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우은수님 님의 서재입니다.

게스트하우스

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추리

완결

우은수
작품등록일 :
2016.09.12 16:59
최근연재일 :
2017.01.15 17:16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10,435
추천수 :
147
글자수 :
139,273

작성
16.12.28 10:24
조회
368
추천
4
글자
11쪽

7. 평소와 다른 눈빛

DUMMY

“언니, 언니! 일어나 벌써 아홉시야.”


명희는 경옥을 흔들어 깨웠다. 경옥은 부스스 눈을 뜨며 팔을 뻗어 기지개를 켰다. 잠이 덜 깨서 어리둥절하게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으응··· 잘 잤어?”


“잘 잤지 그럼~ 얼른 일어나서 씻어. 여기 조식 아홉시 반까지 된대. 빨랑 먹고 나가자. 오늘도 날씨 좋아!”


명희는 아이처럼 들떠서 경옥을 닦달했다. 침대에서 뭉그적거리는 경옥을 억지로 일으켜 세워 욕실에 집어넣고는 화장을 시작했다.


“20분 안에 내려가야 해! 서둘러!”


명희의 재촉에 경옥은 할 수 없다는 듯 답했다.


“알았어, 금방 나갈게.”


거울에 비친 경옥의 얼굴은 그늘이 가득했다. 경옥은 스스로 양쪽 뺨을 철썩! 때리고는 얼굴을 짓이기듯 비벼댔다. 거울 속의 얼굴도 경옥의 손에 엉망으로 일그러졌다. 세면대를 붙잡고 거울 앞에 바싹 다가선 경옥이 거울 속의 여인에게 말했다.


“하루야. 단 하루. 흔들리지 마.”


경옥은 거울과 눈싸움을 하다가 오른쪽 뺨에 따귀를 날리고 현실로 돌아왔다. 서둘러 양치를 시작했다. 명희는 가벼운 화장을 거의 끝내가고 있었다.


*


“잘 잤어요?”


1층 거실로 내려오는 명희와 경옥에게 강식이 상냥하게 물었다.


“토스트와 스프, 삶은 계란 준비되어 있어요. 주스와 커피도 있으니 맛있게 들어요.”


진주가 주방에서 나오며 친절히 안내해 주었다. 강식과 진주의 표정이나 말투 어디에도 지난 밤 일을 꾸미던 살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여행객들에게 최대한 친절을 베푸는 맘씨 좋은 게스트 하우스 사장 내외였다. 꾸벅 인사하고서 토스트를 받으러 간 경옥은 이들의 철저한 상냥함에 소름이 끼쳤다.


엄마와 딸이 먼저 내려와 식사를 마치고 커피와 주스를 마시고 있었다. 명희가 토스트 접시를 들고 모녀에게 다가가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잘 쉬셨어요?”


숙영은 손을 흔들어 답했고 나연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명희가 나연의 옆에 앉으며 말했다.


“저희는 성산 일출봉에 갈 계획이에요.”


나연이 휴대폰을 꺼내며 말했다.


“엄마랑 저랑 어제 거기 다녀왔는데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너무 많아서 쫌 짱났어요. 엄청 시끄러웠거든요. 아무데서나 막 담배피구··· 근데 경치만 보면 대박 예뻐요. 사진도 진짜 잘 나오구요.”


나연이 휴대폰으로 사진을 보여주었다. 명희와 경옥이 사진을 보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휴대폰을 돌려주면서 나연의 얼굴을 살펴보던 명희가 부러운 눈치로 말했다.


“어머··· 어제는 잘 몰랐는데 가까이서 보니까 진짜 연예인 같다. 어쩜 이렇게 피부도 좋고 올망졸망하니 예쁘게 생겼을 수가. 어머님께선 따님 얼굴만 봐도 배부르시겠어요.”


숙영이 씩 웃으며 답했다.


“그러게요. 얘가 누굴 닮아 이렇게 예쁜지. 아무래도 엄마 닮은 거 같죠? 호호호.”


순간 나연과 명희, 경옥이 얼어붙자 급히 손사래를 치며 숙영이 말을 이었다.


“어머, 농담이에요 농담. 아이고 참 무안하게시리.”


네 명이 동시에 까르르 웃고 있는데 동렬이 토스트 접시를 들고 지나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동렬은 귤나무가 보이는 창가에 혼자 앉아 조용히 토스트를 먹었다. 커다란 덩치의 동렬이 토스트 두 장과 삶은 계란 두 개로 끼니가 될지 궁금해 하던 명희는 동렬의 목덜미에 생긴 푸르스름한 멍을 발견했다. 잘못 본건가 싶어 고개를 쭉 빼고 골똘히 보고 있으니 동렬이 명희의 시선을 느끼고 꾸벅 인사하며 몸을 틀어 멍 자욱을 숨겼다. 명희도 멋쩍게 웃으며 꾸벅 인사했다.


지켜보던 경옥이 동렬 쪽을 스윽, 쳐다보고는 명희의 옆구리를 쿡 찌르고 조용히 속삭였다.


“어제 그년이 결국 쟤 잡아 먹었나보다. 아주 목을 뜯어먹으려고 했나봐."


명희는 설마 하며 피식 웃었다. 동렬은 이들의 대화를 듣지 못했지만 아예 한 손으로 목덜미를 가리고 토스트를 먹었다.


“그럼 재밌게 보내요. 오늘 또 여기 묵으시나요?”


숙영이 일어나며 명희와 경옥에게 물었다. 경옥이 믹스 커피를 타며 답했다.


“네, 오늘도 저희는 여기 머뭅니다.”


“그럼 이따 저녁에 또 만나요~.”


모녀는 밝게 인사하고 계단을 올랐다. 아홉시 반이 지나자 진주는 만들어 놓은 토스트를 랩에 싸 놓은 뒤 주방을 정리하고 방에 들어갔다. 느긋하게 지도를 보며 커피를 마시는 경옥에게 명희가 창밖으로 하늘을 보고는 후다닥 달려와 말했다.


“우리도 나가자. 하늘 진짜 파랗고 예뻐.”


*


가방을 챙겨 게스트 하우스를 나온 경옥과 명희는 렌트카에 올랐다. 안전벨트를 매고 휴대폰으로 지도를 검색하려는데 게스트 하우스 거실의 통유리 창 너머로 대규가 손을 흔들었다. 옆에 있던 성찬도 명희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둘은 방금 일어나 내려왔는지 머리는 부스스했고 눈은 퀭한 게 마치 ‘어제 과음 했어요’라는 머리띠를 이마에 두른 듯했다. 명희는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는 경옥에게 말했다.


“쟤네 아직 있었네. 이제 일어났나봐.”


지도를 보며 내비게이션을 설정하던 경옥이 명희의 말에 대규와 성찬을 바라보았다. 둘은 오렌지 주스를 해장국처럼 들이마시고 있었다.


“어제 엄청 마셨나부다. 하긴 그럴 때지. 자~ 그럼 우린 성산 일출봉으로 출발해 볼까?”


“좋았스~ 출바알~~”


명희는 선글라스를 끼고 휴대폰으로 연신 셀카를 찍어댔다. 밝을 때 바라본 게스트 하우스는 어제 본 광경과 완전히 달랐다. 어둠 속에서 홀로 빛나던 건물 주위로 귤나무와 검은 돌담이 포근하게 숙소를 감싸고 있었다. 어젯밤 불빛 하나 없어 불안했던 진입로는 사진으로만 접했던 제주의 시골길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명희는 돌담과 귤나무의 이미지가 야자수만큼이나 이국적이라고 생각했다.


“와아··· 여기가 이렇게 생긴 길이었구나. 숙소 주변도 산책하기 좋겠는걸. 이런 돌담과 귤나무들이라니.”


명희의 말에 경옥도 속도를 줄이고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러게. 돌담이 정말 예쁘다.”


긴 돌담길의 끝자락에서 노부부가 귤나무를 가꾸고 있었다. 조수석의 창문을 열고 손가락으로 바람을 만지던 경옥의 손가락 끝으로 노부부가 보였다. 밭에서 무언가 작업을 하던 노부부는 허리를 펴고 명희의 차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친 명희가 씩 웃고는 밝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노부부는 아는 사람들인가 확인하려는지 눈을 찡그리고 차를 바라보다 이내 손을 들어 간단히 답하곤 다시 밭일에 몰두했다. 명희가 해를 등지고 노부부를 바라보자 파란 하늘과 초록 귤나무, 진한 자주색 흙과 검은 돌담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명희는 휴대폰으로 노부부가 일하는 사진을 연달아 찍고선 경옥에게 호들갑을 떨었다.


“우와, 언니, 이거 봐. 완전 화보야 화보. 나 사진에 소질 있는 거 같아.”


경옥은 피식 웃고서 말했다.


“많이 찍어둬. 나중에 여행 사진 공모전 이런 거에 내 보게.”



성산 일출봉에 다가가는 길목부터 제주도는 다양한 풍경사진을 한 장씩 보여주었다. 바다는 어떤 햇볕과 어떤 구름 아래서 보느냐에 따라 모두 다른 색깔의 아름다움으로 눈부셨고, 꽃들과 바다 너머로 우뚝 솟아오른 성산 일출봉의 기이함은 자연에 대한 경외심마저 들게 했다. 명희와 경옥의 휴대폰에도 그림 같은 사진들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언니, 점심은 내가 알아본 곳으로 가자.”


주차장으로 걸어 내려오면서 명희가 말했다.


“아무거나 좋아. 어딘데?”


“제주도 왔는데 지글지글 한 번 구워야지. 내가 살께.”


“됐어. 같이 계산해.”


“아냐 아냐. 내가 꼭 언니한테 쏘고 싶어서 그래. 암튼 이 식당으로 가자.”


*


두툼한 돼지고기 덩어리가 식당 주인의 노련한 손놀림에 먹음직한 크기로 잘라져 노릇하게 구워져 갔다. 한 조각을 입에 넣었을 때, 껍질의 탱글탱글한 식감과 입 안 가득 퍼지는 육즙의 맛이 지금까지 명희가 먹던 돼지고기와는 완전히 달랐다. 맛깔스러운 밑반찬과 여러 가지의 쌈 채소, 고소한 된장찌개까지 구성과 조합이 훌륭하다며 명희와 경옥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명희가 계산서를 집어 들자 경옥이 앉으라고 손짓하면서 말했다.


“같이 내자.”


“아냐 언니, 내가 낼께.”


"그러지 마. 같이 내.”


"내가 고마워서 그래."


몇 번이나 같은 말이 오고갔다. 여행 준비해준 언니에게 맛있는 거 사주고 싶다는 명희와 같이 놀러 온 건데 뭘 그러냐는 경옥이 똑같은 말로 설전을 주고받았다. 경옥이 짜증을 못 견디며 굳어지는 얼굴로 말했다.


"됐어. 너한테 부담주기 싫어서 그래.”


명희는 경옥의 얼굴에 드러난 언짢음을 눈치 챘다. 이상한 느낌과 서운한 감정이 일순간 몰려왔지만 모처럼 만의 여행에서 이런 사소한 일로 기분을 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바로 웃는 얼굴로 경옥에게 말했다.


"어, 어... 그래 언니. 그럼 같이 하자.”


경옥 또한 자신의 표정과 말투가 평소와 달랐음을 금세 눈치 채고는 다시 풀어진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그래, 같이 내.”


경옥은 두 번 다시 감정의 빚을 지고 싶지 않았다. 죄책감에 시달릴 자신이 얼마나 힘들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돈을 위해서 이미 팔아버렸다고 생각한 가슴에서 복잡한 감정 따위가 다시는 피어나지 못하도록 철저히 틈새를 막는 자기 방어와도 같은 냉랭함이었다. 경옥이 지폐를 꺼내며 스스로에게 말했다.


'인간은 모두 이기적이야. 자기중심적이고. 나도 나를 위해서 그런 거야. 괜찮아. 괜찮아···'


명희도 웃으며 카드를 꺼내고 있었지만 섭섭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도 끝까지 좋은 방향으로 해석하기로 했다. 정말로 경옥 언니는 내가 부담 느낄까봐 그랬을 것이라고, 언니가 더 챙겨주려고 그러는 거라고... 그렇게 두 사람은 다시 웃었다.


*


중문 관광지 몇 군데를 둘러보고 있는데 경옥과 명희에게 문자메시지가 왔다.


<오늘은 불타는 금요일입니다! 게스트 하우스에서는 7시 30분부터 삼겹살 파티가 열릴 예정이오니 참석하실 분은 알려주세요. 참가비는 만오천 원입니다>


명희는 잘 됐다고 생각했다. 점심 식사 후 어색하게 계산하며 나왔는데 또 저녁밥을 먹으며 비슷한 분위기가 만들어질까 내심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휴대폰을 보던 경옥과 명희의 눈이 마주쳤고 둘은 별다른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물어가는 태양이 제주의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시간에 명희와 경옥은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했다. 어제는 어두워서 보지 못했던 게스트 하우스 앞의 돌담길과 귤나무들을 배경으로 다시 한 번 셀카놀이를 한 이후에 함께 나눠 마실 제주 막걸리를 몇 통 들고 현관문을 열었다.


강식은 커다란 식칼을 들고 서 있었다. 진주는 두 손 가득 고기를 들고 부엌에서 나오다 명희와 눈이 마주쳤다. 명희는 밝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진주가 걸어가는 중간에 우뚝 멈춰서자 고기의 핏물이 거실 마룻바닥에 똑 똑 떨어졌다. 명희는 식당에서 경옥의 표정이 변했을 때처럼 강식과 진주의 얼굴이 서늘하게 식어서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을 일순간 알 수 있었다. 거실의 네 명이 그대로 서서 서로의 눈 만 바라보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게스트하우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16.12.28 270 0 -
32 32. 내미는 손 / 마지막 회 17.01.15 319 4 8쪽
31 31. 인천으로 17.01.13 230 4 13쪽
30 30. 도플갱어 Doppelgänger  17.01.12 240 4 9쪽
29 29. 그냥 가지 그랬어 17.01.11 239 4 9쪽
28 28. 내가 말했잖아 17.01.10 220 4 10쪽
27 27. 그럴 리가 없어 17.01.09 295 4 11쪽
26 26. 마지막 부탁 17.01.06 250 5 10쪽
25 25. 이게 대체 어떻게... 17.01.05 203 4 10쪽
24 24. 추격 17.01.04 236 4 16쪽
23 23. 빨리 구급차를 17.01.04 253 5 9쪽
22 22. 절대로 용서 못해 17.01.03 246 5 9쪽
21 21. 설득은 필요 없어 17.01.03 257 5 10쪽
20 20. 그냥 죽어주면 돼요 17.01.03 244 5 9쪽
19 19. 카오스 CHAOS 17.01.01 237 5 8쪽
18 18. 반격 17.01.01 230 4 9쪽
17 17. 저는 기회를 드렸어요 16.12.31 229 4 11쪽
16 16. 붉은 눈, 열린 문 16.12.30 208 4 10쪽
15 15. 탈출, 그러나 16.12.30 316 4 10쪽
14 14. push to open button 16.12.29 257 4 10쪽
13 13. 자물쇠 밖의 그림자 16.12.29 335 4 12쪽
12 12. 지하실로 가는 길 16.12.28 260 4 12쪽
11 11. 하나씩, 하나씩 16.12.28 290 4 10쪽
10 10. 굿바이 파티 16.12.28 280 4 8쪽
9 9. 뒤틀림 16.12.28 305 4 8쪽
8 8. 여기 와줘서 고마워요 16.12.28 401 4 9쪽
» 7. 평소와 다른 눈빛 16.12.28 368 4 11쪽
6 6. one more day +1 16.09.20 404 6 12쪽
5 5. 나와 닮은 사진 +1 16.09.19 858 6 9쪽
4 4. 너는 웃는 얼굴이 예뻐 +1 16.09.16 447 6 7쪽
3 3. check in 16.09.15 413 6 9쪽
2 2. 숙소는 파랑 게스트하우스야. 16.09.13 434 7 8쪽
1 1. intro : 제주도로 가라 +1 16.09.12 920 6 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