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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스톤 님의 서재입니다.

전역날 이계로 납치당함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완결

팩스톤
작품등록일 :
2020.10.24 21:23
최근연재일 :
2021.03.05 18:05
연재수 :
122 회
조회수 :
77,048
추천수 :
980
글자수 :
699,515

작성
21.01.30 18:00
조회
276
추천
3
글자
13쪽

레이닉스 경비대

DUMMY

“거기서 뭐해! 이쪽이야 인간!”

“잠깐 구경도 못 하냐?”

“그치만! 메림이 빨리 오라고 했는걸!”


요정 여왕 메림.

여왕이라는 거창해 보이는 단어로 치장했으나 실상은 마을 이장에 불과하다.


“알았어. 간다. 가.”


울고 있는 나무 인간이 가엾긴 하지만, 굳이 터치할 생각은 없다. 그들의 사정이 딱한 것은 내 탓은 아니잖아.


‘저쪽을 보면 나쁘기만 한 건 아닌 것 같고.’


이쪽의 나무 인간은 울고만 있지만, 저쪽의 나무 인간은 오히려 웃고 있었다.


“나도! 나도 사과조! 사과......”

“비켜! 내가 먼저야!”

“자! 사과는 충분하니 줄을 서거라. 거기! 싸우지 마라!”


가지에 맺힌 탐스러운 열매가 인상적인 나무 인간이 요정들을 줄 세우고 있다.


양손에 잘 익은 사과를 들고서.


나는 사과를 나눠주는 나무 인간을 보고 침을 삼켰다.


분명히 울보 나무와 같은 종족일 텐데......


엄청 컸거든.


몹시 크고 우람한 체형.

가지 하나에 달린 사과만 수십 개.

울보 나무와 같은 종족인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로 크고 힘센 나무.


“싱싱한 사과가 왔다!!”


우수수수......


대기를 떨어 울릴 정도의 목청까지.


“이, 잉간! 빨리 오라구! 나도 사과 받으러 가야 한단 말야!”


달콤한 사과 향을 맡은 안내 요정은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낑낑거렸다.


그 모습에 어이가 없어졌다.


“가고 있잖아.”


지금도 꾸준히 따라가는 중이었거든.


“더 빨리! 빨리 가자구!”

“네가 먼저 가야 따라가지!”


소리치는 요정에게 역으로 호통쳤다.


“속도 조절은 앞서가는 너가 해야지 내가 어떻게 하냐!”


안내하다 말고 빨리 가자고 찡찡대면 내가 뭘 해줘야 하는 거냐?

난 여기 처음 왔다.

지리를 모른다고.


“니가 빨리 가야 내가 빨리 가지!”


그런 내가 할 수 있는 건 요정의 뒤를 따라가는 것뿐.


“아니면! 메림인가 마을 이장이 있는 장소를 알려주면 될 거 아냐!”

“이, 이장 아닌데에... 메림은 메림인데에......”


울먹이는 요정을 보자 어떤 느낌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야.”

“우웅......”


혹시......


“혹시 네가 메림?”

“......”


요정의 두 눈이 커졌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게 퍽 수상하다.


“...아닌데.”


눈은 마주치고 말해라.


“정말, 정말 아닌데.”

“...알았다. 안내나 해라.”

“그, 그래! 최대한 빨리 갈게! 따라와!”


초록색 마력에 휩싸인 메림(?)이 엄청난 속도로 이동한다.


“진작 이럴 것이지.”


나는 녹색 궤적을 따라 눈을 돌렸다.

궤적의 끝에 있는 메림은 불안한 듯 이쪽을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는데.


따라오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감정으로 가득한 시선에 살짝 어깨를 으쓱한 나는 힘차게 발을 굴렀다.


“어?”


메림을 따라잡기까지 걸린 시간은 찰나였다. 그녀는 혼란에 빠진 시선으로 날 바라보다가 활기차게 웃으며 소리쳤다.


“그럼 시합이야! 우리 집에 누가 먼저 도착하나! 먼저 간다!!”


그 말을 끝으로 시야 너머로 사라지는 메림. 정말로 어이가 없어지는 상황이었다.


“아니, 갑자기 무슨 시합?”


나는 입술을 힘껏 구겼다.


경쟁이 싫은 것이 아니다.

나도 시합하는 거 좋아한다.


특히 상품이 걸린 경기는 가슴을 절로 뛰게 만들지.


헌데, 하필 시합을 지금 한다고?


나는 목청이 터져라 메림의 뒷모습을 향해 소리 질렀다. 성대에서 시작된 포효에 대기가 떨어 울렸다.


맹수의 울부짖음과도 같은 목소리.


“너희 집을 내가 어떻게 아냐! 메림!!”


그것에 담긴 감정은 깊은 당혹감이었다.


“이러면 내가 못 이기는 시합이잖아!”

“난 메림이 아니야아!!”


동화 풍의 아름다운 숲에서 일어난 때아닌 레이스. 그 소란은 고요함을 헤치고 널리 울려퍼졌다.


*


기묘하게 생긴 고목 앞에 도착한 나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뒤를 돌아봤다.


“이겼다.”


승리는 언제나 달콤한 법.


뜬금없이 시작된 경주.

그것도 도착지를 상대만 알고 나는 모르는 불공정한 경기였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성취감이 강했다.


“으으... 너무해......”


아, 저기 패자가 오는군.


아까의 패기는 어디 갔는지 잔뜩 풀죽은 채 날아오는 메림. 잔뜩 부풀어 오른 그녀의 볼을 보면 무언가를 먹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먹을 건 반칙이야... 아그작!”

우물우물......


분함의 눈물을 질질 쏟으면서도 과자를 집는 먹는 손과 입은 멈추지 않았다.


나는 승리에 잠긴 얼굴로 내게 승리를 가져다 준 일등공신을 바라보았다.


질질......


메림의 손에 질질 끌려오는 커다란 과자봉지. 벌꿀버터칩. 일부러 포장지를 살짝 뜯어 던졌지.


“반칙? 아니지, 작전의 승리야.”


메림으로서는 피할 수 없는 유혹이었을 것이다. 얼마 전 있었던 난리 통.


거인 분신과 요정이 어우러져 일어난 한 치 앞도 모를 혼란 속에서, 결계 너머의 팝콘 냄새를 맡고 나를 찾아온 메림이다.


‘코앞에서 나는 달콤한 냄새를 맡지 못할 리가 없지.’


목적지로 보이는 나무를 발견한 순간 메림을 향해 벌꿀버터칩을 던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봉투까지 뜯었으니, 과자 향기가 그녀의 코를 찌르는 것은 필연적이었으리라.


예상대로 메림은 넘어왔다.


시합과 과자 사이에서 주춤하던 그녀는 과자를 향해 돌진했고, 나는 시합에서 이겼지.


“이건... 감자? 감자 맞지? 감자가 이렇게 달다니! 나 이런거 처음 먹어 봐!”


시합에 진 요정의 천진난만한 얼굴을 보니 상기되었던 내 마음이 차게 가라앉았다.


‘난 지금 뭐 하는 거냐......’


내 목적은 어디까지나 마왕의 동화책을 찾는 일이다. 요정과 놀아주는 것이 아니랄 말이다. 더 이상 휘둘리지 않으리라. 마음을 단단히 잡으며 메림을 향해 말을 꺼냈다.


“이제 알려 주시지.”

“음음! 이건 꿀인가? 꿀의...... 큼! 큼!”


과자의 내용물을 분석하던 메림.

나와 눈이 마주치자 헛기침을 하며 무게를 잡는다. 이제 와서 저러는 것도 우습지만, 터치하진 않도록 하겠다.


아까부터 눈물이 그렁그렁한 게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으니까.


“그럼 요정의 여왕을 소개할게! ”


눈가를 훔친 메림이 눈앞의 거목을 향해 날아갔다. 그녀의 움직임에 맞춰 거목의 가지가 움직여 작은 옥좌를 만들어냈다.


메림은 가벼운 몸놀림으로 옥좌에 앉아 나를 내려다보며 소리쳤다.


“사실, 내가 메림이야!! 놀랐지!!”

“......”


하지만,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 그렇기에 메림의 선언은 조금도, 전혀 놀랍지 않았다.


“놀랐지......”

“...와 너무 놀랍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그녀에게 대충 응대해 줬다. 안 그러면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거든.


요정을 달래주기엔 시간이 부족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동화 속 군단은 계속 늘어나고 있으니까.


현재 그들을 쓰러뜨리고 있는 나로서는 알고 싶지 않아도 알 수밖에 없다.


“그, 그렇지? 놀랐지! 헤헤.”

“그래. 놀랐으니까. 이제 알려줘. 마왕이 남긴 동화책의 위치를.”


음... 근데.

걱정되는 점이 하나 생겼다.


“동화책이라......”


이 순수한 요정이 과연.


“동화책이 뭐야?”

동화책이 뭔지 알기나 할까?


“...그럼 그렇지.”


슬며시 이마를 짚었다.


이건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정말로 머리가 아파지는 상황이다.


‘아 그래.’


동화책을 보여줄까?

백 번 들어도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

시공분신의 힘으로 동화책을 구현하면......


촤륵.

“이게 동화책이다.”


마침 딱 좋은 물건이 있었다.


로레이드의 잔당들을 털며 가져온 그림책.

나라가 망했음에도 사치를 놓지 못한 귀족답게, 고작 그림책임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마법이 걸려 있었다.


“어... 이거 어떻게 읽는 거야?”


그 마법이란 무척 교육적인 마법이지.


나는 책을 내려다보며 마력을 불어넣었다. 책의 정중앙에 장식된 마석에서부터 푸른 줄기가 퍼져나갔다.


위이잉!


[옛날 옛날 먼 옛적. 레이닉스라는 이름의 작은 마을이 하나 있었어요......]


책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메림은 화들짝 놀랐다. 그렇다. 귀족에게 약탈했던 이 책은 무려 음성지원이 되는 동화책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평화롭게 살아가던 마을이었지만, 평화는 영원하지 않았죠. 어느 날 무서운 일이 일어났어요.]


비록 가능한 일이라곤 책의 내용을 대신 읽어주는 것밖에 하지 못하는 아티팩트지만.


[무서운 일이란... 몬스터의 침공이었죠.]


그래도 아티팩트는 아티팩트다.

이 정도 물건만 해도 엄청난 사치지.


[마을 사람들은 무기를 들었습니다.]


자식 사랑이 얼마나 대단했으면 이런 걸 선물해줄 수 있었을까?


[그렇게 탄생했죠.]


나는 동화책의 원주인을 떠올리며 비웃음의 띄웠다.


‘과연, 사랑 때문이었을까?’


[몬스터의 침공에 맞설 영웅들.]


음성지원이 되는 마법의 동화책을 자식에게 선물해준다. 참으로 좋은 미덕이다.


[레이닉스의 108경비대가.]


남들에게 자랑하기 딱 좋은 미덕이지.


[드디어 밤이 왔군요.]


하지만, 아이들 선물 용도로는 꽝이다.


[영웅들은 싸웠습니다.]


아니, 꽝도 아닌가.


[저 멀리서 안개에 휩싸인 몬스터들이 몰려왔죠.]


자식을 위했다면 선물해선 안 되었다.


[추화악-! 몬스터의 목을 베고.]


이런 책을 선물해선 안 되었지.


[꿀꺽꿀꺽, 크하아!!- 침략자들의 피로 목을 축였지요......]


동화책이 피와 살점을 노래하고 있다.


[낮의 그들은 영웅이었습니다.]


이제 곧 클라이막스.


[밤의 그들은 학살자였습니다.]


나는 메림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도 이상함을 느낀 것일까?

초록 머리가 인상적인 요정의 얼굴은 단단히 굳어있었다.


[시작이 있다면 끝도 있는 법.]


동화책의 활자들이 뇌리를 감돌며 환영을 만들어내었다.


[끝은 결코 그들에게 좋지 않았답니다.]


한 명 한 명 죽어가는 영웅.

경비대의 죽음을 비웃어대는 몬스터.


꿈도 희망도 없는 전개. 도저히 아이들이 보는 동화에 실릴만한 광경이 아니다.


[그렇게 경비대는 전멸했습니다.]


레이닉스의 108경비대가 전멸하고.


몬스터들이 마을을 덮친다.

괴물들의 창칼이 사람들을 꿰뚫었고, 희생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죽어갔다.


[마을은 살아남을 수 없었습니다.]


마을이 멸망하고 침입자들이 환호한다.


[하지만, 침입자들은 웃었습니다.]


그들의 눈물 섞인 환호은 뭇사람의 마음을 진동시킬 정도로 격렬했다.


[몬스터...]


몬스터들을 휘감고 있던 안개가 걷혔다.


[아니, 침입자들의 수장이 소리쳤습니다.]


그들은 몬스터가 아닌 사람이었다.


[기뻐하라!!]


기뻐하라고 목청이 터지도록 외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의 목소리는 슬픔으로 가득했다.


[레이닉스의 도적들을 무찔렀다!]


살아남은 부하들이 수장을 보며 울부짖었다. 그들의 비통한 울부짖음에 수장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 도적놈들은 일찌기 우리의 친우, 가족, 식량을 비롯한 모든 것을 앗아갔었지.]


그래. 동화책이긴 하다.


[그들이 죽었으니.]


하지만, 평범한 동화책이 아니지.


[우리의 가족들은 성불할 것이다.]


아이들의 동심을 송두리째 박살 내는 끔찍한 잔혹동화. 이것이 귀족이 자식에게 준 선물의 정체였다.


위이이......


모든 이야기를 마친 동화책이 빛을 잃었다. 나는 찝찝한 손길로 책을 집어 들었다.


‘상종 못할 새끼.’


이딴 게 선물이냐?


나는 동화책의 제목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레이닉스의 108경비대.

상당히 유명한 동화책이다.

몬스터의 침략에 108명의 남자가 들고일어나 마을을 지켜낸다는 전형적인 내용이지.

마왕의 탄생 이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다. 그럼 이 책은 각색한 내용인가?


‘아니 오히려 이쪽이 원전이지.’


3년간 부활에만 신경 쓴 것이 아니다.

마왕에 대한 조사도 빼놓지 않았지.


그중에서는 역사에 대한 자료도 있었다.


그 오래된 기록에는 나라 하나를 멸망 가까이 몰아넣은 레이닉스의 도적단이 토벌당했다는 내용을 보았었지.


나는 메림을 보았다.

동화책이고 나발이고 이 요정의 반응이 궁금했거......


“재미는 있는데, 이야기해주는 목소리가 마음에 안 들어.”

“......”


잔혹 동화의 내용을 본 요정의 표정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음... 본거가튼데... 저거, 어디서 봤더라... 아!!”


화사하게 웃은 메림이 손가락을 뻗었다.


“저쪽 숲에 저런 거 있었어!”


그녀가 손가락질한 방향에 안력을 집중하자 보이는 광경.


그곳에는 보라색 안개에 휩싸인 음침한 분위기의 계곡이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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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잉크 +1 21.01.31 255 4 13쪽
» 레이닉스 경비대 21.01.30 277 3 13쪽
92 요정마을 21.01.29 274 4 12쪽
91 요정 +1 21.01.28 272 3 13쪽
90 잔혹동화 - 3 +1 21.01.27 281 4 13쪽
89 잔혹동화 - 2 +2 21.01.26 287 4 12쪽
88 잔혹동화 +1 21.01.24 298 3 12쪽
87 마왕군 +1 21.01.23 304 3 12쪽
86 현상유지 21.01.22 305 3 12쪽
85 뽀삐 21.01.21 308 2 12쪽
84 어둠의 신 21.01.20 304 4 11쪽
83 부활 +1 21.01.19 310 4 12쪽
82 사투가 끝나고 +1 21.01.17 303 4 12쪽
81 고전 - 2 +1 21.01.16 319 4 13쪽
80 고전 +1 21.01.15 316 4 12쪽
79 마왕 +1 21.01.14 311 4 12쪽
78 불화 - 2 21.01.13 322 4 12쪽
77 불화 21.01.12 320 4 13쪽
76 오해 21.01.10 333 3 12쪽
75 지옥탕 21.01.09 345 4 13쪽
74 계획 +1 21.01.08 337 5 12쪽
73 로레이드와의 만남 +1 21.01.07 353 5 13쪽
72 기사 21.01.06 343 5 13쪽
71 유령의 꿈 21.01.05 369 4 13쪽
70 한성, 또 사고 치다. 21.01.03 379 4 12쪽
69 뒷수습 21.01.02 367 4 12쪽
68 혈투의 끝 21.01.01 368 4 13쪽
67 혈투 20.12.31 384 5 12쪽
66 내분 - 2 20.12.30 408 4 12쪽
65 내분 20.12.29 428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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