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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스톤 님의 서재입니다.

전역날 이계로 납치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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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팩스톤
작품등록일 :
2020.10.24 21:23
최근연재일 :
2021.03.05 18:05
연재수 :
1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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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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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0
글자수 :
699,515

작성
21.01.1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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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사투가 끝나고

DUMMY

지저분해진 망토를 뒤집어쓴 인영이 숲길을 가로지르고 있다. 목적지는 눈앞에 보이는 높디높은 성벽.


누가 보기라도 할까 수시로 주위를 살피는 것이 추적자를 경계하는 도망자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다행이다. 놈들은 없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후드를 걷자 금빛 머리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하아, 답답해 죽는 줄 알았네.”


그. 아니, 그녀는 작게 푸념한 뒤 로브를 걷어 땅에 펼쳤다.


우웅- 땅에 펼쳐진 로브에서 들려오는 작은 울림. 그 울림을 유심히 듣던 그녀는 소리가 사그라들자 작게 미소지었다.


“잘 작동하는군요.”


화이트레온 성과 연동된 마법망토.


성이 함락되어 이것까지 무력화되었을지도 모른다 생각했었지만, 무식한 마왕군은 마법장치를 알아보지 못한 모양이다.


“이거라면-”


왕궁에 들어갈 수 있다.


그녀, 레시아는 얼굴에 떠오른 미소를 지우며 마법진에 손을 얹었다.


‘하필 화이트레온이 함락되다니......’


갑작스레 전해진 소식에 얼마나 놀랐었던가.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었다.


다행히 그때 주변에 용사 한 명만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일행에게 꼼짝없이 들킬 뻔했다.


“일어서서 길을 안내해라.”


레시아의 마력이 담긴 언어에 형체가 생겨 바닥의 망토에 스며들었다.


우우......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망토가 스스로 일어선 것이다.


“목적지는 백사자의 집무실의 다섯 번째 갑옷.”


일어선 망토에 새로운 빛이 서리고, 망토는 어딘가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레시아는 그의 뒤를 따라 걸으며 생각했다.


‘용사는 살아있으려나.’


루시우스를 충동질해 군단장을 잡아 나서도록 유도하는 것엔 성공했지만, 군단장에게 이토록 형편없이 당할 것이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군단장이 나타난 덕에 그녀는 쉽게 빠져나와 화이트레온을 향할 수 있었지만, 용사가 죽어버리면 그것도 곤란하다.


‘아마 살아있겠지.’


전설의 용사가 쉽게 죽을 리가 없다.

잡것들은 몰라도 루시우스 하나만큼은 분명 살아있을 것이다.


그리고, 레시아의 계획에 필요한 것은 오직 용사 하나뿐이다.


스스스파앗!


도착했다.


레시아는 마력이 빠져나가 허물어지는 망토를 붙잡았다. 그녀의 앞에 있는 것은 다 무너져가는 오두막집.


이곳이 그녀가 찾던 곳이다.

레시아는 망토를 걸치며 성호를 그었다.


“제게 앞을 볼 수 있는 눈을 주시옵소서.”


사아아- 성호로부터 옅은 빛이 레시아의 눈에 깃든다. 반응은 곧바로 왔다.


그녀가 쓴 망토의 후드에 기하학적인 문양이 새겨졌다.


문양은 일종의 흡입력을 발휘해 레시아의 눈에서 신성력을 끌어들였고, 망토 전체가 은은히 빛나기 시작했다.


“끝났다.”


오두막이 담긴 시야가 일그러진다.


일그러진 오두막은 점점 확대되었다.


집을 둘러싼 갈색으로 썩은 나무 벽이 허물어진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은 새하얀 대리석이었다.


그렇게 숲속의 작은 오두막은 신비한 마법의 대저택이 되었다.


레시아는 거침없이 나아가 문을 열며 밝은 미소를 짓고 말했다.


“라비크의 레시아가 도착했......”


그녀의 미소는 오래가지 않았다.


문을 열고 입장하자마자 느껴지는 강렬한 피 내음.


“어떻게 된 거야.”


누가 감히 왕의 거처에 이런 끔찍한 짓을 저지른 것일까.


빠른 걸음으로 걸어 식당 문을 열었다.

가볍게 담소를 나누며 배를 채우던 귀족들이 시체가 되어 탁자에 널브러져 있다.

잽싸게 뛰어 무도회장의 문을 열었다.


남녀가 정답게 어우러져 음악에 맞춰 춤을 추던 이곳에선 피와 살점으로 이루어진 교향곡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말도... 안돼.”


설마 이곳까지 마왕군이 침투한 것인가?


아니 그런 것은 아닐 거다.


마물이 침투했다면 흔적이 남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없다.


이 넓은 저택에 마물의 흔적이라곤 귀족들이 가져온 장식품밖에 없었으니까.


레시아는 푸르게 죽은 얼굴로 마지막 문으로 다가갔다. 이 너머는 왕의 영역이다.


스으으으......


대전의 문이 소리 없이 열린다.


화려한 귀금속으로 장식된 옥좌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달콤한 향초가 타오르는 냄새가 은은하게 풍겨온다.


허나, 레시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달콤하디, 달콤한 향도 그것만큼은 가리지 못했으니까. 찌르듯이 풍겨오는 유황 냄새는 조금도 가리지 못했으니까.


그 냄새는 그녀에게 익숙한 냄새였다.


“슐리아......”


죽어 쓰레기처럼 널브러진 고귀한 자들의 시신. 중앙에서 오롯이 빛나야 할 마법진은 알아보지 못할 만큼 뒤틀려 있었고, 불길한 마력이 대전을 감싸 타오르고 있었다.


-여기로 올 줄 알았어.

“아.”


마법진에서 일그러진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레시아는 차갑게 굳은 얼굴로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마법진에서 검은 연기가 올라와 어두운 후드를 쓴 인물을 형성했다.


“빌어먹을 년아.”


후드 안쪽에서부터 차가운 안광이 폭사되어 레시아의 피부를 훑는다.


*


지금 내 상황은 딱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겠다.


조졌다.


통나무 하나에 의지해 강을 타고 내려가는 내 몸뚱어리.


이 몸은 내 몸이지만 내 몸이 아니다.


“아주 미친새끼네.”


마왕은 강했다.


존나게 강했다.


나 정도는 한 방에 빈사 상태로 만들 정도로 강했지.


씨발.


그런 새끼가 왜 지금까지 용사에게 한 번도 이기지 못한 거냐?


뻔하지, 승부조작이다.


대충 싸우다가 져줬을 것이 틀림없다.


아니, 지금까지 계속 봐줬으면 이번에도 봐주고 넘어가 줄 것이지.


하필 내 세대에 사생결단을 낼 기세도 덤비는 거냐고.


나는 하늘에 뜬 구름을 바라보았다.


몽글몽글한 생김새의 귀여운 구름.


신기하면서도 마음이 편해지게 만드는 예쁜 구름이다. 하지만, 나는 얼굴을 구겼다.


마음을 힐링해주는 평화의 산물이건,

가슴이 뻥 뚫리는 장엄한 경관이건,

내 눈에는 그저 괴물을 쏟아 내는 끔찍한 분홍 찹쌀떡으로 보일 뿐이었으니까.


“하아.”


마왕과의 사투 끝에 거대하고 거대한 파멸의 구체가 내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가슴이 멍해지는 광경이었다.


손바닥만 한 마력구에 처맞는 족족 빈사상태에 빠졌는데 그보다 수백 배는 더 큰 마력구가 머리 위로 떨어지는데 내가 제정신이었겠냐?


그래.

천천히 떨어지기라도 했다면 나도 뭘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천천히 떨어지긴 개뿔.’


가뜩이나 머리 아파서 생각하기도 힘들었는데 커다란 마력구는 속도도 빨라서 내가 반응하기도 전에 나를 날려버렸다.


나와 마왕이 있던 자리에 남은 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싱크홀 하나뿐. 난 시체 하나 남기지 못하고 삭제된 것이다.


-...한, 치직! ...한성!! 한성! 자네 살아있는가!!?

“아니.”

-다행이군! 다행이야! 살아있었......

“아냐 뒤졌어.”

-...뭔 소린가?


내 본체는 마왕과 함께 삭제됐다.


본체가 마왕과 공멸하고 이곳에 남은 건 마왕을 마주한 순간 죽도록 튀었던 분신 하나뿐.


그러니까 이 분신 몸뚱이가 사라진다면 나는 그 자리에서 끝장나는 것이다.


“씨발.”


막막함이 눈앞을 가린다.


그때 머리만 안 아팠어도.


하늘에 뜬 마력구를 본 순간 가장 먼저 본체를 피신시키려고 했다.


멀리까지 도망간 분신과 바꿔치기할 생각이었다고.


근데, 뇌가 안 따라주더라.


내가 너무 많아서 누구와 바꿔야 할지 헷갈렸어. 그것이 끝이었지.


잠깐 멈칫하는 순간 죽었다.


-그럼 자네 몸은 분신이란 말인가!

“그래. 집중 끊기면 좆돼.”


이 몸은 분신.

집중 풀리면 사라지는 분신이다.


삶에 대한 미련이 매우 많은 나로서는 사라지는 것 따위는 용납 못 한다.


그렇기에 버텨야 한다.

어떻게든 부활할 방법을 찾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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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길. 하필 이런 곳에서 마왕을 만나다니... 그보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마왕은 내가 상상한 것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했네......

“뭔가 고삐가 풀린 이미지였어.”


고삐가 풀렸다.

그 말이 딱 적당하다.


갑옷에 감싸인 마왕을 양단하고 나타난 분홍색의 여자아이 엘비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 그 미친년의 난동은 내 상상을 아득히 초월했다.


-마왕의 전투 스타일은 내가 아는 것과 전혀 달랐네.

“알아. 나도 네 책 읽었어.”


오래전부터 인류를 침략해 왔던 마왕의 전투법은 이미 인류에게 철저히 분석되어 있다. 그것은 나로 하여금 마왕의 갑옷을 가볍게 찢어발길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지.


“검붉은 소용돌이를 휘두르며 전신에 마력을 두르고 치명적인 무투술로 밀어붙이는 타입이었지.”

-그렇다네. 하지만, 지금의 마왕은 달랐지.

“어, 분홍색이더라.”

-...크흠. 이번에 본 마왕은 무투술 따위는 전혀 쓰지 않았다네.

“그래. 분홍 구름에서 짜증 나는 괴물들이 끝도 없이 나오더라.”

-괴물도 괴물이지만, 특히 무시무시한 것이 있었지.


낮아진 카르투스의 목소리에 덩달아 가라앉았다.


분홍 태양을 파훼하자 선보인 극채색의 마력구.


-나는 들렸다네.


어지간한 공격 따윈 아무렇지도 않게 버티는 내 육체는.


-그 마력과 맞닿은 세상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를......


그 마력에 조금도 버티지 못한 채 빈사상태에 빠졌다.


-그건 있어선 안 되는 힘이었네.


백여명의 내가 죽어가며 그녀를 쓰러뜨렸지만.


-그 힘은 세상을 부수는 힘. 그 자체였다네.


결과는 머리 위로 떨어지는 파멸의 구체.


-마왕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


마왕은 그 정도의 힘을 가지고 뭘 하고 있는 것일까?


-신이라도 죽일 생각인 것인가.


그 정도면 혼자서 다 쓸어버릴 수 있을 텐데.


입가를 찌푸리며 기지개를 켠 나는 은은한 마기가 느껴지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기의 끝에는 마왕성이 있을 것이다.


“마왕은 부활했으려나.”

-보통은 그럴 것이네만, 지금은 아니라네. 자네가 마왕의 육신을 완전히 소멸시키지 않았는가.

“...그럼 시간은 좀 번 건가.”

-그렇다네. 뭐, 놈의 육신이 사라진 덕에 봉인하는 것도 불가능하게 되었네만......


마왕을 무력화시키는 법.

마왕을 죽이고 부활하기 전에 봉인한다.


뒤지지도 않는 불공평한 존재를 무력화할 방법은 이것밖에 없다.


“불공평한 건 나 하나로 족한데.”


음... 잠깐만, 마왕이 내가 아니라 호구를 만난다면 적당히 상대하려나?


갑옷 형태의 마왕 정도면 용사들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 같던데.


콰아아아......


저 멀리서 들려오는 폭포 소리를 들으며 몸을 일으켰다.


-어디로 갈 생각인가.

“프로이슨.”


포인트를 벌기 위해선 팔 물건을 만들 재료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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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잔혹동화 +1 21.01.24 298 3 12쪽
87 마왕군 +1 21.01.23 303 3 12쪽
86 현상유지 21.01.22 305 3 12쪽
85 뽀삐 21.01.21 308 2 12쪽
84 어둠의 신 21.01.20 304 4 11쪽
83 부활 +1 21.01.19 309 4 12쪽
» 사투가 끝나고 +1 21.01.17 303 4 12쪽
81 고전 - 2 +1 21.01.16 318 4 13쪽
80 고전 +1 21.01.15 315 4 12쪽
79 마왕 +1 21.01.14 310 4 12쪽
78 불화 - 2 21.01.13 322 4 12쪽
77 불화 21.01.12 320 4 13쪽
76 오해 21.01.10 333 3 12쪽
75 지옥탕 21.01.09 345 4 13쪽
74 계획 +1 21.01.08 337 5 12쪽
73 로레이드와의 만남 +1 21.01.07 353 5 13쪽
72 기사 21.01.06 343 5 13쪽
71 유령의 꿈 21.01.05 369 4 13쪽
70 한성, 또 사고 치다. 21.01.03 379 4 12쪽
69 뒷수습 21.01.02 367 4 12쪽
68 혈투의 끝 21.01.01 368 4 13쪽
67 혈투 20.12.31 384 5 12쪽
66 내분 - 2 20.12.30 408 4 12쪽
65 내분 20.12.29 428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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