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데거스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괴사(武林怪史)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판타지

데거스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1.24 18:15
최근연재일 :
2024.02.26 12:20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48,712
추천수 :
1,109
글자수 :
216,954

작성
24.02.18 12:20
조회
963
추천
27
글자
12쪽

한걸음

DUMMY

성운이 남궁세가를 떠나기 나흘 전,

남궁양은 호북에 위치한 백도회 본단을 찾았다.


백도회에선 정기적으로 회의가 열리는데, 그것을 통해 이번에 가문에서 벌어진 혈사를 비롯한 무림의 정세를 논하고자 한 것이다.


그가 자리에 착석하자 많은 이들이 관심을 보였다.


“허허, 검왕께서 직접 회의에 참석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남궁세가에선 항상 장로들만 보내오지 않았습니까?”


“큼! 사안이 사안인 만큼 이번엔 직접 참석하게 되었네.”


얼핏 보면 타박하는 것 같았으나,

그 안에 다른 뜻이 없다는 걸 알고 있던 남궁양은 무안한 표정으로 헛기침만 할 뿐이었다.


다소 시끌벅적해진 분위기에 상석에 앉아있던 중년인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자, 잡설은 그쯤하고, 오늘은 논의해야 할 거리가 많은 것 같으니 어서 시작하도록 하지.”


중년인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반론이나 반발은 없었다.


왜냐하면, 저 중년인이 바로 이 회의를 주도하는 백도회의 회주 백리관이었으니까.


그는 남궁양과 함께 천하제일인을 논할 때면 항상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인물로, 쟁쟁한 업적과 뛰어난 인품 덕에 많은 이들의 천거를 받아 회주의 자리에 오른 명실상부 백도의 얼굴이었다.


“안휘의 일은 들었습니다. 사파의 주구들과 남천검문이 사달을 벌였다고, 남궁세가는 어찌하고 계십니까?”


지위와는 별개로 연배로 따지면 백리관은 남궁양보다 아래라 그런지 그는 존대를 고수했다.


“그놈들 때문에 피해가 막심하긴 하나, 잘 이겨내고 회복해나가는 중이오. 주변 문파들의 도움도 제법 컸소.”


“참으로 다행입니다.”


“허나, 그것과 별개로 중히 논의해야 하는 건 사실이오.”


심각해진 표정,

그는 어느 때보다 진지한 목소리로 회의 중진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풀어놓았다.


“이번엔 천운이 닿아 무사히 넘길 수 있었으나, 만약 다음에 또다시 같은 일이 벌어지면? 아니 하다못해 남궁이 아닌 다른 가문이나 문파에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면? 그땐 그 누가 무사하다 장담할 수 있겠소?”


꿀꺽!


회의에 참석한 인사들이 모두 마른 침을 삼켰다.


그들 역시 남궁세가에서 벌어진 혈사에 대한 소문은 잘 알고 있었다.


‘그와 같은 일이 본가에도 벌어진다면?’


‘과연 남궁세가처럼 이겨낼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한 기분,

남궁양은 이러한 점을 노려 그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다들 본가에 쳐들어왔던 괴인들에 대한 소식은 접했을 것이오.”


“그···괴인에 대한 이야기가 사실이었습니까?”


“그렇소.”


“도검불침의 육신을 가지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괴인이 실제로 존재했단 말입니까 대협?”


“본가를 두고 퍼진 소문의 절반 이상은 모두 진실이오. 이번 본가의 피해가 막심한 건 적혈괴를 비롯한 고수들의 탓도 있지만, 사실상 그 괴인들 탓이 크지. 놈들은 일반적인 상식이 통하지 않더군. 내가 아는 어떤 기인(奇人)은 놈들을 괴이(怪異)라 칭하더이다.”


“검왕께서 말씀하고자 하는 요지가 무엇입니까?”


백리관의 물음에 남궁양이 굳건한 눈빛으로 답했다.


“본가를 습격한 흉수의 정체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소. 허나, 사마외도의 종자들이 엮여있다는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 본인은 무림의 동도들이 본가처럼 혈사를 겪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지금보다 더 끈끈한 연대를 맺을 것을 제안하오.”


“연대라···”


“이 일을 반면교사 삼아 놈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작을 부려도 단번에 깨부술 수 있는 그런 확고한 연대를 구축하자는 것이 본인의 제안이오.”


“흐음,”


백도라는 이름 아래 묶여 있다고 해도 저마다의 이해관계라는 게 있기 마련, 백도회 내에서도 지역에 따라 이윤에 따라 여러 파벌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남궁양은 그것을 부수자고 제안한 것이다.


기존의 틀을 깨는 그의 주장에 백리관이 나서서 상황을 중재했다.


“대협의 뜻은 잘 알았습니다. 하지만, 급진적인 변화는 탈이 날 수 있으니, 이 건은 천천히 논의를 한 뒤에 결정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알겠소.”


남궁양도 이 자리에서 답을 들을 생각은 아니었기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후로는 다소 상투적인 이야기가 오갔다.


자질구레한 이야기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어 남궁양이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있던 찰나,


기이한 이야기가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헌데, 요즘 절강의 분위기가 흉흉하며 참으로 걱정이 많습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이야기를 꺼낸 것은 다름 아닌 소흥문주,

소흥문(紹興門)은 절강에서 제법 힘을 쓰는 중견 문파 중 하나였다.


“구룡산이라고, 절강 외곽에 있는 벽지(僻地)가 있는데, 최근 기이한 소문이 퍼져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닙니다. 상단이나 표국들도 그 주변에는 얼씬도 하지 않으려고 하니···”


“기이한 소문이라면?”


“밤마다 산에서 괴성이 들리기도 하고, 어쩔 땐 산 초입에 각기 다른 수십 개의 발자국이 가득하다고 하더군요. 워낙 소문이 흉흉해 그 안에 들어가는 사람도 없을 텐데,”


“허!”


“그것 때문에 요즘 절강 사람들은 구룡산을 금지(禁地)라고 부른답니다.”


괴담과도 같은 이야기에 대부분은 실소를 흘리거나 무지렁이들이 헛소문을 퍼트렸다 여기며 혀를 찼지만,


남궁양은 자신의 가문에 머물고 있을 누군가를 떠올리며 눈을 빛냈다.


회의가 끝난 후,

그는 자리를 떠나는 소흥문주를 따로 불러냈다.


“소흥문주, 괜찮다면 아까전 그 이야기, 자세히 들어볼 수 있겠소?”


“예?”


“내 요새 그런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 그런 것이니 좀 상세히 알려주시게.”


“그리 말씀하신다면···”


그는 솔직히 이런 요설에는 관심이 없었으나,


‘그놈이 들으면 좋아하겠군.’


성운을 위해 소흥문주에게 술까지 대접하며 정보를 얻어냈다.





*****





“···그렇게 되어 따로 수소문해 봤으니, 관심 있으면 가보라고 하시는군요.”


서신에 적혀 있는 내용을 보여주자 제갈성문이 헛웃음을 흘린다.


“태상가주님께선 대협이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잘 알고 계신 것 같군요.”


“하하, 그러게요.”


다른 건 몰라도 요설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든 환영이다.


“어찌하시겠습니까?”


“가야지요.”


정녕 괴이로 인해 벌어진 소란인지,

아니면 단순히 세인들 사이에 퍼진 소문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제갈성문과 목적지를 정하던 그때,


백설이 반론을 제기했다.


“인간! 그렇게 이리저리 놀러 다니기만 하면 내 영옥은 언제 찾아줄 것이냐?!”


“그놈들에 대한 단서도 없이 무작정 돌아다닐 순 없잖아. 하다못해 행방이라도 알아야 뭘 하지.”


“이익! 그게 다 네놈이 지하에서 놈들을 놓친 탓 아니더냐!”


“그건···”


공리혁을 놓친 것을 꼬집으며 타박하자 할 말이 궁해졌다.


“자자, 백설님 잠시만 진정해주십시오.”


내가 곤란해하는 걸 눈치챈 제갈성문이 황급히 끼어들었다.


“백설님의 마음은 십분 공감합니다만, 유대협의 말대로 무작정 놈들을 찾아 돌아다니면 한평생이 걸릴 겁니다.”


“그래 봐야 백년 아니더냐?”


우리에게 백년은 평생이지만,

이 녀석에겐 조금 긴 시간에 불과했다.


기가 막힌 그녀의 논리에 잠시 벙쪄 있던 제갈성문은 이내 비장의 수단을 꺼내 들었다.


“다른 일을 처리하러 가는 게 아닌 정보를 모으는 겸, 백설님께 절강의 요리를 대접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해주십시오.”


“절강의 요리?”


“예, 절강의 음식들은 천하 팔미(八味) 중 하나로 손꼽히며 다른 지역에선 구하기 힘든 다양한 식재료를 활용한 요리들로 유명합니다. 아마 남궁세가에서 먹었던 것들보다 더 훌륭한 요리를 맛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꿀꺽!


남궁세가에서 먹었던 산해진미보다 더 맛있는 음식이라는 말에 백설의 입에 침이 고인다.


“흠흠, 듣고 보니 제갈머시기의 말도 일리가 있구나. 놈들이 절강에 숨어 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손바닥 뒤집듯 달라지는 태도,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져 나왔다.


‘허, 이 녀석은 영옥을 찾고 싶은 건지 아니면 식도락(食道樂)을 하고 싶은 건지···’


둘 중 무엇일 것 같냐고 물으면,

솔직히 후자일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게 내 생각이다.





*****





안휘 외곽이 위치한 이현(弛懸)

해가 질 기미가 보여 일행들과 함께 그곳에서 하룻밤 머물기로 했는데,


잠에 들기 전, 영약을 섭취하기 위해 백년삼을 꺼내 들자 제갈성문이 결연한 눈빛으로 말한다.


“제가 목숨을 걸고 대협의 곁을 지킬 테니 안심하십시오.”


“목숨을 걸 것까지는···”


“대협께선 잘 모르시겠지만, 가문이 아닌 이런 외지에서 영약을 섭취하는 건 위험한 일입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영약을 먹고 운기를 하는 도중,

방해를 받거나 기습을 당해 목숨을 잃는 경우가 제법 많다고 한다.


내게 그런 일이 벌어질까 싶다만은 단호한 그의 의지에 결국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부탁드리겠습니다.”


“맡겨 주십시오.”


그에게 호법을 부탁하고 가부좌를 튼 다음 영약을 섭취했다.


입에 넣자마자 그윽한 향기와 함께 단전에 가득 차는 기운,


‘영약을 섭취하는 건 처음인데,’


상상 이상의 영기(靈氣)다.


마치 고여 있던 호수에 길이 뚫리며 강물이 쏟아지는 느낌,


영약 기운이 십이정경과 기경팔맥을 통해 몸 곳곳을 누빈다.


찌릿찌릿한 통증이 일었으나, 조금이라도 입을 열었다간 영기가 모두 빠져나갈 것 같아 내색하지 않고 꾹 참았다.


‘이거 생각보다 쉽지 않군.’


내가 품고 있던 음양천기와 영약의 기운이 합쳐지며 고통이 점점 거세진다.


녀석들은 낯선 불청객을 경계해 쉽사리 영기를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화난 아이를 달래듯 운기하며 조금씩 내기를 뒤섞었다.


그러자 점차 안정되기 시작한 내공,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몸 곳곳에 흩어진 기운을 흡수했다.


‘좀 더···좀 더···’


땀을 흘리며 흩어져 있던 내기를 모두 긁어모으니 단전에 자리 잡은 내공이 대략 반갑자 정도 늘어났다.


도합 한갑자 반,

전보다 더욱 심후해진 내공을 느끼며 이번엔 머릿속으로 심상을 그려봤다.


‘지금이라면,’


전에는 불가능했던 것들이 가능할 것이다.


심상수련을 하듯 머릿속으로 검을 들고 있는 내 모습을 구현했다.


그리고 차분하게 초식을 펼치자,

수려한 움직임과 함께 검로가 만들어진다.


부드러움에 뜻을 둔 것은 똑같으나,

그 안엔 묘한 강직함과 더불어 무거움이 서려 있었다.


굳이 표현하면 좀 더 검이 진중해졌다는 게 알맞을 것이다.


남궁세가의 검을 견식하며 깨달음 묘리,

그것들을 흡수해 나의 검법에 적절히 녹여냈다.


선(線)을 그리던 검은 어느새 면(綿)을 이뤄냈고, 이내 형(形)을 만들어냈다.


양천검 벽해(碧海),


물결치듯 퍼져나가며 서서히 주변의 모든 것을 씻어내는 검기, 만약 이곳에 적들이 서있었다면 이 파도는 붉게 변했을 것이다.


방위를 가리지 않고 주변을 휩쓸어버리는 검기의 향연을 감상하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스승님조차 제대로 펼쳐내지 못했고 나 역시 감히 엄두 내지 못했던 양천검의 절기를 이제는 어렵지 않게 펼칠 수 있게 되었구나.’


속으로 흐뭇하면서도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검초가 남긴 흔적을 바라봤다.


벽해는 내 내면에 있던 벽에 깊은 검흔을 남겼는데,

이 벽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다른 경지로 가기 위한 장벽인가?’


아마 이 벽을 넘어선다면

화경의 경지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벽해의 여파로 반쯤 무너져 내린 벽,

여기서 한치···아니 반치 정도만 더 뚫어낸다면 벽을 허물 수 있을 테지만,


‘지금은 아니다.’


억지로 무리해서 벽을 뚫어내려 하다간 도리어 화를 입을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벽을 넘을 수 있을 터.

나는 조급해 하지 않고 지금의 성장에 만족하며 천천히 눈을 떴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무림괴사(武林怪史)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중단 공지 +2 24.02.26 269 0 -
공지 연재 시간은 매일 12시 20분 입니다! 24.02.05 808 0 -
36 움직임 24.02.26 524 21 13쪽
35 깨달음 +2 24.02.25 570 26 12쪽
34 구룡산-만년금구(3) +1 24.02.24 587 27 13쪽
33 구룡산-만년금구(2) +1 24.02.23 644 30 12쪽
32 구룡산-만년금구(1) 24.02.22 677 22 12쪽
31 귀림-귀령문(3) +1 24.02.21 730 27 11쪽
30 귀림-귀령문(2) 24.02.20 769 25 14쪽
29 귀림-귀령문(1) +1 24.02.19 836 27 14쪽
» 한걸음 +1 24.02.18 964 27 12쪽
27 남궁혈사(5) +2 24.02.17 1,002 25 12쪽
26 남궁혈사(4) +2 24.02.16 1,006 26 15쪽
25 남궁혈사(3) 24.02.15 1,028 23 14쪽
24 남궁혈사(2) 24.02.14 1,006 22 14쪽
23 남궁혈사(1) 24.02.13 1,039 23 13쪽
22 화경의 고수 +1 24.02.12 1,090 26 15쪽
21 창천검(3) +1 24.02.11 1,085 26 16쪽
20 창천검(2) 24.02.10 1,104 26 14쪽
19 창천검(1) 24.02.09 1,115 24 13쪽
18 팔공산-갈저(2) 24.02.08 1,094 29 13쪽
17 팔공산-갈저(1) 24.02.07 1,188 24 15쪽
16 천중산-백설(3) 24.02.06 1,213 28 12쪽
15 천중산-백설(2) +1 24.02.05 1,242 29 15쪽
14 천중산-백설(1) +1 24.02.04 1,349 27 13쪽
13 회자정리(會者定離) +1 24.02.03 1,390 33 14쪽
12 순구의 진실 +1 24.02.02 1,365 34 12쪽
11 하남-이가장(4) +2 24.02.01 1,399 33 15쪽
10 하남-이가장(3) +2 24.01.31 1,391 32 14쪽
9 하남-이가장(2) +5 24.01.30 1,578 30 1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