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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스톤 님의 서재입니다.

전역날 이계로 납치당함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완결

팩스톤
작품등록일 :
2020.10.24 21:23
최근연재일 :
2021.03.05 18:05
연재수 :
122 회
조회수 :
77,035
추천수 :
980
글자수 :
699,515

작성
21.01.06 18:00
조회
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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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3쪽

기사

DUMMY

기가 차는 마음에 혀를 찼다.


그도 그럴 것이 이쪽으로 오고 있는 기사들의 수가 상당했기 때문이었다.


누구는 최전방에서 죽어라고 싸우고 있는데 평생을 대우받으면서 편하게 수련만 했을 이 새끼들은 먼지 쌓인 갑옷 입고 거들먹거리며 걷고 있네.


아니, 먼지 쌓일 일도 없으려나?


불쌍한 종자들이 알아서 관리했을 테니.


하지만, 그것도 언제까지 가려나.

저들을 대우해주던 화이트레온은 마왕군에 의해 짓밟혔는데.


그것보다 나라가 망했는데 용케도 저렇게 많이 살았네.


혹시......


도망이라도 친 건가?


나는 뒤틀리려는 입꼬리를 내리누르며 날카로운 눈으로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철컥. 철컥.


“아주 지랄들을 한다.”


나라를 버리고 도망친 패잔병들이 꼴에 기사라고 어깨에 힘주고 걷는 모습을 보니 배알이 뒤틀려서 보고 있기가 힘들다.


“찾아라. 놈은 이 근처를 지나갈 것이다.”


수십 명이나 되는 기사들이 서너 명씩 조를 짠 채 수풀을 이 잡듯이 뒤지고 있다.


참으로 머저리 같은 놈들이다.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상대를 찾는데 저렇게 요란스럽게 쿵쿵거리다니.


뭐, 나랑 상관없으려나?


저놈들이 멍청하든 멍청하지 않든,

도망쳤든 도망치지 않았든 간에,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다.


마왕까지는 몰라도, 군단장을 비롯한 마왕의 하수인을 상대하는데 저따위 것들의 도움은 필요 없을 테니까.


저들이 누굴 찾든 나는 신경 쓸 필요 없는 것이다.


결론을 내린 나는 몸을 일으켰다.


“단장님! 반응이 있습니다.”


......


저놈들 혹시 날 찾고 있나?


일어서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놈들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또다시 속이 안 좋아졌다.


‘와. 칼각이네, 칼각이야.’


기사단장의 손짓 단 한 번에 기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약간의 흐트러짐 하나 없이 진형을 갖추는 기사들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경탄을 자아케 했다.


저런 수준까지 가려면 도대체 얼마나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했을까?


그렇게 긴 시간을 수련이 투자한 놈들이 왜 전쟁터에는 코빼기도 비추지 않은 걸까?


그리고, 그런 대단하신 분들이 왜 나를 찾고 있는 것일까?


기사들은 찾는 자는 나일 것이라고 반쯤 확신한 채 소리 내어 그쪽으로 걸었다.


내게 볼일이 있다면 반응이 있을 것이다.


“찾았습니다. 단장님. 용사 강한성입니다.”


봐라.


날 찾고 있는 것이 맞았다.


“무슨 볼일?”

“...몰라서 묻는가?”

“모르니까 묻는 거지.”


내가 당연히 알 것이라고 가정한 물음에 헛웃음을 지었다.


아주 대단한 자신감이다.


세상 모든 사람이 자신들을 알고 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


위에서 내려온 명령만을 듣는 온실 속 화초를 보는 것만 같았다.


“네놈이 프로이슨에서 행했던 만행을 잊은 것이냐?”

“음?”


손을 들어 귀를 팠다.

내가 잘못 들은 것인가?


“내 말에 집중해라!”


나의 태도를 지적하며 광분하는 기사단장의 외침을 그대로 흘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해할 수가 없었으니까.


나라가 망했다.

그들이 살아오던 화이트레온이 멸망했다.


그 사건에 비해 내가 프로이슨에서 한 일이 무엇인가?


겨우 프로이슨을 해방시켰던 것뿐이다.


물론 프로이슨을 해방시킨 일도 큰 사건은 분명하다. 하지만, 나라가 망한 것과 비교한다면... 글쎄.


“하, 참 어이가 없어서.”

“...뭐라!! 어찌 감히 용사라는 자가 이리 무도할 수 있는가! 프로이슨의 시민들을 속이고 우롱......”

“닥쳐.”


마력이 가득 담긴 한 마디에 기사들의 움직임이 일제히 멎는다.


“내가 시민들을 속이고 우롱했다고?”


고요해진 공간을 가로질렀다.


“속이고 우롱한 것은 오히려......”


천천히 이야기하며 그 자리에 굳은 채 아무 말도 못 하는 기사단장을 향해 얼굴을 들이밀었다.


“너희들이었잖아.”


레시아를 통해 시민들은 선동해 나를 짓누르려 했던 자들이 누구인가?


다름 아닌 귀족이었다.


첫날 분신의 눈을 통해 바라본 이 세계의 귀족은 그런 놈들이었다.


그림으로 그린 듯한 부패 귀족.


그런 이들의 개에 불과한 기사 주제에 뭐? 내가 시민들을 속이고 우롱했다고?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만 나온다.


화이트레온의 귀족들은 썩어있다.


용사에게까지 아랑곳 않고 작업을 치는 놈들이다. 이런 이들이 평범한 시민들은 어떻게 대우할까?


아? 그렇구나.


나는 기사단장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


“너는....... 로레이드의 개로구나.”


정곡이었다.


기사단장의 초점이 미친 듯이 떨리기 시작했다. 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리 생각이 없다고 해도 나라가 망한 상황에 나 하나 잡겠다고 기사를 보낼 인물.


그럴만한 놈이 하나 있었다.

나와 악연이 있는 로레이드.

다름 아닌 나의 표적.


“끄... 히이이......”


기사단장은 아무것도 못한 채 눈앞의 남자의 행동을 벌벌 떨며 바라볼 뿐이었다.

진득하고 폭력적인 마력이 용사의 얼굴에 비친 짙은 음영을 따라 흘러내린다.


*


쿠구구구구......


“어... 지진인가?”


저 멀리서부터 다가온 땅의 울림이 발부터 시작해 전신을 쓸고 지나갔다.


루시우스가 의문을 가지게 된 이유는 그 울림에서 석연찮은 감각을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상하네... 왜 이렇게 서늘하지?”

“뭔 소리냐?”

“넌 못 느꼈어?”

“헛소리 말고 싸우기나 해라.”


도르무를 비롯해 동료들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모양이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착각이었다고 넘어갔을 상황이었다.


허나, 루시우스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아니! 이건 착각이 아니야.”


그랬기에 싸우다 말고 큰소리로 외칠 수 있었다.


지진에서 느껴진 서늘한 감각.


아무도 느끼지 못하고 그 혼자만 느낄 수 있었던 감각.

특별함을 추구하는 루시우스에게 이것은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또 지랄이네......”


루시우스의 지랄병에 한숨만 느는 테르치아였다.


“좀 조용히 하라고!!”


짜증을 가득 담아 외쳤다.

통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테르치아가 아무리 짜증을 낸다 하더라도 조금만 지나면 잊어버리고 또다시 한심한 행동을 할 것이기에.


“제발... 오늘만이라도......”


이건 꼭 필요한 연구다.

마법 저항을 뚫는 마......


쿠구구구구.......

우우우웅......

“...어?”


지진에 맞추어 촉수가 은은한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그에 눈이 휘둥그레진 테르치아는 빛나는 촉수를 향해 마력을 불어넣었다.


파스스스......

“......!!”


그녀의 손에서 바스러지는 촉수.

마법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하던 촉수였는데 허무하리만치 쉽게 부서져 내렸다.


“...뭐였지?”


테르치아는 흔들리는 눈으로 지진이 다가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저곳에......


무언가가 있다.


*


쿠구구구......

“으으......”


기사단장이 바닥을 뒹굴고 있다. 필사적으로 기어 도망쳐보려고 하지만, 소용없었다.


쿡.

“으억!”


큰 특색 없는 부츠가 그의 허리를 짓밟는다. 기사단장은 짧게 경련하더니 큰 소리로 외쳤다.


“말, 하겠습니다!! 제, 제발!! 말하게 해주십...... 끄아아아!!!”

우드드득!


나는 무기질적인 눈으로 기사단장의 다리를 짓이겼다.


“줏대 없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피를 흩뿌리며 쓰러진 기사들이 사방에 장식되어 있다. 그 와중에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인물. 그는 내 앞의 기사단장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으리라.


놈들을 억누르던 마력이 풀리는 순간 기사단장은 온 힘을 다해 도망쳤다.


부하들에게 공격을 외치며.


기사들은 죽기 살기로 나에게 덤벼들었고, 거인의 기세에 그대로 짓눌려 빈대떡이 되었다.


덕분에 기사단장은 마지막까지 버틸 수 있었으나.


“뭐든...... 뭐어드으......”


이제 그에게 방패는 없다.


“필요 없어.”


겨우 로레이드의 개에 불과한 그가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을까?

로레이드의 위치는 이미 알고 있는 이상 그가 내게 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으리라.


그런고로 나는 기사단장에게 마무리......


“군단장!! 군단장에 대한 겁니다!! 이건 로레이드도 모르는 일입니다!!”


손을 멈췄다.


이 새끼.

뒷주머니까지 차고 있었네?

무식한 외모를 보고 무시한 것에 살짝 미안해졌다.


“로레이드 공작...... 아니! 로레이드는 마왕군의 레이비욘과 내통하고 있습니다.”


그건 알고 있다.


로레이드 추적의 단서가 레이비욘에게 있었으니까.


“다른 자들은 모르겠지만 저는 알고 있습니다. 저 또한 마왕군이 접촉해왔기 때문입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명색이 기사단장이다.


로레이드의 부하 중에서는 가장 강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런 이에게 마왕군이 손을 쓰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


“누가?”

“바로 검은용 군단의 군단장 알버트님이십니다.”


검은용 군단?


나는 표정을 구겼다.


그 한마디에 지금까지의 설명이 영양가 없는 이야기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검은용 군단은 바로 어제 내 손에 와해 됐다. 이제 남아있는 놈이라곤 군단장과 마법으로 도망친 벨레이스라는 남자가 전부.


그 도망친 놈도 반병신이 되었지만.


“자, 잠깐! 그뿐만이 아닙니다!”


가라앉은 분위기를 읽은 기사단장이 분주하게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검은용 군단장이 계획하던 일이 있었습니다! 이게 그 증겁니다! 제 부하들을 군단장에게 바쳐 마왕군으......”


나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흐억. 흐억.”


이제 저놈의 말 따위는 들을 필요가 없다.


“사, 살아남은 건가?”


뒤에서 들려오는 힘 빠진 목소리에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길을 따라 걸었다.


기사단장은 그런 용사를 노려보았다. 물론, 직접적으로 노려봤다가는 눈치챌 가능성이 있었기에 용사의 그림자를 노려볼 수밖에 없었다.


‘바보 같은 놈.’


나를 놓아주다니......


역시 용사다.

힘만 세고, 순진해 빠진 용사.

부하들을 죽이며 잔혹한 척은 있는 대로 했었으면서 자포자기로 내뱉은 정보 몇 가지에 기사단장을 놓아주었다.


‘복수해주마.’


기사단장은 다짐했다.

다음번에 알버트가 손길을 내밀면 즉시 받아들여 마왕군의 일원이 되겠다고.


그리고, 찾아갈 것이다.


그에게 치욕을 준 용사 강한성을 찾아갈 것이다. 용사가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들을 그가 보는 앞에서 하나하나 찢어낼 것이다.


“흐흐......”


마지막에는 그의 목숨을 손수 끊으리라.


나는 용사처럼 멍청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울며불며 빌어도 용서해주지 않는다.


‘웃을 수 있을 때 실컷 웃어두어라.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눈에서 피 눈물이......’


기사단장의 생각이 끊어졌다.


주변에 널브러진 기사들의 시신이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무, 무슨......”


기사단장은 급히 검을 찾았으나, 그의 검은 반으로 쪼개져 저 멀리 널브러져 있을 뿐이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키는 부하들의 시체를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어, 언데드......”

“...크윽, 누가 언데듭니까. 단장.”

“어?”


살아있다?


그에 기사단장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부, 부단장! 살아있었는가!? 하하! 잘 됐군! 빨리 가서 포션을 가져오게.”

“......”

“무엇 하는가! 지금 내 다리가 보이지 않는겐가! 어서 가서 포션을......”

“들었습니다.”


기사단장은 그제서야 눈치챌 수 있었다. 그를 바라보는 기사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는 사실을.


“마왕군에게 우리를 팔려 하다니......”

“...저희는 그저 제물이었던 겁니까?”

“저, 저는 단장님을 믿었었는데......”


기사단장의 표정이 사색이 되었다.


애당초 한성은 그들을 죽이지 않았다.


그저 거인의 기세로 억눌러두었을 뿐.


그들의 두 귀는 그대로 열려있었고, 한성과 기사단장의 대화를 하나도 빠짐없이 들을 수 있었다.


“잠깐!! 오핼세!”

“무엇이 말입니까.”

“내가 자네들을 마왕군에게......”

“...증거를 가지고도 그런 말이 나옵니까!”


기사단장의 손에서 하늘을 향해 포효하는 검은용이 새겨진 문장이 반짝인다.


스르릉......

“무, 무슨 짓인가? 부, 부단장! 자넨......”

“저는 부단장이 아닙니다.”


미치도록 따스한 햇살 아래 뜨거운 불길이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그 뜨거운 하극상의 궤적은 배덕자 핏방울을 반주 삼아 노래 불렀다.


피의 노래가 하늘 높이 울려 퍼졌다.


*


하늘을 수놓는 핏방울을 바라보는 루시우스의 표정은 차갑게 굳어있었다.


“이게 대체......”


그와 치열하게 싸웠던 루시우스는 알 수 있었다. 형체를 알 수 없도록 짓이겨진 시체가 누구인지를.


“군단장이... 죽었다.”


따스한 햇살 아래 루시우스의 공허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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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레이닉스 경비대 21.01.30 276 3 13쪽
92 요정마을 21.01.29 273 4 12쪽
91 요정 +1 21.01.28 271 3 13쪽
90 잔혹동화 - 3 +1 21.01.27 280 4 13쪽
89 잔혹동화 - 2 +2 21.01.26 286 4 12쪽
88 잔혹동화 +1 21.01.24 297 3 12쪽
87 마왕군 +1 21.01.23 303 3 12쪽
86 현상유지 21.01.22 305 3 12쪽
85 뽀삐 21.01.21 308 2 12쪽
84 어둠의 신 21.01.20 304 4 11쪽
83 부활 +1 21.01.19 309 4 12쪽
82 사투가 끝나고 +1 21.01.17 302 4 12쪽
81 고전 - 2 +1 21.01.16 318 4 13쪽
80 고전 +1 21.01.15 315 4 12쪽
79 마왕 +1 21.01.14 310 4 12쪽
78 불화 - 2 21.01.13 322 4 12쪽
77 불화 21.01.12 320 4 13쪽
76 오해 21.01.10 333 3 12쪽
75 지옥탕 21.01.09 345 4 13쪽
74 계획 +1 21.01.08 337 5 12쪽
73 로레이드와의 만남 +1 21.01.07 353 5 13쪽
» 기사 21.01.06 343 5 13쪽
71 유령의 꿈 21.01.05 369 4 13쪽
70 한성, 또 사고 치다. 21.01.03 378 4 12쪽
69 뒷수습 21.01.02 367 4 12쪽
68 혈투의 끝 21.01.01 368 4 13쪽
67 혈투 20.12.31 384 5 12쪽
66 내분 - 2 20.12.30 408 4 12쪽
65 내분 20.12.29 428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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