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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스톤 님의 서재입니다.

전역날 이계로 납치당함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완결

팩스톤
작품등록일 :
2020.10.24 21:23
최근연재일 :
2021.03.05 18:05
연재수 :
122 회
조회수 :
77,043
추천수 :
980
글자수 :
699,515

작성
21.01.16 18:00
조회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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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3쪽

고전 - 2

DUMMY

그로부터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상태창을 열어보았다.


‘10분도 안 지났네.’


지나간 시간은 고작 10분이었지만, 체감시간은 몇 주라도 지난 것 같다.


이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나는 짜증스러운 분홍 태양을 직시했다.

계속 계속 커지고 있는 분홍 태양을.


태양의 일부가 떨어져 나와 창칼이 되어 나를 노리는데. 왜 저건 계속 커지고 있는 걸까?


태양으로부터 형성된 분홍빛 구름은 이제 와선 한눈에 다 담지 못할 정도로 비대해졌다. 더욱 더러운 점은......


쿠아아악!!

“비켜 고양아.”

촤아아악!!


이젠 구름이 생명을 가진 채 내게 이빨을 들이밀고 있다. 방금 쪼개버린 집채만 한 고양이는 약과다.


익숙한 짐승부터 익숙하지 않은 괴물까지. 하늘을 가득 메운 괴수의 군세가 저마다 눈을 빛내며 나를 노리고 있다.


쾅! 촤좍! 푸카각!


나라고 혼자는 아니다.

점멸이 막혔을 뿐이지. 격이 높은 분신은 얼마든지 소환할 수 있으니까.


문제가 되는 것은 나의 정신력.


“미치겠네.”


분신을 동원해 괴수들의 일각을 쓸어버린 것까지는 좋았으나. 뇌가 타들어가는 듯한 통증은 전혀 적응이 안 된다.


또, 괴수를 박멸했으면 기분이라도 좋아야 할 텐데......


쿠르르릉-!


빌어먹을 핑크 구름이 쳐죽인 놈들보다 더 많은 수의 괴수를 쏟아내는 꼴을 보면 나쁜 의미로 기분이 업 된다.


“이건 반칙이지!!”


본체에 비해서 스펙이 전혀 딸리지 않는 분신을 다루는 나였지만 저 꼬라지를 보면 빡침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물론 나라고 가만히 앉아 몰려오는 마왕의 권속만 잡고 있지는 않았다.


쿠와악!!

촤좌좌-좡!!


만약 그랬으면 분신 사이에 끼어서 싸우고 있었겠지.


퍼어엉!


그때 내 귀를 때리는 광포한 바람.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쪽을 노려봤다.


“야. 적당히 날뛰어라.”


아무리 나를 지키기 위해서였다고 하더라도, 쟤가 움직일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자칫하면 지금 준비하던 것도 쓸모없어질지도 모르니까.


덤벼든 멧돼지의 곱창을 뜯어내던 레비는 내 말을 듣고 살벌하게 웃었다.


믿음직스럽지만, 못 미덥기도 하다.

하지만, 믿어야지 어쩌겠는가.


“그래, 알았어 네 맘대로 해.”


결국 백기를 들고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태양속에서 나를 오롯이 바라보는 엘비아를 향해.


나와 눈이 마주치자 반갑게 웃으면 손을 흔드는 모습은 가증스럽기 그지없었다.


“지금 충분히 웃어 둬라.”


더 이상 못 웃게 만들어 줄 테니까.


나의 혈관을 치닫고 달리는 웅장한 마력에 집중한다. 대동맥부터 모세혈관까지 빈틈없이 집어삼킨 마력이 심장 고동에 맞춰 함께 울리고 있다.


쿵! 쿵!


웅장한 공명음이 체외의 마력까지 휘감고 사방으로 터져나간다.


일그러지는 시야.

청각이 서서히 늘어진다.


그렇게 늘어진 세상 속에 들어서는 것은.


거대한 인간이었다.


그냥 크다고 표현할 수 없는 거대한 인간.


수십 미터나 되는 거인들이 하늘 저편에서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들은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너는 따라올 수 있겠냐고.


작디작은 그 육체로 거인의 길을 걸을 수 있겠느냐고.


나는 그들을 향해 씩 웃었다.


목적지가 다를 진데,

따라간들 무엇 하겠는가?


거인의 발자취를 따라가면 언젠가 나 또한 거인으로 거듭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를 바라지 않는다.


거인의 편린을 받아들였으나, 그들의 길잡이는 필요 없다.


그렇기에 고개를 저었다.


내 대답이 의문스러웠을까?


그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들은 눈으로 묻고 있었다.


홀로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고개를 끄덕였다.


거인의 힘은 강하다.

그것만은 인정한다.


허나, 내 근원은 시공분신.

거인의 힘에 결코 꿇리지 않는 강대한 힘.


그러한 나의 길이 있는데 왜 다른 길을 선택해야 하는가. 독이든 사과일지 모를 저들의 제안을 따라야 하는가.


그런 내 뜻을 알았을까.


고고고고......


중앙의 거인이 일어서 무기질적인 눈으로 나를 직시하며-


-지켜보겠다.


천지를 울리는 뇌명과 함께 흐려져 사그라들었다.


준비는 끝났다.


내 안에서 거인의 정수가 용솟음친다.


당장이라도 몸 밖으로 빠져나가고 싶어 하는 거인의 마력.


막진 않겠다.


하지만, 방향을 정하는 것은 나다.


나는 태양을 향해 손을 뻗었다.


쩌저적......


나의 손바닥과 태양 사이에 작은 실선이 그어졌다.


실선.

거인의 마력은 엘비아에게까지 닿았고.


푸화아-!


태양이 붕괴했다.


쿠구구구구!!!


붕괴하는 태양과 함께 형체를 잃는 구름.


“쿠워어어!!!!!-”

파스스......


괴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코앞까지 다가온 발톱에 손을 얹고 힘차게 움켜쥐었다. 파창-! 괴수는 유리 조각처럼 깨져나갔고 흔적은 마력의 가루가 되어 세상으로 흩어진다.


그런 내 앞으로 엘비아가 내려왔다.


“......”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손을 들어 올릴 뿐.


손을 들어 올릴 뿐의 행동.


간단한 행동이었지만 결과는 간단하지 않았다. 그녀의 손에 서리는 미증유의 거력.


지금까지의 공격이 장난처럼 느껴질 정도로 폭력적인 힘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힘 앞에서도 나는 조금도 주눅 들지 않았다.


아직 최후의 수단이 남아있었으니까.


‘어쩔 수 없네.’


환영무(歡迎舞)


내가 가진 최후의 수단이자 끔찍하게 위험한 기술이다.


그 위험도는 나 자신을 죽일 정도.


나는 이딴 것을 써야 할 정도로 궁지에 몰려있는 것이다.


“아직 연습도 덜 됐는데.”


심장을 억죄는 두려움을 떨쳐 내고자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한마디 내뱉었다.


츠츠츠츠......


아무래도 이 녀석은 나를 기다려줄 생각 따윈 없는 모양이다.


세상이 사라진다.

지우개로 지우듯이 깔끔하게.


순식간에 많은 것들이 지워지고 남은 공간은 나와 마왕이 서 있는 작은 대지가 전부.


그 안에서 결의를 다지고, 내뱉었다.


“환영무(歡迎舞).”


나의 앞에 또 다른 내가 나타난다.


분신이다.


하지만, 평범한 분신이 아니다.


“미치겠네.”


그는 자연스럽게 나의 기분을 풀어냈다.


“이거 후유증 장난 아닌데.”


또 다른 분신이 말을 받았다.


“빨리 끝낼 수 있을까?”


자신의 말에 ‘그럴 리가 없지...’라 대꾸하며 어깨를 푸는 분신.


분신은 늘어났다.


계속계속 늘어났다.


내가 감당 가능한 수를 한참 넘을 정도로.


그들은 생동감이 넘쳤다.


로봇처럼 딱 맞춰진 동작만 선보이던 분신과 달리 움직임이 퍽 자연스럽다.


“......”


마왕 엘비아는 늘어난 나의 모습을 진귀한 것을 바라보는 눈으로 훑었다.


그녀는 여전히 아무 말도 없었다.


“조용하다? 아깐 그렇게 나불대더니.”


나는 필사적인 마음으로 이죽였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았거든.


그 이유는 여기 있는 모든 분신들의 움직임이 전부 내 뇌를 거치기 때문이다.


버틸 수 있으면 그건 정상이 아니지.


“이건 그냥 분신이 아니다.”


나는 분신들을 슥 훑어보고 옆에 있던 레비를 잡아 카르투스의 던전에 집어던졌다.


“아!”


나를 향해 손을 뻗는 레비의 팔을 쳐내고 다음 말을 읊조렸다.


“모두 나와 조금도 다름없어.”


잠깐동안 드러났던 카르투스의 가마솥이 사라졌다. 나는 최대한 감정을 억누른채 씹어뱉었다.


“진짜 마지막이다.”


동시에 백이 넘는 분신들이 일제히 마력을 폭사했다.


그들의 기세는 하나하나가 본체인 나 자신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마왕의 눈이 커진다.


*


엄청난 숫자로 증식한 용사가 덤벼든다.


죽을 수도 있겠다.


엘비아의 머리에 처음으로 떠오른 생각이었다.

이게 얼마 만이란 말인가?

죽음과 맞닿는 감각은.


엘비아는 웃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달려든 용사에게 들고 있던 마력을 폭사했다.


푸왕!!

“크학!”


마력의 구체가 용사의 좌반신을 날려버렸다. 그럼에도 용사는 숨이 붙어있었다.

그를 넘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덤벼든다. 엘비아는 남은 한 손의 마력구도 던져 그를 마무리했다.


꿈틀... 꿈틀......


그녀는 멍한 눈으로 꿈틀거리는 용사를 바라보았다.


그걸 맞고도 살아있다고?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녀가 형성한 마력구는 일반적인 공격 따위가 결코 아니었다.


이것은 오직 신을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창시한 그녀만의 궁극의 비기.


신의 목숨까지 앗아갈 파괴의 정수.


이런 걸 한 대를 넘어서 두 대를 맞았는데 살아있다.

엘비아는 정정했다.


오늘 죽을 것이라고.


신살의 힘에 맞고도 회복하고 있는 용사를 보고, 그의 너머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녀의 앞에 널브러진 용사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기세를 품은 용사들이 폭포수처럼 몰려오고 있었으니까.


“...키킥.”


위기의 상황이었지만 엘비아의 머릿속을 감도는 것은 오직 웃음뿐이었다.


광대의 쇼를 본 사람들이 지을법한 비웃음 섞인 웃음뿐이었다.


“아하하하하!!!”


결국 웃음을 터뜨리는 엘비아.


그녀의 등 뒤로 신살의 마력구가 수십 개나 구성되었다.


그리고, 용사들과 마력구가 충돌하고 어마어마한 빛과 귀가 찢어지는 굉음이 작게 남은 대지를 홍색으로 물들였다.


*


필사적으로 움직이며 분신들을 피하는 엘비아와 그녀를 추적해 일격이라도 꽂아 넣기 위해 목숨을 내버리는 나.


나는 가물가물한 눈으로 치열한 전투의 현장을 바라보았다.


뇌가 녹아내리는 기분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 상황에 엘비아가 나를 눈치챈다면.

아마 죽을지도 모르겠다.

분신 몇이 나를 호위하곤 있지만......


푸화아.....

“프아-”


저렇게 한 대만 맞아도 병신이 되는데 이 상태로 저걸 어찌 버틴단 말인가.


“쿨럭......”


나는 손을 들어 입가를 닦았다.

속에서부터 올라온 피... 아니, 침이다.


끔찍한 고통에 침을 흘리는 것도 잊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래서 환영무는 위험하다.


일반적인 분신은 내가 수동으로 조작한다.


움직임 하나하나 지정해야 하고.


마력도 내 마력을 부여해줘야 사용할 수 있다. 그 분신 또한 나와 동등한 수준의 마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도 그럴 것이 분신이 가진 마력을 끌어올리면 본체인 내 마력도 난리를 치거든.


한마디로 충돌한다.


하지만, 환영무는 다르다.


환영무를 통해 부른 분신은 나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존재다.


스스로 사고하고, 부드럽게 움직이며, 체내의 마력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지.


심지어 분신이 배신하는 병신같은 상황도 걱정할 필요 없다.


‘전부 나 자신이니까.’


분신과 나는 하나로 연결되어 모든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분신 하나하나에 뇌가 하나씩 머리에 들어 있을 텐데 쓰지 않는다.


아니 쓸 줄 모른다.


‘뇌 쓰는 법을 내가 어떻게 알아!’


고로 그들의 모든 사고활동은 내 뇌를 이용해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게 내가 뒤져가는 이유다.


“진작 이런 식으로 연습했어야 됐나......”


살짝 후회가 든다.


환영무를 연습하긴 했다.


환영무를 이용해 분신을 하나 만들고 나 자신은 숨어있는다. 그리고 전면의 분신을 통해 상대와 소통하는 것이다.


수동 분신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반응은 느리고, 움직임은 딱딱한 데다, 마력은 쓰기도 힘드니까.


하지만, 환영무를 이용하면 가능하다.

이건 아예 나랑 동일인물이니까.


그렇기에 한 명을 소환하는 연습은 충분하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래. 한 명만.


여럿을 동시에 소환하긴 힘들었다.


이것도 내가 분신을 잘 다루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한 명을 부르고 또 한 명을 소환하면.’


한 번에 두 명의 내가 추가되었지.


내가 하나 소환하고 분신이 하나 소환해서 총 두 명이 소환되었다.


한 번 쓸 때마다 두 배 늘어나는 것이다.


심지어 숫자가 늘어나면 세배, 네배, 미친 듯이 늘어나서 내게 지옥을 맛보게 해줬다.


내가 연습할 엄두도 내지 못한 이유.


“억지로라도 할걸......”


또 후회하는 이유였다.


그래도 이긴 것 같다.


나는 눈에 최대한 힘을 줘 엘비아를 쳐다보았다. 분신들이 방출한 거인의 기세에 짓눌려 옴짝달싹 못하는 마왕.


“끝이다.”


이사이로 빠져나간 신음 섞인 선언과 함께 마왕의 육체가 부숴졌다.


해냈......


“...?”


부수어져 쓰러지는 마왕과 눈을 마주친 순간 엄습하는 불길함.


자신의 죽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녀의 입가가 움직인다.

소리가 들리지는 않았지만......


왠지 그녀가 하는 말을 알 것 같았다.


-너도.


나는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분홍빛 장막이 걷힌다.


그리고, 장막 너머의 광경은 믿고싶지 않은 진실을 알려주었다.


“아.”


장막 너머의 허공에 상상을 초월하는 크기의 마력의 구체가 떠 있었다.


“씨발.”


나는 짧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하늘에 뜬 마력 덩어리는 내 분신을 분쇄하던 마력구와 동일한 기운을 품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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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요정 +1 21.01.28 271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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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잔혹동화 - 2 +2 21.01.26 287 4 12쪽
88 잔혹동화 +1 21.01.24 298 3 12쪽
87 마왕군 +1 21.01.23 303 3 12쪽
86 현상유지 21.01.22 305 3 12쪽
85 뽀삐 21.01.21 308 2 12쪽
84 어둠의 신 21.01.20 304 4 11쪽
83 부활 +1 21.01.19 310 4 12쪽
82 사투가 끝나고 +1 21.01.17 303 4 12쪽
» 고전 - 2 +1 21.01.16 319 4 13쪽
80 고전 +1 21.01.15 315 4 12쪽
79 마왕 +1 21.01.14 310 4 12쪽
78 불화 - 2 21.01.13 322 4 12쪽
77 불화 21.01.12 320 4 13쪽
76 오해 21.01.10 333 3 12쪽
75 지옥탕 21.01.09 345 4 13쪽
74 계획 +1 21.01.08 337 5 12쪽
73 로레이드와의 만남 +1 21.01.07 353 5 13쪽
72 기사 21.01.06 343 5 13쪽
71 유령의 꿈 21.01.05 369 4 13쪽
70 한성, 또 사고 치다. 21.01.03 379 4 12쪽
69 뒷수습 21.01.02 367 4 12쪽
68 혈투의 끝 21.01.01 368 4 13쪽
67 혈투 20.12.31 384 5 12쪽
66 내분 - 2 20.12.30 408 4 12쪽
65 내분 20.12.29 428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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