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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거스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괴사(武林怪史)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판타지

데거스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1.24 18:15
최근연재일 :
2024.02.26 12:20
연재수 :
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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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954

작성
24.02.02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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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순구의 진실

DUMMY

잠시 숨을 고른 뒤 고개를 들어 놈의 상태를 살폈다.


“···명줄이 질기군.”


“크흐흐···쿨럭! 연륜의···차이라는 것이다.”


단번에 숨통을 끊을 생각이었는데,

애석하게도 놈은 죽지 않았다.


초식을 펼친 그 찰나의 순간 반응하여 죽음을 면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멀쩡한 건 아니었다.


“들개 새낀줄 알았는데···쿨럭! 이제보니···괴물 새끼였구나.”


바닥에 굴러다니는 오른팔,

그는 현재 한쪽 팔을 잃고 치명상을 입은 상태였다.


즉사만 면한 것일 뿐,

더 이상 그에게 살아남을 가능성은 없다는 소리다.


“커헉!”


놈은 피를 토하는 와중에도 내게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애,애송아···방금 그 검초의 이름은···?”


“낙화유수(落花流水).”


“흐···살벌한 검격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구나.”


그는 죽음을 목전에 두었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하나 남은 팔로 검을 들고 비틀거리며 몸을 움직였다.


“크흐흐···왜 그런 눈으로 보느냐?”


“························”


“동정심이라도...드는 게냐?”


“························”


“무림에서 살아남으려면···그런 나약한 마음 따윈···버려두는 게 좋을 게다···무림에선 숨이 끊어지기 전까진 끝난 게···아니니···”


그 순간.


푹!!!


“!!!!!!!!!!!”


피묻은 칼날 하나가 그의 등을 뚫고 가슴에 튀어나왔다.


칼날의 주인은 다름 아닌 소장주,

중상을 입고 쓰러져 있던 그가 어느새 몸을 추스리고 구양중의 뒤를 찌른 것이다.


털썩-


구양중의 무릎이 바닥과 만났다.


천천히 허물어지는 신형,

완전히 숨이 끊어진 것이다.


사파에서 알아주는 거두의 최후라고 하기엔 참으로 허망했다.


차갑게 식어가는 구양중을 일별하고 소장주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그는 완전히 이성을 잃은 눈빛으로 다음 먹잇감을 찾아 해매고 있었다.


“끄으윽!”


“···이거 산 넘어 산이군.”


모습을 보아하니 완전히 잔념귀에게 지배당하는 것 같았다.


이화대주와 제갈성문이 각각 소리친다.


“소장주님!!”


“유대협!!”


“이쪽은 제가 맡을 테니 여러분은 남아있는 적들을 맡아주십시오.”


“예? 아···예!”


“알겠습니다!”


두 사람의 걱정을 물리치고 백곡을 뽑아 들었다.


구양중을 상대하며 체력과 내공이 소진되긴 했으나,


‘그래도 해야 한다.’


여기서 더 시간을 지체했다간 소장주의 정신이 완전히 무너져 잔념귀에게 탈혼(奪魂), 몸을 빼앗길 수도 있었으니까.


‘그나마 아직 그의 의식이 있을 때···’


어떻게든 소장주를 제압하고 잔념귀를 소멸시켜야 했다.





소장주의 검은 매서웠다.


‘소장주의 육신과 잔혼귀의 원념이 합쳐지니 만만치 않구나.’


합이 지날수록 슬슬 부담이 되기 시작한다.


분노한 짐승처럼 달려드는 소장주를 밀어내고 그의 상태를 살폈다.


삐걱거리는 팔다리,

그의 몸은 이미 한계였다.


이대로 가면 우리 둘 다 심각한 부상을 입게 될 터.


‘힘이 모두 빠질 때까지 버틸 생각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손을 써야 할 것 같다.

결심을 굳히고 땅을 박찼다.


“끄아악!!!”


괴성을 지르는 소장주,

그는 특유의 난폭한 검법을 펼치며 나를 난도질할 기세로 달려들었다.


간격이 좁혀지고 이내 서로 맞닿기 직전,


양천검(陽天劍) 유수(流水),


샤악-


부드럽게 검을 흘려낸 뒤 어깨와 옆구리를 얕게 베어냈다.


‘아프더라도 조금 참으시길.’


그가 잠시 주춤거리고 있는 사이,

거리낌 없이 명치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퍽!!


“끄윽!”


짧은 비명과 함께 축 늘어진 신형,

나름 힘을 실어 때렸으니 한동안은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기절한 그를 부축하여 땅에 눕히곤 주변을 살폈다.


구양중이 죽은 충격 때문인지,

구양세가의 무인들은 모두 전의를 잃고 하나둘씩 쓰러져갔다.


‘저쪽도 얼추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네.’


소장주의 손에 들린 순구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이제 이번 소동의 원인을 해결할 시간이군.’


그가 움켜쥐고 있던 순구를 뺏어 들곤 정신을 집중했다.


‘부족해···’


‘죽여야···’


‘놈들을 잡아···’


순구를 잡자마자 귓가에 울려 퍼지는 괴성(怪聲)

검에 서려 있던 원념들이 하나둘씩 내 몸에 들러붙는다.


‘이것들이 소장주의 정신을 좀먹던 원흉이구나.’


훤히 보이는 놈들을 내버려 둘 이유는 없었다.


서걱!


검에 서려 있던 잔념귀를 단칼에 베어냈다.


그러자,

돌연 시야가 암전되더니 풍경이 변한다.


‘이건?’


처음 보는 낯선 장소,

주변을 둘러보니 평범한 장원 같았다.


‘순구에 서려 있던 잔념귀···아니 잔혼의 기억인가?’


마치 귀신이 된 것 같은 기분으로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구경했다.



장원의 앞 마당에 서 있는 한 노인,


그의 옆에는 이립이 넘어 보이는 사내가 웃고 있었고, 사내의 처(妻)로 보이는 여인의 품에는 자그마한 아이가 손을 꼼지락 거리고 있었다.


자식과 며느리, 손주까지,

누가 봐도 화목해 보이는 가족의 모습이다.


‘그런데 어찌 잔혼이···’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데 또 다시 풍경이 변했다.


불타고 있는 장원,

사방에 널려 있는 사람들의 시신,


‘이게 무슨!’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다 충격적인 장면을 목도하게 되었다.


허공을 날아다니는 한 마리의 새,


겉보기엔 까마귀 같은 생김새를 가지고 있었으나 부리는 하얗고, 머리엔 꽃 같은 무늬를 지니고 있으며 꼬리 끝엔 검붉은 불꽃이 타오르고 있다.


꿀꺽!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느껴지는 위압감과 허공에 넘실거리는 원기(冤氣),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최소 함성(陷城)···아니 어쩌면 희국(戱國)급 괴이일 수도···’


발자취를 남기듯 녀석이 지나간 자리엔 하얀 재와 검게 타 버린 시신들이 깔려 있었다.


노인의 가족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내는 뜨거운 열기에 머리만 남은 채 육신이 모두 녹아내렸고, 아기는 아내와 함께 형체조차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검게 타버렸다.


그 참혹한 현장 속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

노인은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도망칠 법도 했으나 그는 망부석처럼 제자리에 서서 자신의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손자의 죽음과 그 원흉의 모습을 두 눈에 새겼다.


노인을 발견하지 못한 것인지, 까마귀는 장원을 포함한 마을의 사람들이 모두 불에 타 죽자 유유히 모습을 감췄다.


녀석이 떠난 후에도 노인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차라리 극심한 충격에 정신을 잃은 것이었다면 다행일 것이다.


두 눈에서 흘러내리는 붉은 눈물,

떨어지는 핏방울이 지금 그의 심정을 대변해주었다.


다시 장면이 변했다.


노인의 장원 한구석에 위치한 대장간,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흐른 걸까?

반쯤 폐허가 된 대장간에서 노인은 쓸쓸히 망치를 두들기고 있었다.


‘강한 검···강한 검을 만들어야······’


그는 미친 사람처럼 계속해서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손아귀가 찢어지고,

불똥이 눈에 튀어 시력을 잃게 되었음에도 단 한시도 손을 멈추지 않았다.


짙은 원한과 집념,

노인은 그 모든 감정을 담아 검을 만들었다.


도중에 부수기도 하고,

아직 다 식지도 않은 검날을 쥐고 휘두르기도 했다.


자신의 가족을 빼앗아간 괴이를 죽일 검을 만들기 위해 말 그대로 사력을 다한 것이다.


그렇게 열 번의 겨울이 지났을 때쯤,


그는 생애 마지막 검을 완성했고,

검이 만들어지자 더 이상 삶에 미련이 없다는 듯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


노인의 죽음을 마지막으로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


방금 전 기억을 통해 이 검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잔혼의 주인이 누구였는지 알 수 있었다.


‘잔혼의 주인은···’


고금제일의 명장이라 불리는 구야자(歐冶子)였다.


그는 자신의 가족을, 행복을 빼앗아간 괴이를 죽이기 위해 남은 삶을 모두 바쳐 순구를 만든 것이다.


괴이에게 모든 걸 잃은 장인이 괴이를 죽이기 위해 만든 검.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 검을 소유했던 자들은 그의 바램과 달리 괴이가 아닌 사람을 베는 것에만 몰두했다.


수백 년간 사람의 피를 묻히며 쌓여온 살업,

순구에 서려 있던 구야자의 잔혼은 그것을 먹고 서서히 괴이가 되었고, 끝내 생전의 원한을 기억해내며 잔념귀가 된 것이 이번 일의 발단이었다.


‘그토록 괴이를 증오했던 이가 타의에 의해 괴이가 되어버리다니, 참으로 짓궂은 운명이구나.’


불행에 불행이 겹치며 벌어진 비애(悲哀)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소장주가 생전 배운 적도 없는 검법을 펼칠 수 있었던 이유도 이해가 되는군.’


구야자는 명장인 만큼 검법에 대한 이해도도 높았다.


때문에 검을 만드는 과정에서 무인들의 검법을 참고하며 직접 검을 휘둘러보았고, 그때의 기억이 고스란히 검에 담기게 된 것이다.


순구를 바라보며 침음을 흘렸다.


‘백곡과는 정 반대군.’


백곡은 스승님의 영력이 담겨 있다.


그 덕에 괴이를 상대할 때 보통의 검들보다 큰 위력을 발휘하지만, 백곡으로 사람을 베면 살업이 쌓여 영력이 흐트러지고 결국 평범한 검이 되어버린다.


내가 괴이를 상대할 때 백곡을 들고,

사람을 상대할 때 비절을 쓰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그에 반해···’


순구는 영력이 담겨 있진 않지만 괴이를 상대하기 위해 무게, 검신의 길이, 검의 형태까지 고려해 만들어진 검이다.


‘스승님처럼 영력을 지녔거나 나처럼 괴이를 벨 수 있는 사람이 다루기에 최적화된 검이군.’


무인들은 알고 있었을까?


이 검은 시대를 풍미한 명장이 오직 괴이를 죽이기 위해 자신의 혼백까지 갈아 넣어 만든 신검(神劍)이라는 걸.


그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구야자에게 애도를 표하며 조심스럽게 검을 집어 들었다.


“유공자님!”


“대협, 괜찮으십니까?!”


저 뒤에서 제갈성문과 서문여령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마침 저쪽도 상황을 잘 마무리한 모양이다.


“저는 괜찮습니다. 그보다 소장주님을···”


“소장주님!”


“금창약! 아니, 일단 지혈부터 해!!”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가장의 무인들이 헐레벌떡 달려와 소장주를 살핀다.


다행히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 걸 확인한 무인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이화대주는 대표로 나서서 내게 감사를 표했다.


“소장주님을 구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걸요.”


“유대협이 아니었다면 소장주님을 물론 저희 역시 구양세가의 악적들에게 큰 화를 입었을 것입니다. 이 은혜는 반드시 갚도록 하겠습니다. 원하시는 게 있다면 뭐든 말씀해주십시오.”


“으음, 그럼 화전민들의 시신을 이가장에서 수습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화전민들이라면···”


“구양세가의 무인들에게 목숨을 잃은 이들 말입니다.”


내 부탁에 그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과연 제갈세가와 서문세가에서 그토록 유대협을 신뢰하는 이유가 있었군요. 가문의 일에 정신이 팔려 정작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는데, 제가 정신을 일깨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혼자서 하기엔 힘에 부칠 것 같아 염치없이 부탁한 것뿐이니, 그리 치켜세워주실 필요는···”


“대협이 아니었다면 협객으로서의 본분을 잊어버린 채 눈앞에 일에만 몰두했을 겁니다. 덕분에 많은 걸 깨달았습니다.”


그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내게 예를 갖추며 가문으로 복귀하자 권했다.


이곳에 남아 화전민들의 시신을 수습하는 걸 돕고 싶었으나, 그건 이가장의 무인들이 맡겨달라는 말에 어쩔 수 없이 그들과 함께 다시 이가장으로 돌아갔다.





그로부터 며칠 뒤,


부상을 모두 회복하고 이제 슬슬 이가장을 떠날 생각을 하고 있던 와중,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되었다.


“예? 지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허허, 제대로 들었네. 본가가 자네에게 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했네만, 딱 하나 밖에 떠오르지 않더군.”


이가장주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내게 말했다.


“부디 순구를 받아주게.”


예상치 못한 이가장주의 선물에 나는 멍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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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천중산-백설(3) 24.02.06 1,214 28 12쪽
15 천중산-백설(2) +1 24.02.05 1,243 29 15쪽
14 천중산-백설(1) +1 24.02.04 1,349 27 13쪽
13 회자정리(會者定離) +1 24.02.03 1,390 33 14쪽
» 순구의 진실 +1 24.02.02 1,366 34 12쪽
11 하남-이가장(4) +2 24.02.01 1,399 33 15쪽
10 하남-이가장(3) +2 24.01.31 1,391 32 14쪽
9 하남-이가장(2) +5 24.01.30 1,579 3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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