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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퀴 님의 서재입니다.

마두의 제자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아퀴(AQUI)
작품등록일 :
2012.10.17 02:47
최근연재일 :
2012.10.17 02:47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228,200
추천수 :
1,118
글자수 :
120,300

작성
12.01.31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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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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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글자
10쪽

마두의 제자 [18]

DUMMY

"자만은 패배를 부른다."


정아는 창을 들어올리기 전이면 늘 습관처럼 되뇌었다. 정아는 이제 그 남자의 얼굴조차 잘 기억나지 않았지만 그 남자의 가르침만은 늘 기억하고 있었다. 병기라는 것들은 자만하는 자를 미워하니 늘 상대의 검 앞에서 겸손하여라. 상대가 무기를 들었으면 결코 먼저 공격하지 말고 기다려라. 상대를 탐색하며 기다려라. 네가 상대보다 약하다고 생각하고 기다려라.


그녀는 전투를 시작할 때면 창을 하늘을 향해 세우고 작은 의식을 치뤘다. 그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은 아니었다. 너무 오래된 일이었다. 그녀의 창이 허공에서 아름다운 곡선을 두어번 그리더니 자세를 낮추며 준비자세를 갖추었다. 창 끝은 언제나 목표의 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무게중심과 지면과 맞닿은 발의 형태. 그녀는 그 사람의 얼굴을 어렴풋이 기억해보려고 했다.


"훈련할 때는 늘 최선을 다해라. 어린아이를 벨 때에도 혈육을 벨 때에도 최선을 다해야한다. 너의 그 피묻은 창 앞에서도 살아있지 못하다면 너는 어떻게 너의 살아있음을 증명할 것이냐."


얼굴은 이제 완전히 잊어버렸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또렷히 기억속에 남아있었다. 거리를 좁혀오는 석가장 무사의 공격에 맞추어, 그녀의 창이 마치 바람을 기다리던 새처럼 날아올랐다.


한린은 정아의 바로 뒤에서 대련을 지켜보고 있었다. 실전 대련에서 검사는 대개 얕은 좌베기나 우베기로 공격을 시작하기 마련이다. 첫 수부터 깊은 베기나 찌르기를 시도하는 무인은 없다. 준비 동작 없이 상대의 목 언저리를 노린 견제 베기 공격이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석가장의 무인은 변칙적으로 움직였다. 정아가 창을 사용한 다는 점을 노리고 첫 수부터 가까이 다가와 오른발을 깊게 집어넣었다.

휘두르는 검의 힘을 실어넣기 위해서는 발의 위치와 방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무게 중심은 뒷발에 깊게, 위치를 점한 우족의 방향은 바깥쪽, 그대로 위쪽으로 찌르듯이 올려 베는 검날. 하체에서부터 끌어올린 힘이 그대로 검에 전해지며 사내의 검이 강한 파공음을 발했다.


파앙! 흠 잡을 곳 없는 깔끔한 공격이었다. 하지만 그의 검은 허공을 베었다.


정아는 창이라는 무기에서 오는 길이의 이점이 있음에도 먼저 공격하지 않고 기다렸다. 그리고 상대의 검이 휘둘러지기 이전에 날아올랐다. 전투시 발은 지면에서 떨어뜨리는 것은 매우 위험하지만 그녀는 이미 기본을 논할 수준은 아니었다. 완벽하게 시야에서 사라져 상대방의 머리 위를 점하면 커다란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자기 머리 바로 위쪽은 잘 보지 못하니까.


허공에서 창을 뻗어 바닥을 집고 상대의 뒤쪽으로 내려선 정아는 상대의 오른다리를 노리고 창을 뻗었다. 상대는 가까스로 다리를 들어 피했지만 순간적으로 무게 중심을 잃어버리는 손해를 보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정아가 기세를 늦추지 않고 창의 반대편으로 후속공격을 가했다. 횡으로 크게 휘두르는 일격. 석가장의 무인은 몸을 비틀어 바닥으로 굴렀다. 무게 중심이 떠있는 상대에서 크게 휘둘러진 창격을 받았다가는 치명타라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다.


사내가 가까스로 자세를 잡고 고개를 들었을 때 그는 내리쬐는 햇볕을 가르고 날아오는 새 한마리를 보았다. 한린은 날아오르는 그녀의 모습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사내가 가까스로 검을 들어 막았지만 내공을 머금은 창은 검날을 단번에 부러뜨리고 그의 머리 바로 옆을 지나 바닥에 꽂혔다. 넘어진 그의 뒤쪽으로 마치 지반이 분출한 것 같은 커다란 땅구덩이가 생겨났다.


순식간에 고요해진 석가장 내부의 분위기... 여기저기서 터저나오는 경탄과 경계의 시선. 말했지만 한린은 이미 포기했다.




"장주님께서 극진히 대접하라고 명하셨습니다. 필요하신 것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불러주십시오."


석가장의 무인은 매우 당황한 표정이었다.


"......."


"살수 아니었습니까? 이렇게 눈에 띄게 행동하고 다녀도 되는 겁니까?"


"어차피 한탕하고 뒤도 안돌아보고 떠날건데 뭐. 사내가 배포없이 왜이래?"


"......."


사부에게는 바득바득 말대답하던, 할 말 많기로 유명했던 한린이었는데, 정아와 함께하면서 그는 말문이 막히는 일이 부쩍 많아졌다.


할 말이 없었다. 그녀는 첫 상대를 아주 가볍게 날려버린 후에 요즘 사내들은 약해빠졌다며 도전자를 모으더니 연이어 다섯의 실력자들을 꺽어버렸다.


갑자기 나선 여인이 예상외의 무위를 보여주자 모여든 낭인들이 술렁이기 시작했고 결국 석가장 측에서 그 실력을 인정하고 황급히 정아와 한린에게 먼저 거처를 정해주었다. 요약하면 정아와 한린은 시작부터 소란을 일으키고 다른 낭인들의 눈을 피해 도망쳐온 셈이었다.


"실력을 확인한다기에 보여줬는데 석가장 놈들은 왜 이렇게 당황하는거야?"


"초장부터 너무 강렬하니까요. 모여든 낭인들이 위화감을 느끼고 포기할 정도였다고 생각합니다. 석가장에서도 그런 우려를 하지 않았을까요?"


"실력이 부족해서 꼬리내리고 도망갈 녀석들은 어차피 필요없잖아. 내 잘못 아니야."


"..... 누님은 정말이지 분란을 몰고다니시는 것 같습니다."


정아는 딱히 변명의 여지가 없었는지 멋적은듯 일단 자리에 앉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한린은 또다시 머리가 아파옴을 느끼며 창문을 열었다. 창문을 여니 찬 공기가 들어오며 두통이 좀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확실히 제법 좋은 방을 주었는지 석가장의 정원과 작은 연못이 창문 너머로 펼쳐졌다.


"누가 있는데?"


정적을 깬 것은 정아였다.


정아의 말에 한린의 시선이 연못가에서 서성이는 한 여인에게 머문다. 고작 20세나 되었을까? 싱그러운 매력이 묻어나는 미인이었다. 그녀는 연못가 주위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어찌할바를 모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정아에게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기 충분했다.


"쟤 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냐?"


"물어볼까요?"


"응!"


"......."


다행이 한린이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못가에서 서성이던 아가씨가 창문이 열린 것을 발견했고 그녀를 쳐다보던 한린과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그녀는 마치 자신이 부끄러운 행동을 들킨양 황급하게 예를 갖추어 인사했다.


"정원방(庭園房)에 손님이 계신지 몰랐습니다. 소녀가 정숙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드렸습니다. 죄송합니다."


"딱히 정숙하지 못한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별다른 것을 보지 못했으니 심려치 마십시오.소저"


한린은 소녀가 다소 과도하게 예의가 바르다고 느끼며 정중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이어져 나온 말은 소녀가 아닌 정아의 것이었다.


"아 폼 잡지 말고 빨리 안물어봐? 왜 저러고 있는지 궁금하잖아."


도대체 그게 왜 그렇게 궁금한 겁니까. 한린은 속으로는 투덜대면서도 자동반사적으로 명령을 이행한다.


"...... 소저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어디 가시는 길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오늘 소녀의 아버님께서 소녀를 위해 새로운 무사들을 고용한다고 들었습니다. 장원의 무사님들은 모두 저를 위해 힘써주시는 한 가족이시고 또 저 때문에 일어난 일인만큼 제가 직접 가보려는 길이었습니다."


"호오~"


아무래도 이 아가씨가 석가장주의 외동딸인 모양이었다. 자신 때문에 팽가와 대립하고 무사를 모으고 있으니 답답한 마음에 나온 것이겠지.


"그러면 어서 가지 않고 왜 망설이고 계십니까??"


"그것이... 여인의 몸으로 함부로 사람들 앞에 나설 수 없지 않겠습니까. 저 때문에 벌어진 일, 자리에 참석하는 것이 옳지만 또 아버님의 허락없이 함부로 모습을 보일 수 없으니 망설여지는 것이지요."


지나치게 예의바른 아가씨다. 심각하게 착한 성격만큼 답답한 것도 없는데... 한린은 걱정스러운 눈길로 여인을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럼 우리를 만나면 되겠네. 우리가 이번에 가장 먼저 고용된 낭인들이니까."


"네?"


갑작스런 정아의 말에 여인이 깜짝 놀랐다.


"우리가 첫번째로 선발된 우수한 무사들이거든. 굳이 연무장까지 갈 필요없이 우리와 얘기를 나누는 것이 먼저 아니겠어?"


"그렇네요. 이미 우리는 우연히 만났으니 함부로 모습을 보인 것도 아니고, 아가씨를 지키기 위해 온 것도 맞으니까요."


정아의 말에 당연하게 맞장구를 친 이는 바로 한린이었다. 그도 이제 별다른 반발없이 정아의 장단에 맞추어주는 모양이 이미 정아에게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두 수상한 자들에 꾀임에 빠진 석가장의 금지옥엽은 그 말이 설득력이 있다고 판단한 듯 순수하게 기뻐했다. 그녀는 낯선 무인들을 경계할만도 한데 아무런 의심없이 두 사람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나저나. 저 아가씨 너무 선뜻 방안으로 들어오는데...


"전혀 안 그렇게 보이는데 은근히 쉬운 성격의 여인인 모양인데? 이거 어쩌면 팽지창이란 놈이 젊은 혈기에 오해한 걸지도..."


정아도 그녀가 순순히 들어오는 것이 의외였는지 장난스럽게 말했다.


"누님, 그래도 같은 여자인데 그렇게 말씀하시면..."


쿠당탕!@!@


한린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방 안으로 들어오던 소녀가 문지방에 걸려 넘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문 사이에 걸려 치마가 길게 찢어졌고 무공을 익히지 않았는지 무방비로 넘어진 소녀는 자신의 다리와 부끄러운 부분을 시원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한린은 당혹스러움과 함께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예의가 바른 것과 조신한 것과는 조금 다른 모양입니다."





-


작가의말

선호작 150돌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영어로 땡큐, 중국어 셰셰 일본어로 아리가또라고 하지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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