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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스톤 님의 서재입니다.

전역날 이계로 납치당함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완결

팩스톤
작품등록일 :
2020.10.24 21:23
최근연재일 :
2021.03.05 18:05
연재수 :
1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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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045
추천수 :
980
글자수 :
699,515

작성
21.01.1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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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2쪽

마왕

DUMMY

사아아아.


장막이 사그라들고 처음 보이는 것은 깊은 밤의 어둠처럼 진득한 묵빛의 갑주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단색으로 치장된 기사.


색이 어찌나 진한지 사위가 어두워지는 느낌이다.


-반갑다.

“난 별로 안 반가운데.”


이럴 줄은 몰랐는데.


마왕은 튜토리얼의 최종 표적이다.


당연히 마왕에 대한 것은 구할 수 있는 자료를 전부 동원해 치밀하게 조사했었다.


조사를 위해 구한 자료 대부분 동화책이었다는 것이 옥의 티였지만, 영양가 있는 정보도 있었다.


그 세대의 지식인들의 분석 자료나 용사의 자서전 같은 것 말이다.


“곤란하네.”


내 눈앞에 마왕이 나타난 이상 절반의 지식은 쓸모없게 되었다.


“너. 성에 갇힌게 아니었냐?”


마왕은 성에 갇혀 나오지 못한다.

군단장을 임명하는 이유는 그것 때문이다.


조사해온 자료들에 공통적으로 적혀있던 마왕의 약점이었다.


모든 용사의 이야기는 이 약점이 전제된 채로 서술되어있었다.


빠지직... 빠지지직......

“이건 맞았네.”


마왕이 흩뿌리는 불길한 마력이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비틀어 금을 내었다.

금을 바탕으로 세상이 변하기 시작한다.


이계화.


삽화에서 본 그대로의 광경이다.


-모든 이들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살아간다.


그리고, 삽화에서 갓 튀어나온 것 같은 외형의 마왕이 천천히 걸어왔다.


-나도, 너도, 누구도 다르지 않다. 이성 없는 짐승이 아닌 이상.


화르륵!!


마왕의 손아귀에서 검붉은 마력이 소용돌이친다. 그가 소용돌이를 쥐는 순간 그것은 형이상학적인 외형의 작대기로 변했다.


그렇다.


형이상학적인 작대기.


세상에 어찌 저런 것이 존재할 수 있는지 의문인 기괴한 마력의 형상화.


“윽.”


보고 있기만 해도 머리가 아파지지만, 그럼에도 눈을 떼어놓을 수 없었다.


저것에 대항할 방법은 하나다.


촤아악!


오랜만에 빛을 본 성검이 굳건한 존재감을 내보인다. 성검의 빛이 몸을 감싸자 두통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내가 이곳에 나타난 이유가 궁금한가.

“아니.”


선공은 나로부터였다.


콰앙-! 발밑을 힘차게 박차 마왕의 품으로 파고들어 성검을 찔러넣는다. 하지만, 내 검은 마왕에게 닿지 못했다.


부우우왁-뻥!


마왕의 무기가 소용돌이 형태로 풀리더니 무시무시한 압력을 방사해 날 밀어냈다.


-넌 나의 단말을 파괴했다.

“단말?”


밀려나 몸을 추스르기도 전 마왕의 손바닥이 나를 향했다.


푸와아악!!- 그 손짓에 호응한 마왕의 소용돌이가 뒤틀리더니 여러 개의 송곳으로 나누어져 나의 급소를 노려온다.


-이런 적은 처음이라 당황스러웠다.


뻔한 공격에 급소를 내줄 수는 없지.


지이잉! 성검으로 밀려드는 마력의 파장. 파장이 검신을 전부 뒤덮는 순간 휘둘렀다.


파아아!!

후두두두


나를 향하던 검붉은 송곳들은 힘을 잃고 땅으로 쏟아져 내렸다.


-그래서 아까운 목숨을 거두고 말았구나.

“누구 죽였냐?”

-...그래. 벨레이스라는 이름이었지.


벨레이스면......


“아! 걔구나?”


검은용 군단에 군단장 대신 있던 콧수염.


수염을 생으로 잡아 뜯기고 울면서 도망간 마법사. 검은용 군단은 그가 도망가면서부터 와해되기 시작했었지.


“나 때문에 죽였다고?”


말도 안 되는 핑계다.


“그런 것 치고는 안 아쉬워 보인다만.”


그게 실수로 부하를 죽인 사람의 태도냐?


-틀렸다. 나는 무척 아쉽도다.

“이미 숙청해 놓고 뭐가 그리 아쉽냐?.”

-배신자를 너무 편하게 죽였으니까.

“......”


무서운 새끼였네.


실패한 부하는 배신자가 되는 건가?


더욱 소름이 돋는 점은 마왕에게서는 일말의 감정 하나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는 행복했을 것이다.


떠나간 님을 생각하는 듯한......

꿈결 같은 어조로 읊조리는 마왕.


-나에게서부터 해방되었으니......


감정하나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에


-그는 행복했을 것이다.


누구보다도 거대한 감정이 서려 있으니.


-나는 이렇게 불행하니......


그저 인지 부조화로 이루어진 첨탑에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한 마디로 정신 나갈 것 같다.


“니가 왜 불행해!”


투쾅! 분신의 내려 차기가 마왕의 뒤통수를 내리눌렀다.


“니 부하가 더 불행하지!”


까앙!! 고개 숙인 마왕의 품속에서 홀연히 나타난 분신이 마왕의 턱을 올려 찼다.


“부하가 행복? 염병을 떤다.”


뒤진 놈이 무슨 행복이야.


덥석. 허공에서 떨어져 내려오던 분신이 마왕의 다리를 붙잡고.


“지랄 그만하고 이제 뒤져라.”


분신은 마왕을 들고 나를 향해 내리친다.


나는 성검을 고쳐잡고 허공을 향해 올려 벤다. 내리치는 힘과 올려 베는 힘에 동시에 노출된 마왕은 허무할 정도로 쉽게 반으로 갈라져 버렸다.


투와아아!!


갈라진 갑옷의 틈에서부터 묵빛 섬광이 폭사 되었다.


*


“이거 예상 왼데. 마왕이 나타나다니.”


어둡게 변색 된 하늘을 올려다보며 착용하고 있던 후드를 고쳐 썼다.


성에 얌전히 갇혀있어야 할 마왕이 밖으로 나들이를 나왔다.

이는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며, 계획에 걸림돌이 생길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뭐, 그렇다고 형편이 안 좋아지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 알버트.”

-그오오오.


원래라면 군단장을 일으키기 위해선 한세월이 걸렸을 터였으나. 마왕이 친히 왕림해준 덕에 벌써 검은용을 일으켰다.


“반나절은 걸릴 거라 생각했는데.”


이러면 일이 쉬워지겠어.


-그르르.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띄우고 가방에서 머리카락 한 줌과 시약병을 꺼냈다.


뽁.


“네가 아무리 도망쳐 봤자......”


이것에서 벗어나진 못할 것이다.


며칠 동안 참으로 힘든 일도 많았으나 얻은 것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로서는 구할 엄두도 내지 못할 이 포션까지 구해내지 않았는가.


시약병에 머리카락을 집어넣었다.


치이이익......


귀기 서린 눈으로 녹아내리는 머리카락을 차분히 관찰하던 그는 불현듯 몸을 일으켜 부활한 알버트를 향해 다가갔다.


촤아악!


그리고, 알버트의 머리 위로 포션을 들이부었다.


부르르.

-그어어!


알버트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간헐적으로 신음을 흘리더니, 갑작스럽게 눈을 번쩍 뜨고 전신을 뒤틀며 발광하기 시작했다.


“성공인가?”


그 모습을 흡족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서둘러 알버트에게 마력을 불어넣었다.


우우웅!!


그러자 보이기 시작했다.


뭉게뭉게.


알버트의 몸으로부터 의문의 안개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일반적인 안개였다면 사방으로 퍼져야 했으나 이상하게도 안개는 북서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음......”


잠시 희열에 찬 표정으로 안개를 바라보던 괴인은 북서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침음을 삼켰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방향은 마왕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 장소였기 때문이었다.


“부디 살아있어 줬으면 좋겠는데......”


부디 내 차례가 돌아오길......

뒷말을 삼킨 괴인은 몸을 돌렸다.


-그어어......


그리고, 마왕의 어둠으로 둘러싸인 숲을 조용히 가로질렀다. 늘어지는 신음을 흘리는 알버트를 데리고.


*


“곤란하게 됐어. 이건 이계화야. 이 근처에 마왕이 있을 거라고.”

“우린 아직 마왕에게 걸리진 않았다. 그럼 놈이 나타나기 전에 후퇴하면 되지 않냐?”

“그게 그렇게 간단하면 말을 안 하지.”


도르무의 생각 없는 대꾸에 테르치아는 골머리를 앓며 대답했다.


“이건 이계화야. 아예 다른 세상이 되는 거지. 전조가 있을 때 피했으면 모를까 일단 말려들었다면 나가기는 어려워.”

“...그럼 어떡하지?”

“어쩌긴 뭘 어째. 빠져나갈 때까지 움직여야지. 마왕이 우릴 발견하지 못하길 기도하면서.”


아주 답이 없는 상황이다.

마왕에게 대항할 수 있는 이는 오직 용사뿐이다. 마왕의 이질적인 마력 때문이다.


마왕의 뒤틀린 마력은 용사를 제외한 이의 정신을 뒤틀어 무력화 시킨다.

루시우스에게 성검이 있었다면 이를 중화시킬 수 있었겠지만 없잖아.


지금 이 상황에 마왕과 마주치게 되면 싸울 수 있는 이는 루시우스 한 명밖에 없다.


그렇기에 싸움은 피해야 한다.


마왕의 군단장 한 명도 못 쓰러뜨린 루시우스와 마왕의 싸움이다.


누가 이길지 훤하지 않은가.


“하필 레시아도 슐리아도 없을 때......”


버프와 회복에 특화된 미리엘과 달리 레시아의 신성마법은 넓은 분야에 특화되어있다.


레시아의 마법이면 시간은 좀 걸리더라도 이 장소를 탈출하는 것에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슐리아는?

슐리아는 탐정이다.

주술과 마법을 자유자재로 이용해 보이지 않는 것은 캐내는 탐정.


그녀가 있었다면 고민도 필요 없다.

최단경로로 마왕의 영지를 탈출했겠지.


근데 둘 다 없잖아?


“답이 없네......”

“음. 일단 은신처를 찾는 게 어떤가.”

“은신처?”

“그래. 아까 저쪽에서 동굴을 하나 봤다. 굴에서 튀어나온 곰이 덤벼들길래 때려죽였었지.”

“동굴이라......”


가만히 있는 것보단 낫겠지?


이계화가 더 진행되면 괴물들이 덤벼들기 시작할 것이다. 소란을 피우면 마왕에게 걸리겠지 마왕에게 걸리면......


“일단 움직이자. 앞장서 듀릭.”

“나만 믿어라.”


어쩔 수 없다.

죽고 싶지 않다면 움직일 수밖에.


“빨리 와라.”

“안 돼! 이거 놔! 도르무! 나는!! 마왕과 싸워야......”

“넌 아직 준비가 안 됐다.”


그녀가 캄캄한 미래를 헤쳐나갈 생각을 하는 동안 작은 소란이 있었나 보다.


마왕이 나타났단 말에 거품 물고 달려드는 루시우스와 식은땀 흘리며 용사를 막는 도르무의 모습이 그려진다.


“나, 난 용사야! 저 앞에 마왕이 있다고! 용사의 숙적! 마왕이! 아무리 마왕이 강하다 해도 내가 먼저 물러서면......”

“폼이 안 산다? 헛소리 그만하고 이리로 와라. 용사라도 목숨은 하나다. 다짜고짜 덤볐다가 죽어버리면 어쩔거냐.”

“용사는 죽지 않아.”

“아니. 용사도 사람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어.


도르무의 강렬한 눈빛에 부담스러움을 느낀 루시우스는 고개를 돌렸다.


“아냐, 안 죽어......”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 것을 보면 고집만큼은 역대 최고라 할 수 있겠다.


“도르무 말 들어. 성검 찾겠다며.”

“...!”


눈이 휘둥그레져서 테르치아를 쳐다보는 용사. 그 눈은 마치 잊고 있었던 것을 깨달았다는 눈빛이었다.


테르치아는 기가 막혔다.

그놈의 성검 때문에 생난리를 피워놓고 마왕이 나타나니까 싹 다 잊어버리다니.


이 용사는 진짜다.


한번 고집을 부리면 끝을 보기 전까진 마음을 돌리지 않는 독불장군.


자신만의 의견이 있다면 타인의 생각 따윈 눈 하나 깜짝 않고 무시해버리는 모습은 방약무인의 표본이다.


이런 고삐 풀린 망아지 같은 인간을 대체 어떻게 사람으로 만들어야 할까?


“그냥 좀 따라와라!”

쾅!

“악!”


도르무의 솥뚜껑 같은 주먹이 루시우스의 뒤통수를 후려치자 용사는 돌멩이에 맞고 뻗은 개구리마냥 축 늘어졌다.


도르무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루시우스를 들쳐업었다.


“끝났다. 가자.”


그래.


있긴 했었다.


루시우스가 제압되는 모습을 보자 불현듯 떠올랐다. 루시우스가 성장하는 장면이.


그는 언제나 말로 해서는 통하지 않았다.

맞고 나서야 깨달음을 얻었지.


한성에게 두들겨 맞고 성장했다.


버프 시간이 종료되어 검은용에게 패배했던 날 이후.

버프만 받으면 일분 일초를 아끼며 미친 듯이 날뛰었다.


검은용에 의해 파티가 붕괴할 뻔한 날에는 마지막 순간에 각성해서 동이 틀 때까지 사투를 벌였지.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루시우스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티가 잘 나지 않을 뿐.


“왜 그러나 테르치아.”

“아무것도 아냐 가자.”


오랜만에 속이 뻥 뚫린 기분이다.


테르치아는 기분 좋게 한 발자국 내디디려 했다.


“어?”


분명히 한 걸음 앞으로 걸었는데 발끝에 닿는 것이 없다.


그에 황망한 표정을 지은 순간이었다.


찌이이이-

“윽! 눈이!”


귀가 찢어질 것 같은 소리와 함께 눈앞이 끝없이 밝아진다.


시신경이 불타는 듯한 아픔에 양손으로 눈을 가렸으나 소용없었다.


눈을 감아도


눈을 가려도


가릴 수 없는 빛.


그 색은 오로지 분홍색 뿐이었다.


그렇게 세상은 연분홍빛으로 물들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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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레이닉스 경비대 21.01.30 276 3 13쪽
92 요정마을 21.01.29 274 4 12쪽
91 요정 +1 21.01.28 272 3 13쪽
90 잔혹동화 - 3 +1 21.01.27 281 4 13쪽
89 잔혹동화 - 2 +2 21.01.26 287 4 12쪽
88 잔혹동화 +1 21.01.24 298 3 12쪽
87 마왕군 +1 21.01.23 303 3 12쪽
86 현상유지 21.01.22 305 3 12쪽
85 뽀삐 21.01.21 308 2 12쪽
84 어둠의 신 21.01.20 304 4 11쪽
83 부활 +1 21.01.19 310 4 12쪽
82 사투가 끝나고 +1 21.01.17 303 4 12쪽
81 고전 - 2 +1 21.01.16 319 4 13쪽
80 고전 +1 21.01.15 315 4 12쪽
» 마왕 +1 21.01.14 311 4 12쪽
78 불화 - 2 21.01.13 322 4 12쪽
77 불화 21.01.12 320 4 13쪽
76 오해 21.01.10 333 3 12쪽
75 지옥탕 21.01.09 345 4 13쪽
74 계획 +1 21.01.08 337 5 12쪽
73 로레이드와의 만남 +1 21.01.07 353 5 13쪽
72 기사 21.01.06 343 5 13쪽
71 유령의 꿈 21.01.05 369 4 13쪽
70 한성, 또 사고 치다. 21.01.03 379 4 12쪽
69 뒷수습 21.01.02 367 4 12쪽
68 혈투의 끝 21.01.01 368 4 13쪽
67 혈투 20.12.31 384 5 12쪽
66 내분 - 2 20.12.30 408 4 12쪽
65 내분 20.12.29 428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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