
139,273

작성
16.12.28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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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
추천
4
글자
12쪽

12. 지하실로 가는 길

DUMMY

강식은 이번에도 능숙하게 케이블 타이로 성찬의 팔목과 발목을 묶은 뒤 욕조로 패대기쳤다. 건장한 청년 두 명이 고장 나 버려진 마네킹처럼 구겨졌다. 진주가 바닥의 핏자국을 빨간색 손걸레로 닦아내며 말했다.


“벌써 세 시가 다 되어가네. 이제 슬슬 가져 와야겠다.”


실톱을 집으려던 강식이 시계를 보며 말했다.


“하긴 앞에 것의 피도 아직 덜 빠져서 지금 얘까지 하면 지저분하게 엉겨 붙을 것 같으니··· 가지고 와서 같이 하자.”


강식은 옆으로 처박힌 성찬의 귀에 대고 조용히 말했다.


“잠깐 기다려요. 친구 데리고 올게.”


강식과 진주는 계단을 올랐다. 지잉, 디지털 도어록이 잠겼고 두 사람은 한가롭게 잡담을 이어갔다.


“그러고 보니 세 명이 동갑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어머, 정말? 잘됐다.”


“잘 된 건가?”


“뭐, 가는 길에 심심하진 않겠네.”


“하하, 그럴 수도 있겠지.”


목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아무 소리도 없었다. 한동안 이어진 정적 속에서 스륵, 성찬의 손가락이 꿈틀거리며 청바지를 긁는 소리가 지하 창고에 맴돌았다. 성찬은 눈을 떴다. 그러나 손가락 끝을 겨우 까닥일 뿐,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억지로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그래, 너무 많이 마셨어. 그런데 아까 그건 뭐였을까. 분명 대규의 손발이 묶여 있었고 피가 흥건했는데··· 내가 잘못 본 건가? 이것 봐, 우리 너무 많이 마셨다니깐. 적당히 멈추자고 했잖아. 사장님은 대규가 잠들었다고 했잖아··· 넘어지면서 다친 걸까? 잠깐, 손발이 묶여 있었잖아? 대체··· 대체 왜?


아, 몸이 움직이지 않아. 내 팔다리도 묶여 있는 건가? 눈으로 보고 싶은데 고개도 돌아가지 않고 몸도 움직이질 않아. 손가락 하나만 조금 움직여. 감각은 천천히 돌아오고 있는 것 같아. 차가운 건지 뜨거운 건지 모르겠는데 관자놀이 쪽이 축축해. 그리고 계속 흘러내리는 것 같은데··· 이건 피인가··· 나도 피를 흘리고 있는 건가···


사장님, 미안해요. 우리가 술이 취해서. 나도 넘어져서 다친 건가 봐요. 도와달라고 말하고 싶은데 목소리도 나오지 않아. 뭐랄까··· 마치 내 몸이 소리 내는 방법을 까먹은 것만 같아. 바람이 나가고 성대가 울려서 소리가 나는 거였나? 성대를 울리는 근육이 말을 안 듣는 것 같은데. 그래도 심장은 규칙적으로 뛰고 있나봐. 잠깐만, 다시 졸려. 어지럽고··· 아, 목소리가 나왔으면 좋겠는데···’


성찬은 정상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가 없었다. 시야가 멀어지거나 가까워졌고 생각도 앞에 뒤로, 현실에서 과거로, 땅 속에서 땅 위로 들락날락했다. 그러나 그런 희미한 생각의 흐름이라도 억지로 붙잡고 잠들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버티고 또 버텼다.


*


강식과 진주는 위층으로 올라 복도 끝에서 잠시 숨죽여 있었다. 무슨 소리가 들리는지 귀를 기울이다가 고양이가 외나무다리를 건너듯 소리 없이 복도를 걸었다. 각각의 방들 앞에서도 한동안 숨죽여 귀를 쫑긋 들이대고 있었다. 동렬이 가볍게 코를 고는 소리가 새어나오자 둘은 씨익 웃으며 마저 복도를 걸었다.


객실들이 모두 조용한 것을 확인하고 진주가 마스터키를 꺼내 구름방의 문을 열었다. 방 안에서 잔뜩 충혈 된 눈으로 어금니를 악물고 누워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고 있던 경옥은 철컥 문이 열리는 소리에 딸꾹질을 시작했다. 딸꾹질은 소리가 없었으나 가슴과 가슴 안쪽 횡격막을 급격히 조여서 주기적으로 호흡이 막히는 듯했다. 과도한 긴장 탓인지 뒷목이 뻣뻣해져 문 쪽으로 고개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설마 이번에도 다른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이면 어쩌지? 대규라는 그 청년이 또 잘못 찾아온 것은 아닐까?’


경옥은 좀비가 억지로 몸을 틀어 일어나듯 기괴한 자세로 겨우 고개를 돌려 문 쪽을 바라보았다. 진주는 경옥을 보고 씩 웃고는 고개를 몇 번 가볍게 끄덕였다. 경옥도 간신히 고개를 끄덕이고 이불을 끌어올려 그 속으로 숨어들었다. 명희가 실려 나가는 모습을 차마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자, 그럼."


강식은 쓰러져있는 명희를 어깨에 들쳐 메고 일어서려 했다. 그러나 쪼그려 앉아 명희를 거꾸로 어깨에 걸친 후 일어서는 순간 가벼운 현기증이 강식을 덮쳤다. 휘청, 강식은 조금 어지러울 뿐이라고 생각했으나 어깨의 명희를 바닥에 떨어뜨려 버렸다. 쿵, 소리가 나며 머리부터 바닥에 떨어진 명희는 볼품없이 몸이 구겨져 있었다.


‘삐---'


강식의 귓속에서 높은 주파수의 전자음 같은 소리가 났다. 강식은 현기증을 잊으려는 듯 고개를 흔들고는 서둘러 명희를 들쳐 멜 준비를 했다. 옆에서 진주가 도와 명희의 양쪽 팔을 잡아 강식의 등으로 명희를 옮겼다. 그러나 강식은 일어서지도 못한 채 옆으로 풀썩, 쓰러졌다. 다시 한 번 명희의 머리가 쿵, 바닥에 떨어졌다.


강식의 귓속을 울리는 쇳소리가 더욱 커졌다. 왼쪽 눈 바로 위, 편두통이 강식에게 더해졌다. 진주가 재빠르게 강식을 부축하며 물었다.


“괜찮아?”


강식의 표정이 달라져 있었다. 고개를 끄덕여 괜찮다고 답했지만 같이 사는 진주가 봐도 섬뜩해 보이는 차가운 눈빛. 진주는 강식의 어깨를 토닥이려던 손을 슬그머니 접어 내렸다. 이럴 때는 강식에게 말을 걸거나 몸에 손을 대선 안 된다는 걸 진주는 알고 있었다. 강식은 극도로 예민해져 있었다.


진주는 내심 불안했다. 식은땀이 나고 어지러움을 호소한 뒤 얼굴이 창백해지고 가슴 통증과 발작이 이어진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황이 급박해지면 언제라도 약을 입에 넣어줄 수 있도록 주머니에 알약을 준비해왔다. 진주는 초조했지만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강식은 이미 쓰러져있는 명희를 노려보았다. 지금 내 호흡이 거칠고 폭발하기 직전의 상태라는 것을 강식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대체 왜 화가 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귀를 찢을 것처럼 높은 쇳소리도 왜 나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예전부터 이런 경우는 늘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아내가 보고 있을 때 뭔가 허약한 느낌을 주는 것, 아픈 사람처럼 비틀대는 것, 내 생각대로 일이 잘 진행되지 않는 것··· 몸이 아프기 전에도 그랬는지는 잘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치료를 받으며 약을 먹기 시작한 이후에, 몸무게가 급격히 줄고 내 몸이 앙상한 뼈만 남은 것처럼 느낀 이후부터 감정의 기복이 심해졌다는 점이다. 강식은 애써 침착하려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이제 들고 내려가서 정리하기만 하면 끝난다. 잠시 아내에게 쪽팔린 모습을 보였지만 벌써 일어난 일을 어쩔 수가 있나. 내려가자. 어서 들고 내려가자. 가서, 분이 풀릴 때까지 두들기는 거야.’


강식은 스스로에게 조금만 더 힘내라고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렸다.


*


강식이 명희를 두 번째 떨어뜨렸을 때, 쿵 하는 소리에 나연은 눈을 떴다. 부스스 일어나 휴대폰을 보니 새벽 세시가 조금 넘었을 뿐이었다. 엄마는 여전히 잘 주무시고 계셨다.


'내가 뭘 잘못 들었나··· 위층에서 누군가 점프했다가 발뒤꿈치로 착지하는 것처럼 쿵 소리가 났는데. 아참, 여기는 2층짜리 집이고 이 방이 2층이니 층간소음일리는 없잖아. 옥상에 나갈 수가 있는 건가? 에이, 잘못 들었나보지.’


나연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옆으로 돌아누워 계속 잠을 청했다.


*


“저기, 이것 좀 도와줘.”


강식이 침착하려 애쓰며 진주에게 말했다. 옆에 우두커니 서 있던 진주는 강식의 도와달라는 말이 오히려 기뻤다. 그것은 강식이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다는 뜻이었다. 진주는 후다닥 달려가듯 강식 곁에 함께 쪼그려 앉았다.


“이제 괜찮아. 다시 팔을 올려줘.”


강식은 명희를 한 쪽 어깨에 거꾸로 들쳐 메고 떨어뜨리지 않도록 바지를 꽉 잡았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하얗게 될 정도로 손에 힘을 주고는 진주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진주는 문을 빼꼼 열어 밖을 살핀 후 강식이 나갈 수 있도록 활짝 열어주었다. 강식이 먼저 문 밖에 나가고 진주가 뒤따라 나오며 경옥을 보았다. 그러나 경옥은 여전히 이불을 뒤집어 쓴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설마 자는 건가? 이 상황에서? 경옥씨도 대단하네···’


진주는 별다른 말없이 조용히 문을 닫았다.


덜컥.


문이 닫히는 소리에 경옥은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흑··· 흐어엉···”


뒤집어썼던 이불을 콱 깨물었다. 소리 내서 울지 않으려 발버둥 쳤다. 명희의 얼굴, 명희의 목소리, 명희와 마주앉아 나눴던 대화들, 사무실에서 점심 메뉴를 고르던 일이며 커피를 마시고 잡담을 나누던 시시콜콜한 일들까지 빠르게, 그러나 선명하게 지나갔다.


처음 명희가 회사에 들어와 인사하던 날까지 기억났다. 사회생활은 처음이라고 고백하는 어색한 정장차림. 그러나 늘 웃는 얼굴에 부지런히 메모해가며 빠르게 일을 배워나간 신입사원. 영업직이 아니라 상담 및 업무진행 담당인데 고객들의 칭찬과 재구매가 가장 많이 연결되는 신기한 상담원.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항상 주변에 가득해서 누구나 같이 일하고 싶게 만드는 유쾌한 후배. 유독 날 잘 따르고 나도 많이 챙겨주었던 친동생보다 더 친한 동생.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속마음도 어쩐지 털어놓게 되어버린 다정다감한 친구···


'내가 내 손으로 명희의 머리를 내리쳤어. 즉사했을 수도 있어... 아니, 그건 아니야. 숨 쉬는 것을 분명 보았어. 하지만 어쩌면 그 때부터 고통을 느끼지 않는 편이 더 좋을 수도 있겠다. 넌 이제 곧 갈 테니까. 미안하다 명희야. 미안해···’


경옥은 여전히 이불을 깨물고 소리 내지 않으려 애쓰며 울고 있었다. 눈물에 젖은 이불이 빨갛게 물들어 갔다. 경옥의 눈물에 피가 섞여 나오고 있었다.


*


명희를 어깨에 메고 있었지만 강식과 진주는 여전히 고양이처럼 사뿐사뿐 복도를 걸었다. 그러나 강식은 비정상적일 정도로 얼굴에 땀을 흘리고 있었다. 진주가 수건으로 닦아주고 싶을 만큼 식은땀이 얼굴에 가득했고 턱이며 구레나룻을 타고 뚝 뚝 땀방울이 떨어졌다.


진주는 너무 불안했다. 어서 지하실에 눕혀놓고 피를 빼 놓은 후 나머지는 내일 처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불안함이 엄습함과 거의 동시에, 강식이 비틀거리며 벽에 몸을 기댔다. 강식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창백한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다. 진주가 괜찮냐고 물어보기도 전에 강식이 먼저 진주를 돌아보며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 진주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강식이 다시 한 발을 더 내딛으며 복도를 걸었다. 턱, 턱, 턱··· 힘들게 걷는 발자국 소리가 조용한 게스트하우스에 울렸다. 이제 계단만 내려가면 된다. 진주가 계단 손잡이를 왼손으로 먼저 잡고 오른 팔로 강식의 팔짱을 껴 주었다. 강식도 왼팔에 힘을 주어 진주의 도움을 받아들였다. 아직 어지러움이 강식에게 남아있었다. 계단을 내려가기 전 잠시 숨을 고르고 출발해야 했다.


강식과 진주가 잠시 멈춰있을 때 파도방의 문이 조용히 열렸다. 문틈으로 나연이 계단 쪽을 보았고 거꾸로 매달린 명희를 보았다. 나연은 입을 손으로 가리며 눈동자가 튀어나올 듯 소스라치게 놀랐다. 거꾸로 매달린 명희가 눈을 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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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5. 탈출, 그러나 16.12.30 316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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