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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스톤 님의 서재입니다.

전역날 이계로 납치당함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완결

팩스톤
작품등록일 :
2020.10.24 21:23
최근연재일 :
2021.03.05 18:05
연재수 :
122 회
조회수 :
77,033
추천수 :
980
글자수 :
699,515

작성
21.01.2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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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2쪽

현상유지

DUMMY

“하아......”


한성이 떠나고 혼자남은 비륵은 한숨을 내쉬었다.


진정한 선각자로 각성하고,

처음으로 생긴 어둠의 신전.


그 추억의 장소는 지금 폭탄이 터진 듯 난리가 나 있었으니까.


...아니, 폭발도 아니다.


그냥 폭발이었으면 어둠의 힘을 지닌 비륵이 이렇게 한숨만 내쉬고 있진 않았을 것이다.


“안 돼.”


복구가 안 된다.


현재 커다란 상처가 난 신전의 벽면을 비륵이 가진 어둠의 힘이 훑고 있다.


평소대로였다면 어둠이 지나간 자리는 새것같이 복원되었을 것이다.


청소조차 필요 없을 정도로 말끔하게.


허나, 지금은 그의 어둠이 힘을 못 쓰고 있다.


전부 공간에 서린 한성의 힘이 신전의 복구를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 왔다.”


부서진 벽 너머에서 들리는 목소리.

그 자리에 서 있는 아는 얼굴.


“초슨.”


작은 부족의 주술사 시절부터 함께한 오크 전사 초슨이다.


“왜 그렇게 죽상이냐.”

“...지금 이게 보이지 않는 것이냐?”

“음? 리모델링하려는 것 아닌가.”


...리모델링?


초슨의 생각 없는 대답에 비륵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완공한 지 1년도 안 지났는데 벌써부터 리모델링을 할 리가 없지 않은가?


“크. 얼굴 펴라. 못 생겨서 부담스럽다.”


그 표정이 부담스럽다는 놈의 얼굴이냐?


당장이라도 웃음을 터뜨릴 것 같은 초슨의 얼굴에 비륵은 한 글자씩 쏘아 뱉었다.


“리모델링은 무......”

“아. 그럴 줄 알고 준비했다.”


말끔히 무시당했다.


“가져와라!”


오크 여럿이 커다란 패널을 들고 온다.

그 패널은 여러 가지 색상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엇일까?


비륵은 오크들을 향해 다가가 패널에 손을 얹었다. 차갑고 뽀득뽀득한 이 느낌은.


“유리?”

“흐흐. 알아보는군.”


유리는 투명한 것을 가리키는 말일 텐데.

이 유리는 왜 색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


비륵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초슨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게 뭐냐?”

“아아. 이것은 ‘스테인드 글라스’라는 것이다.”


비륵은 초슨의 얼굴에서 미개인을 바라보는 문명인의 시선을 느꼈다.


당연히 기분이 더러워졌고.


조건반사적으로 주먹을 그러쥐었다.


“인간 신도에게 받아왔지.”


저 얄미운 얼굴에 한 방 먹여주고 싶다.

비륵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스으으- 빠악!


“억!”


충성스러운 어둠은 비륵의 뜻에 따라 초슨의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무, 무슨 짓이냐.”

“아아, 이건 어둠의 힘이라는 것이다.”

“...드디어 미친거냐?”


귀에 들리는 거슬리는 소리에 비륵의 얼굴이 귀신처럼 돌변했다.


이게 선각자께 못 하는 말이 없어.


그의 감정을 대변하는 어둠이 뭉퉁한 몽둥이의 형태로 가공된다.


“알겠다. 초슨... 어둠을 몸소 느껴 봐라.”


오늘 죽도록 맞아보자!


“으악! 오지 마라!!”


그렇게 한참을 드잡이질 한 끝에.


“...그가 왔었다고?”


탁자에 앉은 오크가 거품 가득한 맥주를 들이켰다.


“그래.”


상대적으로 높은 의자에 앉은 고블린의 손에서 어둠이 피어오른다.


어둠이 뭉쳐 형상을 이룬다.


그것은 인간의 모습이었다.


어둠으로 빚어진 인간의 형상에 색이 입혀지자 잊을 수 없는 얼굴이 드러났다.


초슨의 트라우마라 할 수 있는 존재.


“용사 강한성......”


초슨의 강인한 근육이 경직되었다.

당장이라도 튀어나갈 준비를 하듯이.


“분명 죽었다고 들었는데.”

“그는 살아있었다.”


살아있다 뿐이랴.


“예전보다 더 강해졌더군.”


손짓으로 수호자를 찢어버리고.

눈 깜짝할 새에 존재가 사라졌다.

더 놀라운 것은 그의 행동에서 마력 따위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


“어둠 속에 숨을 수는 있어도 어둠을 피해 숨는 것은 힘들다.”


극미량이라도 마력을 썼다면 알아챘을 것이다.


“그런데... 난 느끼지 못했어.”


비륵은 부서진 벽면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신전을 감돌고 있는 용사의 힘.

끝 모를 거대한 기상이 담긴 힘이...


비륵의 어둠을 거부하고 있다.


“용사가 무슨 말을 했지?”

“허억! 허억, 후욱......”


그 대목에서 비륵은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숨을 쉬는 것조차 잊었던 건가.


비륵은 씁쓸한 미소를 띠며 입을 열었다.


“마왕과 용사 김호수 간의 충돌을 막으라 하더군.”

“뭐라!?”


초슨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이놈이 놀라는 모습은 오랜만이다.

생긴 것과 다르게 냉정한 놈이거든.


물론, 이건 놀랄만한 일이다.


“그, 이게 말이 되는가!?”


초슨의 경악이 심히 공감된다.


비륵도 소스라치게 놀랐었거든.

용사의 부탁 아닌 명령을 듣는 순간 심장이 입으로 튀어나온 줄 알았다.


혼란에 빠져있던 용사는 눈치 못 챘지만.


“그건, 그건......”

“그래.”


잔을 들어 입을 축였다.

다음에 나올 말은 알 것 같았다.


“우리가, 하던 일이 아닌가!”


그렇다.


우리는 용사가 찾아오기 한참 전부터 비밀리에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가 활동하지 않았다면 진작에 리오스의 전쟁은 끝났을 것이다.


“뽀삐는 대체......”

“무엄하다.”

“아, 미안하다.”


뽀삐께선 이를 예견하고 계셨던 것일까?


“어쨌든 잘된 일이다.”

“그렇지.”


정말로 잘된 일이다.


뽀삐 교단으로서는 창백한 지휘자와 용사 김호수 간의 전투를 막는 것이 한계다.


마왕성에서 마왕이 튀어나온다면 막을 방법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용사라면......”


수호자를 벌레 잡듯 짓밟은 용사라면 마왕군을 충분히 막을 수 있겠지.


“이제 곧 교대할 시간이군.”

“아. 이번엔 네 차례냐 초슨.”


질겅이던 꼬치를 내려놓은 초슨이 신전을 수리하는 중인 오크 하나를 잡아 속삭였다.

오크는 크게 읍을 하더니 초슨이 준 꼬치와 맥주 한잔을 들고 신전을 나섰다.


“저번이 대족장이었나?”

“맞다.”


동료를 잃고 눈이 돌아가 군단장을 죽이려고 난리 치는 용사 김호수.


그의 움직임을 막을 수 있는 이는 아무리 뽀삐 교단이 강하다 해도 많지 않다.

선천적으로 엄청난 힘을 타고나 지하세계를 지배하던 대족장이나.

어둠의 신으로부터 엄청난 힘을 부여받은 초슨 정도가 전부겠지.


신전을 관리해야 하는 비륵은 못 움직이니, 둘이서 교대로 용사를 마크하고 있다.


“지금쯤 싸우고 있으려나......”


대족장의 드레이크 통뼈로 만든 거대한 도끼가 떠오른다.


*


콰아앙!!


“워우.”


커다란 도끼와 호구의 건틀릿이 마주했다.

그와 함께 엄청난 폭음이 발생했다.


‘속았네.’


속았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다.


뽀삐교는 지금까지 호구와 군단장의 진출을 막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들이 호구를 막지 않았다면 호구랑 군단장 중 하나는 진작에 뒈졌겠지.


누가 뒤졌을지는 자명하다.


나는 빈 바구니를 손으로 휘젓다 치우고 새 바구니를 소환했다.


하얗고 바삭한 팝콘이 가득 담긴 바구니.


한 움큼 쥐어.

입에 넣고 씹었다.


“하압!!”


콰치치치칙- 호구의 왼손에 뜬 금빛 오브가 오크의 코앞에서 폭발했다.


전격에 그대로 노출된 오크.

하지만, 오크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파아!!”


오크가 크게 포효했다. 포효에 섞인 검은 기운이 호구의 힘을 몰아냈다.


호구의 힘은 오크의 포효와 섞여 바람이 되어 사방으로 펴진다.


“키야~!”


짜릿한 바람이 머릿결을 스치고 지나간다.

짜릿한 기분에 손끝이 떨려온다.

팝콘에서까지 짜릿함이 밀려든다.


리오스에 도착하자마자 보는 것이 뽀삐교와 호구의 싸움이라니.


“킬링타임 제대로네”


이건 마왕의 땅까지의 지루한 여정에 한 몫 보태 주고 있다.


대족장과 김호수의 격전지에서 불과 10m 떨어진 장소.


한성은 오래된 나무 밑동에 앉아 그들을 지켜보았다.


양손에 콜라와 팝콘을 들고 요란스럽게 감상하고 있었지만, 누구도 그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빌어먹을......”


대족장의 포효에 공격이 차단당한 김호수는 욕설을 내뱉으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강하구나.”


뚜둑-! 대족장은 물러선 그를 쫓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선 채 조용히 어깨를 풀고 있을 뿐.


김호수는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대족장을 노려봤다. 그의 머릿속을 감도는 생각.


정말로 그것까지 써야 하는가.


그걸 쓴다면 대족장을 충분히 제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술을 사용하기엔 리스크가 너무 크다.


‘며칠간 움직이기 힘들겠지.’


그리고, 그 며칠이면 그놈이 나타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곧 교대시간인가.”

“후우......”


초슨.


대족장과 같은 종족. 오크의 전사.


부하들을 지휘해 해방군의 진격을 막는데 집중하는 대족장과 달리, 초슨은 전사로서 김호수의 앞을 가로막았다.


‘침착해라.’


흥분해선 안 된다.


여기서 대족장을 쓰러뜨려야 한다.


대족장을 끌어들이기 위해 무슨 짓을 했던가. 그를 끌어들이기 위한 공작에도 불구하고 저 오크는 어찌나 신중했는지.

로우빌을 상대하고 지쳤을 때 나타났다.


‘쓰자.’


결의를 다진 호구는 왼손을 맴도는 오브에 집중했다.


치직! 치지지직!


대족장은 충분히 쓰러뜨릴 수 있다.

하지만, 초슨은 쓰러뜨릴 수 없다.


힘의 크기의 문제가 아니다.


상성의 문제다.


푸화아아아!!


엄청난 속도로 확대되는 오브.


김호수는 깊은 눈으로 오브를 바라보았다.


오직 금색 일색의 오브 중심에 붉고 푸른 결정이 생겨난다.


오브가 사라지면 함께 소멸하는 이건 김호수 염력과 생명력의 원천이다.


덥썩!


망설이지 않고 결정을 붙잡는다.


결정을 붙잡은 손은 거침없이 움직인다.


손이 향한 장소는 가슴.


김호수 자신의 가슴이었다.


푸지지직!!

“크흐읍!!”


가슴을 뚫고 들어오는 이물감에 침음을 흘렸다. 가슴에서 제멋대로 소용돌이치는 힘에 각혈했다.


허나, 김호수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흐아아아!!!”


결국 오브의 원천은 가슴 깊숙한 곳에 자리 잡았고, 금빛 오브가 김호수에게 흡수되었다.


“실패인가.”


대족장은 바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부서진 돌조각이 몸에서 떨어져 나간다.


그는 용사의 이상을 느끼는 순간 즉시 대응했으나 빠른 대응의 대가는 전신을 찌르는 근육통이었다.


“세상에......”


그런 대족장의 눈에 그다지 믿고 싶지 않은 광경이 들어왔다.


용사 김호수의 모습이 바뀌었다.


청회색이었던 가죽 갑옷은 금빛으로 바뀌어 빛나고 있었고, 그의 몸은 지면으로부터 살짝 떠올라 있었다.


그의 가슴에 박힌 커다란 붉은 구슬은 심장박동에 맞춰 사방으로 생명력을 흩뿌렸고, 그의 눈에서 타오르는 푸른 불길을 마주한 사물은 하나하나 공중으로 떠오른다.


-이걸로 끝이다.


붉은 구슬을 중심으로 칠색의 오브가 구현되었다. 용사의 시선이 닿자 오브에 전류가 흐르며 모습을 바꾸었다.


대족장을 포위한 일곱 개의 성검.


-나의 진정한 힘을 보여주마.


보라색 성검을 든 김호수가 선언했다.


“씨발.”


나는 팝콘을 내려놓고 왼손을 붙잡았다.


오그라드는거가테.


“굳이 저런 말을 해야 하냐?”


호구의 표정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저 변신은 몸에 엄청난 부담이 되는 기술이 분명하다.


멋지게 검 소환하고, 폼까지 잡으며 말할 시간에 검을 한 번이라도 더 휘두르는 것이 훨씬 효율적일 것이다.


“망설임인가?”


안 그런 듯하면서도 호구의 얼굴에는 절박함과 고민이 깃들어있다.


그중 고민은 지금이라도 변신을 거두고 물러설까 하는 생각이겠지.


뭐, 이젠 마음먹은 것 같지만.


오그라든 손에서 시선을 돌렸다.


여섯 검과 호구의 검 끝이 대족장을 향한다. 저놈이 오크치고는 강하다지만 오래 버티기는 힘들 것 같다.


그래서 가마솥을 꺼냈다.


“이젠 이런 것도 할 수 있는데.”


부활은 아직도 멀었는가.


박자가 하나도 안 맞는 노래를 부르며.


가마솥을 두드리자.


그 내부에서 무시무시하기 그지없는 생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뽀삐 오랜만.”

“그르릉......”


가마솥보다 커다란 크기.

개와 고양이를 합친 귀여운 외모.

귀여운 외모 속 엄청난 마력.


귀여움은 그대로, 크기만 커진 검은 마수.


뽀삐.


비륵이 찬양하던 어둠의 신의 전신이다.


“야. 준비해라.”

“크어어...... 하우웁.”


짭짭.....


크게 울부짖으려는 놈의 입에 고기를 물려주고 몸을 피했다.


‘대족장이 불리해지는 순간.’


결계는 풀릴 것이다.


나는 웃는 얼굴로 호구를 바라보았다.


...왠지 뽀삐가 나를 보며 떠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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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요정마을 21.01.29 273 4 12쪽
91 요정 +1 21.01.28 271 3 13쪽
90 잔혹동화 - 3 +1 21.01.27 280 4 13쪽
89 잔혹동화 - 2 +2 21.01.26 286 4 12쪽
88 잔혹동화 +1 21.01.24 297 3 12쪽
87 마왕군 +1 21.01.23 303 3 12쪽
» 현상유지 21.01.22 305 3 12쪽
85 뽀삐 21.01.21 308 2 12쪽
84 어둠의 신 21.01.20 304 4 11쪽
83 부활 +1 21.01.19 309 4 12쪽
82 사투가 끝나고 +1 21.01.17 302 4 12쪽
81 고전 - 2 +1 21.01.16 318 4 13쪽
80 고전 +1 21.01.15 315 4 12쪽
79 마왕 +1 21.01.14 310 4 12쪽
78 불화 - 2 21.01.13 322 4 12쪽
77 불화 21.01.12 320 4 13쪽
76 오해 21.01.10 333 3 12쪽
75 지옥탕 21.01.09 345 4 13쪽
74 계획 +1 21.01.08 337 5 12쪽
73 로레이드와의 만남 +1 21.01.07 353 5 13쪽
72 기사 21.01.06 342 5 13쪽
71 유령의 꿈 21.01.05 369 4 13쪽
70 한성, 또 사고 치다. 21.01.03 378 4 12쪽
69 뒷수습 21.01.02 367 4 12쪽
68 혈투의 끝 21.01.01 368 4 13쪽
67 혈투 20.12.31 383 5 12쪽
66 내분 - 2 20.12.30 408 4 12쪽
65 내분 20.12.29 428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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