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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거스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괴사(武林怪史)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판타지

데거스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1.24 18:15
최근연재일 :
2024.02.26 12:20
연재수 :
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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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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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16,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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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5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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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깨달음

DUMMY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 잠에 든 금구를 뒤로하고 동굴에서 빠져나왔다.


가지고 있던 민의 가죽으로 뼛조각을 감싸 원기를 차단한 덕인지, 아니면 금구가 정신을 차린 덕인지, 날뛰던 귀기가 놀랄 정도로 가라앉았다.


‘이제야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온 건가.’


처음 숲에 발을 들였을 때처럼,

지금 이곳엔 미약한 한기와 잔잔한 귀기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귀기가 잠잠해진 탓일까?

귀령문의 사람들은 일이 해결되었음을 직감하고 우리를 반겨줬다.


“무사히 돌아왔구만,”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허허, 뒤에서 손 놓고 구경하던 늙은이 몸이 안 좋을 게 뭐가 있나?”


전보다 한결 평안해진 안색,

우리가 떠나있는 사이 부상과 더불어 심마를 가라앉힌 모양이다.


“다행입니다.”


“사문의 은인을 이렇게 계속 세워둘 순 없지. 일단 피곤할 테니 들어와 쉬게나.”


금구와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인 탓에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피로한 건 사실이었기에 그의 호의를 거절하진 않았다.


다음 날,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귀령문 내부를 둘러보았다.


‘부서졌던 담벽과 문이 멀쩡해졌군.’


아무래도 문도들이 밤새 수리한 것 같다.


귀령문의 보수가 끝난 걸 확인하고 다시 객실로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곽소충과 마주쳤다.


“일찍 일어났군. 박이 녀석에게 금구와 있었던 일에 대해선 들었네. 몸은 어떤가?”


“배려해주신 덕에 멀쩡합니다.”


“그것 참 다행이구만. 자네만 괜찮다면 잠깐 시간을 좀 내어줄 수 있겠나?”


무슨 일인진 모르지만,

일단 알았다고 답하곤 그를 따라나섰다.


그와 함께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낡은 창고,

내부로 들어서자 자욱한 먼지와 미약한 진법의 기운이 느껴진다.


“귀령문의 비고일세. 사실 말이 비고지 작은 창고에 불과하다만, 그래도 나름 귀중한 물건들도 보관되어 있어 진법을 펼쳐놨지.”


“이곳에 어찌 저를···”


“명색이 문파를 구해준 은인인데, 아무런 답례도 하지 않을 순 없지 않은가?”


그가 허허롭게 웃으며 비곤 안에 쌓여 있는 물건들을 가리켰다.


“도움이 될지 모르겠으나 없는 것보단 낫겠지. 저것들 중에서 하나 아무거나 골라가게나.”


“예??”


비고 안엔 금령박과 비슷한 주구들도 보였다.

필히 사문에서 보관하는 귀물(貴物)일 터.


그런데, 시장에서 물건을 골라가듯 가져가라 말하니 당혹성을 금치 못했다.


“말씀을 물러주십시오. 보답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몇 십년 만에 본문에 찾아온 손님께 드리는 선물이라 생각하고 가져가게.”


도저히 뜻을 무를 생각이 없어 보이는 곽소충의 눈빛,

단호한 그의 의지에 나는 결국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염치 불고하고 실례하겠습니다.”


“허허, 편히 고르게나.”


천천히 비고 안을 둘러보며 적당한 물건이 있나 살펴봤다.


그러다, 문득 한쪽 구석에 놓여 있는 서책이 눈에 들어온다.


“이건···?”


“음? 그건 옛 선조님께서 남기신 무공일세. 귀령문이 세워지고 얼마지나지 않았을 무렵, 선조님께서 모산파의 무공을 토대로 만든 장법이라고 들었네만, 본문의 심법과는 그다지 잘 맞지 않아 지금은 비고에서 썩고 있지.”


제대로 된 이름조차 붙어있지 않은 비급,

호기심이 일어 한번 펼쳐보았다.


내가 비급에 관심을 보이자 그가 만류한다.


“그 장법은 평범한 내공심법으론 제 위력을 발휘하기 어렵고 익히는 것 역시 쉽지 않네. 무공을 원하는 거라면 차라리 본문의 장법을 알려주겠네.”


서책을 읽어보니 곽소충의 말이 더욱 이해가 되었다.


대다수의 무림인들이 익힌 내공심법은 음(陰)과 양(陽), 둘 중 하나에 뿌리를 두고 있다.


허나, 이 장법은 그 두 가지 기운을 모두 품고 있어야만 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아마 온 무림을 다 뒤져도 음과 양의 기운을 모두 품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를 제외하곤,


‘···이것도 운명인가?’


나에게 딱 걸맞는···아니 정확히는 나만 익힐 수 있는 무공, 알 수 없는 끌림이 느껴진다.


때문에 한치의 고민도 없이 답했다.


“이걸로 하겠습니다.”


“정말로 괜찮겠나?”


“예, 이게 가장 마음에 듭니다.”


어느 한쪽에도 치우쳐지지 않고 음과 양 모두에 조화를 이루는 장법, 이를 다르게 말하면 사람과 괴이 모두에게 동일한 위력을 선보인다는 뜻이다.


안 그래도 남궁세가에서 공리혁과 싸우며 검법이 아닌 권각법 같은 다른 무공도 익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이지 공교로웠다.


‘이름 없는 무공이라···’


앞으로 이 장법을 뭐라 부를지는 조금 더 천천히 고민해 보기로 했다.





비고를 나온 뒤,

곽소충은 또다시 들릴 곳이 있다며 이번엔 나를 데리고 서고로 향했다.


대체 무엇 보여주려는 건지 의문 반 기대 반으로 그를 따라갔다.


“사실 자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뭐 없나 고민했네. 그러다 전에 모산파에 대해 이야기했던 걸 떠올리고 내 어젯밤 서고를 뒤져 귀령문에 남아있는 기록을 모두 살펴봤지.”


그가 책상 한쪽에 쌓여 있던 서책 중 하나를 끄집어내 내게 보여주었다.


“여기 자네가 알고 싶어 할만한 이야기가 적혀 있으니 한번 확인해 보게나.”


그의 권유에 서책을 펼쳐 읽어내려갔다.



[나는 귀령문 이(二)대 문주 소운문이다.]


[본문의 후예들이 우리의 뿌리를 잊을까 두려워 이 서책을 남기노라.]


[귀령문은 모산파의 계파중 하나인 소사계(所死系)에서 비롯되었으며...]

····························································

···················································

··········································

[모산파는 다른 이름으론 상청파라고도 불리며 중원의 동쪽 끝 자락에 위치한 모산(茅山)에 터를 두고 있고, 외부인들의 방문을 쉬이 허용하지 않는다.]


[모산파가 개파한 시기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위화존이라 불리는 여인을 시조로 모시고 있다. 위화존은 젊은 시절 꿈속에서 신선들의 가르침을 받아.....]

·································

························

···············

·········

······

···




서책에는 모산파의 위치와 개파시조 등등,

여러 가지 이야기가 담겨 있었고 개중에는 곽소충의 말대로 내가 관심을 가질만한 내용도 있었다.



[과거 모산파에는 우리보다 한발 먼저 분리된 천평계(天平系)라는 계파가 존재했다. 그들은 괴이와 인간의 영역이 모호해지는 것을 경계하며 더욱 나아가 악한 괴이에게 고통받는 이가 없도록 만드는 것을 궁극적인 도(道)라 여겼다.]


[풍문으론 분리된 천평계의 후손들은 대대로 도호에 현(賢)자를 넣어 스스로의 뿌리가 어디인지를 증명한다고 한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그들에 대한 소식을 들을 수 없었으니, 본산에선 천평계의 맥이 결국 끊어졌다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필자는 다르게 생각한다. 천평계는 본디 소리소문없이 천하를 떠돌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를 추구하던 존재들, 자취를 찾을 수 없다 하여 그 의지가 끊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서책을 덮으며 나도 모르게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대 귀령문주의 말대로 천평계의 가르침은 끊어지지 않았다.


내가 모르는 선조가 스승님에게,

스승님을 통해 나에게,


흐르는 강물처럼 변함없이 이어져 온 것이다.


‘이걸로 나의 뿌리가 어디인지 확실히 알게 되었군.’


지금껏 혈연단신이라 여기고 살아왔으나 그게 아니었다.


나에겐 스승님께 이어받은 의지가 있었고,

그 의지는 곧 나 자신의 정체성과도 같았다.


입가에 서리는 옅은 미소,


‘모르고 있던 사문의 존재와 계파를 알게 되어서 그런 건가?’


아니면, 그저 세상 모든 것에는 뿌리가 있다는 걸 깨달아 그런 것인가?


내면에 미약한 변화를 감지했다.


수지다, 귀근결시일근원(樹枝多, 歸根結是一根源)


가지가 아무리 많다 한들,

결국은 하나의 뿌리에서 비롯된 것,


너무나도 당연한 나머지 잊고 있던 이치를 가슴에 새기며 내 안의 변화를 관조했다.


알 속에 갇혀 있던 새가 스스로의 존재를 자각하고 껍데기를 깨고 나오듯,


내 앞을 가로막고 있던 벽에 실금이 생겼다.


그러다 이내,


쩌저적!


벽이 허물어졌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온전히 확립하게 된 것이다.


“후우···”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넘쳐 오르는 힘,

옆에서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곽소충이 입을 쩍 벌린 채 물었다.


“자,자네!!”


나름 출중한 실력을 갖춘 무인답게 내 변화를 단번에 감지한 것 같다.


포권을 취하며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문주님 덕에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허! 그럼 지금 자네는···”


꿀꺽!


“지고한 경지에 발을 들인 겐가?”


“이제 한 발 내디뎠을 뿐입니다.”


무인들의 이상향이자,

무림에서 모든 이들의 인정을 받는 경지,


화경(化境)

비록 겨우 한발을 걸친 수준에 불과했으나,

그럼에도 벽을 넘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예전이었다면 몰라도 지금은 내가 이룬 성취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것인지 알고 있었다.


천재라 불리는 이들이 평생을 매진해도 닿을까 말까 한 경지가 바로 화경이었고, 현 무림에서 최연소로 화경에 도달한 이의 나이가 당시 반백이 다되었다고 했으니, 내 성취가 얼마나 빠른 건지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스승님의 말이 맞았군.’


전에는 비교대상이 없어

내게 특별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쯤 되니 내가 남들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





한편, 성운이 벽을 넘어선 걸 눈앞에서 목도한 곽소충은 어이가 없다 못해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저 나이에 이미 상승의 경지를 이룬 것도 놀랍거늘,’


한발 더 나아가 화경의 경지에 도달하다니?


‘그야말로 천재(天才), 아니 천재(天災)로군.’


이쯤 되니 그는 성운의 재능과 성장 속도가 무서워졌다.


귀림에 숨어 속세와 연을 끊고 산다 해도 눈과 귀까지 닫혀 있는 건 아니다.


‘작금의 무림에 누가 이와 같은 성취를 이룰 수 있단 말인가?’


백도회주? 사혈련주?

물론 당장은 그들이 눈앞의 사내보다 더 앞서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오년 뒤, 십년 뒤에는?’


과연 그때도 그들이 우위에 있을까?

자신이 생각하기엔 아니었다.


‘이거 어쩌면···내가 무림사(武林史)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군.’


강자에 의해 흘러가는 것이 바로 무림의 생리,


그는 본능적으로 성운이 향후 무림의 정세에 큰 영향을 끼칠 인물이 될 것이란 걸 직감했다.





*****





그날 오후,

귀림의 일도 해결했으니 이제 다시 길을 떠날 시간이 되었다.


해가 지기 전 귀림을 벗어나기 위해 조금 서둘러 채비를 갖췄다.


떠나겠다는 말을 전하자 귀령문의 문도들이 찾아와 배웅해준다.


“자네들은 귀림의 은인일세. 언제가 되었든 도움이 필요하다면 말하시게. 두 팔 걷고 힘을 보태도록 하겠네.”


“그리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곽소충의 인사를 마지막으로 등을 돌리려는데,

친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유대협!”


곽박,

그가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나와 일행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저···그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진 알 수 없었으나,

그는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는지 한차례 고개를 푹 숙이곤 시원섭섭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협과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부디 몸조심하십시오!!”


“저 역시 곽소협과 만나 즐거웠습니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포권을 취하는 그의 모습을 보니, 처음 만났을 때와 많이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모두의 인사를 받고 귀령문을 벗어나자 백설과 제갈성문이 묻는다.


“그런데, 이제 어디로 갈 생각이냐?”


“따로 정해놓은 목적지는 있으십니까?”


“예.”


사실 목적지는 이미 진작에 정해놓았다.


금구와 마찬가지로 유골을 수호하고 있는 괴이 비유,


나는 녀석을 만나기 위해 산서로 갈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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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귀림-귀령문(1) +1 24.02.19 837 27 14쪽
28 한걸음 +1 24.02.18 964 27 12쪽
27 남궁혈사(5) +2 24.02.17 1,003 25 12쪽
26 남궁혈사(4) +2 24.02.16 1,007 26 15쪽
25 남궁혈사(3) 24.02.15 1,028 23 14쪽
24 남궁혈사(2) 24.02.14 1,006 22 14쪽
23 남궁혈사(1) 24.02.13 1,039 23 13쪽
22 화경의 고수 +1 24.02.12 1,091 26 15쪽
21 창천검(3) +1 24.02.11 1,085 26 16쪽
20 창천검(2) 24.02.10 1,104 26 14쪽
19 창천검(1) 24.02.09 1,115 24 13쪽
18 팔공산-갈저(2) 24.02.08 1,094 29 13쪽
17 팔공산-갈저(1) 24.02.07 1,189 24 15쪽
16 천중산-백설(3) 24.02.06 1,213 28 12쪽
15 천중산-백설(2) +1 24.02.05 1,243 29 15쪽
14 천중산-백설(1) +1 24.02.04 1,349 27 13쪽
13 회자정리(會者定離) +1 24.02.03 1,390 33 14쪽
12 순구의 진실 +1 24.02.02 1,365 34 12쪽
11 하남-이가장(4) +2 24.02.01 1,399 33 15쪽
10 하남-이가장(3) +2 24.01.31 1,391 3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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