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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스톤 님의 서재입니다.

전역날 이계로 납치당함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완결

팩스톤
작품등록일 :
2020.10.24 21:23
최근연재일 :
2021.03.05 18:05
연재수 :
122 회
조회수 :
77,046
추천수 :
980
글자수 :
699,515

작성
21.01.15 18:00
조회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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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고전

DUMMY

나는 마왕의 신체에서 폭사 된 묵빛 섬광에 표정을 굳혔다. 하지만 그 긴장이 무색하게 마왕의 육신은 힘을 잃고 바닥을 뒹군다.


그럼 저놈은 죽은 것인가.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마 아닐 것이다.


마왕을 벨 때의 감각이 애매하다.

피륙으로 이루어진 존재를 베었을 때 특유의 썰려나가는 느낌이 없었다.

오직 단단한 갑옷을 쪼갤 때의 느낌뿐.


또, 눈으로 보아도 알 수 있다.


상, 하반신으로 나누어져 바닥을 뒹구는 마왕. 하지만, 저것이 정말 상처가 맞다고 할 수 있을까?


허리가 잘려나갔지만 피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


상처?

안 보인다.

아무것도 안 보인다.


내가 알 수 있는 거라곤 갑옷의 내부는 알 수 없는 빛으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


쩌적-


“왜 이리 불안하냐.”


목숨을 놓고 싸우던 상대가 입은 갑옷이 갈라진다면 안심을 해야 정상일 텐데.


안도는커녕 치솟는 찝찝함에 심장만 미친 듯이 두방망이질 치고 있다.

불안을 이겨내는 것은 행동이지.


꽈앙!


마왕에게 힘차게 주먹을 꽂아 넣은 나는 손을 털었다. 손등이 저릿하다.


“이럴 줄 알았다.”


마왕을 후려친 주먹은 보호막에 막혀 튕겨 나왔다.


쩌저저적!!


공격에 대한 반동일까?

갑옷의 금은 빠르게 퍼져나갔고.

이내 검붉은 빛을 쏘아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놈의 마력이 급변했다.


어두웠던 마력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불규칙적으로 날뛰던 마력이 절제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변화의 속도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빨라서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완전히 변화한 뒤였다.


그렇게 놈의 마력이 안정되자.


콰아아!!


그를 감싼 갑옷이 터져나갔다.


“윽!”


폭발한 갑옷에서 뿜어진 빛이 두 눈을 힘차게 후려쳤다. 빛이 어찌나 강한지 눈을 감아도 눈꺼풀을 뚫고 시신경에 때려 박힌다.


“야이! 비겁한 놈아! 눈 나빠지면 책임질 거냐!?”


자극적인 빛은 안구 건강에 해롭다. 나는 최대한 고개를 숙이며 검을 들이밀었다.


빛이 사그라들고 마왕의 모습이 드러났다.


“이런 적은 처음인데.”

“뭐냐?”


갑작스레 들려온 소프라노 톤의 미성에 얼빠진 소리를 내뱉었다.


고개를 들자 놈의 모습이 드러났다.


“갑옷이 부서졌네.”


산산조각난 갑옷을 내려다보는 마왕.

그의 본모습은 내가 상상한 것과 조금도 닮지 않았다.


“뭐야.....”


내 가슴께에나 겨우 오는 꼬맹이.


그, 아니 그녀의 분홍색 머리카락은 솜사탕같이 포근한 느낌을 자아냈고, 그녀가 품고 있는 분위기는 지극히 부드러웠다.


아무리 보아도 마왕이라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못할 생김새의 귀여운 꼬맹이.


얼빠진 신음을 들은 걸까?

그녀는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행복이란 상대적인 거야.”


그리고,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이건 뭐라고 대꾸해야 하는 거지?


“이런 생각해 봤어?”

“아니.”

“선한 사람은 왜 존재할까?”

“그런 놈이 있냐?”


세상에 착하기만 한 놈이 어딨냐?


“악한 사람이 있기에 존재하는 거야.”

“그건 그렇네.”


나쁜 놈의 반대말은 착한 놈.


이건 맞는 말이네.


“천국이 있기에 지옥이 있어.”

“그렇게 일일이 나눠야 하냐? 지옥이나 천국이나 저승인 것은 마찬가지잖아.”

“그러니까......”

“귓등으로도 안쳐듣네 이 새끼.”

“행복은 불행으로부터 성립돼.”

“그 말이 하고 싶었던 거냐?”


천천히 춤을 추며 이야기해오는 마왕.


멀리서 보면 요정 같아서 아름다워 보일 수도 있겠지만 눈앞에서 보는 나로선 귀신을 보는 것 같아서 꺼림칙하다.


“아주 행복한 사람이 있다면.”

“별로 안 궁금한데.”

“그만큼 불행한 사람도 있어.”

“야! 내 말 안 들리냐?”

“하늘위에 있는 사람이 있다면......”

“무시하는 거야 안 들리는 거야?”

“밑바닥에 있는 사람도 있지.”


그리고 분위기가 급격히 암울해졌다.


“그리고, 엘비아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야.”


‘어우......’


어느새인가 사위를 감싼 아기자기하면서도 불길한 공기에 가슴이 차가워졌다.


“세상 그 누구보다도 불행한 사람이야.”

“음 알겠으니까. 엘비아? 잠깐 진정하고.”

“내가 이렇게 불행하니까......”

“...엘비아?”

“너흰 엘비아가 불행한 만큼 행복하겠지?”


씨발, 이건 또 무슨 쌉소리야!

나는 식은땀을 훔치며 무기를 고쳐잡았다.


쟤가 뭐라뭐라 말하곤 있지만,

조금도 공감 못 하겠다.


사실 공감은커녕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말에 집중하기엔 나는 너무 바빴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여기까진갑다.


아 씨발 준비 안 됐는데.


엘비아의 본 모습이 드러나는 순간 분신을 하나 몰래 불러다 작업을 하고 있다.


작전의 이름은 비상탈출작전.

비겁하게 용사 앞에 직접 나타난 마왕을 피해 도망치기 위한 즉흥적인 계획이다.


“불행하지만... 엘비아는 참을 수있어”

‘점멸만 쓸 수 있었어도......’


이계화로 인해 비틀린 시공은 나의 강점 중 하나인 점멸을 원천 봉쇄해버렸다.


“하지만... 마족들은?”


꽈아앙!!

“크윽!!”


연분홍빛 마력의 격류가 내 머리를 짓누른다. 일단 마력으로 맞불을 놨지만, 언제까지 이러고 있긴 힘들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엘비아에게 복종해야만 하는 마족들은?”

“저리... 가!!”

파아앙!!


붉은 노을을 오른손에 쥐고 최대한 허리를 비튼 뒤. 온 힘을 다해 전신을 튕겨 나를 억누르는 마력을 날려버렸다.


“마족들은 얼마나 불행할까!!”


마력에서 벗어난 나를 덮치는 것은 더 많은 마력의 격류였다.


“더럽다 진짜.”


나는 분신을 잔뜩 소환해 그들을 최대한 활용해 엘비아에게 다가갈 틈을 만들었다.


“엘비아는 그들에게 행복을 줄 거야!”

쩌엉!!


틈을 만들고 파고드는 것까진 좋았지만, 그게 딱 들어맞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다.


내 몸이 공중으로 떠오른다.


“엘비아의 마족이 행복하려면... 엘비아보다 더 불행한 사람이 필요해......”


얼굴을 한껏 구기고 마력을 분사해 응전하지만, 엘비아의 마력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더욱 불행한 사람이.”


진지한 얼굴로 읊조리는 엘비아.

그녀의 눈에 서린 광기는 연약한 일반인의 마음을 가진 나로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마력 개사기네 진짜.”


몸은 아주 잘 움직이는데.

마력엔 저항이 불가능하다.


칼로 물 베기란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일까?


주먹을 휘둘러도 맞아야 대응이 가능하지,손끝 하나 닿지 않으니 뭘 할 수가 없다.


나도 마력으로 대응하고 싶지만 내가 뿜은 마력을 맛나게 잡수시는 것을 보면 솟던 의욕도 가라앉는다.


‘어쩔 수 없나?’


나는 멜트림 상점을 열었다.

그리고 눈여겨봤던 스킬을 검색했다.



[거인의 육신(D)]


타고난 전사 그 자체인 거인의 육체에 서린 권능을 이식합니다. 스킬의 포인트 소모량은 적합자의 피지컬에 비례합니다.


[54,000 포인트 입니다.]



거인의 기세와 함께 거인 세트를 구성하는 거인의 육체. 진작에 살 수 있었지만, 쿠폰이 생기면 지르려고 아껴두었던 스킬.


[거인의 육체를 구매하시겠습니까?]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깝지만 지를 수밖에 없겠다.


3인칭 분홍색 정신병자 꼬맹이의 마력에 대항하기 위해선 마력에 강한 거인의 육체가 꼭 필요하다.


[거인의 육체(D)를 구매하셨습니다!]


[거인의 힘이 몸에 깃듭니다!]


상태창이 빛이 되어 나의 몸에 스며든다.


빛의 조각이 피부를 파고들 때마다 칼로 후비는 듯한 통증이 느껴진다.

하지만, 나는 입을 꾹 다물고 고통을 참았다. 아직도 입을 나불대는 엘비아를 차가운 눈으로 쏘아보며.


“...너는 죽으면 천국에 갈 것 같아 아니면 지옥에 갈 것 같아?”


벌써부터 그런 걸 고민할 필요 없다.

죽을 생각은 조금도 없으니까.


“고민할 필요 없어. 어디를 가도 상관없을 테니까.”


통증이 가라앉는다.


“전부 엘비아의 손에 부서질 거니까.”


내 몸을 들어 올린 무형의 마력에서 촉감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느껴진다.

거인의 권능이 육체에 자리 잡는 것이.


“천국도 지옥도 신도 천사도 모... 읍!”


스킬의 성능은 확실했다.


나를 감싼 마력을 몸에 힘을 주는 것만으로 떨쳐내고 엘비아에게 접근해 입에다 마력을 쑤셔 박았다.


“말 많네 진짜.”


강력한 마력을 가진 엘비아가 거인의 기세를 쉬이 떨쳐내지 못하는 모습을 보니. 절로 흡족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마력을 끌어올려 거인의 기세를 형성했다.


쿠구구!!


거인의 기세에 그대로 노출된 엘비아는 연분홍빛 소용돌이를 형성해 몸을 보호했다.


“이제 좀 살 것 같네.”


거인의 육체를 얻음으로써.


거인의 기세 또한 강해졌다.

아까 전만 해도 내 마력 따위는 접근도 못하고 흡수되었었는데.


지금도 이런데, 마지막 피스.


거인의 힘까지 손에 넣는다면 어떻게 될까? 가슴이 웅장해진다.


그때였다 엘비아의 소용돌이가 분열했다.


둘로 늘어난 소용돌이는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거인의 기세를 힘차게 밀어내기 시작했다.


촤좌좌좌!!!

“흐읍!”


나는 거인의 기세에 더욱 힘을 실었다.


하지만, 소용돌이의 증식은 시작에 불과했다. 소용돌이. 분명 분홍색 바람에 불과한 그것이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수십의 지점토로 분리된 소용돌이가 창, 칼의 형태를 갖추고 나란히 날아온다.


거인의 기세의 영향을 조금도 받지 않은 채. 나도 가만있을 수는 없다.


엘비아를 억누르는 마력에는 조금도 힘을 빼지 않은 채 양옆에 분신을 불러 날아오는 병장기를 요격했다.


차차차차창!!

“아니, 이건 선 넘었지!”


비명이 절로 튀어나왔다.

정면에서만 날아오던 분홍색 병장기들이 어느새인가 내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지금도 늘어나고 있다.


촤앙! 스거걱!!


날아오는 무기를 분신이 가르면, 무기는 산산조각이나 사방으로 흩뿌려지고, 그렇게 흩어진 무기 조각은 스스로 몸집을 불려 무기의 형태를 갖춘다.


줄어들진 않고 늘어나기만 하는 무기들.


더 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가라!!”


쩌저저정!!


내 신호와 함께 포위의 한 면이 무너져내렸다. 그리고, 부숴진 병장기들이 빠르게 사라진다. 무기 사이를 종횡무진 흰색 바람.


레비였다.


무표정으로 무기 조각을 체내에 흡수하는 레비. 아무리 마왕이 만든 무기라 해도 그녀의 몸에 흡수된 이상 빠져나오긴 힘들 거다.


이제 무기는 레비에게 맡기고 나는 내 할 일을 한다. 나는 분신을 마왕을 향해...?


“없잖아.”


마왕이 있던 자리가 비어있다.

그녀가 남긴 소용돌이만이 나를 조롱하듯 흔들리고 있다.


“누구 찾아?”


나는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소름이 돋았다.


“잡았다.”


뜨겁다.


엘비아의 목소리가 들린 순간 느낀 감각.


아득하다.


열기의 근원을 찾아낸 후 느낀 감정.


씨발.


이건 상황을 깨달은 내가 씹어 뱉고만, 욕지거리였다.


머리 위에 뜬 분홍빛의 태양.


태양은 찬란히 빛나고 있었지만, 나는 그 불덩어리를 직시할 수 있었다.


태양은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정확히는 빛의 중심에 떠 있는 마왕이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마력... 개사기.”


태양의 일부가 천공으로 폭사해 하늘을 분홍빛으로 물들였다.


“제정신이냐?”


뛰어난 시각을 지닌 나는 볼 수 있었다.

하늘을 가득 채운 분홍빛 구름.


저걸 구성하고 있는 성분은.


나를 위기 속으로 몰아넣었던 분홍색의 지점토였으니까.


전부 다 마왕의 마력이었으니까.


-준비됐어?


장난스럽게 물어오는 마왕.

정말 때려죽이고 싶은 기분이다.


“...아니.”


하지만, 생각만 해봐야 무엇하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을.


양손에 붉은 노을을 소환해 움켜쥐었다.


눈은 마왕에게 고정한 채로.


그리고 하늘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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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잔혹동화 - 2 +2 21.01.26 287 4 12쪽
88 잔혹동화 +1 21.01.24 298 3 12쪽
87 마왕군 +1 21.01.23 303 3 12쪽
86 현상유지 21.01.22 305 3 12쪽
85 뽀삐 21.01.21 308 2 12쪽
84 어둠의 신 21.01.20 304 4 11쪽
83 부활 +1 21.01.19 310 4 12쪽
82 사투가 끝나고 +1 21.01.17 303 4 12쪽
81 고전 - 2 +1 21.01.16 319 4 13쪽
» 고전 +1 21.01.15 316 4 12쪽
79 마왕 +1 21.01.14 311 4 12쪽
78 불화 - 2 21.01.13 322 4 12쪽
77 불화 21.01.12 320 4 13쪽
76 오해 21.01.10 333 3 12쪽
75 지옥탕 21.01.09 345 4 13쪽
74 계획 +1 21.01.08 337 5 12쪽
73 로레이드와의 만남 +1 21.01.07 353 5 13쪽
72 기사 21.01.06 343 5 13쪽
71 유령의 꿈 21.01.05 369 4 13쪽
70 한성, 또 사고 치다. 21.01.03 379 4 12쪽
69 뒷수습 21.01.02 367 4 12쪽
68 혈투의 끝 21.01.01 368 4 13쪽
67 혈투 20.12.31 384 5 12쪽
66 내분 - 2 20.12.30 408 4 12쪽
65 내분 20.12.29 428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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