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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스톤 님의 서재입니다.

전역날 이계로 납치당함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완결

팩스톤
작품등록일 :
2020.10.24 21:23
최근연재일 :
2021.03.05 18:05
연재수 :
122 회
조회수 :
77,027
추천수 :
980
글자수 :
699,515

작성
21.01.3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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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3쪽

잉크

DUMMY

콧가를 스치는 불쾌한 냄새에 인상을 찌푸렸다. 시큼한 향이 섞인 공기는 끈적하기까지 해서 내가 느끼는 찝찝함을 배가시켰다.


당장이라도 이 장소를 뛰쳐나가고 싶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다. 이곳 어딘가에 내가 찾는 목표물이 있기 때문이지.


-아직 찾지 못했는가?


마왕군의 주축을 차지하는 경비병.

그들의 근원은 이곳에 있다.



우우우웅!!


놈들에게서 추출해낸 정수가 격렬히 진동하는 모습을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문제가 있다면......


구우우우!!


이 공간 전체가 정수와 공명해 지진이 일어난 듯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 아직.”


정수가 공간과 공명한다.


이건 어둠의 숲 어딘가에 내가 찾던 동화책이 존재한다는 걸 증명한다. 덕분에 이 넓디넓은 숲 전체를 탐험할 필요가 줄었어.


그런데, 장점이 있다면 단점도 있는 법이잖아?


공명음 덕분에 탐색 지점은 압축할 수 있었지만, 책이 있을 정확한 장소를 특정하긴 힘들어졌다.


“이래서야 어떻게 찾아.”


내가 앓는 소리를 내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벌써 이 숲에서 몇 시간을 보냈는지 모르겠다.


-한성! 옆을 보게!

“응?”


카르투스의 외침에 고개를 좌우로 돌렸다.


특별한 것은 없는......


“있네?”


왼편으로 도도히 흐르는 검은 강.


마치 잉크가 흐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찐득한 강물의 스물스물 올라오고 있었다.


“근데, 이게 뭐.”

-생명의 탄생이네! 새로운 생명의 탄생! 이 기묘한 장소에서 새로운 생물이 태동하려 하고 있다네!!


카르투스의 흥분 가득한 목소리에 콧방귀를 꼈다. 저 생물의 행동을 예측해보겠다.


일단 놈은 뭍으로 올라올 것이다.


스멀스멀......


힘겹게 올라오고 나면 제 몸을 주물 거리겠지 특정한 형태를 갖출 때까지.


으어으어......


대충 형체가 갖추어지면 놈의 점도가 올라갈 것이다. 슬라임처럼 탱글탱글하게.


“꾸어어오옥!”


슬라임이 나를 발견했다.

괴성을 지르며 굴러온다.

꾸득꾸득 굴러오는 검은 덩어리.

참으로 불쾌하기 그지없었다.

자연스럽게 주먹에 힘이 들어가더라.


-놈! 놈을 잡아주게! 요새 키메라 제조에 막히는 부분이 있었다만, 저 존재라면......


카르투스의 목소리는 깔끔하게 무시했다.

주먹에 힘 좀 줬다고 불쾌함이 사라지지는 않았으니까. 나는 움켜쥔 손을 휘둘러 슬라임의 몸을 후려쳤다.


“끼에에... 꾸웨에엑!!”

뿌슈웅!


단말마를 남기며 오던 방향으로 폭사하는 슬라임. 우습게도 슬라임 대신 카르투스가 비명을 내질렀다.


-무, 무슨 짓인가! 새로운 생명이란 말일세! 소중한 실험체 말일세! 그런 생물을......

“시끄러.”


나더러 저 끔찍한 생물에 또 손을 대란 말인가? 나는 내 옷가를 바라보았다.


일부가 검게 물든 상의.


얼마 전 카르투스의 요청을 듣고 잉크 괴인을 사로잡다 생긴 자국이다.


“옷에 물든 색 아직도 안 빠졌거든?”


신경질적으로 검은 자국을 벅벅 문지르고, 흩어진 슬라임 파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얘 아직 안 죽었어.”


조각조각 났음에도 불구하고 스멀스멀 움직이는 슬라임 괴물의 조각.


육체가 완전히 굳기 전에 분쇄된 까닭일까? 조각났음에도 불구하고 생기가 넘쳤다.


-그런가? 그럼 어서 놈을 보내주... 으왁!


카르투스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던전에 슬라임 파편을 밀어 넣었다.

혹시 강에 떨어졌을지도 모르니 강물까지 끌어와서 쏟아 부었다.


-자!! 잠깐마안!! 이렇게 많이는, 필요없... 우어어억!!

“끝.”


카르투스에게 슬라임을 전송해주고, 몸을 돌렸다. 이제 못다 한 탐색을 계속할 시간이다. 언제쯤 찾을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검은 대지를 박차고, 비틀린 나뭇가지를 발판삼아 하늘로 뛰어올랐다.


내려다보이는 광경은 지평선 끝까지 펼쳐진 어둠의 숲. 이계화로 인해 확장된 세계 중 가장 방대한 크기를 자랑하는 장소.


“누가 이기나 보자.”


숲을 내려다보며 한 마디 내뱉었다.

호구는 기절했지만, 마왕군의 진격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아직 까지는 나 혼자서도 충분하다.

그래도, 오래 버티진 못할 것이다.


마왕군의 쪽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거든.


-놈은 강하다! 그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놈은 혼자! 결계의 주인을 포함해 둘밖에 없지!


마왕군은 깨닫고 말았다.

나를 결코 넘어설 수 없다는 사실을.


그래서 다른 방법을 준비했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를 막을 순 없다.


그리고, 방법이란 참으로 짜증 나기 그지없는 수단이었다.


-우회하라! 결계를 돌아 인간의 땅을 밟아라! 놈이 육체가 하나인 이상! 우리의 목ㅍ... 꾸에엑!!

“풋! 하나?”


어느새 살아 돌아와 연설하는 엑라스트.

놈을 척살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의 유지는 마왕군에게 확실히 전달되었다.


-괴물을 피해 진격하라!

-목표는 괴물이 아니다! 인간이다!


눈깔이 뒤집힌 채 덤벼들던 놈들이 이제는 나를 피해 프레온으로 달리고 있다.


분신을 동원할 수 있는 나이기에 아직 까지는 충분히 버티는 게 가능하지만......


“점점 힘들어지겠지.”


마왕군의 숫자는 계속 늘어만 간다.

엄청난 속도로 놈들의 수를 줄이고 있지만, 충원되는 속도가 더 빠르다.


더 짜증 나는 사실은 놈들의 충원속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빨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악물고 분신을 전개했다.


숲을 향해 뛰어내리는 12명의 분신.

모두 다 환영무를 통해 구성된 분신으로 이것이 나의 최대한도다.


‘시간이 흐를수록 탐색에 나설 분신이 줄어들 거야.’


늘어나는 마왕군을 차단하기 위해선 새로운 분신이 필요할 테니까.


나는 굳은 얼굴로 사방으로 달려가는 분신들을 쓸어보고, 그들이 가지 않은 방향을 향해 뛰었다.


이쪽 길도 여느 쪽과 마찬가지로 어둠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


어둠이 모든 것을 감싸고 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다.


하지만, 왜일까?


언제나 맞서 싸워야 했던 어둠일 진데.

어찌 이리도 포근한 것일까?


어둠의 따스함에 취해 몸을 휘감은 부드러운 품속에 파고들었다.


정신이 든 것은 그때였다.


“헙!!”


어둠이 내려앉은 적막한 병실에 낮고 굵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목소리의 주인은 몸을 이리저리 비틀더니, 번개처럼 몸을 일으켰다.


펄럭펄럭......


그의 격한 동작에 이불이 날아올라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허억. 허억......”


꿈이라도 꾼 것일까?


어떤 꿈이었을지는 몰라도 결코 좋은 꿈은 아닐 것이다. 몸을 일으킨 그의 눈동자는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으니까.


벌컥!

“대체 무슨 소란이......”


문이 벌컥 열리고, 하얀 옷을 입은 여성이 뛰어들어왔다. 그녀와 남성의 눈이 마주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리라.


“아, 아아......”


여사제의 에메랄드빛 눈동자가 미친 듯이 떨렸다. 믿을 수 없는 일을 목격한 사람과도 같은 표정이었다.


“아, 알려야 해!”


그녀는 재빨리 몸을 돌려 어딘가로 뛰쳐나갔다. 갓 깨어난 사람을 뒤로하고 뛰쳐나가는 모습을 보면 신입임이 분명하다.


-깨, 깨어나셨습니다!! 인류의 영웅! 그분이 깨어나셨습니다. 용사......

“후우.”


그녀의 행동은 바람직하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오히려 좋았다.

신입 여사제의 귀여운 행동은 그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내게 했으니까.


그렇게 마음의 평안을 남자는 독백했다.


“어떻게 된 일이지.”


필생의 적과의 전투 끝에 의식을 잃었다.


비록 의식을 잃었으나, 한 가지 사실은 기억난다. 쓰러지는 그 순간까지 필사적이었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크읍!”


전신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몸을 웅크렸다.


물론 진짜 상처는 아니다.

상처는 진작 사제에게 치료되었을 테니까.


그렇다. 이것은 환상통.


처절한 싸움 끝에 얻은 영광의 통증일 것이다. 그렇게 자부하며 애써 미소지었다.


“후우우......”


마음가짐이 달라져서일까?

통증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혼란도 통증도 소리도 없는 어두운 병실.


남자는 그제서야 느낄 수 있었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축축했었다는 사실을.


“흐흐.”


남자는 손을 들어 목 뒤를 쓸었다.


두터운 손가락이 땀으로 축축해졌......


“......”


축축해지지 않았다.


남자는 떨리는 손으로 목을 다시 쓸었다.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남자는 오른팔을 내려다보았다.


강인한 근육과 곳곳에 배긴 굳은살이 그의 노력을 증명하고 있었다.


“아......”


그랬던 팔이......


손끝부터 사라져가고 있었다.


“하. 그랬었지.”


남자는 사라져가는 팔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후회는 없다.”


쓴웃음을 단숨에 지우고, 창문너머 달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달빛에 비친 전사의 육체.


성한 곳 하나 남지 않은 그 육체엔 있어야 할 것이 보이지 않았다.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데에......”


팔 따위에 무슨 가치가 있는가.


남자는 창문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창문에 반사된 자신과 눈을 마주쳤다.


창문 속의 남자는 웃고 있었다.

하지만, 창문 너머의 남자는 울고 있었다.


“도르무가 깨어났다 했지!? 어디 있어!”


친숙한 목소리를 들으며 도르무는 창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울지마라. 루시우스.”

-도르무... 팔이, 팔이이......


널 구한 것에 단 한 점의 후회도 없으니.


육체는 하찮다.


아무리 단련하고, 또 단련해도, 그것이 영원할 수는 없을 테니까.


허나, 하찮지 않기도 하다.


먼 옛날 영원에 가까운 시간 동안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 그러한 설화 속의 영웅들도 육체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영원 속에 이름을 남길 수 있었던 이유는 분명 육체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도르무는 기쁘다.


오른팔을 대가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기에.


그렇기에 전사는 슬프다.


그가 오른팔을 잃음으로써 친우의 전설에 큰 상처가 생겨났기에.


벌컥!

“도르무!!”


귀가 째지는 듯한 높은음의 목소리.


예전에야 조금 짜증 났지만, 이제는 익숙한 목소리. 도르무는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친구를 반겼다.


“테르치아.”


언제나 냉정함을 가장했던 테르치아.

지금 그녀의 냉정이 깨졌다.


최대한 감정을 들키지 않으려 얼굴을 굳히고는 있으나, 오랜 시간 그녀와 함께했던 도르무는 알 수 있었다.


옛 동료의 얼굴을 보자.

죽어간 동료들의 얼굴이 생각난다.


우리들의 퇴로를 지키다 죽은 듀릭. 전멸 직전까지 간 해방군을 위해 희생한 미리엘.


이제 과거를 추억할 수 있는 이는 테르치아와 용사 루시우스 뿐이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줄게.”


테르치아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아주 긴 이야기였다.


“그날로부터 벌써 3년이나 지났나.”

“그래.”


마왕을 피해 동굴에 숨었던 그 날.


천지를 떨어 울리는 어마어마한 굉음에 잠 못 이뤘던 그 날.


그.


도르무가 형님으로 모시기로 맹세했던 남자가 죽었다.


홀로 마왕에 맞서다 죽었다.


“형님은 홀로 마왕의 숨을 끊으셨지.”


물론 마왕 또한 무사하지 못했지만.


“그랬던 마왕이 부활했다니......”


일말의 자책감이 가슴을 짓누른다.

이미 죽어 시체에 불과한 마왕.


그를 봉인하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떻게 되었는가.


“우리가... 성급했던 걸까?”


테르치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용사와 해방군은 너무 성급했다.


성급하게 리오스의 군단장을 공격했고,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


일단 해방군 전력의 절반 이상을 잃었고, 용사 파티 중 두 사람이 죽었다.


“우리는 힘을 길렀어야 했어.”


재능 넘치는 루시우스를 중심으로 천천히 수련했었어야 했다.


용사 강한성이 만들어준 3년이라는 시간을 철저히 준비했어야 했지.


“이젠 지난 일이다.”

“그렇지.”


테르치아와 도르무는 함께 달을 올려다보았다. 시리도록 비추는 달빛에 정신이 빠져들 것만 같았다.


그때였다.


“테르치아님!”

“...무슨 일이냐?”

“요, 용사님이!”

“...용사가?”

“쓰러지셨습니다!”


테르치아의 안색이 변했다.


“끄응!”

“도르무! 아직 움직이면 안 돼!”

“아니, 움직일 수, 있다!”


우둑! 우두둑!


도르무의 근육에서 무시무시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


“씨발.”


존나 더럽네.


검고 찐득한 잉크로 이루어진 근육에서 무시무시한 소음이 나고 있다.


“꾸윙!”

“...우욱.”


쓸데없이 귀여운 목소리는 구토를 유발케 했다. 지금까지 만난 잉크 괴인 중 가장 괴기하게 생긴 근육 괴물.


암튼 그 새끼가 포효했다.


“쮸쀼야악!!”

“뒤져!!”


꾸화앙!!


괴인의 잉크 근육과 내 마력이 충돌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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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레이닉스 경비대 21.01.30 276 3 13쪽
92 요정마을 21.01.29 273 4 12쪽
91 요정 +1 21.01.28 271 3 13쪽
90 잔혹동화 - 3 +1 21.01.27 280 4 13쪽
89 잔혹동화 - 2 +2 21.01.26 286 4 12쪽
88 잔혹동화 +1 21.01.24 297 3 12쪽
87 마왕군 +1 21.01.23 303 3 12쪽
86 현상유지 21.01.22 304 3 12쪽
85 뽀삐 21.01.21 308 2 12쪽
84 어둠의 신 21.01.20 303 4 11쪽
83 부활 +1 21.01.19 309 4 12쪽
82 사투가 끝나고 +1 21.01.17 302 4 12쪽
81 고전 - 2 +1 21.01.16 318 4 13쪽
80 고전 +1 21.01.15 315 4 12쪽
79 마왕 +1 21.01.14 310 4 12쪽
78 불화 - 2 21.01.13 322 4 12쪽
77 불화 21.01.12 320 4 13쪽
76 오해 21.01.10 333 3 12쪽
75 지옥탕 21.01.09 344 4 13쪽
74 계획 +1 21.01.08 337 5 12쪽
73 로레이드와의 만남 +1 21.01.07 353 5 13쪽
72 기사 21.01.06 342 5 13쪽
71 유령의 꿈 21.01.05 369 4 13쪽
70 한성, 또 사고 치다. 21.01.03 378 4 12쪽
69 뒷수습 21.01.02 366 4 12쪽
68 혈투의 끝 21.01.01 368 4 13쪽
67 혈투 20.12.31 383 5 12쪽
66 내분 - 2 20.12.30 407 4 12쪽
65 내분 20.12.29 428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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