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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거스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괴사(武林怪史)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판타지

데거스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1.24 18:15
최근연재일 :
2024.02.26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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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6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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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제갈성문

DUMMY

여율의 목이 떨어지며 술법이 해제되자 제갈성문이 다급히 달려와 걱정어린 어조로 내게 묻는다.


“유소협 괜찮으십니까?”


눈을 감고 가만히 서 있으니 내가 부상을 입었다고 생각했나 보다.


“저는 멀쩡합니다. 잠시 희생된 이들의 넋을 기리고 있었습니다.”


“무탈하시다니 다행입니다. 설마 이런 곳에서 괴사노(怪邪老) 여율과 마주치게 될 줄은···”


“유명한 자입니까?”


“사혈련의 거두 중 한 명입니다. 본디 무림을 떠돌며 괴행을 일삼기로 유명한 놈이죠.”


저 여율이란 노인은 아무래도 내 생각보다 더 대단한 인물이었던 것 같다.


백도회의 무인들이 시신을 수습하며 어느정도 상황이 마무리되자 제갈성문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그런데 유소협께선 이제 어찌하실 생각이신지?”


“아, 사건이 해결되었으니 제갈대협께선 백도회로 복귀하셔야겠군요.”


“그렇습니다. 해서 드리고 싶은 말씀인데 혹 저희와 함께 백도회에 방문하실 의향이 있으십니까?”


“제가 백도회에 말씀입니까?”


“예, 구명지은을 갚고 싶습니다.”


그의 뜻은 이해하나 내겐 난처한 제안이었다.


이번 같은 일은 어쩔 수 없지만,


스승님께선 예로부터 무림인,

특히 무림 세력과 엮이는 건 가급적 자제하라고 하셨다.


“송구합니다. 스승님의 유지를 받들어 초야를 떠돌아야 하는 몸이라, 괜한 이목을 살까 두렵습니다.”


“허나, 이대로 은혜도 갚지 못한 파렴치한이 될 순 없습니다. 뭐든 좋습니다. 부디 은혜를 갚을 수 있게 허락해주십시오.”


마차를 태워준 것으로 셈을 치자고 말했으나 절대 그럴 수 없다고 반박한다.


“어찌 마차를 태워준 것과 목숨을 구해준 은혜가 같을 수 있겠습니까?!”


이토록 강경하게 나오니 나도 계속 사양할 수는 없었다.


“후우, 그럼 여비를 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여비 말입니까?”


“예, 아무래도 제가 오랫동안 산에서만 지내다 보니···”


그제야 다시한번 내 몰골을 확인한 제갈성문이 눈을 빛냈다.


“빌린다니, 가당치 않습니다. 부디 받아주십시오.”


조심스럽게 그가 내민 전낭을 받아들였다.


새 옷을 사고 적당히 끼니를 때울 정도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 안에 담긴 은자와 금자를 보고 나도 모르게 두 눈을 부릅떴다.


“이건 너무 많습니다. 은자 두 냥이면 충분하니 나머지는 다시 거둬주십시오.”


“목숨을 구원받았는데 금자면 어떻고 은자면 어떻습니까? 오히려 드릴 수 있는 게 이것뿐이라서 죄스러울 뿐입니다.”


“하지만···”


“부디 조금이나마 저희가 보은할 수 있게 받아주십시오.”


과한 액수에 손사래를 치며 사양하려 했으나,

단호한 그의 태도에 결국 모두 받아들이게 되었다.





사태가 마무리되고,

무인들이 지친 몸을 눕혀 잠을 청하고 있을 때,


나는 불침번을 서고 있었다.


제갈성문과 무인들은 자신들에게 맡겨 달라며 극구 반대했지만, 모두가 지쳐 있는 마당에 혼자만 편안하게 쉬는 건 내키지 않았다.


결국 계속되는 나의 의지에 결국 모두 수긍하였고 그렇게 불침번을 서며 스승님이 남기신 서책을 훑어봤다.


스승님께선 생전 천하를 떠돌며 본인이 확인한 괴이와 요설, 영물에 관한 기록을 남기셨고, 개중에는 내가 모르고 있는 것들도 제법 많았다.


한참 책에 집중하고 있던 도중

옆에서 제갈성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불과 몇 시진 전에 그런 일을 겪으시고도 수학(修學)을 게을리하지 않는 모습을 보니 제 스스로가 부끄럽습니다.”


“그리 치켜세워주시니 낯이 뜨겁군요. 그저 스승님의 발자취를 답습하는 것뿐입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은인의 스승께선 어떤 분이셨는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스승님이 어떤 분이셨냐라,

참으로 어려운 질문이다.


“도를 추구하기 위해 적을 두지 않고 천하를 떠도시던 분이시죠.”


“허, 어쩐지 은인께 무언가 범상치 않은 관록 같은 것이 느껴진다 싶었는데, 스승님의 영향이셨군요. 혹 어느 계파에 속하셨는지···”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따로 말씀해주신 적이 없어서.”


흔히 세간에 알려진 도인들 역시 무림에 속한 이들 중 하나였다.


심신을 단련하며 도(道)를 실현한다.

수선(修善)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비슷해 보일 수 있으나 그들과 스승님의 방식엔 큰 차이가 있었다.


그들이 산자를 베어 도의를 바로 세우고자 했다면,

스승님은 망자와 괴이를 베어 천하를 평안케 하고자 노력하셨다.


따로 적을 두지 않고 세상을 떠돌며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괴이를 베고, 훗날을 살아갈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괴이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것이 스승님의 염원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나의 염원이기도 했다.


“직접 뵙지는 못했으나, 소협의 모습을 보니 얼마나 훌륭하신 분이셨는지 알 것 같습니다. 무공 역시 스승님께 배우신 겁니까?”


“그저 호신용으로 간략하게 배운 것일 뿐이라, 딱히 무공이라고 할 정도로 대단한 건 아닙니다.”


스승님께선 내 재능이 탁월한 거라 말씀하셨지만,


‘글쎄···’


나는 잘 모르겠다.

아마 내 또래에 다른 무림인들과 만나본 적이 없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슬쩍 제갈성문과 백도회에 무인들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모두 그리 나쁜 실력은 아니지만,

내가 보고 들었던 무림인들과 비교하면 조금 부족했다.


애당초 작은 소란을 해결하기 위해 이런 산골까지 나선 것을 보면 백도회에서도 그리 높은 위치는 아닐 것이다.


그때 우연히 제갈성문과 눈이 마주쳤다.

혹시라도 그가 내 생각을 눈치챈 건가 싶어 황급히 자리를 파했다.


“흠흠, 이만 시간이 늦었으니 저도 이만 쉬도록 하겠습니다.”


“예, 불침번은 걱정 마십시오.”


다행히 그는 별다른 기색을 보이지 않았고 그 덕에 나도 어색하지 않게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한편, 성운이 잠자리에 들었을 무렵,


제갈성문은 등을 돌린 채 누워있는 성운을 바라봤다.


‘조만간 군사부로 발령될 예정이라, 소소하게 실적이나 쌓을 요량으로 이리 밖에 나온 것이거늘.’


비록 가주인 형과 달리 무공보단 학문에 더 뜻은 둔 탓에 무위는 그리 뛰어나진 않았으나, 제갈세가라는 배경과 그 학식을 인정받아 맹에서 대주의 직에 올랐고, 조만간 군사부의 이인자인 부군사 직에 오를 예정이었는데,


‘설마 이런 인연과 마주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기괴하게 생긴 괴물을 단칼에 베어버린 것도 놀라웠지만, 그보다 더 대단한 건 그가 여율을 처리했다는 것이다.


여율은 사혈련에서도 널리 알려진 거두.

백도회로 치면 각주 내지 대주급 인사와 동격이었다.


‘게다가 무림에서 사술을 다루는 자를 상대하는 건 어려운 일이지.’


제갈세가는 다른 무가와 다르게 진법과 같은 여러 지식에 해박하고, 백도의 무가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사마외도들이 다루는 사술을 파훼하고자 따로 술법을 연구하는 곳이라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다.


자신이 알기로 사술 중에서 가장 다루기 힘든 상승의 술법 중 하나가 바로 환계(幻界)의 술이다.


환각과 환영을 이용해 상대를 현혹시키는 사술은 다루는 이가 거의 없다고 들었고. 때문에 여율이 목부를 이용해 환계를 펼쳤을 땐 깜짝 놀랐다.


‘그런데 그 환계를 가볍게 벗어난 것도 모자라 여율을 단칼에 베어버렸다고?’


사술을 다루기에 본신의 능력은 형편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여율은 일신의 무위 역시 절정에 오른 인물이다.


그런 노괴가 제대로 손도 못 쓰고 목이 떨어진 것이다.


그 광경을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스스로를 유성운이라 밝힌 저 청년은 결코 평범한 인물이 아니라는 걸.


‘분명 삼년상을 마쳤다고 했지?’


절로 입에서 침음이 흘러나온다.


‘괴이라는 존재에 대해 해박하고 절정 고수를 단칼에 베어버릴 실력을 갖추고 있다라···’


대체 그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제갈성문은 어쩌면 무림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다음날,


제갈성문과 무인들은 날이 밝자마자 여율의 시신을 챙겨 가까운 마을로 향했다.


“백도회에 바로 복귀하시는 게 아니었는지?”


“은인을 이런 산중에 내버려 두고 갈 순 없지요. 가까운 마을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허나···”


“사양하지 마십시오. 저희도 잠시 정비를 해야 하니 필요한 일입니다.”


확실히 지난밤 전투에서 부상을 입은 이들도 있었으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리 말씀하신다면···면목 없지만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제갈성문의 호의에 다시한번 감사를 표했다.

마차를 타고 흥산을 지나 산기슭을 내려오니 당정촌이라 불리는 마을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일단 객잔에서 여독을 푸는 게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저 역시 몸을 씻고 새 의복을 구해야 하니···”


“의복은 저희에게 맡겨 주십시오. 근처 포목점에 들려 구해오겠습니다.”


“그건 너무 죄송한···”


“아닙니다. 그래야 씻고 내려오시자마자 함께 식사를 즐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제가 다녀올 테니 먼저 올라가십시오. 은인께 딱 맞는 옷으로 구해오겠습니다!”


대원 중 한 명이 의욕을 보이며 말릴 새도 없이 객잔 밖으로 뛰쳐나갔다.


지나친 호의에 고마우면서도 부담감이 든다.


‘스승님께서 호의를 계속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하시긴 했다만,’


왠지 모르게 나를 상전처럼 모시는 기분이 드는 건 착각인가?


성운은 알지 못했으나,

대개 무림인들은 자신보다 실력이 뛰어난 고수를 선망하는 경향이 있다.


거기다 생명의 은인인 것에 더해 스승의 삼년상을 치를 정도로 인의예지(仁義禮智)에 밝았으니, 그들이 성운에게 호감을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제갈성문과 무인들의 배려로 먼저 객실에 올라갔다.


점소이가 올려다 준 목욕물로 몸을 씻어내니, 그간의 여독과 피로가 녹아드는 기분이다.


‘이렇게 씻는 것도 오랜만이구나.’


산속에서 지낼 땐 제대로 씻지도 못했다.

아침에 세안하는 걸 제외하면 아주 가끔 근처에 있는 계곡에서 몸을 씻는 게 전부였다.


‘고작 하산하고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구나.’


괴이를 만나고,

그런 괴이를 다루는 악적을 베었다.


그뿐일까?

소문으로만 듣던 백도회 소속 무림인들과 만나 이야기도 나눴다.


‘이런 소소한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 자신을 만들어준다고 하셨지.’


스승님의 말씀을 속으로 되뇌며 제갈성문과 일행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무림인이라,’


잠시 상념에 빠져 있던 그때,

밖에서 제갈성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똑똑!


“은인, 새 의복은 문 앞에 두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잡생각을 하느라 시간을 낭비했다.


‘괜히 기다리게 할 순 없으니,’


물기를 모두 닦고 그들이 가져다준 옷을 입었다.


어느정도 예상하긴 했으나,

역시나 그들이 구해온 것은 다름 아닌 무복(武服)이었다.


그래도 나름 배려한 것인지

겉에 두를 피풍의까지 챙겨줬다.


무복을 입는 건 어렸을 적 이후 처음이라 어색하게 맞춰 입고 밖으로 나섰다.


“다들 거기 앉아계셨군요.”


저 멀리 앉아있는 제갈성문과 무인들을 발견하고 다가가 말을 걸었는데,


“으,은인?”


“저···정말로 유소협이 맞습니까?”


모두들 감탄성을 내뱉는다.


“못 알아볼 뻔했습니다.”


“이토록 헌앙한 얼굴을 그리 숨기고 계셨을 줄은···”


“다들 칭찬이 과하십니다.”


“과하다니요.”


제갈성문과 무인들의 반응은 진심이었다.


맑고 총기가 느껴지는 눈빛,

잡티 없는 피부에 선명한 턱선,

마치 뛰어난 장인이 조각한 것 같은 뚜렷한 이목구비


이런 특출난 외모를 타고난 청년이 정갈한 무복까지 입으니 그야말로 화룡점정(畵龍點睛)이 따로 없었다.


‘반쯤 넝마가 된 옷에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어 몰랐는데,’


‘명문세가의 귀공자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구나.’


‘허! 하늘은 공평하다더니 다 헛말이었군. 뛰어난 무재와 이런 출중한 외모를 한 사람에게 다 내려주셨으니···’


그들은 환골탈태 한 것 같은 성운을 보며 차마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모두가 감탄하고 있던 와중.

돌연 무복을 구하기 위해 나섰던 무인이 아차하는 표정으로 손뼉을 쳤다.


“아, 그러고 보니 무복을 구하러 포목점에 갔을 때 유소협께서 관심을 가지실만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제가 관심을 가질만한 소문 말입니까?”


“예, 놀라지 마십시오. 글쎄 요 근방에 영물이 나타났답니다.”


영물?


영물이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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