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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스톤 님의 서재입니다.

전역날 이계로 납치당함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완결

팩스톤
작품등록일 :
2020.10.24 21:23
최근연재일 :
2021.03.05 18:05
연재수 :
1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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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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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99,515

작성
21.01.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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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불화 - 2

DUMMY

“...먼저 갈게.”

“뭐?”


한 마디만 내뱉고 한 방향으로 폭사 하듯 나아가는 루시우스. ‘또 시작이네.’ 하는 표정과 함께 제 할 일을 하는 동료들과 달리


테르치아는 그를 뒤쫓았다.


“야! 어딜 가겠다는 거야!”

“성검을 되찾아야 해.”


어딨는지는 알고?


그녀는 기가 막힌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건 알겠는데 넌 성검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잖아.”

“아니. 알 수 있어.”


어디에서 나오는 자신감일까.


성검의 위치를 알고 있다는 루시우스에 테르치아는 일말의 찜찜함을 느꼈다.


“어딘데?”

“내가 가는 곳.”


참으로 자신감 넘치는 어조다.

그렇다면 믿음직스럽냐면 아니다.

지금까지 이 목소리에 얼마나 속아왔던가.


그래도 이건 물어봐야겠지.


“...성검의 위치가 느껴지는 거야?”

“아니. 그런데 난 용사잖아. 용사인 내가 성검을 찾고 있어. 그러니까 내가 가는 길에 성검이 알아서 나타날 거야.”

“......하하.”


역시 물어보나 마나였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진지하게 하는 용사 새끼. 도대체 이 인간은 나이를 어디로 처먹은 걸까?


성검을 찾을 것이라 믿으면,

성검이 알아서 나타날 것이다.


일단 믿어라.

그럼 이루어질 것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 아닌가?


시골구석에서 성행하는 사이비 교단에서나 들릴법한 어처구니없는 소리와 하등 다를 것 없는 말이다.


“하아......”


처음 만났을 때였다면 저 말에 껌뻑 넘어갔겠지.


어디까지나 처음 만났을 때라면 말이다.


어려서부터 용사 전설을 듣고 자란 이 세계의 주민들은 용사에 대한 일종의 환상을 가지고 있다.


테르치아라고 다르진 않았다.


용사라 하면 책에서나 봐왔던 인물.

전설 속 용사들은 한 번도 빠짐없이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었다.


그렇기에 생각했다.


아무리 못 미더워도 용사는 용사.

용사인 이상 세상의 주인공이 분명하다고.


세상의 주인공이 가는 길은 언제나 장미밭으로 장식될 것이라고.


그 순진한 믿음이 깨어지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지만.


수도를 나서 던전을 공략하고 성검을 얻기까지 단 한 개의 업적도 쌓지 못했다.

아니, 업적은커녕 그나마 있던 쥐꼬리만큼의 골드도 사기당해서 다 빼앗겼지.


그때 테르치아는 무엇을 했는가?

바보같이 사기당한 용사의 치태를 감추기 위해 그녀의 비상금으로 골드를 채우고 사기꾼을 사로잡았다.


프로이슨 던전에 입장하고 2층에 도달했을 때 루시우스는 동료들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망령에게 힘차게 뛰어들었다.


테르치아는 그날 비상용 포션을 쓸 수밖에 없었다.


성검을 가지고 올라온 날.


테르치아는 마왕군과 싸우러 가자고 말했으나 이 망할 용사는 살인마를 잡겠다고 도시에 일주일을 넘게 눌러앉았다.


용사가 사고치고, 테르치아가 수습하고.

그렇게 쌓이고 쌓인 스트레스는 테르치아의 마음에 비틀림을 만들어냈다.


더 이상은 못 참겠다.


테르치아는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게 만들었다.


“넌 아직도 네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뭐?”

“그 얼빠진 표정은 뭐야.”


치명적인 약점을 찔린 사람 마냥 파랗게 질리는 루시우스. 말을 더듬는 것도 짜증 났지만 침착하게 기다려 주었다.


“나, 난 주인공 같은게......”

“주인공이 아니라고?”


스스로가 주인공이 아니라는 말.


그 말을 듣는 순간 테르치아는 마음속에서부터 타오르는 불길을 느꼈다.


“난 용사야. 주인공이 아니라 용사라고.”

“그럼 지금까지의 네 행동은 뭐였지?”


자신만이 삶의 주인공 나머지는 모두 엑스트라. 그녀가 본 루시우스의 모습이었다.


“넌 언제나 자신이 나서면 모든 게 해결될 것 같이 나섰어... 결과는 어땠지?”


무엇 하나 제대로 해결한 것이 없었다.

테르치아는 그가 싼 똥을 치웠다.


“넌 언제나 권리를 따졌지. 자신은 호구가 아니라는 둥. 뭘 살 때마다 꼬치꼬치 캐물었잖아.”

“그건 맞잖아! 난 용사지 호구가 아니야!”

“혹시 알고 있어?”

“뭘?”

“네가 입고 있는 갑옷.”


제작자의 뛰어난 손재주가 엿보이는 반질반질한 가죽 갑옷.

마왕과의 전쟁통에 이제는 구하기 힘든 고급스러운 갑옷이다.


“...갑옷이 왜?”

“그래. 네가 가격을 후려친 그 갑옷.”

“후려치다니! 가격이 이상했던 거라고! 그 아저씨......”

“내가 개인적으로 조사해보니까.”

“말 끊지......”

“절반이었다더라.”


용사의 눈을 직시하며 씹어뱉었다.


“원가의 절반.”

“무슨......”

“네가 방금 욕하려던 그 아저씨 네가 용사였기 때문에 갑옷을 원가의 절반에 팔려고 했었어.”


용사가 가격을 후려쳤을 때 보았다. 갑옷 장인 아저씨의 눈가에 서린 깊은 실망감을.


테르치아가 갑옷에 대해 조사했던 이유는 순전히 그것 때문이었다.


뒤늦게 진실을 깨달은 테르치아는 갑옷 장인을 찾아가 골드를 내밀었지만, 아저씨는 돈을 받는 걸 거부했다.


그의 눈가에 서린 선명한 실망감은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았다.


“용사는 이 세상의 주인공이다.”


허공을 조용히 올려다보았다.


“내가 어린 시절부터 들어온 이야기야.”


동경했고 또 되고자 했던 이야기.


“...내 동심이 또 하나 깨어지는구나.”


용사가 약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용사도 사람이니까.

마냥 무적인 사람 같은 것이 존재할 리가 없지 않은가?


용사가 조금 바보 같다 해도 상관없다.

그 정도는 테르치아가 잘 케어해 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용사가 비열한 것만큼은......

용사라는 신분을 이용해 사람들을 등쳐먹는 것만큼은.......


참을 수 없다.


그것이 부패한 귀족들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멍청해서 몰랐다고?

다음부터 안 그러겠다고?


멍청이가 죄지으면 감옥 안 가나?

말로만 그런다고 죄가 없어지나?


성검을 찾으러 가겠다는 용사의 멍청한 소리는 테르치아의 도화선에 불을 붙였고,


도화선의 불씨가 그녀의 마음에 불을 지르자 테르치아는 자신의 마음을 직시할 수 있었다.


그래서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기에.

타인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얼굴에 깊은 실망감이 담겨 있을지 모르기에.


“난 간다.”

“...테르치아? 어딜 가겠다는 거야.”

“알잖아?”

“멈춰! 우린 동료... 아따가.”


마음대로 내 몸에 손대려 하는 용사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줬다.


상황이 이상하게 되었네.


처음에는 혼자 떠나는 용사를 막을 생각이었는데 이제는 용사가 아닌 내가 떠나게 되었다. 하지만, 별 후회는 되지 않는다.


‘세상이 어떻게 되려나......’


아마 강한성 용사님이 지키겠지.

루시우스보다 적어도 수십 배는 믿음직스러운 사람이니까. 아니, 이 인간이랑 비교하면 화내려나?


“테, 테르치아... 정말로 가는 거야?”


그럼 정말로 가지 가짜로 가겠냐?

네 평소 태도를 생각해 봐라.

이쯤 되면 정나미가 떨어질 때도 됐지.


“가는 거냐?”

“어.”

“그럼 전장에서 보겠군.”

“그렇지.”


용사파티를 떠나면 저항군에 가입할 거다.


마왕군은 무척 강하다.

그나마 그에 대항이라도 할 수 있는 세력은 현재 파일렛에 자리한 저항군뿐.

만약 저항군이 패하면 인류는 마왕군에 쓸려나갈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영원히 쫓겨 다니는 도망자 신세가 되겠지.


“너는?”

“나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하, 동화책에 이름하나 새기겠다고.”

“동화책이라니! 내 이름! 붉은바위 도르무는 전설이 되어 영원히......”

“예. 예 알겠습니다.”

“무시하지 마라! 테르치아!”


쿠르르르르......


“또 지진인가?”

“...아닌 것 같은데.”


심상치 않은 진동에 도르무는 옆에 세워둔 대검을 집어 들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이상을 눈치챈 듀릭과 미리엘도 모습을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테르치아를 쫓아온 루시우스가 야영지에 도착하자 그것은 시작되었다.


시작은 어둠이었다.

이질적인 어둠이 하늘을 뒤엎었다.


하늘을 메워 태양까지 가린 어둠은 기묘한 파장으로 너울거리며 영향권 하에 있는 모든 것에게 등골이 얼어 붙는듯한 오싹함을 안겨주었다.


“이건......”


알고 있다.


테르치아는 이 현상에 대해 알고 있었다.


“뭐야! 이건 뭐냐고!”


...이곳에 이 현상을 모르는 이는 아마 루시우스 뿐일 것이다.


“이계화......”


이계화의 전조.


어린 시절부터 달고 살았던 책들에 언제나 나타났던 특별한 이상 현상.


빠지지직!


그리고, 눈앞의 세계에 금이 가는 것으로 이계화의 완성을 알려왔다.


파자자장창!!


풍경이 깨져나가고, 평범한 숲이었던 그곳은 더 이상 평범하지 않게 되었다.


언제나 싱그러운 향기로 곤충들의 먹이가 되었던 풀잎은 이질적으로 뒤틀려 곤충을 괴물로 만드는 마력을 뿜었고.


투둑! 뿌직! 빠지직!


뜨거운 햇볕을 가려주는 안식처가 되어주던 나무는 뿌리를 다리 삼아 움직이며 날카로운 가지로 사방을 헤집는 살인 병기로 재탄생되었다.


쿠어어어!!


모든 것이 비틀린 공간.


테르치아는 공포에 잠긴 시선으로 이 모든 것의 중심지를 바라보았다.


소름 끼치면서도 동시에 따사로운 마력이 감도는 그곳.


마족들의 왕이 있는 방향을.


*


레비와 한바탕 하고 뒷정리까지 끝내고.


“이후는 내게 맡기고 나가게.”


흉측한 몰골을 자랑하는 키메라들을 데려온 카르투스에게 쫓겨나고 말았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레비와 내가 친 사고가 좀 커야 말이지.

사지가 박살나 피를 질질 흘리는 몬스터들을 가마솥에 던져 넣는 것은 순탄치 않았다.


날뛰는 레비도 레비였고, 받아먹는 슬라임도 슬라임이었다. 우리가 힘차게 날 뛴 결과 지옥탕은 지옥 그 자체가 되었다.


온 사방을 장식한 핏물과, 곳곳에 새겨진 파괴의 흔적, 범람한 지옥탕의 끔찍한 액체가 합쳐져 청소할 엄두도 안 날 정도로 엉망이 된 방.


카르투스는 눈물을 머금고 방을 던전의 기능을 활용. 방을 초기화하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지옥탕은 나와 레비가 옮겼고.


이로써 마왕을 상대하기 위한 준비는 거의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노가다 뿐이다.


‘거인 세트를 완성한다.’


끝내주는 능력과 강력한 스킬로 무장한 나지만, 뭔가 마왕을 상대하기에는 부족한듯한 느낌이 든다.


이는 독서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마왕이라는 놈은 작정하고 힘을 쓰는 순간 이계화가 일어난다고 한다.

이걸 보면 마왕의 마력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다.


용사는 어떠했는가?


이계화 같은 스케일 쩌는 기술을 쓰는 모습은 못 봤다. 많고 많은 용사 책들 다 읽어봤는데 없더라고.


이걸 보니 타당한 의심이 들더라.


마왕이 용사를 봐준 것이 아닐까?


본격적으로 힘을 활용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좀먹을 만큼 강한 마왕이.

성검 들고 나대는 찐따 몇 마리한테 한 번도 빠짐없이 당했다고?


봐주지 않았다면 일어날 수가 없는 일.


‘혹시 모르잖아.’


어쩌면 이번에도 봐줄지도 모른다.


헌데, 혹시 안 봐주면?


마왕 대신 용사가 찢길 위험이 있다.


그리고 용사는 나지.


그런고로 나는 살길을 찾아야 한다.


마왕과 마주치기 전에 챙길 수 있는 것은 전부 챙겨야 한다.


일단 갈 곳은 정해져 있다.


‘파일렛.’


저항군이 있는 그 도시에 가서 조용히 힘을 기를 것이다.


그럼 그 날이 오겠지.


카르투스와 그린.

슈퍼 로레이드.

그리고, 초필살기 환영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총동원해 마왕을 쓰러뜨릴 것이다.


우웅.


“스읍!”


던전을 빠져나오고 크게 숨을 들이켰다. 폐부를 가득채우는 산소가 내 의욕을 끌어 올려준다. 나는 레비를 돌아보았다.


아직도 뚱해 있는 레비.


“...기분 풀어 임마.”

“흥.”


결국 포기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왜 이렇게 조용하냐?”

툭툭.

“네가?”


레비피셜 자신이 몬스터 잡으며 날뛰고 있었더니 언제부턴가 이것들이 도망쳐버렸다고 했다. 거기서 살짝 위화감을 느꼈다.


“그 흉폭한 놈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연약해 보이는 레비가 한 시간 날뛴 것만으로 몬스터 웨이브를 일으켰다고?


“너 무슨 새로운 능력이라도...... 흡!”


나는 번개같이 뒤로 고개를 돌렸다.


커다란 바위 위에 앉아 조용히 나를 내려다보는 존재.


사위를 감싸는 어마어마한 위압감.

바위를 중심으로 서서히 비틀리는 시야.


나는... 저 자를 알 것 같았다.


“마왕......”


내 목소리와 함께 마왕을 감싸고 있던 장막이 사그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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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요정 +1 21.01.28 272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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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잔혹동화 - 2 +2 21.01.26 287 4 12쪽
88 잔혹동화 +1 21.01.24 298 3 12쪽
87 마왕군 +1 21.01.23 304 3 12쪽
86 현상유지 21.01.22 305 3 12쪽
85 뽀삐 21.01.21 308 2 12쪽
84 어둠의 신 21.01.20 304 4 11쪽
83 부활 +1 21.01.19 310 4 12쪽
82 사투가 끝나고 +1 21.01.17 303 4 12쪽
81 고전 - 2 +1 21.01.16 319 4 13쪽
80 고전 +1 21.01.15 316 4 12쪽
79 마왕 +1 21.01.14 311 4 12쪽
» 불화 - 2 21.01.13 323 4 12쪽
77 불화 21.01.12 320 4 13쪽
76 오해 21.01.10 333 3 12쪽
75 지옥탕 21.01.09 345 4 13쪽
74 계획 +1 21.01.08 337 5 12쪽
73 로레이드와의 만남 +1 21.01.07 353 5 13쪽
72 기사 21.01.06 343 5 13쪽
71 유령의 꿈 21.01.05 369 4 13쪽
70 한성, 또 사고 치다. 21.01.03 379 4 12쪽
69 뒷수습 21.01.02 367 4 12쪽
68 혈투의 끝 21.01.01 368 4 13쪽
67 혈투 20.12.31 384 5 12쪽
66 내분 - 2 20.12.30 408 4 12쪽
65 내분 20.12.29 428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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