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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거스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괴사(武林怪史)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판타지

데거스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1.24 18:15
최근연재일 :
2024.02.26 12:20
연재수 :
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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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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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6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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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천중산-백설(3)

DUMMY

처음엔 몰랐지만,

백설은 생각보다 더 말이 많은 녀석이었다.


“좀 조심히 바르거라···! 살이 따갑지 않느냐!”


“아, 예···”


그녀는 현재 작은 여우의 모습으로 변해 제갈성문이 발라주는 금창약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근데 크기는 자유자재로 줄일 수 있는 거냐?”


“자유자재가 아니니라. 이것이 지금의 본녀, 네놈들이 처음 마주한 건 힘을 잃기 전 본녀의 모습이니라. 영기를 이용해 외형만 비슷하게 둔갑한 것이니라.”


“차이가 너무 큰데?”


아까 전 모습은 성인 장정보다 큰 것에 반해 지금은 작은 고양이 정도의 크기다.


거의 새끼와 성체의 차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

과거 그녀의 모습이 새삼 궁금해졌다.


“힘을 잃기 전과 비교하면 지금은 어느정도 수준이지?”


질문의 의도를 알아챈 그녀가 코웃음을 친다.


“흥! 지금 본녀의 힘은 삼미호(三尾狐) 수준에 불과하다”


“삼미호?”


“과거 술사들이 떠들던 기준으로 따지면 간신히 마을 하나를 멸할 수준이겠구나.”


“멸리(滅里)급이란 말이군.”


“본녀가 힘을 잃지 않았다면 네놈 정도는 눈 깜짝할 사이에 저승으로 보내버릴 수 있느니라.”


“호오?”


“그뿐이겠느냐?”


그녀의 눈이 요사스럽게 빛난다.


“마음만 먹으면 나라를 멸하는 것도 가능하다.”


“···희국(戱國).”


이전에 내게 괴이의 경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제갈성문이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홀로 나라를 멸할 수 있다는 건, 온전한 상태의 그녀가 최소 구야자의 기억에서 봤던 그 괴이와 동급 혹은 그 이상이란 뜻이다.


‘···예상보다 더한 거물이었군.’


하긴, 괴이로 태어나 영물의 격에 발을 들였다고 했으니 괴이는 물론 영물 중에서도 거의 적수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후후, 이제야 본녀의 위대함을 알았···”


“그런 분이 대체 어쩌다 영옥을 도둑맞으셨는지?”


제갈성문의 날카로운 질문에 의기양양하던 그녀가 이를 악물었다.


“그,그건 비열한 인간들이 본녀가 무방비해지는 틈을 노렸기 때문이니라! 그게 아니었다면 본녀의 영옥을 훔치기는커녕 가까이 접근하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왕 이야기 한 김에 물어보자. 영옥을 훔쳐 갔다는 흑의인들에 대해 아는 게 있나?”


“···사실 놈들에 대해선 본녀도 잘 모르니라.”


그녀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다.


“모두 얼굴을 가린 채 불쾌한 기운을 흘리고 있었다는 것 말고는···아! 그러고 보니 놈들 중에 골구(骨具)를 지닌 녀석이 있더구나.”


“골구?”


“뼈로 된 무구를 뜻하는 것이다. 워낙 기분 나쁜 기운이 느껴져서 기억하고 있지. 본녀의 기억이 맞다면 과거 술사들이 사용했던 의식용 단검처럼 생겼느니라.”


뼈로 된 단검(短劍)이라고?


‘녹촉이 만난 흑의인들 중에서도 뼈로 된 칼을 쓰는 녀석이 있다고 했는데, 설마···’


단순한 기우일 수도 있지만,


왠지 모를 연관성이 느껴졌다.


‘만약 동일인물이거나 같은 집단에 속해 있다면,


녹촉의 벗인 선구를 납치한 것부터 백설의 영옥까지,

놈들의 행보를 보면 모종의 이유로 괴이들을 이용하려 하는 것 같았다.


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짓을 벌이는 지는 알 수 없으나, 결코 선량한 이유는 아닐 것이다.


‘가슴이 답답하군.’


보이지 않는 곳에서 괴이를 이용하려 하는 암중세력,

백설의 부탁과는 별개로 또 다른 짐을 맡게 된 기분이다.





*****





근래 천중산 일대를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은 고작 며칠 만에 산을 넘어온 행상인들로 인해 종식되었다.


“거기 자네, 지금 어디서 온 겐가?”


“어디긴 어디야. 당연히 천중산 산길을 통해 왔지.”


“아이고, 그 길을 넘어왔단 말인가? 자네 소문도 못 들었나?”


“소문이야 들었다만, 아무렇지 않던데?”


백설이 천중산을 떠났을 무렵, 더 이상 손해를 감수할 수 없었던 용감한 행상인 몇 명이 산을 넘어오며 사람들에게 소문이 퍼져나갔다.


“글쎄, 산신이니 귀신이니 그런 건 없었다니까.”


“맞소, 나도 같이 왔는데, 산짐승만 가득하더이다.”


“뭐야? 그럼 다 헛소문이었던 거야?”


행상인들의 주장에도 사람들은 꺼림칙하단 반응을 보였으나, 이후에도 수많은 이들이 멀쩡하게 산을 넘어오자 세인들은 그제야 사태가 일단락되었음을 깨닫고 안도했다.


“이제 다시 상행에 나설 수 있겠구만,”


“근데, 대체 그 소문은 어떻게 된 건가? 갑자기 산신께서 진노를 가라앉히기라도 한 건 아닐 테고,”


한 사내의 중얼거림에 옆에서 듣고 있던 취객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돼! 처음부터 다 거짓부렁이었던 게지. 솔직히 산신이니 귀신이니 처음부터 믿기지가 않았어!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나? 다들 헛소문만 듣고 지레 겁에 질려 그런 것이지.”


“마냥 헛소문이라 여기기엔 실제로 길을 잃고 헤맨 이들도 적지 않은데···”


“에잉, 그 치들은 대낮에 낮술이라도 한 거겠지!”


“으하하하하!!”


객잔 내 모두가 천중산의 소문을 언급하며 유쾌하게 웃고 있을 때.


그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보던 이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바로 성운 일행이었다.


“대협, 이야기를 들어보니 사태가 잘 마무리된 것 같습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제갈성문의 모습에 슬쩍 옆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러게요. 정작 그 범인은 여기 있는데,”


“흥, 이번 일은 본녀가 아닌 함부로 본녀의 영역에 들어온 인간들의 잘못이니라.”


백설은 현재 꼬리를 숨긴 채 여아(女兒)의 모습으로 객잔에 앉아있었는데, 팔짱을 끼고 투덜대도 외형이 이래서 그런지 그저 어린아이의 투정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래, 그래, 네 말이 맞으니까. 식사나 해라.”


“이놈, 지금 본녀를 식충이 취급하는···음? 이 냄새는?”


오리를 쪄서 만든 청증압(淸蒸鴨)과 탕병(湯餠)을 들이밀자 그녀가 코를 킁킁거리며 입맛을 다지더니 이내 손을 뻗는다.


마치 며칠은 굶은 거지라 해도 무방한 모습,

사람의 음식이 입에 안 맞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괜한 기우였다.


이 녀석은 미식(美食)을 즐기는 사람...아니 여우였던 것이다.


“우음···이건 향이 좋구나. 그리고 이 국물은···”


백설이 음식에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

제갈성문과 앞으로의 행보를 논의했다.


“대협, 남궁세가의 탄신연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역시···”


“남궁소저와 약조한 것도 있으니 얼굴을 비추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다음 목적지는 남궁세가로군요.”


목적지라는 말에 허겁지겁 음식을 흡입하던 백설이 고개를 휙 돌린다.


“잠깐, 한시라도 빨리 영옥을 찾아도 모자란 판국에 그게 무슨 말이더냐? 본녀와의 약속을 잊은 것이냐?”


“이미 전부터 정해져 있던 일정이야. 그리고 상식적으로 네 영옥을 훔쳐간 녀석들의 행방은커녕 정체조차 모르는 상황에 어떻게 찾을 건데?”


“그건···”


나긋나긋한 어조로 그녀를 설득했다.


“대책 없이 무작정 나서기보단 중원을 돌아다니면서 조금씩 단서를 모으는 게 낫지 않겠어?”


“···네놈 말도 일리는 있다만, 단서를 찾는 것과 그 남궁머시기에 가는 것이 무슨 상관이더냐?”


“남궁세가는 무림에서 알아주는 명문가입니다. 그만큼 영향력 있는 인사들이 모여들 테니,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백설님이 말씀하신 도둑들에 대한 단서도 찾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으음,”


중요한 순간, 내 의견에 힘을 보태주는 제갈성문,

그에게 감사의 뜻을 담아 눈인사를 보내고 그녀에게 쐐기를 박았다.


“듣기론 이번 연회는 워낙 규모가 큰 행사라 산해진미가 가득할 거라던데,”


“산해진미···?”


꿀꺽!


산해진미라는 말에 백설이 침을 삼킨다.


“나도 운 좋게 초청받은 연회라, 아마 이번이 아니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흠흠! 그렇게까지 간절히 부탁하니 본녀가 특별히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도록 하마. 대신! 그 남궁머시기라는 곳에서 제대로 단서를 모아야 하느니라.”


“아무렴.”


백설도 설득했으니 이제 남궁세가로 향하기만 하면 끝이다.


미끼에 넘어간 그녀는 벌써부터 산해진미가 아른거리기라도 하는 듯 입술을 씰룩거리며 눈앞에 놓인 요리들을 바닥까지 긁어먹었다.


“역시 인간들은 예전에도 그랬지만 쓸데없는 재주가 많구나.”


“저···백설님 제 것도 드시죠.”


“오오, 그래 인간···이름이 뭐라 했지?”


“제갈성문입니다.”


“그래 제갈머시기, 특별히 사양하진 않으마.”


백설은 제갈성문이 건넨 접시까지 모두 비우고 나서야 만족스럽다는 듯 배를 두드렸고, 그 모습에 나는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며칠 뒤,

여남 일대를 완전히 벗어나 남궁세가가 위치한 안휘성 합비로 향하던 길.


백설은 걷기 귀찮다는 이유로 다시 여우로 변해 제갈성문의 어깨에 탔다.


번거로울 법도 했으나 그는 괜찮다는 반응을 보였는데,

오히려 귀찮아하는 건 백설 본인이었다.


“백설님께선 몇 년이나 살아오셨는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글쎄, 정확히 세어 보진 않았지만 대략 구백 년이 조금 넘었을 것이다.”


“그,그럼 과거 중원에 세워졌던 나라들이나 사기에 기록된 위인들을 실제로 만나본 적도 있으시겠군요?”


“만난 적은 없고 드문드문 이야기는 듣긴 했다만,”


“허면! 실제 사기에 기록된 것처럼 과거엔···”


제갈성문은 그녀를 통해 자신이 알고 있는 여러 문헌과 기록의 진위를 확인하고자 쉴 새 없이 질문을 이어나갔다.


거의 반 시진 동안 쉬지 않고 떠드는 제갈성문에게 완전히 질려버린 백설은 그를 피해 내 어깨로 도망쳐왔다.


휙-


“저 인간···이제보니 정상이 아니구나. 귀에서 피가 날 지경이니라. 고작 백년을 겨우 사는 미물 주제에 알고 싶은 게 뭐 이리 많은지,”


“그렇기에 더더욱 지혜와 지식을 갈구하는 거다. 멈추지 않는 한 얼마나 천천히 가는지는 중요치 않으니,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가고자 하는 것이 바로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니까.”


“흥, 동시에 그것이 인간의 탐욕이기도 하지. 말하는 모양새가 꼭 과거에 있던 잘난 체하는 인간들 같구나.”


“···혹 그 잘난 체하는 인간들이 제가 알고 있는 성현(聖賢)들입니까?”


“그건 나도 잘 모른다. 실제로 마주친 적은 거의 없으니, 다만 본녀의 수행을 도와주었던 나이든 영물의 말로는 과거엔 제법 현명한 인간들이 많았다고 하더군.”


그녀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 듯했다.


“하! 현명한 인간이라니, 그런 인간이 있을 리 없지 않느냐? 당장 백여 년 전만 해도 서로 땅을 가르고 싸우던 것이 인간들이거늘.”


맞는 말이라 차마 반박할 수 없었다.


“작금의 천하를 보면 과거 신수들에게 들었던 요순시대를 갈망하게 되는구나.”


“요,요순시대라면 구전으로 전해진 전설 아니었습니까?”


“흐음, 너희 인간들이 그 시대를 어찌 여기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요순시대는 그리 먼 과거가 아니다. 본녀가 태어나기 삼백 년 전쯤에 끝이 났다고 했으니 그리 오래되진 않았느니라.”


백설이 태어나기 삼백(三百)년이면 지금으로부터 천년도 더 지난 일 아닌가?


‘그게 오래되지 않은 거라고?’


이 녀석의 말하는 세월의 길이는 도저히 가늠이 되지 않는다.


백설의 말에 학식이 출중한 제갈성문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요순시대라 함은 태평성대(太平聖代)의 표상이오. 천하의 이상향(理想鄕)이라 들었습니다. 대체 얼마나 평화로웠기에 백설님께서 그리 말씀하시는지···?”


“평화라···평화는 모르겠고, 살기 좋은 시대였다고는 하더군. 물론 그게 너희 인간들에게 해당되는 말인지는 의문이 든다만,”


“예? 그게 무슨?”


“흐···제갈머시기야 네놈은 큰 착각을 하고 있구나.”


백설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흘렸다.


“요순시대란, 과거 인간과 괴이의 경계가 없던 시절. 모든 인간이 괴이를 두려워하고 괴이가 인간을 지배하던 시절을 말하는 것이란다.”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충격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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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창천검(3) +1 24.02.11 1,085 26 16쪽
20 창천검(2) 24.02.10 1,104 26 14쪽
19 창천검(1) 24.02.09 1,115 24 13쪽
18 팔공산-갈저(2) 24.02.08 1,094 29 13쪽
17 팔공산-갈저(1) 24.02.07 1,189 24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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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회자정리(會者定離) +1 24.02.03 1,390 33 14쪽
12 순구의 진실 +1 24.02.02 1,365 34 12쪽
11 하남-이가장(4) +2 24.02.01 1,399 33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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