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팩스톤 님의 서재입니다.

전역날 이계로 납치당함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완결

팩스톤
작품등록일 :
2020.10.24 21:23
최근연재일 :
2021.03.05 18:05
연재수 :
122 회
조회수 :
77,051
추천수 :
980
글자수 :
699,515

작성
21.01.12 18:00
조회
320
추천
4
글자
13쪽

불화

DUMMY

끼르르......

끄에... 끄에에......


던전에 울려 퍼지는 구슬픈 울음소리.

그 방향엔 팔다리가 잘려나간 몬스터들이 고통과 두려움에 번민하고 있었다.


나로서는 굉장히 불편한 심정이었다.


물론 레비에게 잡혀 병신이 된 몬스터들에 대한 동정심은 당연히 아니었다.


“...시끄럽네.”


순전히 청각이 예민한 탓이다.


던전 어디를 가도 몬스터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너무나도 암울해서 나까지 기분이 더러워질 것 같은 울음소리가.


생각 같아서는 저것들 싸그리 잡아다가 지옥탕에 처넣어버리고 싶었지만......


‘그럼 레비가 실망하겠지.’


지옥탕에 팍 꽂힌 레비는 넘치는 의욕을 주체하지 못한 채 던전을 박차고 나갔다.

그리고 그 의욕에 걸맞게 한 시간도 안 되어 몬스터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 왔지.


내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해 준 것이다.


그녀가 기껏 모은 먹잇감.

나 혼자 처리해 버리기엔 눈치 보인다.


‘좀 거슬려도 못 참을 건 없지.’


나는 지옥탕으로 고개를 돌렸다.


정확히는 지옥탕 한가운데서 변이 중인 로레이드를 향해서.


“아, 아안 돼애애......”

“맛있냐? 몬스터.”


로레이드의 늘어지는 비명 소리가 내 귀를 때린다. 고블린과 트롤이 섞인 그의 모습은 몰라볼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이야! 좋겠네.”

“네, 네 이, 노오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로레이드는 살짝만 놀려도 그 이상의 반응을 보여준다.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을 느끼며 짧게 이죽거렸다.


“노예 주제에 손 하나 까딱 않고 밥까지 얻어먹고.”

“나는, 노예가, 아니다. 그리고, 그리고... 밥...?”


로레이드의 의문 어린 눈빛에 던전 구석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는 내가 손짓하는 방향으로 눈을 돌리더니.


“......”


그곳에 장식된 그의 식량창고를 보고 눈을 하얗게 까뒤집은 채 기절했다.


“온천에서 자면 안 되는데......”


우웅.


‘또 왔네.’


한 시간 전부터 던전에 울려 퍼지던 익숙한 울림. 이소리가 들리고 나면 어김없이 병신이 된 몬스터가 떨어져 내렸지.


‘다음은 뭘까?’


나는 무엇이 들어올지 기대하며 그곳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표정에 살짝 이채를 띄웠다.


“왔어?”


레비가 돌아왔다.


갓 들어온 레비는, 뭔가 개운해 보인다.


그녀가 기분 좋게 웃으며 손을 흔든다

하지만 내 눈길을 끄는 것은 따로 있었다.


손을 흔드는 레비의 반대편 손에 들린 검.


“그건 뭐냐?”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전리품에 대한 나의 관심이 흡족했던 것일까? 레비는 의기양양하게 검을 흔들었다.


검을 휘두르는 손짓과 그녀의 은근한 눈짓을 보면 현재 레비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다.


“그걸? 지옥탕에?”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그녀의 반응을 보니까......


‘로레이드한테 검 섞으면 어떻게 될까?’


나도 궁금해졌다.


이미 트롤하고 고블린도 섞였고 다음 후보까지 쌓여있는 마당에 검하나 섞는다고 얼마나 달라지겠는가?


그러니까 넣어도 상관없겠지?

합리화를 끝낸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구해온 건데 뭐. 한번 넣어봐.”

“히힛.”


허락이 떨어진 순간 레비는 상큼한 미소를 입에 물고 검을 지옥탕을 향해 힘껏 집어 던졌다.


그 순간 나는 볼 수 있었다.


화아아!


포물선으로 날아가는 검으로부터 뿜어지는 찬란한 빛을.


그리고, 그제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저거 성검이잖아......”


퐁당!

키이잉!! 치키이잉!!!


지옥탕에 푹 담긴 성검이 격렬하게 맥동한다. 그 파장이 어찌나 강했는지, 던전이 뒤흔들리는 것 같다.


꿈틀! 울컥! 찌르르!!


하지만 지옥탕 슬라임도 만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성검이 떨어졌을 때만 해도 경건한 동작으로 받아들였던 슬라임이었으나, 성검이 날뛰는 순간 슬라임의 태도도 급변했다.


촤르르!!

키아앙!!


그렇게 싸움은 시작되었다.

성검과 슬라임의 한판 승부!

먹으려는 슬라임과 먹히지 않으려는 성검!


나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성은 빨리 성검이란 전설템을 구출하라고 외치고 있다. 본능은 슬라임에 손끝 하나 대지 말라고 외치고 있다.


이성과 본능의 싸움.


냉철한 이성을 가진 나에게 있어선 뻔한 승부였다.


이성 : 강한성. 성검을 구해야 한다! 저건 너의 동료 용사 루시우스의 무기란 말이다!

본능 : 너 미쳤냐? 저 꺼림칙한 액체에 손을 대라고? 인벤토리를 봐봐 저거보다 좋은 거 많잖아. 저딴 쓰레긴 슬라임 줘 버리고 로레이드나 강화하자고.

이성 : 아니! 저건 우리 게 아니라 같은 용사 루......

본능 : 용사고 나발이고 나는 저기에 손끝 하나 대기 싫다고!!


본능이 이겼다.


그즈음 눈앞의 싸움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슬라임과 성검은 서로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밀고 밀리는 대결을 펼쳤으나 그 끝은 놀랍도록 허무했다.


슈웅! 캉!!


흉폭한 마력이 서린 짱돌이 날아와 성검의 검신을 후려쳤다.


그 무시무시한 위력의 짱돌에 격추당한 성검은 힘을 잃고 지옥탕에 떨어져 내린다.


촤륵.


떨어지는 성검을 낚아챈 슬라임은 짱돌이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경례까지?”


군필자인 내가 봐도 완벽한 경례를 보이며 가마솥에 빨려 들어갔다. 그에 대한 짱돌의 주인. 레비의 반응은 격렬했다.


곧바로 뛰어올라 좋은 자리를 잡고 가마솥 내부를 관찰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로레이드를 이루는 성분에 성검이 추가되었다. 그리고, 그 모든 광경을 멍하니 바라본 나는 이마를 짚고 말았다.


“내가 미치겠다. 진짜.”


던전에 게이트, 화이트레온 수도에다 마왕군을 떨구더니 이젠 루시우스 성검까지 훔쳐다가 고물로 만들어버리네......


온갖 사고란 사고는 다 치고 다니는 쟤를 진짜 어찌해야 할까?


‘잠깐.’


루시우스 성검?


레비가 성검을 가져왔다는 건 루시우스 일행이 근처에 있었다는 말이다.


또, 아무리 레비가 손버릇이 나쁘더라도 적대자가 아닌 용사에게서 아무 이유 없이 성검을 훔쳐오진 않았을 것이다.


이를 토대로 생각해 보면.


“얘네들 혹시......”


레비한테 시비를 건 것이 아닐까?


슬며시 아파지는 뒷골.


치솟는 짜증에 뒷머리를 힘있게 문질렀다.


이렇게 되면 레비를 대놓고 데리고 다니는 것도 문제가 될 테니까.


“씨발.”


용사 일행과 대판 싸우고, 성검까지 빼앗아왔다고? 심지어 그 성검은 어떻게 했는가 지옥탕에 던져버리고 결정타까지 날렸다.


‘이러면 수습도 못 하잖아.’


호구 그 새끼는 성검이 지 애인이라도 되는 마냥 꼭 붙어서 한 시도 떨어지지 않는 놈이다.


이런 새끼에게서 성검을 빼앗았으니 무슨 앙심을 품을지 모른다.


“우아......”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골머리 썩고 있는 나의 마음도 모르고, 지옥탕만 쳐다보며 감탄사를 내지르는 레비에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


그럼 이 짜증을 누구에게 풀어야 할까?


“......”


답은 정해져 있었다.

나는 앙심을 가득 담아 레비의 뒤통수를 힘차게 후려갈겼다.


“갸앙!”


분신에게 맞은 레비는 이상한 소리와 함께 날아가고 있지만, 아주 훨훨 날아가고 있는데도... 어째서 속이 후련하지가 않은 걸까?


끼응... 카우우......


날카로운 눈으로 몬스터를 돌아봤다.


동시에 몬스터들 사이에 일련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모두 같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아마 나 또한 그들과 같은 눈을 하고 있겠지.


“시작하자.”


나와 분신들은 몬스터들을 붙잡아 지옥탕에 손수 처넣었다.


“아! 내 꺼!”


그 과정에 레비의 비명 서린 목소리가 울려 퍼졌으나 그것은 우리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조금도 막지 못했다.


광기에 사로잡힌 똑같이 생긴 남자들이 몬스터를 지옥탕에 던져넣고 있다.

울려 퍼지는 몬스터들의 처절한 비명소리.

포식에 신난 슬라임의 기쁨의 댄스와 로레이드의 처절한 울부짖음.


마지막으로 과자를 빼앗긴 어린아이가 낼법한 구슬픈 울음소리까지.


방에 들어온 카르투스는 입을 벌렸다.


“이건 대체......”


혼 빠진 카르투스의 공허한 외침이 그들에게 들릴 리는 없었다.

방안의 소란에 비하여 그의 목소리는 태양 앞의 반딧불처럼 작았으니까.


*


어둠이 내려앉은 숲에 테르치아의 짧은 주문이 울려 퍼졌다.


복잡한 주문이 끝나는 순간 그녀의 손끝에서 고리 형태의 마력이 뿜어져 나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모닥불을 형성했다.


화르륵!


“불 피웠어. 도르무.”

“알았다. 끙차.”


연약한 테르치아가 불을 피우고 우락부락한 도르무가 요리한다.

뭔가 반대로 된 것 같지만 그들에게는 익숙해진 광경이다.


“루시우스는 아직 그대로야?”

“그래.”


도르무는 한심한 것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천막을 바라보았다.


“그깟 성검이 뭐라고.”

“...그깟 성검이라니, 그건 좀 너무했다.”

“답답해서 그런다. 답답해서.”


보글보글.

퐁퐁퐁......


도르무의 전투적인 손질에 하나하나 해체되어 냄비 속으로 떨어져 내리는 재료들. 그는 상념에 잠긴 얼굴로 스프를 휘저었다.


성검이 강력한 무기라는 것은 그도 안다.


용사 루시우스와 만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으나 그래도 도르무는 그의 스승을 자처한 남자다.


루시우스는 용사답게 엄청난 속도로 강해졌다. 특히 성검을 얻고 나서는 하루하루가 다른 사람을 보는 것처럼 강해졌었지.


그래서 그의 심정을 이해할 수는 있다.


용병으로 살아가며 무기를 잃어버리고 실의에 빠지는 놈은 몇몇 보았다.


후룩.

“싱겁군.”

“아! 소금 여깄어.”


대부분 경험 없는 애송이들의 이야기다.

싱거운 스프와 다를바 없는 애송이.


“나 왔다. 도르무 나무는 이쪽에 두면 되는가.”

“그래 듀릭 거기 올려둬라.”

“듀릭 나무 좀 쪼개서 모닥불에 넣어 줘.”

“마법으로 만든 불인가? 마력은 아낄 수 있으면 아끼는 편이 좋겠지 알았다.”


타다닥!


듀릭은 빠른 손놀림으로 통나무를 조각내 테르치아가 피운 불 속으로 밀어 넣었다.


“테르치아의 마법은 언제봐도 신기하군. 다른 마법사들은 이런 거 못 하던데.”

“못하는 쪽이 당연하지. 이건 내 전문분야니까. 네가 방패 쓰는 것처럼.”


누구든 전문분야가 하나씩은 있다.


대검으로는 나를 따를 자가 없다.

테르치아는 마법의 달인.

듀릭은 최고의 탱커다.


미리엘은 또 어떠한가. 어지간한 상처는 손짓 한 번으로 치유하는 매우 뛰어난 힐러.


레시아와 슐리아는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은 용사 일행 중에서도 특별했으니까.


“나만큼이나.”

“뭐라고 했어?”

“아니다.”


루시우스는 용사다.

전문가 중의 전문가.


마족과의 싸움에서 따라올 이가 없는 최고의 인간병기. 그것이 바로 용사.


그런 용사씩이나 되는 사람이 겨우 무기 하나 잃어버렸다고 방에 틀어박혀 질질 짜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이란 말인가?


그래선 싱거운 애송이와 용사가 다를 것이 무어냔 말이다.


그럴 리가 없다.

그래선 안 된다.


“루시우스도 다 생각이 있을 거다.”


도르무는 애써 단언했다.

용사의 전설에 그의 이름 석자를 새기는 것이야말로 도르무의 지상과제니까.


용사 루시우스와 함께한 최고의 동료!


붉은바위 도르무!


“흐흣.”


이 얼마나 멋진 울림이란 말인가! 나의 이름은 전설이 되어 영원히 전해지리라.


테르치아는 음흉하게 웃는 도르무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또 시작이네......”


그때 등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얘들아......”

“...루시우스?”


용사의 축 처진 얼굴을 보니 나까지 힘이 빠지는 것 같다. 그 정도로 심각한 얼굴.


저것이 정녕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달하는 용사란 말인가?


“얘들아, 뭐?”


남몰래 한숨을 쉰 테르치아는 ‘얘들아’ 한 마디 이후 말을 꺼내지 못하는 용사를 닦달했다.


“찾을 거야.”

“성검?”

“이대로 있을 수는 없어. 마왕과 군단장을 쓰러뜨리기 위해선 성검이 필요해!”

“으, 응.”


절박하기 그지없는 외침에 테르치아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이게 대체 무엇인가?


그녀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 인간은 분명 용사일진대.


“그녀를 찾아야 한다!”


용사의 몸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미지의 힘. 그녀는 이 힘을 잘 알고 있다.


‘귀기.’


귀기. 그것은 살의. 증오, 원한 등의 어둡고 칙칙한 집념이 극에 달했을 때 피어오르는 악의의 결집체다.


빛의 힘을 발휘하는 용사에게 있어선 적으로나 접할 수 있는 어둠의 힘.


한마디로 용사와는 어울리지 않은 힘이다.


헌데, 용사인 루시우스가 귀기를 쓰고 있다. 심지어 귀기로 몸을 감싸는 것을 보면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 같다.


혼이 빠져나간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온다.

그래서 테르치아는 속으로 독백했다.


“대체......”


이 인간은 성검에 얼마나 집착하고 있었던 것일까?


“내 성검... 성검을 되찾아야 돼.”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전역날 이계로 납치당함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94 잉크 +1 21.01.31 255 4 13쪽
93 레이닉스 경비대 21.01.30 277 3 13쪽
92 요정마을 21.01.29 274 4 12쪽
91 요정 +1 21.01.28 272 3 13쪽
90 잔혹동화 - 3 +1 21.01.27 281 4 13쪽
89 잔혹동화 - 2 +2 21.01.26 287 4 12쪽
88 잔혹동화 +1 21.01.24 298 3 12쪽
87 마왕군 +1 21.01.23 304 3 12쪽
86 현상유지 21.01.22 305 3 12쪽
85 뽀삐 21.01.21 308 2 12쪽
84 어둠의 신 21.01.20 304 4 11쪽
83 부활 +1 21.01.19 310 4 12쪽
82 사투가 끝나고 +1 21.01.17 303 4 12쪽
81 고전 - 2 +1 21.01.16 319 4 13쪽
80 고전 +1 21.01.15 316 4 12쪽
79 마왕 +1 21.01.14 311 4 12쪽
78 불화 - 2 21.01.13 323 4 12쪽
» 불화 21.01.12 321 4 13쪽
76 오해 21.01.10 333 3 12쪽
75 지옥탕 21.01.09 345 4 13쪽
74 계획 +1 21.01.08 337 5 12쪽
73 로레이드와의 만남 +1 21.01.07 353 5 13쪽
72 기사 21.01.06 343 5 13쪽
71 유령의 꿈 21.01.05 369 4 13쪽
70 한성, 또 사고 치다. 21.01.03 379 4 12쪽
69 뒷수습 21.01.02 367 4 12쪽
68 혈투의 끝 21.01.01 368 4 13쪽
67 혈투 20.12.31 384 5 12쪽
66 내분 - 2 20.12.30 408 4 12쪽
65 내분 20.12.29 429 4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