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징(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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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 각이 지나자 첫 번째 전령이 다시 도착한다.
“음철문 무인들이 백 장 앞까지 도착한 상태입니다.”
“수고했소. 전투에 휘말릴 필요 없으니 이제 다들 감시를 그만 두고 철수하라고 하시오.”
“알겠습니다.”
전령이 떠난 후에 정문으로 가서 경비를 안으로 불러들인다.
“대문은 활짝 열어두도록 해라. 안으로 들어오기 좋도록.”
“알겠습니다.”
대문을 활짝 열고 나와 18연강인 중 10명은 대광장에서 대기한다. 그 뒤로 천강대 10여명이 자리를 잡는다.
“문주님, 저희가 후방을 담당하는 겁니까?”
차중산은 주병력이라 생각하는 자신들이 후방을 담당하는 것에 의문을 표시한다.
“천강대는 예비병력이네.”
“예비병력이요?”
“전투는 연강인만으로 치를 거네. 자네하고 천강대는 유사시에 동원될 거야. 내 지시가 없다면 지켜보기만 하도록.”
“알겠습니다.”
차중산은 자신들이 전투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쉽게 납득되지 않았지만, 주군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기에 고개를 숙여 대답하면서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마침내 어둠 속에서 골목길을 지나 정문으로 향하는 무리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소리를 최대한 죽이고 움직이는 무리들. 그들은 활짝 열린 대문을 보고 잠시 멈춘다.
“...이건?”
선두에 선 음산악이 조금 놀란 표정이 된다.
“왔으면 들어오지 그래.”
대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나를 보면서 안면을 꿈틀거리는 음산악. 놈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진다. 기습을 한다고 생각하면서 속으로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여기까지 왔을 음산악을 생각하니 가소롭기만 하다.
“놈! 내가 올 줄 알았다는 거냐?”
“알고 있으니 이렇게 대문을 활짝 열고 손님맞이 준비를 끝낸 거지. 말이 더 필요한가? 어차피 야심한 밤을 이용해 야습하려고 한 것 아니었나?”
“이놈이? 그래, 네놈 말대로 야습하려고 했지. 네놈에게 먼저 발각되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결과는 힘에 의해서 결정되는 거니까. 교활하게 자객을 보내 나를 암살하려고 해?”
“그건, 네놈이 먼저 내게 저지른 짓이고.”
비웃는 내 말에 눈꼬리가 크게 올라가는 음산악.
“훗, 누가 먼저 시작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결국 누가 최후의 승자냐가 중요한 거지.”
“내 말이. 전투에 말이 필요하진 않잖아.”
“쳐라! 놈들을 모두 죽여라!”
“넵!”
80여 명이나 되는 음철문 수하들이 낮게 대답한다. 심야시간이라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음에도 80명이 대답하니 그 소리가 아주 작지는 않았다.
- 후두두─ 휘릭휘릭─
80명이 밀물처럼 대문을 지나 안으로 밀려든다. 그들이 모두 안으로 들어왔을 때 명령한다.
“대문을 닫아라. 지금부터 한 놈도 살려서 나가지 못 하게 해라.”
“알겠습니다.”
내 명령이 떨어지자 대문 좌우 건물에 은신했던 나머지 8명의 연강인이 나와 대문을 닫으면서 놈들의 후방을 차단한다.
그 모습을 보자 입꼬리를 비틀면서 비웃는 음산악. 어이없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이거야 원! 뭐? 살아나서 나가는 놈이 없게 하라고? 마치 우리를 모두 죽일 수 있다는 듯한 오만한 말투라니. 고작 삼십 명으로 우리를 상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거냐? 더구나 무기도 없이 맨손으로? 세상에 어떤 문파가 무기도 없이 무인을 운용한단 말이냐. 네놈이 무림에 대해서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모양이구나. 어디에서 사람을 구해 고용하기는 했지만 무공도 못 하고, 무기도 없는 놈들을 고용한 거지.”
“입으로 싸울 건가? 음산악, 네놈은 입으로 싸우는 놈이야?”
조롱하는 말투로 놈을 비웃자, 놈의 눈썹이 꿈틀거리더니 얼굴이 구겨진다. 핏대가 서면서 분노감을 표출하는 음산악. 놈의 눈에 짙은 살기가 번들거리기 시작한다. 자신의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 대한 분노감으로 살기는 더욱 짙어진다.
“뭐야? 이 빌어먹을 새끼가 지금 내게 뭐라고 하는 거야. 쳐라! 천강문 문주라는 저놈은 내가 상대한다.”
“넵!”
- 타다다다닥─
마침내 음철문 수하 80여 명이 18연강인을 향해 앞뒤로 나누어지면서 공격을 시작한다. 동시에 음산악 역시 나를 향해 공격한다.
- 쉬익─ 부웅─
음산악의 검이 예리한 파공음을 울리며 접근한다. 음산악은 내게 접근함과 동시에 번개처럼 발검을 했다.
‘역시 절정고수다운 몸놀림과 초식.’
놈의 검을 맨손으로 막는 것은 위험하다. 내가 도검불침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일류고수까지 해당한다. 내공이 강한 절정고수 이후부터는 실력에 따라 연혼천강인이나 연혼천독인이라도 신체에 상처를 내거나 사지를 자를 수 있다. 음산악이 절정 초입에 들어선 실력이라면 결코 방심해서는 안 된다.
놈이 검의 내 몸을 공격할 때 나 역시 약왕승검환에서 약왕승검을 꺼내 몸을 피하면서 놈의 검을 방어한다.
- 카앙─
“흐읍!”
역시 장검을 단검으로 막는 것은 힘에 부치는 일이다. 절정고수인 음산악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이유는 그나마 내공에서 앞서고, 섬풍환신보를 조금 익힌 덕이다.
“이것 봐라? 내 공격을 막아? 그것도 단검으로? 무공을 아주 못 하는 놈은 아니로군. 하지만 그깟 단검으로 언제까지 내 검을 막을 성 싶으냐.”
약간의 의외라는 눈빛. 내가 놈의 공격을 막은 것이 놈에게는 의외였나 보다. 그러면서도 놈은 입꼬리를 올리며 차갑게 미소를 지었다. 놈은 내게 일격을 가한 후에 승기를 장담하는 것처럼 보였다. 확연하게 내가 밀리는 것을 확인했고, 내 초식이 자신보다 떨어진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당연한 자신감이다. 무공을 익힌 사람이 한 차례 초식을 교환해보면 서로의 우위를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역시 무공 숙련도는 음산악에 비해 한참 뒤떨어져.’
음산악의 몸은 빨랐다. 내가 섬풍환신보를 익혔다고 하지만 고작 한 달에 불과하다. 내공은 결코 부족하지 않지만 그 내공을 쓸 수 있는 초식의 숙련도는 미흡하다. 그러니 모든 면에서 음산악에게 뒤지는 것이다. 무공으로만 상대한다면 나는 음산악을 이길 수가 없다. 내가 믿는 것은 나와 18연강인이 연혼인으로서 가지는 신체적 장점.
그리고 그 장점은 이미 나타나고 있었다.
- 쫘지직─ 파앗─
“으악! 끄으윽!”
“끄악!”
여기저기에서 터지기 시작하는 비명소리들. 그 비명의 주인은 모두 음철문 수하들이다.
“응? 뭐, 뭐냐? 지금 뭐하는 거야?”
18강천강인이 음철문 수하의 공격을 막으면서 맨손으로 사지를 찢어발기자 음철문 수하들이 비명을 지른 것이다.
“뭣들 하는 거냐? 고작 18명이다. 그것도 맨손이다. 그런데 놈들에게 당하고 있는 거냐?”
“문주님! 이놈들 사람이 아닙니다. 괴물입니다. 칼에 맞아도 상처가 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맨손으로 팔다리를 뜯어낼 정도의 괴력을 지녔습니다.”
음철문 고위직으로 보이는 중년 무인 하나가 당황한 표정으로 얼른 대답하자, 음산악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뿌드득! 그렇군. 놈들이 왜 맨손으로도 자신감을 보이나 했더니. 몸 안에 갑주를 입은 모양이군. 놈들이 몸 안에 갑주를 입은 모양이다. 그러니 모두 목과 얼굴만을 노리도록 해라. 가슴이나 허리가 아니라 머리하고 목을 노리라고.”
“알겠습니다. 모두 목과 머리만 노려라.”
음산악은 18연강인에게 칼이 통하지 않는 이유가 옷 안에 갑주를 몰래 입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설마 맨몸으로 도검이 불침하는 존재라고는 생각하지 못 할 것이다.
음철문 수하들과 싸움은 신경 쓰지 않는다. 80명이나 된다고 하지만 18연강인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는 자들이다. 18연강인이 어떤 존재던가? 중원정복을 위한 비밀병기로 만들던 존재다. 고작 음산악 수하 따위에게 당할 존재가 아니다. 그러니 음산악만 잡으면 된다.
“지금 수하들 신경쓸 때가 아닐 텐데. 나를 앞에 두고 다른 곳에 신경 쓸 여유가 있나?”
“뭐야? 어린놈의 새끼가. 가만 두지 않겠다.”
음산악은 이를 뿌드득 갈면서 벌개진 눈동자로 나를 노려본다. 수치심과 분노로 가득한 표정이다.
- 쉬익─ 부웅─
놈의 두 번째 공격이 시작된다. 역시 한 문파의 문주로 부족함이 없는 실력이다. 비록 욕심 많고 음험한 놈이지만 음철문이라는 문파를 이끌 실력은 충분히 갖춘 자다. 그리고 놈의 두 번째 공격은 피하기가 쉽지 않았다.
‘섬풍환신보로도 피하기 어려운 공격이네. 내가 피한다 해도 나를 따라와서 결국은 타격을 줄 거야.’
어차피 피할 수 없다면? 놈의 공격에 당하는 척하는 것이 낫다.
놈의 공격을 최대한 피하지만, 그렇게 피한다 해서 피할 수 있는 공격이 아니다. 나와 음산악의 무공 격차는 생각보다 컸다. 역시 수십 년을 수련한 사람을 단숨에 따라잡기는 어렵다.
음산악의 검은 피하는 내 몸을 따라 움직이면서 마침내 내 목에 한 뼘까지 접근했다. 그 순간 음산악의 눈에 보이는 희열의 눈빛. 나를 잡았다는 승리감에 취한 눈빛이다. 그리고 보통의 경우라면 이 상황에서 목에 공격을 당하면 끝나는 싸움이다. 절정고수가 아니라 초절정고수라도 목을 베이고서는 이길 수가 없다.
- 틱─ 착─
“응?”
놈의 검이 내 목을 파고드는 순간 내 손은 놈의 손을 잡았다.
‘놈! 방심한 것이 실수다. 내 손을 피했어야지.’
내가 놈의 손을 잡아나가는 것을 알면서도 음산악은 구태여 내 공격을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놈의 손을 잡기 전에 내 목이 먼저 떨어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놈은 내가 손을 잡으려는 이유가 자신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했고, 자신의 검이 더 빠르기 때문에 내 방어는 실패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놈의 검이 내 목을 자르는 순간 더 이상 파고들지 않고 튕겨나가는 검. 그리고 그 순간 잡힌 놈의 손목. 놈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당황한 외침이 터지면서 눈이 화등잔처럼 커진다.
“뭐, 뭐야? 갑주만 입은 것이 아니었나? 아니, 이건 맨살인데?”
놈은 자신의 검이 내 목을 자르지 못 하자 믿기 어렵다는 불신의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한 것이다. 하지만 너무 늦게 알았다.
“내 피부가 좀 튼튼한 편이라서 말이야.”
“끄아악! 끄억!”
- 콰직─ 뚜둑─ 텅그렁─
순간 놈의 손목이 시퍼렇게 변했고, 놈은 중독의 고통에 비명을 지른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 공격에 팔목이 부러진 음산악은 손에 쥔 칼을 놓치면서 무릎을 꿇고 만다.
“끄윽끄윽, 이, 이게 무슨... 칼이 통하지 않는 놈이라니. 말로만 듣던 도검불침의 금강불괴란 말인가? 크으윽!”
“그렇다고 볼 수 있지.”
“끄으윽, 말도 안 되는. 그리고... 이건 독공?”
“그래, 독공이지.”
“금강불괴에 독인이라니. 이런 말도 안 되는... 크흑!”
“그걸 몰랐던 것이 네놈이 죽은 이유지. 지피지기여야 하는데, 나에 대해서 너무 몰랐어.”
놈은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주변을 돌아본다.
- 쫘자작─ 파앗─ 주르륵─
“으악!”
“끄억! 인간이 아니라 괴물들... 끄윽!”
주변에서 터지는 비명은 모두 음철문 수하의 비명뿐이다.
“크흑, 그, 그렇다면... 저, 저놈들도 갑주를 입은 것이 아니라 금강불괴? 이럴 수가...?”
비로소 음산악은 상황을 파악한 듯했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이미 자신은 독에 중독되어 죽어가고 있고, 수하들도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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