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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스톤 님의 서재입니다.

전역날 이계로 납치당함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완결

팩스톤
작품등록일 :
2020.10.24 21:23
최근연재일 :
2021.03.05 18:05
연재수 :
1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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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9,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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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2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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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마왕군

DUMMY

뽀삐의 검은 털이 곤두서더니 스프링처럼 꼬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털 사이로 드러나는 단단한 육체가 호구의 빛에 반사되어 반짝인다.


피륙으로 이루어진 육체라기보다는 단단한 갑옷이라고 해야 할 것 같은 뽀삐의 육체가 점점 부풀어 오른다.


“크르르르......”


평소엔 레미르의 등쌀에 못 이겨 귀여운 외모를 유지하고 있으나, 이것이 뽀삐의 본모습이다.


“쿠어어- 케륵!”

“시끄러 임마.”


포효하는 뽀삐의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결계가 흔들리잖아.”


뽀삐의 포효에 격렬하게 흔들리던 결계가 다시 안정되기 시작했다.


나는 물결치는 결계의 표면을 바라보았다.


‘이걸 어떻게 보완한다냐......’


외부의 자극에 대한 대응은 훌륭하나, 내부로부터의 자극엔 지나치게 취약하다.


이 점만 보완해도 많은 것이 달라진다.


몸을 보호하는 것을 넘어 적을 가두거나 퇴로를 차단할 수 있고, 허공에 결계를 펼쳐 하늘에서 자유로이 이동하는 것도 가능하다.


‘레비처럼.’


그렇다.


이 결계는 레비를 통해 손에 넣은 능력이다. 정확히는 레비가 늑대 도플갱어의 코어를 흡수한 뒤 쓰기 시작한 능력.


도플갱어지만 내 분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 레비. 걔가 내 능력을 쓰는 것은 힘들어도 내가 레비의 능력을 쓰는 건 쉬웠다.


“나도 날고 싶다.”


고개를 들었다.


뽀삐가 뭘 그렇게 보냐는 듯이 내가 보는 방향을 올려다보지만, 그는 나와 같은 것을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지금 본체의 역할을 하는 분신의 시야로 허공을 올려다보고 있었으니까.


레비가 하늘을 통통 뛰어다니며 날아가는 철새를 낚아채고 있다.


그녀가 하늘을 나는 기술은 분명 내 결계와 동일한 기술.


다른 점은 숙련도 차이밖에 없다.


“호구도 날아다니는데.”


나는 물론 뽀삐도 볼 수 있는 호구.


“크하아아!!”


촌스럽게 반짝이는 갑옷을 입고, 괴성을 지르며 휠윈드를 돌리는 호구.


쿠구구구......


대족장은 호구의 휠윈드에 맞서 도끼를 미친 듯이 휘두르고 있지만, 호구에게 성검은 하나가 아니다.


여섯 검이 큼직한 오크의 등을 노렸다.


“파하아!!”

쿠화아아!!


사자후를 내지르며 저항한 대족장도 여섯을 전부 막지는 못했다.


결국 허리에 푸른 검이 박힌 대족장이 무릎을 꿇었다.


쿠구구구......


아, 이 진동 거슬리네.


호구와 대족장의 전투의 여파인 건지.

아니면 원래 지반이 약했는지.

아까부터 들려오는 지진의 전조.


나는 짜증나는 상황에 얼굴을 구겼다.


내 결계는 빈약하다.

뽀삐의 포효에도 뒤흔들리는 결계지.

그런 내 결계가 지진을 버틸 수 있을까?


아닐걸?


“나 간다.”

“그르릉.”


짧은 대꾸를 들은 나는 점멸을 통해 먼 장소로 이동했다.


“자리 좋았는데.”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떨쳐냈다.


코앞에서 보는 것도 좋아.

근데, 멀리서 본다고 나쁠 것도 없잖아?


오히려 더 좋을 수도 있어.


가까이서 볼 때는 못 봤던 것도 멀리서 본다면 보게 될지도 모르잖아.


그렇게 손해 본 기분을 떨쳐내고 그들의 싸움에 집중하는 순간.


상상도 못했던 사태가 터졌다.


쿠과과과과!!


땅속 깊은 곳으로부터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는 무언가.


그 새끼는 내가 채 반응하기도 전에 호구와 대족장을 향해 솟구쳤다.


푸화아아악!!!

-쿠와아아아!!!


천지를 진동하는 어마어마한 괴성.


갑작스러운 소리의 습격에 귀가 먹먹해졌다. 먹먹해진 청각에 내 눈이 커지는 소리가 들린다. 입이 자동으로 벌려졌다.


“씨발. 이건 또 뭐야?”


지상에서 솟구친 거대한 기둥.


그것의 피부는 바위와 같았지만, 움직임을 보면 놈은 틀림없는 생명체였다.


“데스웜이냐?”


저런 건 보통 사막에 서식하지 않나?


그때 괴물의 입이 벌어졌다.


-쿠레레레하악!!

푸촤촤촤촤!!

취치이이이......


산성 브레스가 오크와 인간을 덮쳤다.


*


“크읍. 왔군.”


데스웜을 보고 쾌재를 흘리는 용사.

정말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무슨 뜻이냐.”


대족장은 침음을 삼키며 물었다.


“저 괴물이 보이는가.”

“그래. 내 생에 저렇게 큰 샌드웜은 처음 보는군.”

“그렇겠지.”


용사는 눈썹을 추켜 올리며 말했다.


“저놈... 데스웜은 내가 만든 괴물이다.”


-쿠레레레하악!

푸촤촤촤촤!!


용사의 충격적인 선언과 함께 산성액이 비처럼 쏟아져 내린다.


한 방울이라도 닿았다간 무사하지 못한다.


대족장의 머릿속을 감싼 생각이었다.


대족장의 도끼가 불을 뿜었다.


“크하압!!”

푸화아아아!!


그 행동으로 인해 산성액이 사방으로 비산하고, 그는 한숨을 돌릴 수 있었으나.


대족장은 경악을 피할 수 없었다.


“네놈......”


용사의 전신을 감싸 안은 녹색의 산성액.

치이이이......


“왜 피하지 않았지.”


데스웜이 자신의 편이라고 방심한 것인가?


“멍청한 것이냐......”


데스웜의 산성브레스에는 눈이 없었다.

대족장도 저항하지 않았다면 녹아내리고 있었겠지.


“아니면, 이건 너의 계획이냐......”


대족장의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말했을 텐데.”


산성액으로부터 들려온 목소리에 대족장의 눈이 크게 뜨였다.


용사를 감싼 산성액이 중앙으로 모여가기 시작했다.


“저 괴물은 내가 만든 것이라고.”


중앙에 모인 산성은 구슬을 향해 빨려 들어가듯 사라져 갔다.


“내가 만든 존재에게 죽을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다.”


김호수는 산성액을 흡수하며 말했다.


“이제 정말로 끝이다.”

“흥.”


김호수의 오만한 선언.

대족장은 코웃음치며 말했다.


“끝나긴. 아무리 너라도 괴물을 컨트롤하진 못하는 걸로 보인다만.”


-쿠어어어!!


그의 말대로 데스웜은 제멋대로 날뛰고 있었다. 도저히 누구의 통제를 들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 모습이다.


하지만, 김호수는 웃었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군.”


산성액과 같은 색으로 빛나는 오른손이 옆에 뜬 푸른 성검을 잡았다.


대족장의 몸을 꿰뚫었던 푸른 성검을.


우우웅!!


그의 손길이 닿자 성검이 울부짖는다.


“...귀찮게 되었군.”


성검의 진동에 맞춰 대족장의 전신이 떨린다. 푸른 성검은 대족장과 공명하고 있었다.


그 순간 분위기가 급변했다.


-쿠으으으......


날뛰던 데스웜이 불현듯 멈춰섰다.


괴물의 머리 부위가 천천히 돌아온다.


지렁이의 머리에 박힌 7색의 보석들이 푸른색 하나로 통일되었다.


이내, 깊은 지하의 악몽은 대족장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그래, 오너라.”


대족장이 웃음을 터뜨린다.


“오늘 지렁이 고기 좀 먹어......”


그그그그......


대족장의 시선이 돌아갔다.


김호수 또한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그들은 보았다.


지옥에서 갓 튀어나온 듯한 검은 마수.


“크르르르......”

파칙! 파치치칙!


한없이 검어서 색이 사라진 것과 같이 보이는 네발짐승의 털 위를 암적색의 전류가 가로지른다.


“대족장 네놈이 불렀나.”

“아니.”

“후우. 아무래도 우리끼리 싸울 때는 아닌 것 같군.”


대족장과 나란히 서 마수를 노려보았다.


마수는 그 정도로 위협적이었기에.


-쿠어어어!!


데스웜 또한 마수의 위협을 인지한 것일까? 푸른 성검의 공명이 끝나는 순간 산성 브레스가 마수를 덮쳤다.


푸화아아악!!

치지지지지......


“먼저 가지.”

“보조하겠다.”


그렇게 두 사람과 한 마리의 마수 레이드가 시작되었다.


“......”


내게 있어선 정말로 황당한 광경이었다.

치솟는 짜증을 담아 뽀삐를 노려보았다.


“멍청한 개냥이새끼......”


대족장을 도우라니까 좋다고 날뛰고 있네.

이러니 신경질이 안 나게 생겼냐?


조용히 몸을 일으켜 총을 소환했다.


“정신이 팍 들게 해주마.”


방해되는 탄피받이를 떼어내고 서서 쏴 자세로 총기를 들어 올렸다.


노리는 곳은 뽀삐의 미간.


탄환에 거인의 마력을 듬뿍 담고.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탄환에 결계를 둘러쳤다.


그리고, 방아쇠를 천천히 잡아당겼다.


퓽!


귀여운 소리와 함께 쏘아진 탄환은.


“끼헤헤헹!!”


레이드 보스의 머리에 정확히 틀어박혔다.


바닥을 뒹굴던 뽀삐가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원위치.


뽀삐는 불만스러운 눈으로 데스웜을 올려다봤다.


“그래 그거지.”


저게 호구의 비밀병기였단 말이지?


호구의 전력을 상향 조정했다.


저 정도의 괴물을 다룬다면.

현재의 군단장과도 충분히 해볼 만하겠지.


“역시 그냥 둬선 안 되겠네.”


짜증스럽게 총을 없애며 혀를 찼다.


*


“하아... 저쪽도 문제고 이쪽도 지랄이네.”


드디어 도착했다.


이 앞은 마왕령.

경계 너머에 마왕군이 가득하다.

그들은 당장이라도 이쪽으로 넘어올 것 같은 기세를 풍기고 있었다.


“레비.”


한 손으로 열손 막을 수 없다고 레비가 없었다면 이 새끼들의 진격을 막긴 힘들었을 것이 분명하다.


씨익 웃으며 전면에 나선 레비가 손을 뻗자. 말랑말랑해 보이는 장막이 나타나 마왕군의 앞을 가로막았다.


-어, 어! 밀지 마! 여기 막혔... 어억! 밀지 마!! 밀지 말라고!!


레비의 결계에 마왕군의 진격이 틀어막혔다. 이제 기다리면 적들의 지휘관들이 나타나겠지. 내 목표는 그들의 목이다.


“오. 마침 나왔네.”


만두같은 남자가 표정을 잔뜩 찡그린 채 나왔다.


“오늘은 운이 좋군.”


엄청나게 빡친 것 같은 외견과 달리 그의 목소리는 쾌활했다.


“첫 출전부터 이런 난관을 맞이하다니.”


찡그린 얼굴에서 나오는 웃음 섞인 소리.

아무래도 저것이 웃는 얼굴인 게 확실한 것 같다.


“물러서라!”


그의 선언에 마왕군은 질서를 되찾았다.


“이깟 결계는 이 위대한 엑라트스님을 가로막을 수 없다.”


솔직히 존나게 익숙하지 않다.


매우 빡쳐 있는 얼굴로 누구보다도 쾌활하게 연설하는 엑라트스의 모습은 자못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흐아아압!!”


연설하던 엑라트스가 돌연 괴성을 내지르며 결계를 향해 돌진했다.


“받아...!! 어엉?”

쭈우우욱!


그의 공격을 받은 결계는 깨지는 대신 쭈욱 늘어났고,


“아, 아안-”

투슝!!


엄청난 속도로 지평선 너머로 날아가 버렸다. 마왕군과 나 사이에 짙은 침묵이 깃들었다.


“...뭐야? 저 병신은.”


멍청이를 바라보는 나의 소감과 다르게 마왕군에게서 터져나오는 비명같은 괴성.


“엑라트스님!!”

“이럴수가! 엑라트스님이 당했어!!”


충격과 공포에 빠진 것일까?


“빌어먹을 인간 놈들!!”

“감히 우리 엑라트스님을!!”

“놈들을 잡아라!! 묶어서 엑라트스님의 원수를 갚자!!”


아니, 그들은 분노에 사로잡혀있었다.


마왕군에게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열기는 나에게까지 도달했고, 내 의욕은 그들의 분노에 의해 실시간으로 갉아 먹혔다.


“병신 밑에 병신들......”


난 뭐하는 짓이냐.


강하다.


정말 다른 의미로 강하다.


군단장이 없는 마족이란 원래 이렇게 멍청한 것일까?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고,

병신 끼도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걸까?


미친 듯이 결계를 향해 몸을 부닥치는 마족들을 보는 나의 마음은 실시간으로 썩어들어갔다.


“갔다 온다.”


속 터지는 마음을 푸는 방법은 간단하다.


원없이 싸우다보면 풀리는 법.


나는 양 주먹을 고쳐 쥔 채 결계를 향해 뛰어들었다.


내 모습은 어느새인가 몰라볼 정도로 바뀌어 있었다.


“저, 저기!!”

“인간!! 인간 놈!! 대장님의 원... 꾸엑!!”


나를 손가락질하는 마족의 얼굴을 짓밟았다.


“이 자식!! 엑라트스 대장님도 모자라! 부대장님까지!!”


이 새끼가 부대장이었어?


왜 그런 위치에 있는 새끼가 최전방에서 결계에 몸을 날리고 있냐?


의문을 담은 나의 주먹이 부대장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와아아!!

죽여라!!

인간을 잡아라!

원수!!


분노로 가득한 전장에 나 홀로 군대에 맞서고 있다.


가슴이 웅장해지는 광경이어야 하는데 왜 나는 기분이 이상한 것일까?


머리로 날아드는 도끼를 박치기로 산산조각내며 생각했다.


“지구로 돌아가고 싶다.”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한 일.

나는 그저 한숨을 내뱉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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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요정마을 21.01.29 274 4 12쪽
91 요정 +1 21.01.28 272 3 13쪽
90 잔혹동화 - 3 +1 21.01.27 281 4 13쪽
89 잔혹동화 - 2 +2 21.01.26 287 4 12쪽
88 잔혹동화 +1 21.01.24 298 3 12쪽
» 마왕군 +1 21.01.23 304 3 12쪽
86 현상유지 21.01.22 305 3 12쪽
85 뽀삐 21.01.21 308 2 12쪽
84 어둠의 신 21.01.20 304 4 11쪽
83 부활 +1 21.01.19 310 4 12쪽
82 사투가 끝나고 +1 21.01.17 303 4 12쪽
81 고전 - 2 +1 21.01.16 319 4 13쪽
80 고전 +1 21.01.15 316 4 12쪽
79 마왕 +1 21.01.14 311 4 12쪽
78 불화 - 2 21.01.13 322 4 12쪽
77 불화 21.01.12 320 4 13쪽
76 오해 21.01.10 333 3 12쪽
75 지옥탕 21.01.09 345 4 13쪽
74 계획 +1 21.01.08 337 5 12쪽
73 로레이드와의 만남 +1 21.01.07 353 5 13쪽
72 기사 21.01.06 343 5 13쪽
71 유령의 꿈 21.01.05 369 4 13쪽
70 한성, 또 사고 치다. 21.01.03 379 4 12쪽
69 뒷수습 21.01.02 367 4 12쪽
68 혈투의 끝 21.01.01 368 4 13쪽
67 혈투 20.12.31 384 5 12쪽
66 내분 - 2 20.12.30 408 4 12쪽
65 내분 20.12.29 428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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